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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 파괴 한창인 관광 업계] 호텔이 여행사 차리고 백화점은 LCC(저비용항공사)에 투자

[영역 파괴 한창인 관광 업계] 호텔이 여행사 차리고 백화점은 LCC(저비용항공사)에 투자

한국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줄면서 사업 다각화 … 과당 경쟁 이어져 수익성·이미지 악화 가능성
호텔신라는 여행업 및 해외면세점 등 신규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아시아 3대 국제공항 중 하나인 홍콩 첵랍콕공항에 면세점을 새로 열었다. / 사진:호텔신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와 북한 핵실험, 빈약한 관광 콘텐트, 난무하는 관광지 바가지 요금…. 한국 관광산업이 외교 관계 악화와 대외 이미지 실추로 허약한 체질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334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한국관광공사가 1월 22일 발표했다. 전년 대비 22.7% 감소한 수치다. 2017년 외국인 관광객이 사상 첫 2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한 정부로서는 헛물을 켠 셈이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이끈 중국인 관광객은 417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전년 대비 48.3%나 급감했다. 2014~16년 한류 바람을 타고 밀물처럼 들이닥쳤던 유커(遊客·중국인 단체 관광객)가 금한령의 영향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난해 한국 찾은 외국인 관광객 급감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수지는 344억7000만 달러(약 37조4171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역대 가장 큰 손실이다. 이전 최대 적자였던 2016년(177억4000만 달러)과 비교해도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여행수지는 171억7000만 달러 적자로 비중이 가장 컸다. 이 역시 역대 최대 규모다. 외국인 관광객은 큰 폭 감소한 데 비해, 해외로 나간 내국인은 전년 대비 18.4% 증가한 2649만 명이나 됐다. 한국 경제의 새 먹거리로 주목 받았던 관광산업이 흔들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관광산업에서 신규 사업 진출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항공사나 숙박 업체가 여행사처럼 관광 상품을 개발, 판매하거나 유통회사가 항공사를 만드는 식이다. 일종의 사업 영역 파괴다. 과당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일단은 생존이 급하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사업 확대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먼저 여행업 진출이 가장 두드러진다. 본업과의 연계 상품을 만들기 용이하고 영업도 비교적 쉬워서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10월 ‘기업 출장 예약서비스(BTM, Business Travel Management)’ 사업 부문을 분사시켜 별도 법인을 설립했다. BTM 사업부는 생활레저사업부의 팀 단위 조직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엿한 독립 사업부로 호텔신라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BTM 사업부는 2016년 300억원의 매출을 올려 기업 간 거래(B2B) 전문 여행사 세중(273억 원)·롯데JTB(263억원)의 실적을 웃돌았다. 2004년부터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법인 고객을 늘려온 결과다.
 호텔신라, 사업부 분사해 여행업 진출
한진그룹은 호텔·사무용 복합건물인 LA 월셔그랜드센터를 지난해 개장하는 등 숙박업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6월 개장식에 참석해 초석에 사인하고 있는 모습. / 사진:대한항공
이런 가운데 호텔신라는 기업 고객 중 가장 규모가 큰 삼성그룹과 지난해 새 파트너십을 맺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세중과 34년 간 이어온 계약을 돌연 정리하고 호텔신라와 새로 손을 잡았다. 호텔신라는 삼성그룹 임직원의 항공권 발권과 호텔 예약 등 해외 출장·여행 관련 업무를 대행하게 됐다. 호텔신라의 ‘항공 운임 일괄 정산(BSP)’ 실적은 지난해 5월 이후 160억~180억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체 여행사 중 10위권에 해당한다. 호텔신라의 매출은 2014년 2조9090억 원에서 2017년 4조174억원으로 3년 새 38%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영업이익은 1390억원에서 783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난 2~3년 전부터 법인영업과 비즈니스호텔(신라스테이) 강화, 면세점 사업 해외 진출 등 대규모 사업 확대에 나선 영향이다.

