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왕따 소녀에서 세계적인 모델로, 또 싱어송라이터로 변신 거듭한 캐런 엘슨… 2집 앨범에 내면적 고뇌 담아 모델 생활을 하면서도 남몰래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워오던 엘슨은 이제 2집 앨범을 낸 싱어송라이터다. / 사진·FACEBOOK.COM/KARENELSONMUSIC영국 출신의 모델 겸 싱어송라이터 캐런 엘슨(38)이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그녀가 마치 인형처럼 생각된다. 소녀들을 위한 잡지에서 옷 사진 옆에 인쇄된 종이 인형 말이다(이 종이 인형을 오려낸 다음 그 위에 다양한 옷을 바꿔 입혀가며 스타일을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엘슨이 모델 일부터 시작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듯 변화무쌍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1997년 패션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은 눈썹을 면도한 10대의 슈퍼모델 엘슨의 사진을 찍었다. 당시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그녀를 보고 “중세에서 온 뭔가와 다른 행성에서 온 돌연변이를 합쳐 놓은 듯하다”고 평했다. 1990년대에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젊은 제트셋족이 된 그녀는 장거리 비행의 공포를 자낙스(신경안정제) 반 알과 진토닉 한 잔으로 이겨냈다. 26세인 2005년에는 미국 뮤지션 잭 화이트와 아마존 강에서 카누를 타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는 남몰래 어쿠스틱 기타를 둘러메고 노래를 작곡했으며 몇 년 후엔 1집 앨범을 발표했다.
지난 3월 어느날 아침 영국 런던의 소호 호텔에서 홍차와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하는 그녀를 만났다. 현재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에 살고 있는 그녀는 2집 앨범 홍보차 런던을 방문 중이었다. 1970년대 오시 클라크 빈티지 원피스에 낡은 부츠를 신은 그녀는 이야기를 하면서 매니큐어를 바른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엘슨은 정말 수다쟁이다. 정치부터 이혼, 내슈빌의 지역 정신까지 한번 말문이 트이면 멈추기가 어렵다.
앞서 말한 그 종이 인형처럼 완벽한 엘슨의 미모 때문에 그녀가 하는 말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녀의 피부는 정말 도자기처럼 매끈해서 어디 조그만 결함이라도 없나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화분에 심겨진 식물을 보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내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고 할까? 2011년 안나 수이 패션쇼 무대에 선 엘슨. / 사진·WIKIPEDIA.ORG엘슨은 근로계층이 모여 사는 맨체스터 근처 올덤에서 자랐는데 억양 등에 아직도 지방색이 남아 있다. 그녀는 16세 때 처음 런던에 갔을 때 사람들이 깔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난 북쪽 지방에서 온 촌뜨기처럼 느껴졌다. 사투리도 심했는데 한 모델 캐스팅 현장에서 누군가가 그 말투를 고치라고 했다.”
엘슨이 어린 시절부터 변함없이 지켜온 게 있다면 인생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겠다는 결심이다. 그녀는 학교에 다닐 때 왕따를 당했고 섭식장애와 부모의 이혼을 견뎌냈다. 16세 때 모델 에이전시에 발탁돼 18세 때 처음으로 패션 잡지 보그의 표지 사진을 찍었다. “모델이라는 직업은 힘들었던 과거로부터의 탈출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넓은 세상을 보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작곡은 엘슨의 인생을 바꿔놓을 또 다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10대 시절 자기 방에 틀어박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내가 다른 애들보다 나았던 점은 노래를 잘한다는 것뿐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 밝고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약간 허스키하다.
“하지만 수줍음을 많이 탔기 때문에 누구도 내 노래 실력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래서 노래에 대한 사랑을 내 안에 감춰둘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뉴욕에서 보그 이탈리아판과 디오르 광고에 들어갈 사진을 찍을 때 그녀는 작곡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카고의 얼터너티브록 밴드 스매싱 펌킨스와 녹음을 했다.
“그들이 내게 기회를 줬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 후 엘슨은 작곡가 캣 파워와 듀엣을 부르고 레드 제플린의 싱어였던 로버트 플랜트의 백보컬로도 활동했다. 2004년 엘슨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티즌스 밴드를 결성했다.
엘슨은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밴드의 ‘Blue Orchid’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면서 화이트를 만났다. 두 사람은 2005년 결혼해 내슈빌로 이사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엘슨은 그곳에서 벽장에 틀어박혀 첫 솔로 앨범에 들어갈 노래들을 작곡했다. “사실 그곳은 내 옷들을 보관하던 아주 근사한 방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엘슨이 옷방에 숨어서 작곡을 해야 했던 이유는 뭘까? “당시 어린 두 자녀를 키우고 있었던 데다 남편은 유명 작곡가여서 부끄러웠다”고 그녀는 말했다. 엘슨은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화이트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이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화이트의 음악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엘슨은 그 길을 찾아냈고 결국 화이트가 그녀의 첫 앨범 ‘The Ghost Who Walks’(2010)를 프로듀싱했다. ‘걸어 다니는 유령’이라는 뜻의 이 앨범 제목은 학교 때 엘슨을 왕따시켰던 친구들이 그녀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엘슨은 지난 4월 7일 2집 앨범 ‘Double Roses’를 발표했다. / 사진·FACEBOOK.COM/KARENELSONMUSIC1년 후 엘슨과 화이트는 이혼 파티를 열고 우호적인 이별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후 2년 동안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되고 양측의 법적 공방이 밖으로 새나가면서 이혼이 마무리됐다. “이혼의 고통에 맞닥뜨리면 누구나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게 된다”고 엘슨은 말했다. “우리 둘 다 그랬다. 이혼 절차는 아주 까다롭다. 법적 문서에 쓰인 내용은 본인의 감정이 아니라 법적 전략일 뿐이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최근 엘슨은 2집 앨범 ‘Double Roses’를 발표했다. “난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 마음이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자유롭고 겁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앨범의 제목은 샘 셰퍼드의 시에서 따왔는데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활동적인 여성과 테네시 주의 전형적인 어머니로서 자신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난 내슈빌의 집에 있을 때는 아이들과 함께 저녁 9시 반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난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뉴욕에 가면 서글프고 외로운 마음에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어울린다. 새벽 2시가 돼서야 호텔로 돌아가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이 앨범은 화이트와의 결혼생활에 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엘슨은 이렇게 설명했다. “난 꽤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왔다. 이혼 후에도 마찬가지다. 화이트와 내가 헤어진 지 거의 5년이 돼 가는데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혼으로 인한 공백감이 이 앨범의 주제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진실성을 강조하는 엘슨의 최근 태도는 패션계 활동에도 적용된다. 그녀는 최근 패션쇼 캐스팅 현장에서 빚어진 젊은 모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관한 보도에 리트윗했다. 캐스팅 감독들이 심사에 앞서 150명의 모델들을 3시간 동안 어두운 계단에서 기다리게 했다는 보도였다. “그 보도를 보고 정말 화가 났다”고 그녀는 말했다. 지난해 엘슨은 ‘살이 너무 쪘다’는 이유로 패션쇼 출연을 취소당한 경험이 있다. “디자이너가 자신이 만든 옷이 내 몸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 모욕감을 느꼈다. 내가 못생기고 뚱뚱하다고 생각됐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난 에이전시에 전화해 울면서 ‘난 이런 일을 견뎌내기엔 너무 나이가 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의 나이나 디자이너가 보는 그녀의 신체 사이즈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을,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엘슨은 이제 어느 누구의 인형일 필요가 없다.
- 에이미 플레밍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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