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전부 연출된 ‘쇼’인가요?”
“내 삶이 전부 연출된 ‘쇼’인가요?”
영화 ‘트루먼 쇼’ 개봉 20주년 … 리얼리티 TV와 디지털 감시의 부상을 정확히 예측한 이 작품의 제작 과정과 유산을 돌이킨다 피터 위어는 늘 컴퓨터의 웹캠을 테이프로 막아 놓는다. 누구도 자신을 감시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조치다.
누가 그를 탓하랴? 그는 1998년 개봉된 풍자 영화 ‘트루먼 쇼’를 제작한 감독 아닌가? ‘트루먼 쇼’는 돌이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예지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당시엔 단지 풍부한 상상력과 가시 돋친 비유로 호평 받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요즘 같은 리얼리티 TV의 부상을 통찰력 있게 예측한 동시에 디지털 감시 시대의 문화적 전신으로서 경고를 준 영화로 재평가 받아야 마땅할 듯하다.
‘트루먼 쇼’에서 짐 캐리가 연기한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는 무사태평한 보험 외판원이다. 그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자신도 모르게 TV로 방송된다. 그의 삶 자체가 24시간 리얼리티 쇼다. 성장하고, 학교에 다니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먹고, 자고, 양치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수백만 명이 TV로 지켜본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트루먼은 자신이 본의 아니게 미국 최고 인기 TV 시리즈의 스타가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해진다.
20년 전만 해도 끊임없이 감시당하는 트루먼의 삶은 지나친 피해망상처럼 느껴졌다. 호주 출신인 위어 감독은 앤드루 니콜의 오리지널 대본을 처음 읽은 후 ‘멋진 공상적 허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믿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몇몇 친구는 그에게 그 내용이 신뢰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도 그런 것을 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현실’을 구경하려 하겠는가?”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수많은 사람이 그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사실 ‘트루먼 쇼’가 나온 당시에도 리얼리티 TV가 완전히 새로운 장르는 아니었다. 1948년 선보인 ‘몰래 카메라(Candid Camera)’가 그 원조였다. 그 다음 MTV의 ‘리얼 월드(Real World)’가 1992년 시작됐다. 하지만 리얼리티 TV가 주류층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2000년 오지에서 생존자를 가리는 ‘서바이버(Survivor)’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서바이버’의 시즌 최종회는 50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 다음 10년 동안 리얼리티 TV는 황금시간대를 장악했다. 그 세계의 스타 중 한 명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그로써 백악관 입성의 발판을 마련했다[부동산 거부였던 트럼프는 리얼리티 취업 오디션 프로 ‘어프렌티스’를 진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트루먼 쇼’는 작품의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 영화는 이상향과 반(反)이상향적 요소 사이의 매혹적인 이중성을 담고 있다. 우선 트루먼의 집이 있는 시헤이븐 아일랜드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목가적인 곳이다(실제는 거대한 돔 안에 지어진 TV 촬영 세트다). 트루먼이 자신의 삶이 ‘쇼’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TV 쇼의 제작자 크리스토프(신과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는 그에게 “나의 세계에선 겁낼 게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낙원에는 5000개의 몰래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게다가 제작 비용은 상품 간접광고로 조달한다. 플롯이 전개되면서 우리는 트루먼이 ‘기업에 의해 합법적으로 입양된’ 최초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에서 이 쇼를 가장 비판하는 실비아(나타샤 매켈혼)는 “트루먼은 TV 시리즈의 배우가 아니라 포로”라고 말한다.
니콜의 대본 초안(MTV의 ‘리얼월드’가 나오기 1년 전에 완성됐다)은 이런 세계의 악몽 같은 요소를 지나치게 부각했다. 위어 감독(‘행잉록에서의 소풍’ ‘죽은 시인의 사회’)은 “트루먼이라는 캐릭터가 아주 슬프고 기이한 느낌을 줬다”고 돌이켰다. 그는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그런 끔찍한 허구적인 쇼를 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우울하고 억압적이며 하루 24시간 주 7일 꼼짝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어 감독은 프로듀서 스콧 루딘이 이 대본을 1993년 구입한 지 1년 뒤 제작 계약서에 서명하며 니콜과 함께 대본을 수정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와 니콜은 결국 밝고 휴양지 같은 세팅을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 트루먼이 “주변의 모든 사람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친구 같은 캐릭터가 되도록” 설정을 바꿨다.
위어 감독은 처음부터 캐리를 주인공으로 점찍었다. 표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열정적인 코미디언이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리는 당시 ‘케이블 가이’와 ‘라이어 라이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톰 행크스를 섭외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가 ‘포레스트 검프’를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망설여졌다. 그러다 보니 그 역할을 해낼 만한 다른 배우가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주인공의 연기가 완벽해야 작품이 될 수 있는 영화였다. 그렇지 않으면 찍으나 마나 한 것이 될 게 뻔했다.” 그래서 1년을 기다렸다가 캐리를 캐스팅했다.