다만 기업 대 개인 간 거래(B2C) 시장 진출은 당장은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B2C 분야는 포화상태인 데다 호텔신라가 영업 경쟁력을 자신할 수 없으며, 처리할 민원이 과도하게 많아서다. 서울시내 한 대형 호텔 법인영업 담당자는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호텔 간 영업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호텔신라는 법인영업 경험이 많고 면세점 등 포트폴리오가 다양해 법인 분야에 집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텔신라는 또 지난해 12월부터는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면세점 운영을 시작했다. 국내 호텔 사업자 중 아시아 3대 국제공항인 인천 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화장품·향수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은 호텔신라가 유일하다. 호텔신라는 2013년 창이공항과 마카오 국제공항에서 해외 면세점 사업을 시작으로 2016년 11월 태국 푸껫 시내면세점과 2017년 4월 일본 도쿄 시내 면세점을 차례로 열었다. 호텔신라의 2016년 해외 매출은 국내 호텔사업자 중 가장 많은 5000억원 규모다. 올해는 해외 매출 첫 1조원 달성도 기대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보고서에서 “중국인 패키지 관광객이 줄었지만 면세점 수수료 감소와 신라스테이 흑자 전환, 법인사업의 성장 덕에 실적이 늘었다”며 “만만찮은 영업환경에도 비즈니스호텔 시장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제주항공도 지난해 12월부터 ‘여행 큐레이션’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이 자신의 예산과 여행 타입 등에 맞춰 원하는 조건의 여행지 및 항공권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본격적인 여행업 진출은 아닌, 항공권 판매를 늘리는 차원이다. 그러나 여행사 업무를 일부 대체하는 한편 여행사에 지급하는 항공 예매 수수료 등을 절약할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기능 테스트를 위한 베타 버전으로, 앞으로 데이터가 누적되면 더 세분화된 여행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항공권 예매 단계부터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재미있고 편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며 “항공권 예매와 결제 편의를 높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 저비용항공사에 지분 투자
일본 니가타현의 최고급 스키리조트 롯데아라이리조트. 버블 경제 붕괴로 문을 닫은 이곳은 롯데가 2015년 인수해 지난해 12월 재개장했다. / 사진:롯데
유통회사들은 저비용항공사(LCC)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면세점 사업을 맡고 있는 신세계DF를 통해 저비용항공사 플라이양양에 투자했다. 플라이양양은 화장품회사 토니모리와 여행사 마스터즈투어 등과 개인 18곳이 투자한 회사다. 신세계DF는 신세계면세점 명동점과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보유한 국내 3위 면세 사업자다. 현재 신세계의 투자액은 10억원에 불과하지만 플라이양양이 면허를 받을 경우 350억원을 추가 투자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플라이양양의 운항 면허 신청을 두 번 반려했다. 플라이양양은 삼수를 준비 중이다. 신세계는 티웨이항공을 인수하기 위해 최대주주인 예림당과 협상을 벌였지만 거래가 무산된 바 있다. 인수가액은 2000억원이었다. 유통 업계의 강자인 신세계가 LCC 진출을 염두에 둔 까닭은 여행사들과 손잡고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여행상품 개발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대형마트·복합쇼핑몰의 사업 확대 가능성이 있으며 면세점 사업에도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그룹도 신규 LCC 에어로K에 투자했다가 면허 발급이 잇따라 무산되자 최근 투자금 160억원을 전액 회수한 바 있다.

