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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 노란색이라고? 난 황토색인데…

5가 노란색이라고? 난 황토색인데…

색의 소리 듣거나 소리의 맛 느끼거나 색에서 글자 볼 수 있는 공감각은 유전자 때문
공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소리를 듣거나 문자 또는 숫자를 볼 때 색깔을 함께 볼 수 있다. / 사진 : WIKIPEDIA
정치 문제를 두고 부부 간 또는 부자 간 언쟁을 벌이는 가족도 있고 리모컨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집안도 있다. 그런 모습은 저녁 시간의 일반 가정에서 흔한 광경이다. 그러나 특이한 경우도 있다. 캐럴 스틴과 그녀 아버지는 숫자의 색깔을 두고 옥신각신한다. 아니 숫자에 색이 있다고? 스틴은 5를 노란색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냐, 5는 황토색이야’라고 우겼다.”

스틴 부녀는 ‘공감각(synesthesia)’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이 기묘한 방식으로 겹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한 감각 자극이 그 감각의 지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의 지각까지 불러일으키면서 발생한다. 그래서 색의 소리를 듣거나 소리의 맛을 느끼거나 색에서 글자를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종류의 공감각은 사물에서 다양한 색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공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어떤 소리를 듣거나 문자 또는 숫자를 볼 때 색깔이 함께 보인다고 말한다. 또 공감각은 사람마다 달리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숫자 5를 볼 때마다 빨간색이 보이는 반면, 다른 사람은 초록색이 보인다.

이처럼 색·소리와 색·문자 공감각이 가장 흔한 공감각인 이유는 바로 뇌의 지리학 때문이다. 소리와 문자와 색을 분석하는 영역 중 일부가 서로 곁에 붙어 있어 신호가 쉽게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공감각은 뇌에서 어떤 두 감각이라도 연결시킬 수 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공감각의 종류는 약 60가지나 된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특별한 능력이 우리의 DNA에 프로그램돼 있다고 생각했다. 스틴 가족이 그 개념을 뒷받침한다. 친척 중 여러 명도 공감각 소유자다. 아울러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새 연구 결과는 관련 유전자까지 지목했다.

사진 : YOUTUBE
네덜란드 소재 막스플랑크 심리언어학연구소의 유전학자 아만다 틸롯은 공감각의 유전적 근거를 찾기 위해 3세대(조부모·양친·자녀) 이상에 걸쳐 소리와 색에 관한 공감각을 지닌 세 가족을 찾아냈다. 두 가족의 경우 여성 3세대가 소리를 색으로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가족에선 한 남자와 그의 어머니, 딸, 누이, 손자가 같은 현상을 경험했다.

틸롯 연구원과 동료들은 공감각 현상의 근원을 찾고자 했다. 공감각 유전자를 찾는 이전의 연구에선 공감각과 연관됐을 수 있는 폭넓은 유전체가 확인됐다. 그보다 좀 더 정확한 확인을 위해 틸롯 연구원은 엑솜(exome) 서열을 분석했다. 엑솜이란 전체 유전체 중 단백질 합성에 직접 관여하는 의미 있는 염기서열의 집합체를 말한다. 틸롯 연구원은 “특정 유전자를 찾으려면 그런 정확도 높은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인간 유전체에 들어 있는 약 2만 개의 유전자 중에서 공감각 발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 6개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 유전자들은 공감각을 가진 사람마다 약간씩 달랐다. 이 유전자들에서 하나 또는 소수의 뉴클레오티드(핵산의 기본단위로 유전자 구성요소)가 특이한 뉴클레오티드로 교체돼 있었다. 또 공감각 유전자 각각은 뇌의 작동 방식과 직접 연결됐다. COL4A1, ITGA2, MYO10, ROBO3, SLC9A6, SLIT2로 알려진 그 유전자들은 ‘엑소노제네시스(axonogenesis)’라는 과정과 관련 있다. 엑소노제네시스는 신경세포의 긴 줄기에 해당하는 축삭 돌기가 새롭게 형성되는 것을 뜻하며, 태아나 유아의 발달 중인 뇌에서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렇게 변화된 유전자는 모두 함께 이동하지 않았다. 그 유전자들은 세 가족 중 한두 가족에서만 나타났다. 그러나 소수에서 나타나는 변화만 해도 지각에서 급진적인 차이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변형된 유전자가 신경세포 연결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이전의 여러 연구 결과와 일치했다. 과거의 한 연구는 공감각 소유자의 뇌세포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긴밀하게 상호연결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긴밀한 네트워크는 신경말단이나 수초(미엘린, 신경세포의 축삭을 싸고 있는 절연물질로 단백질과 지방으로 구성됐으며 자극 신호가 더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해준다)가 두껍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공감각 소유자는 전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하다. 그러나 틸롯 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다른 많은 사람에게도 관련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2015년 인터넷에서 벌어진 열띤 논쟁을 예로 들었다. 평범한 드레스 사진이 올랐는데 어떤 사람은 그 색이 푸른색과 검은색이라고 봤고 어떤 사람은 흰색과 금색이라고 주장했다. 틸롯 연구원은 “감각 인지는 자연적으로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통은 그런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틸롯 연구원은 “우리 대다수는 사람들이 외부 세계의 여러 가지 면을 인식하는 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드레스 색상을 둘러싼 논란은 이런 현상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우리 모두가 공각각을 가진 건 아니지만 사람마다 세계를 서로 달리 경험한다고 틸롯 연구원은 설명했다.

공감각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스틴은 그 때문에 어려움도 겪었다. 그녀는 일곱 살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철자 A가 “내가 본 것 중 가장 예쁜 핑크색”이라고 말했다고 돌이켰다. 그러자 그 친구는 스틴을 보고 괴짜라며 다시는 같이 놀려고 하지 않았다.

미술가이자 뉴욕 투로대학 디지털 멀티미디어 디자인과 교수인 스틴은 1995년 미국 공감각협회를 공동 창립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가진 공 감각을 장점으로 보게 됐다. 에를 들어 물감을 구입할 때 그녀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 속에 남는 음에 맞는 색상을 찾는다. 너무나 시적이지 않은가? 또 그녀는 공감각 덕분에 건강도 유지한다. 언젠가 그녀는 치과의사에게 자신의 이가 “타오르는 오렌지색”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치근관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스틴과 아버지는 숫자의 색에 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굳이 얘기하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논쟁을 피하는 법을 서서히 터득했다. 결국은 공감각을 가진 가족도 그런 능력이 없는 가족들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 케이트 셰리던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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