그때 캐리는 대스타가 된 직후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세인들로부터 끊임없이 주시 받는다는 트루먼의 느낌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캐리는 위어 감독에게 “내가 받는 그런 느낌을 연기에 활용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난 지금도 ‘포로’ 신세이기 때문이다.” ‘트루먼 쇼’는 캐리로선 처음 해보는 드라마 장르였다. 그 작품을 계기로 그는 ‘맨 온 더 문’과 ‘이터널 선샤인’ 등의 작품도 쉽게 소화할 수 있었다.캐리와 위어 감독은 처음엔 견해차로 서로 부딪쳤다. 위어 감독은 “한 장면을 촬영하고 나면 캐리가 그것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돌이켰다. “난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서 ‘볼 필요 없다. 괜찮은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한다. 그게 감독의 일’이라고 말해줬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지 않다. 내 연기가 괜찮은지 내가 자세히 봐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위어 감독은 캐리에게 찍은 장면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것이 곧 ‘극중의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쇼라는 것을 모른다’는 설정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배우가 찍은 장면을 보고 분석한 뒤 그 다음 장면을 찍으려 하면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지 않는다. 트루먼은 자신이 TV에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나? 장면마다 자신이 어떻게 연기했는지 분석해선 안 된다.’ 그러자 그는 나를 믿었다.”
극중에서 트루먼은 마치 실험실의 쥐 같은 신세다. 극적인 반전을 연출하는 프로듀서들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조종당한다. 트루먼 아버지의 ‘가짜’ 죽음 같은 것이 그런 예다. 그러다가 트루먼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들도 전부 프로듀서의 지시를 받는 배우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트루먼은 신과 같은 존재인 제작자 크리스토프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진짜는 아무 것도 없었나요?” 그러자 크리스토프가 대답한다. “당신만은 진짜였지. 그래서 당신이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구경거리가 될 수 있었던 거야.” 다시 말해 크리스토프는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의 성공을 이끄는 사업모델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능적 관음증’ 말이다.
‘트루먼 쇼’가 상품 간접광고를 강조한 것도 요즘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 예를 들어 트루먼의 친구들과 가족은 끊임없이 명품을 자랑한다. 바로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인스타그램 셀럽들은 상품 후원 콘텐트로 상당한 소득을 올린다. 대기업 브랜드가 광고의 형태로 우리의 개인 생활에 침투하는 현상도 지금은 아주 흔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득을 올리지 않는 사람들도 자기 사생활의 디지털 흔적을 IT 업체에 기꺼이 넘겨준다. 그런 IT 업체는 트루먼을 ‘입양’한 영화 속의 기업과 비슷하게 막강한 힘을 갖는다.
위어 감독은 “이보다 더 섬뜩한 건 없다”고 말했다. “아주 빈번히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 말이다. 인터넷에서 뭔가를 검색하면 바로 전날 찾아본 것들이 다시 나타난다.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날까 생각하면 동유럽 도시들에 관한 정보가 저절로 검색된다.”이 영화가 사회에 끼친 가장 기이한 영향은 비평가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들이 발견했다. 조엘 골드 박사는 뉴욕시 벨뷰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를 위해 연출된다’고 믿는 망상장애 환자를 여러 명 만났다. 나중에 그와 신경철학자인 동생 이언 골드는 이런 정신병을 ‘트루먼 쇼 망상증’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2012년 발표한 논문과 2014년 펴낸 저서 ‘의심하는 사람들: 문화가 정신병을 만든다(Suspicious Minds: How Culture Shapes Madness)’에서 그 특징을 자세히 설명했다.
‘트루먼 쇼’가 나오기 이전에도 자신의 현실이 연출됐다는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위어 감독은 1996년 배역 선정 과정에서 “어렸을 때 자신의 삶이 ‘쇼’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세 명이나 봤다”고 돌이켰다. 그보다 더 극단적인 망상은 정신병 증상으로 분류된다. 골드 박사는 자신의 환자 몇 명은 특히 ‘트루먼 쇼’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환자 몇 명은 직접 그 영화 제목을 대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트루먼 쇼’를 봤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들은 ‘내가 바로 그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트루먼 쇼’ 대본을 쓴 니콜은 “영화가 그런 증상을 일으킨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망상이 영화를 계기로 표출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트루먼 쇼’가 개봉된 지 15년이 지난 2013년이 되자 소셜미디어가 부상하고 정부의 디지털 감시가 만연하면서 그런 불안이 합당하다고 느껴졌다. 골드 박사는 “정신병은 논외로 치고 우리 모두가 서로를 주시한다는 생각이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벨뷰병원을 떠나 개인병원을 열었지만 거의 매달 그런 망상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위어 감독은 ‘트루먼 쇼’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동안 관람객을 참여시키는 깜짝쇼를 하고 싶어 했다. 극장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 관람객의 모습을 슬쩍슬쩍 보여준다는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실험적인 발상이 나왔을까? 위어 감독은 “아마 우스갯소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다면 내가 ‘트루먼 쇼’의 크리스토프가 되는 셈이다.”
