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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바겐’ 핵협상은 성공할까

‘그랜드 바겐’ 핵협상은 성공할까

북한과 일촉즉발 대치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적대적 경제 관계로 치닫는다면 불가능할 수도
트럼프 대통령(왼쪽)의 즉흥적이고 공격적인 발언은 중국을 불안케 한다. 사진 오른쪽은 시진핑 주석. / 사진:NEWSIS
대담한 결정이었다. 현대 외교사에서 가장 위험한 수 중 하나였다.

1972년 중국이 아주 가난하고 대부분 고립된 상태일 때였다. 반공주의 냉전 전사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베이징으로 날아가 중국 공산당 혁명의 아버지인 마오쩌둥 주석을 만났다. 역사적인 조우였다. 당시 미국은 마오 주석이 완파한 대만과 그 지도부를 중국의 진정한 지배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닉슨의 방중 목표는 그런 흐름의 물줄기를 바꾸는 것이었다. 닉슨의 전략을 짠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나중에 “우린 화해의 물꼬를 트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최근 노쇠한 키신저가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 정부는 대중국 정책을 한창 검토하는 중이다. 그 검토는 11월 초 트럼프 대통령의 동아시아 순방 전에 마무리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기서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중국과 미국, 한국과 일본은 모두 북한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한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병기고 증강과 그 핵무기를 미사일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발전했다는 사실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협박할 경우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인 발언, 또 지난 10월 초 미군 수뇌부와 가진 회동에서 현 상황을 “폭풍 전의 고요”라고 표현한 그의 아리송한 경고(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는 미국 동맹국들만이 아니라 중국까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물론 공격적인 북한의 맞대응도 같은 효과를 불렀다. 하지만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외교적이었다. 중국은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당근과 채찍 전략일까?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닌 걸까?

이전에도 트럼프와 외교 정책을 논한 적이 있는 키신저가 백악관에 초대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이 ‘멀쩡하다’는 신호를 중국에 보내기 위해서라고 내부자들은 풀이한다. 중국 지도부는 키신저를 옛 친구로 생각한다.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이 직면한 문제를 올바른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는다.
1972년 베이징에서 만난 마오쩌둥 주석(왼쪽)과 닉슨 대통령. / 사진:NEWSIS
그러나 키신저의 백악관 방문에는 그보다 더 많은 뜻이 담겼다. 북핵 위협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트럼프 팀은 중국과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검토하고 있다. 닉슨이 중국과 한 거래만큼이나 대담한 협상이다. 만약 중국이 모든 외교적·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김정은 정권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한다면, 또 김정은 정권이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면, 미국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고,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2만9000명에 이르는 주한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한다는 것이 그랜드 바겐의 골자다. 오랫동안 북한이 미국에 요구한 핵심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 초 틸러슨 국무장관이 제시한 정책이 그 바탕이다. 그는 “우린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린 북한의 정권 붕괴도, 한반도의 급속한 통일을 원치 않는다. 비무장지대 북쪽으로 우리 군을 보낼 이유를 찾지도 않는다.”

틸러슨 국무장관이 말한 그 ‘4가지 No’가 중국 지도부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중국 공산당의 일각에선 미국이 그 4가지 전부를 실제로 추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또 미국이 김정은 정권을 파멸시키기 위해 핵위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미국 측에 틸러슨 국무장관의 아이디어가 추가적인 논의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데니스 와일더는 최근의 베이징 방문에서 그가 만난 관리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긴 것은 틸러슨 국무장관이 자신의 발언을 공식 정책으로 삼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는지 아니면 그가 단지 개인적인 생각을 말했는지 여부였다고 전했다. “그들은 틸러슨 국무장관이 언급한 ‘4가지 No’에 관해 관심이 아주 컸다.” 헤더 노어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만약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완전히 비핵화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틸러슨 장관이 제시한 ‘4가지 No’를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미중 간의 경제 경쟁 때문에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울 듯하다. / 사진:ANDY WONG-AP-NEWSIS
미국과 중국은 이 문제를 두고 여전히 견해차가 크다. 트럼프 정부는 키신저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그 문제를 논의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담한 수를 좋아한다. 그가 북한 문제에서 그런 수를 원한다면 잔혹하고 유혈낭자한 전쟁보다 외교적인 해법이 훨씬 나은 옵션이다. 키신저는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그랜드 바겐에 근접하는 주장을 제시했다. “비핵화는 경제적 압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 최대한의 압력과 실행 가능한 보장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중국과 이해를 같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거래가 효과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 많은 사람의 생각만큼 중국이 북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며 김정은 정권은 미중 간의 거래 성사를 적대적 행위로 받아들여 핵무기에 더 집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북한 정권이 계속 유지되는 상황에서 주한 미군을 대부분 철수하는 것은 한국군이 아무리 막강해졌다고 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들은 한국과 일본을 동요시키지 않고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비무장 지대 북쪽으로 ‘병력을 올려 보내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또 다른 문제는 경제다. 대표적인 대중국 매파인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 전략가는 얼마 전 내부의 의견 충돌로 전격 경질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무역 문제에선 중국에 더 강경하게 나가고 싶어 한다. 미국 정부는 이미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관 중 일부는 중국과 미국이 더욱 적대적인 경제 관계로 치닫는 한 중국과의 그랜드 바겐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매티스 국방장관과 틸러슨 국무장관부터 H. R.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트럼프 정부 관리들은 북한과 협상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거듭 말했다. 그건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제재하면서 중국의 협조를 요구하는 것은 계속해 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다.

지금까지 부동산부터 TV,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본능은 언제나 대담함 쪽으로 기울어졌다. 키신저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면 그런 본능이 다시 고개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거래를 시도할지 모른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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