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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오르면 정유사는 돈방석에?] 정제마진, 원유재고 시차효과에 수익성 좌우

[국제유가 오르면 정유사는 돈방석에?] 정제마진, 원유재고 시차효과에 수익성 좌우

국제유가, 석유제품 시세, 환율 등도 영향...유가 천천히·점진적으로 올라야 정유사 유리
사람들은 은행 금리에 늘 불만이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면 득달같이 대출 금리를 올리면서, 기준금리 인하 때는 대출 금리를 낮추는 데 미적댄다고 여긴다. 은행은 금리 결정 요인에 대해 이러저러한 설명을 내놓지만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는 않는다.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가격에 대한 반응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정유사에 항상 불만이다. 유가가 오르면 전광석화처럼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올리면서 유가가 떨어질 때는 가격 인하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한다. 정유사는 석유제품 가격 결정 시스템을 설명하며 억울하다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통하지는 않는다. 구조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가 오르는데 정제마진 떨어져 속앓이?
최근 국제유가(원유가격)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정유사 이익이 늘어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런데 바로 같은 날 또 고유가로 정제마진이 떨어져 정유사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정반대 기사도 나왔다. 한편에서는 유가 상승으로 정유사들이 울상이라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정유가 미소 짓는다고 전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사례는 또 있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들이 재고자산 평가이익을 본다는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가령 중동에서 배럴당 50달러에 원유를 구매해 저장해 놓았는데, 국제유가가 55달러로 오르면 정유사들이 배럴당 5달러의 평가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정작 정유사들은 “원유시세가 올랐다고 해서 원유재고의 구매 가격과 현재 시세 간 차익을 평가이익으로 손익에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익을 많이 내면 폭리로 몰릴까 두려워 정유사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언론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제조기업 치고 원재료 가격이 올라 좋은 회사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정유사도 원유를 재료로 휘발유나 화학제품을 만들어 팔기 때문에 유가가 떨어져야 좋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 혹은 의문의 타당성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정유사의 손익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정유사의 손익구조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국제유가나 국제 석유제품 시세, 재고자산, 환율 등에 손익이 복잡하게 연동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손익계산서에 찍히는 정유사의 이익 규모에 영향을 주는 3가지 핵심 요소를 꼽으라면 ‘정제마진’ ‘재고 관련 손익’ ‘재고자산평가’를 들 수 있다.

원유를 1차 정제하면 휘발유·등유·경유·벙커C유·나프타(납사)를 얻을 수 있다. 나프타는 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다. 휘발유나 경유 등을 우리는 ‘석유제품’이라고 한다. 유가 또는 국제유가라고 하면 국제원유 시세를 말하는 것이고, 제품 가격 또는 석유제품 가격이라고 하면 휘발유·경유 등의 가격을 일컫는 것이다. 1차 정제에서 손익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가격이 싼 중질유급의 벙커C유가 많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그래서 이 벙커C유를 따로 다시 정제해 경질유인 휘발유·경유 등을 뽑아낸다. 이런 중질유 분해시설을 고도화 설비라고 한다. 국내 정유사들은 그동안 고도화 설비에 투자를 많이 해왔다.

정제마진은 간단하게 말하면 제품판매 가격과 원유 가격 간 차이를 말한다. 정유 업계에서는 제품 판가에서 원유 도입비와 운임, 정제설비 가동비용(전기료 등)을 뺀 것을 정제 마진으로 보고 있다. 각 정유사의 정제마진은 회사의 원가와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 밝히지 않는다. 대신 정유사들의 정제마진 추이를 알 수 있는 공개지표를 사용한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싱가포르 거래소의 국제 석유제품 시세와 유가 등을 바탕으로 가격 전문 기관에서 평가한 수치)’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3분기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8.3달러, 4분기는 7.2달러, 올해 1분기는 1월 현재 6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각 정유사의 정제마진과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정제마진이 그만큼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총평균법·후입선출법·선입선출법
정제마진에는 ‘시차효과(래깅효과)’라는 것이 작용한다. 원유를 선적해 한국까지 운송하는 데는 한 달 정도가 걸린다. 보통 선적지 기준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가령 중동에서 원유를 배에 싣는 순간부터 한국 정유사의 재고자산으로 잡힌다. 유가가 오름세라면 정제마진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원재료인 유가는 지난 달 도입 가격의 영향을 받고, 이번 달에 책정된 제품 판가는 상승한 유가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통상 정제마진은 오른다고 본다. 유가가 떨어지는 추세에 있다면 그 반대다. 예컨대 유가는 지난 달 도입 가격인 배럴당 50달러가 반영되고, 제품 판가는 이번 달 유가인 40달러를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정제마진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정유사들은 “정유사업의 수익성은 국제유가보다 정제마진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한다. 석유제품 가격은 원유 가격을 기초로 제품별 수요·공급 상황에 따라 일정한 마진(스프레드)을 더해 결정한다. 이 스프레드가 바로 정제마진이다. 따라서 정제마진은 기본적으로는 원유와 석유제품의 수급 영향을 직접적으로 크게 받는다. 물론 글로벌 경기도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정유사의 손익 추이는 정제마진의 추이와 방향이 늘 일치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특히 유가 급변동기에는 정유사 손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재고 관련 손익이다.