유통업과 LCC의 영역 파괴의 모범 사례는 제주항공이다. 제주항공은 지난 2월 3일 취항 11년 8개월 만에 누적 탑승객 50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 8대의 항공기를 새로 도입하는 등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LCC 최초로 영업이익률 10%를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제주항공은 애경그룹의 계열사다. 제주항공은 2015년 하반기 상장한 후 실적이 개선되고 있으며, 애경백화점·애경유화와 더불어 애경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자리를 잡았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의 성장을 바탕으로 면세점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 또 8월 애경그룹 6개사가 입주하는 홍대 신사옥에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서울 홍대’ 호텔을 개관하는 등 숙박업으로도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한진그룹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대형 호텔인 월셔그랜드센터를 인수해 지난해 개장했다. 호텔 ·사무용 복합 건물인 월셔그랜드센터는 73층, 335m 높이로 LA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대한항공 자회사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이 1989년 인수했는데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쳤다. 건설비만 10억 달러, 금융비용까지 더하면 12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이 호텔을 항공 사업과 연계해 새로운 관광 수요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호텔롯데, 국내외 리조트 사업 강화
호텔롯데는 지난해 12월 16일 일본 니가타현 묘코시에 ‘롯데아라이리조트’를 개관하는 등 리조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제주(롯데아트빌라스)·부여(롯데리조트부여)·속초(롯데리조트속초)에 이어 호텔롯데의 4번째 리조트다. 국내 호텔 브랜드가 일본에 리조트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30만㎡ 규모의 아시아 최고급 마운틴 리조트다. 1990년대 일본 경제가 활황일 때 부유층 고객을 겨냥해 개장했으나, 버블 붕괴로 문을 닫았다. 롯데가 2015년 6월 이곳을 인수해 2년여 동안 대대적인 리모델링했다. 개장을 즈음해 일본 유력 언론 매체들은 ‘한국 자본의 일본 공습’이라며 대서 특필하기도 했다. 롯데 관계자는 “중국 등 아시아의 경제력이 확대된 가운데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로 겨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앞으로 스키·온천 등 겨울 휴양에 대한 저변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인수 배경을 밝혔다.

이렇게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영역 파괴가 과당 경쟁으로 이어질 경우 개별 기업은 물론 관광산업 전반의 이미지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면세점이 대표적인 경우다. 호텔롯데·호텔신라·SK네트웍스·애경 등 일부 기업이 면세점 사업을 과점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2016년 두산·한화 등에도 특허를 풀어줬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면세점의 외국인 매출은 지난해 94억2695만 달러로 전년(76억1772만 달러)보다 23.7% 늘었다. 그렇지만 수익성은 되레 악화됐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롯데면세점의 경우 지난해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7.8% 급감했고, 신라면세점도 같은 기간 21.3% 줄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케팅 비용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면세점들이 광고·할인 등 현지 프로모션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점내 인테리어를 고급화하는 등 비용 부담이 커졌다.

이런 가운데 ‘금한령’ 이후 중국인 일반 관광객이 대폭 줄었고, 할인만을 노린 보따리상이 대거 들어와 할인폭이 큰 물품을 싹쓸이 했다. 면세점 관계자는 “보따리상이 할인폭이 크면서 크기가 작아 대량 구매가 가능한 제품을 골라 매입하는 바람에 마진율이 하락했다”며 “중국인 단체관광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이런 현상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대부분 관광업종 모두 공급 과잉에 시름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들이 부동산 투자를 겸해 많이 진출하는 숙박업도 대표적인 과당 경쟁 업종으로 꼽힌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국내 호텔업 등록 업체 수는 2012년 786개에서 2016년 1522개로 4년 새 2배 가까이로 늘었다. 객실 수는 같은 기간 8만2209개에서 12만9916개로 불어났다. 이에 따라 객실 이용률과 판매객실 평균 요금 모두 10%가량 하락했다. 이 영향으로 플라자호텔을 운영하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경우 호텔 부문이 지난해 상반기 101억원의 적자를 내기도 했다.

LCC의 경우도 제주항공·진에어 등은 영업이익률이 대폭 오르는 등 선전하고 있지만, 이스타·에어부산 등 규모가 작은 LCC는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용 절감과 수익구조 다변화 등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시아 지역의 항공수요는 2040년까지 38.8%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중국·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LCC가 대거 생기며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졌다.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되는 LCC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만 트랜스아시아항공 산하 LCC인 V 에어는 2016년 10월 운항 중단을 선언했고, 타이거항공타이완·시티링크 등은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2014년 말 시작된 저유가 덕에 당장은 버틸 만하지만 유가가 오르면 치킨게임이 재개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플라이양양과 에어로K에 운항 면허를 내주지 않은 점도 LCC 업계가 포화상태로 변했기 때문이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중동 항공사들의 부상과 중국 항공사들의 경쟁력 강화로 아시아 항공산업은 저가·고가 시장 모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항공사들은 티켓 가격 인하 및 설비투자의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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