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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볼 권리 막지 마라”

“다른 사람의 볼 권리 막지 마라”

레바논 출신 지아드 두에이리 감독의 ‘인설트’,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자국에선 보이콧
지아드 두에이리 감독은 미국에서 이스라엘인을 만나 대화하면서 적으로 여겼던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 사진:COURTESY OF COHEN MEDIA GROUP
영화 ‘인설트(The Insult)’가 2018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레바논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잔혹한 내전으로 잘 알려진 이 나라가 예술성으로 인정받은 드문 순간이다. 하지만 레바논에서 이 일을 환영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무슬림 지역인 서베이루트의 극장들은 ‘인설트’의 상영을 보이콧했다. 또 좌익 세력은 레바논 전역에서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지는 운동을 벌인다.

‘인설트’를 제작한 레바논 출신의 지아드 두에이리(54) 감독은 외국의 호평과 고국의 비난이 뒤섞인 이런 엇갈린 반응을 예상했다. 2012년 영화 ‘어택’으로 국제 무대에서 칭송 받은 바 있는 두에이리 감독은 지난해 9월 레바논에 입국하려다 베이루트 공항에서 당국의 저지를 받았다. 당국은 두에이리 감독을 반역 혐의로 군사 법정에 세웠다. 그가 ‘어택’을 레바논 시민의 출입이 금지된 적의 영토 이스라엘에서 촬영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한 두에이리 감독은 이 영화를 이스라엘에서 촬영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레바논 당국에 미리 알렸기 때문에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나 아랍인 예술가들이 정치와 이스라엘, 그리고 역사적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둘러싼 두에이리 감독과 비판 세력 사이의 논란은 계속된다. “내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에 토마토를 던지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고 두에이리 감독은 말했다. “그건 그 사람들의 권리다. 내 영화를 얼마든지 증오해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보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두에이리 감독의 작품은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르하디를 연상시킨다. 파르하디 감독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등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윤리적 문제를 조명하는 서스펜스 넘치는 영화로 유명하다. 파르하디 감독은 이 작품으로 2012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지만 고국인 이란에서는 두에이리 감독처럼 질책을 받았다.

현대 베이루트를 무대로 한 ‘인설트’는 개인적인 모욕이 레바논 전체를 뒤흔들 만큼 큰 사건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15년(1975~1990년) 간이나 지속된 레바논 내전으로 치유되지 않은 심리적 상처가 아주 사소한 문제를 터무니없이 부풀릴 만큼 여전히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또한 조명한다.

이야기는 레바논의 국수주의적인 기독교인 자동차 정비공과 팔레스타인인 건설현장 감독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두 사람이 불법적인 배수관을 두고 언쟁을 벌이던 중 팔레스타인인이 기독교인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팔레스타인인은 기독교인이 원하는대로 사과하려 하지만 이번엔 기독교인이 그를 모욕한다.

그러자 팔레스타인인이 기독교인을 때려 갈비뼈 두 대를 부러뜨린다. 이 사건은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고 거기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전쟁 당시의 대량학살 이야기가 나온다. 사건에 연루된 주요 인물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는 지역의 종족 분쟁이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관한 연구다.

미국인에게 이 영화는 얼핏 보면 긴장된 법정 드라마 속에 감춰진 중동의 역사 수업처럼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난민과 이민 문제가 미국인을 과거 어느 때보다 극심하게 분열시키는 양극화 시대에 이 영화가 지니는 상징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제적으로 그룹 간의 분열을 조장해 현대판 종족 중심주의를 만들어낼 때 사회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두에이리 감독은 자신과 가족의 경험을 작품의 뼈대로 삼아 중동의 삶과 지역 갈등이 각 캐릭터의 성격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묘사했다. 그는 서베이루트의 중상층 가정에서 정교분리주의를 신봉하는 무슬림으로 자랐지만 동베이루트에 있는 프랑스어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의 어머니는 변호사였고 아버지는 사업가였다.1975년 레바논 내전이 일어났을 때 두에이리는 10대 소년이었다. 1998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그의 첫 작품 ‘웨스트 베이루트’(1998)는 레바논 내전 발발 당시를 배경으로 10대 소년 타렉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베이루트는 교전지역이 됐지만 소년들은 위험을 무시한 채 태평스럽게 살아간다. 하지만 공습으로 도시는 폐허로 변하고 거리가 점점 더 위험해지면서 이들의 세계는 갈수록 좁아진다. 타렉 어머니의 죽음은 이들에게 전쟁의 잔혹성을 실감하게 한다.

