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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우리의 마음도 해친다

지구온난화가 우리의 마음도 해친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우울증과 불안증, 트라우마 같은 심리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어
2005년 미국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한 직후 피해 지역 주민의 거의 절반은 우울증·불안증 같은 기분장애에 시달렸다.
기후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 현상이 인간의 건강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또한 잘 알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천식과 특정 암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연구 결과가 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우리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관해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불안증 같은 심리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지난 3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대표적인 기후변화 정책이었던 ‘청정 에너지 계획’을 실질적으로 무효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로 다음날 발표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주요 탄소 배출 규제를 해제하고, 국유지 내 석탄 채굴을 허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 사회적 탄소 비용 같은 기후변화 규제를 폐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명식에서 “나의 행정부는 석탄과의 전쟁을 그만둘 것”이라며 “미국의 에너지 규제를 없애고, 정부의 간섭을 중단하고, 일자리를 없애는 규제를 취소하는 역사적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석탄 연소 등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일으키는 지구온난화가 기상이변을 촉진해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이런 재해는 우리의 생활 조건과 농업, 지역사회 인프라(건물의 안전성과 교통·의료 서비스, 깨끗한 물 제공 등에 필수적이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요인이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

2005년 9월 미국 남부 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최고 시속 280㎞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초대형 폭풍)가 비근한 예다. 그 허리케인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주택·상가가 침수되면서 약탈과 전염병이 발생했다. 그에 따라 미국 남부의 산업 시설이 마비되는 등 한동안 미국의 경제가 침체했고,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등 세계경제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 직후 루이지애나·미시시피·앨라배마 주 등 허리케인 피해 지역에 사는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명 중 1명은 PTSD 진단 기준에 부합했다. 또 49%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기분장애 환자로 분류됐다.

아울러 극단적인 기온이 더 자주 나타나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현상 같은 기후변화의 좀 더 느린 효과도 더 넓은 지역에서 주민의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도 이번 조사에서 밝혀졌다. 그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문제가 식량위기와 특정 전염병 발생의 증가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소재 우스터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이번 보고서 작성을 이끈 수전 클레이턴은 “기온 상승이 공격성과 갈등의 증가와 관련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우린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생소한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정신건강에 아주 해로운 요인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미국 심리학회(APA)와 기후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워싱턴 D.C. 소재 비영리단체 에코아메리카가 이 보고서 작성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번 조사는 기존의 관련 논문 250편 이상을 분석한 결과로 2014년에도 이와 비슷한 보고서가 나왔다. 클레이턴 교수는 “지난번 보고서가 발표된 이래 기후변화와 정신건강에 관해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 이번 기회에 되짚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는 사람들이 그런 영향을 피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 더 강조하고 싶었다.”

기후변화에 관한 공공 정보도 일부 사람들에게 ‘환경 염려증(eco-anxiety: 현재와 미래의 환경에 대한 우려 때문에 생기는 걱정이나 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그 이슈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찬반론의 정치 때문이다. 클레이턴 교수는 “환경 염려증의 경우 지금까지 잘 거론되지 않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관해 걱정하는 것은 그 현상이 아주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런 불안이 정신건강 문제를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다.”

2012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관해 더 복잡한 정보를 얻을수록 더 무력하게 느낀다. 게다가 자신이 환경과학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관해 알아보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스콧 프루이트 미국 환경보호국(EPA) 국장을 포함한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쪽을 가리키는 연구 결과가 많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후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며 대부분은 사람이 일으킨다는 사실의 과학적 타당성을 의심한다.

프루이트 국장은 미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책을 저지하려고 집단소송을 주도하면서 환경규제 완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EPA 국장에 취임한 직후인 지난 3월 초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것에 대해선 엄청난 견해 차이가 있다.”

그런 주장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나 국립해양대기청(NOAA) 등의 주류 기후과학에 배치된다. NASA와 NOAA는 최근에도 지난해 지구의 기온이 관측 이래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며 화석 연료로 인해 대기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클레이턴 교수는 그처럼 정치적인 반발이 크더라도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기후변화의 좀 더 직접적인 영향을 관리하고 주민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출퇴근에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걷기를 장려하는 방안이 거기에 포함된다. 또 지역사회가 자연재해에 더 잘 대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재난이 닥칠 때 자주 발생하는 불안증이나 외로움, 우울증 같은 기분장애를 최소화하는 데 그런 대비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클레이턴 교수는 “지금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 어떤 위협이 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제시카 퍼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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