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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한국경제 | 신(新)통상정책 세우자] 해외 인력 이동의 높은 벽 허물자

[리셋, 한국경제 | 신(新)통상정책 세우자] 해외 인력 이동의 높은 벽 허물자

파격적 이주정책으로 해외 인력 수혈한 말레이시아 … 국민에 실익 주도록 통상정책 전환해야
지난해 10월 국내기업의 글로벌 인재 채용과 우수 인력 유출 방지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교육부가 주최한 2016 외국인 유학생 채용박람회.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가장 빠르게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말레이시아다. 지난해 8월 나온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이뤄진 말레이시아 내 FDI는 70억 달러(약 7조8300억원). 이는 14억 달러(약 1조 5700억원)에 그쳤던 2009년보다 400% 이상 늘어난 수치로 UNCTAD가 조사한 153개국 중 가장 높다.

이처럼 괄목할 만한 성과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외국인 투자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 나라 정부는 외국 투자기업에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세제 혜택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으로 뽑힌 기업들에는 ‘개척자 자격(Pioneer Status)’이란 인증을 주고 5년간 법인세의 30%를 깎아준다. 게다가 이런 회사 중에서도 최첨단 기업으로 분류되면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 5년간 법인세를 전혀 안 내도 된다. 이주정책도 대폭 바꿨다. 기존의 취업비자는 국내 기업에 정식으로 취업할 경우에 한해 발급해 줬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는 해외 첨단 인력이 말레이시아에서 쉽게 일할 수 있도록 ‘전문직 방문 패스(Professional Visit Pass)’라는 사실상의 새로운 취업비자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해외 기업에 소속돼 있더라도 만 1년 동안 말레이시아 내에서 일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다. 굳이 말레이시아 회사로 이직하지 않더라도 정식으로 일 할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이 같은 노력의 성과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쪽으로 300㎞ 떨어진 ‘쿨림 첨단 산업단지’다. ‘말레이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곳은 이 나라의 유연한 정책이 어떤 성과를 낳았는지 단박에 알게 한다. 18㎢에 달하는 이곳에는 인텔·바스프·파나소닉 등 세계 굴지의 대기업을 비롯해 30여 개의 첨단 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 1996년 세워진 이 첨단 단지에서 이들이 매진하고 있는 분야는 항공, 반도체, 고밀도 저장 기술, 태양광 셀 등이다. 입주 기업의 상당수는 외국계 기업들과 협업을 통해 성장한 말레이시아 업체들이다. 이들은 외국 기업과 함께 일함으로써 저절로 첨단 기술을 배울 기회를 얻게 된다. 또 이들 중 적잖은 업체가 일단 동남아 지역에서 선발주자로 발돋움한 뒤 실리콘밸리로 넘어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다.
 최첨단 인력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우리는 어떤가. 한국에서 취업비자를 받은 외국인들의 경험담을 들으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기술창업비자(D-8-4)를 받으려면 국내에 회사를 세우고 사업자 등록을 끝내야 한다. 여기에 지식재산권 보유 및 출원, 발명·창업대전 수상 등 까다로운 조건도 만족해야 한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술창업비자를 받은 경우가 20건에 불과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리셋 코리아 통상분과 위원들은 “첨단산업, 특히 최근 화두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이 같은 인력 이동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제 통상정책이 제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데에서 발전해 첨단산업 육성과 같은 정책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열띤 토론 끝에 위원들이 추려낸 신(新)통상정책의 핵심 과제는 세 가지였다. 첫째 국민의 이익, 둘째 첨단산업 발전, 셋째 개도국 지원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국민의 이익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의견은 그간에 추진된 통상정책의 과실이 국민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때가 많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이를 두고 분과장인 김현종(전 통상교섭본부장) 한국외대 교수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관세가 인하됐는데도 와인 등 여러 품목의 가격이 내리지 않았다”며 “누구를 위해 FTA를 하는지 자문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칠레, 한·미, 그리고 한·유럽연합(EU) FTA를 막론하고 발효 후 싸질 걸로 기대됐던 품목 중 상당수가 비싸진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칠레산 포도주 몬테스 알파는 관세율이 12.5%에 달했던 2004년에는 3만8000원이었던 게 관세 한 푼 안 내게 된 2009년에는 4만7000원으로 올랐었다. 미국산 오렌지주스·맥주 등도 마찬가지로 관세가 떨어졌는데도 가격은 뛰었다. “이는 중간 유통업자들이 관세 하락 폭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 결과로 이 같은 파행은 막아야 한다”고 위원들은 말했다.
 주변국과 디지털 단일시장 구축도 중요
자유로운 인적 교류를 통한 첨단산업 육성도 통상정책 차원에서 촉진돼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와 관련해 김범수 KL 파트너스 변호사는 “헬스케어·바이오 등 최첨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들이 한국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국내외에서 공부한 외국인 인재는 물론 한국과 인연이 없는 해외 전문가라도 우리의 4차 산업혁명에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어 통상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스마트 팩토리 육성을 달성하려면 주변국들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며 “주변국과의 디지털 단일 시장 구축 및 인적 이동 장려 등을 통해 산업과 통상정책을 연결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강조한 대목은 데이터 이동에 대한 규제 완화였다. 송 위원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데이터지만, 현재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은 금지돼 있다”며 “인력과 함께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규제를 풀어줘야 미래 먹거리 산업이 발전한다”고 지적했다.

형편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을 통상정책을 통해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종범 연세대 교수는 “옛날에는 선진국들이 경제 원조 등으로 가난한 나라를 도왔지만 이제는 FTA를 맺어 후진국 특정 분야의 발전을 돕는 방법을 쓴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개도국과 FTA를 맺을 때는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가급적 많은 나라와 통상협정을 맺는 게 좋지만 그렇다고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와의 협상에 너무 힘을 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신통상정책의 실행 방안으로 제시된 해외 인력의 이주 허용에 대해 중앙일보의 온라인 시민 수렴 사이트 시민마이크(peoplemic.com)에 글을 올린 시민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양하고 우수한 인력은 향후 우리나라의 경쟁력 제고 및 기술산업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특히 첨단 분야 인력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민을 허용한 후 점차 그 문호를 개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식의 의견이 나왔다. 심지어 “이미 세계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마당에 허용할지 말지를 이야기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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