재고 관련 손익이란 단순히 원유 재고의 시세가 오르거나 내렸을 때 발생하는 평가손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원유 재고에서 발생한 래깅(시차)이 매출원가에 영향을 주는 경우를 뜻한다. 아주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이렇다. 유가가 오르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본다. 지난 달 도입한 원유의 재고(배럴당 40달러에 도입)가 있고, 이번 달에 도입한 원유의 재고(배럴당 50달러에 도입)가 있다. 석유제품 매출액은 이달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진 판가에 연동되는 데 비해 매출원가는 지난 달 도입한 유가와 이번 달 도입한 유가를 평균한 가격이 적용된다. 예를 들면 SK이노베이션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 이후 재고자산 측정 방법으로 ‘총평균법’을 사용한다. 대략 40달러 재고와 50달러 재고 투입이 1대 1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면, 매출원가는 45달러 정도가 된다. K-IFRS 적용 전의 옛 기업회계기준(K-GAAP)에서는 재고에 대해 후입선출법을 적용했다. 가장 최근 도입한 원유 재고부터 정제 공정에 투입되는 것으로 봤다. 후입 선출법을 적용한다면 이 경우 매출원가는 배럴당 50달러선에 가까울 것이다. 에쓰오일은 선입선출법을 사용한다. 먼저 들어온 원유가 먼저 소진되는 것으로 처리한다는 이야기다. K-IFRS에서는 후입선출법을 금지하면서 정유사들은 총평균법이나 선입선출법으로 재고 측정 방법을 바꾸었다. 선입 선출을 하면 유가 상승기에는 SK이노베이션이 사용하는 총평균법보다 매출원가가 더 낮아져 이익이 커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앞의 경우 에쓰오일은 배럴당 40달러선에 가까운 매출원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유가 하락기에는 총평균법보다 선입선출법이 불리해진다.