현대 베이루트를 무대로 한 ‘인설트’는 개인적인 모욕이 레바논 전체를 뒤흔들 만큼 큰 사건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 사진:COURTESY OF COHEN MEDIA GROUP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자 미국으로 건너간 두에이리는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촬영 스태프로 일하면서 ‘저수지의 개들’(1992), ‘펄프 픽션’(1994) 등의 작품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두에이리는 유대계 미국인과 미국에 사는 이스라엘인을 처음 만났다. 부모의 영향으로 친팔레스타인 성향이 매우 강했던 그의 정치적 신념이 유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음식을 먹고 나처럼 대학에 다니고 파티에 갔다”고 두에이리는 말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서서히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1982년 레바논 전쟁에 참여했던 이스라엘인도 만났다. 처음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이 원해서 전쟁에 참여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적으로 여겼던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

1982년 이후 줄곧 해외에서 살아오던 두에이리 감독에게 ‘웨스트 베이루트’의 제작은 귀향을 의미했다. ‘웨스트 베이루트’ 제작 후 두에이리 감독은 레바논 출신의 기독교인 시나리오 작가 조엘 투마를 사랑하게 됐다. 두 사람은 ‘어택’을 포함해 여러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두에이리와 투마는 레바논 내전 당시 서로 적대적이었던 두 세력 출신이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상대편을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해 자녀 1명을 낳은 뒤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이들은 얼마 후 이혼했지만 친구로 남았고 지금도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한다.

‘어택’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사는 아랍계 이스라엘인 의사의 이야기다. 그의 부인은 교육을 많이 받은 아랍계 기독교인이었는데 자살폭탄 테러범이 돼 6명의 어린이를 죽게 만든다. 의사는 부인이 왜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됐는지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양측 모두에게 거부당하는 신세가 된다. “난 이스라엘인과 아랍인 양측의 이야기를 모두 전달하는 공정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두에이리 감독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레바논에서는 문제가 됐다. 이스라엘과 긴 전쟁의 역사를 지닌 레바논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의 수용소로 쫓겨났고 그곳은 그들의 터전이 됐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영토에서 시작된 팔레스타인 게릴라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레바논을 여러 차례 공격했으며 1982~2000년 레바논 남부 지역을 점령했다. 2006년에는 헤즈불라와 전쟁을 일으켜 레바논의 사회기반시설 대부분을 파괴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감안할 때 두에이리 감독을 비난하는 측은 이스라엘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이스라엘 배우들과 스태프를 고용한 그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여겼다. 레바논 신문 알-아크바르의 부편집장 피에르 아비 사압은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다. 전쟁 중인 상대를 그냥 이웃 국가처럼 다뤄선 안된다.”

레바논 당국은 당초 이스라엘에서 촬영된 ‘어택’의 국내 상영을 승인했다. 하지만 반이스라엘 세력이 두에이리 감독을 시온주의자요 이스라엘의 부역자로 규정짓고 강력한 로비를 벌이자 레바논을 포함한 아랍연맹 22개국은 이 영화를 보이콧했다.

이 반이스라엘 세력은 ‘인설트’의 상영 역시 금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 영화가 팔레스타인을 레바논 내전의 잔학행위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두에이리는 이 영화를 레바논에서 상영할 권리가 없다”고 아비 사압은 말했다.

‘인설트’의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은 두에이리 감독에게 동료 아랍인(특히 팔레스타인인)이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줬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지만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당한 행동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팔레스타인인은 자신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점령 종식을 요구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할 게 아니라 자신들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며 자유의 땅을 원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 조나선 브로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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