[그래프 2]는 재고자산 단위 결정 방법에 따라 매출원가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상품을 매입해 적절한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유통기업을 가정했다. 매입하는 상품가격(재고자산)이 오를 경우의 1분기(1월 1일~3월 31일) 매출원가를 산출했다. 그림에서 보듯 선입선출법 적용 때는 매출원가가 200원, 총평균법 적용 때는 240원이 된다. 만약 3월 1일에 판매한 상품 15개의 매출액이 450원(개당 30원)이라면 선입선출법 적용 때의 이익은 250원이 된다. 총평균법의 이익(210원)보다 40원이 더 많다. 만약 새로 매입하는 상품, 즉 재고자산의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선입선출법 때의 매출원가가 총평균법보다 더 높아져 이익은 더 적어진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래깅효과는 정제마진과 재고 관련 손익에서 겹쳐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며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이 크게 올랐는데도 정유사 이익은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거나,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이 크게 떨어졌는데 비해 정유사 이익이 덜 떨어지는 데는 재고 관련 손익의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이달의 유가와 이달의 제품가격 간 즉 같은 달에서의 차이를 산출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실제 정유사 정제마진에는 이달의 판가와 지난 달의 유가 간 차이가 반영되기 때문에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에 재고 관련 손익의 래깅효과가 더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유가 급변동은 손익에 악재 될 수도
유가 상승기에 래깅효과가 정유사 이익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 할 때는, 제품 판가가 유가 상승분 이상으로 오른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원재료인 유가가 올랐는데, 제품 재고나 공급이 많아 판가 상승이 어렵다면 정제마진은 나빠진다. 보통 유가가 오르면 단기적으로는 판가 상승으로 정제마진 상승 효과를 누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판가 상승 때문에 제품 수요가 크게 줄면 판가 역시 하락하기 때문에 정제마진은 떨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유가가 떨어져도 수급이나 다른 요인으로 판가가 덜 떨어진다면 정제마진은 오히려 개선된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는 유가가 천천히 점진적으로 오르는 경우가 정유사로서는 가장 좋은 상황”이라며 “유가 급변동은 손익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고 관련 손익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래깅효과와는 다른 식으로 손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재고자산 평가 손실과 환입이다. 회계기준에서는 재고자산 평가이익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가령 원유를 배럴당 50달러에 도입해 저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결산 시점에 원유시세가 60달러로 올랐다고 해서 배럴당 10달러를 재고자산 평가이익으로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재고취득가격(50달러)과 재고를 시장에 내다팔 경우 받을 수 있는 금액(순실현가치, 60달러)을 비교해 낮은 가격인 50달러를 재고가치로 장부에 기록한다. 이를 저가법이라고 한다. 저가법으로 평가해 재고가치가 하락하면 이를 손익에 반영해야 한다. 원유시세가 45달러로 하락했다면 재고취득가격(50달러)과 순실현가치(45달러) 가운데 저가법에 따라 낮은 가격인 45달러를 재고장부가격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배럴당 5달러의 평가손실을 매출원가에 가산한다. 그만큼 이익이 줄어드는 셈이다. 정유 업체마다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재고자산의 20% 정도는 석유제품이고, 원재료(원유)는 30%~40% 비중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미착재고(선적해 운송중인 원유)인데, 미착재고에 대해서는 저가법 평가를 적용하지 않는다. 원유시세는 등락을 거듭한다. 따라서 추가로 원유시세가 더 떨어지면 평가손실이 더 발생할 것이다. 시세가 반등한다면 과거에 인식했던 평가손실은 다시 환입(매출원가에서 차감)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익 증가에 기여한다.

2014년은 정유 업계가 겪은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드라마틱한 해 가운데 하나다. 연초 두바이유 기준 유가가 배럴당 107.8달러였는데, 하반기 들어 유가가 급락해 연말에는 53.6달러로 떨어졌다. 에쓰오일 정유사업 부문의 경우 재고 관련 손실 확대 등으로 영업손실 규모가 1분기 525억원에서 4분기 3068억원으로 확대됐다. SK이노베이션이 분기마다 발표하는 실적발표 자료에는 각 분기의 정제마진 효과와 재고 효과(재고 관련 손익과 재고평가 손실 및 환입)를 잘 나타나 있다. [그래프4]를 보면 2014년 3분기 이후 유가가 본격적으로 하락했는데 정제마진은 오히려 조금 개선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석유사업의 3분기 영업손실은 2261억 원에서 4분기 5859억원으로 늘어났다.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평가 손실폭 확대가 결정타였다. 3분기 대비 유가 영향(재고 관련 손실의 마이너스 효과)이 4164억원이나 작용했다. 2015년에도 유가 하락세는 이어졌다. 두바이유 기준 연초 배럴당 53.6달러에서 연말 32.2달러로 떨어졌다. 그러나 2015년은 유가와 정제마진이 같은 방향으로(커플링) 움직이지 않았다. 유가 하락기 정제마진이 오히려 더 커지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났다. 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동반 하락했지만 제품판가 하락에 따른 수요 증가로 정제마진이 개선된 것이다. 유가 하락이 단기적으로는 재고평가 손실이나 부정적 래깅효과를 야기하지만, 제품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경우 부정적 효과를 크게 상쇄하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유가 하락기에 정제마진 오히려 커지기도
지난해 정유사들은 유가 안정과 정제마진 개선 등으로 많은 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말 이후의 유가 급등은 올해 영향을 줄까.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 추이를 보면 지난해 12월 1주 배럴당 7.7달러에서 2주 7.7달러로 올랐다가 이후 올해 1월 3주 5.9달러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유가는 급등하고 있으나 판가 상승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제품 재고 수준이 낮고 수급이 빡빡해 앞으로 판가 상승에 따른 정제마진 확대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미주지역 한파로 차량 운행이 감소하면서 가솔린 수요가 줄고 판가가 떨어지는 바람에 정제마진이 일시적으로 떨어지고 있으나 점차 회복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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