위어 감독과 대본 작가 니콜은 ‘트루먼 쇼’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니콜은 이렇게 말했다. “트루먼은 카메라를 피해 달아나려고 애썼지만 지금 우리 대다수는 카메라 앞으로 달려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지 않은가?”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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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를 탓하랴? 그는 1998년 개봉된 풍자 영화 ‘트루먼 쇼’를 제작한 감독 아닌가? ‘트루먼 쇼’는 돌이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예지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당시엔 단지 풍부한 상상력과 가시 돋친 비유로 호평 받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요즘 같은 리얼리티 TV의 부상을 통찰력 있게 예측한 동시에 디지털 감시 시대의 문화적 전신으로서 경고를 준 영화로 재평가 받아야 마땅할 듯하다.
‘트루먼 쇼’에서 짐 캐리가 연기한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는 무사태평한 보험 외판원이다. 그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자신도 모르게 TV로 방송된다. 그의 삶 자체가 24시간 리얼리티 쇼다. 성장하고, 학교에 다니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먹고, 자고, 양치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수백만 명이 TV로 지켜본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트루먼은 자신이 본의 아니게 미국 최고 인기 TV 시리즈의 스타가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해진다.
20년 전만 해도 끊임없이 감시당하는 트루먼의 삶은 지나친 피해망상처럼 느껴졌다. 호주 출신인 위어 감독은 앤드루 니콜의 오리지널 대본을 처음 읽은 후 ‘멋진 공상적 허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믿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몇몇 친구는 그에게 그 내용이 신뢰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도 그런 것을 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현실’을 구경하려 하겠는가?”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수많은 사람이 그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사실 ‘트루먼 쇼’가 나온 당시에도 리얼리티 TV가 완전히 새로운 장르는 아니었다. 1948년 선보인 ‘몰래 카메라(Candid Camera)’가 그 원조였다. 그 다음 MTV의 ‘리얼 월드(Real World)’가 1992년 시작됐다. 하지만 리얼리티 TV가 주류층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2000년 오지에서 생존자를 가리는 ‘서바이버(Survivor)’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서바이버’의 시즌 최종회는 50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 다음 10년 동안 리얼리티 TV는 황금시간대를 장악했다. 그 세계의 스타 중 한 명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그로써 백악관 입성의 발판을 마련했다[부동산 거부였던 트럼프는 리얼리티 취업 오디션 프로 ‘어프렌티스’를 진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트루먼 쇼’는 작품의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 영화는 이상향과 반(反)이상향적 요소 사이의 매혹적인 이중성을 담고 있다. 우선 트루먼의 집이 있는 시헤이븐 아일랜드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목가적인 곳이다(실제는 거대한 돔 안에 지어진 TV 촬영 세트다). 트루먼이 자신의 삶이 ‘쇼’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TV 쇼의 제작자 크리스토프(신과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는 그에게 “나의 세계에선 겁낼 게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낙원에는 5000개의 몰래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게다가 제작 비용은 상품 간접광고로 조달한다. 플롯이 전개되면서 우리는 트루먼이 ‘기업에 의해 합법적으로 입양된’ 최초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에서 이 쇼를 가장 비판하는 실비아(나타샤 매켈혼)는 “트루먼은 TV 시리즈의 배우가 아니라 포로”라고 말한다.
니콜의 대본 초안(MTV의 ‘리얼월드’가 나오기 1년 전에 완성됐다)은 이런 세계의 악몽 같은 요소를 지나치게 부각했다. 위어 감독(‘행잉록에서의 소풍’ ‘죽은 시인의 사회’)은 “트루먼이라는 캐릭터가 아주 슬프고 기이한 느낌을 줬다”고 돌이켰다. 그는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그런 끔찍한 허구적인 쇼를 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우울하고 억압적이며 하루 24시간 주 7일 꼼짝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어 감독은 프로듀서 스콧 루딘이 이 대본을 1993년 구입한 지 1년 뒤 제작 계약서에 서명하며 니콜과 함께 대본을 수정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와 니콜은 결국 밝고 휴양지 같은 세팅을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 트루먼이 “주변의 모든 사람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친구 같은 캐릭터가 되도록” 설정을 바꿨다.
위어 감독은 처음부터 캐리를 주인공으로 점찍었다. 표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열정적인 코미디언이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리는 당시 ‘케이블 가이’와 ‘라이어 라이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톰 행크스를 섭외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가 ‘포레스트 검프’를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망설여졌다. 그러다 보니 그 역할을 해낼 만한 다른 배우가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주인공의 연기가 완벽해야 작품이 될 수 있는 영화였다. 그렇지 않으면 찍으나 마나 한 것이 될 게 뻔했다.” 그래서 1년을 기다렸다가 캐리를 캐스팅했다.
그때 캐리는 대스타가 된 직후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세인들로부터 끊임없이 주시 받는다는 트루먼의 느낌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캐리는 위어 감독에게 “내가 받는 그런 느낌을 연기에 활용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난 지금도 ‘포로’ 신세이기 때문이다.” ‘트루먼 쇼’는 캐리로선 처음 해보는 드라마 장르였다. 그 작품을 계기로 그는 ‘맨 온 더 문’과 ‘이터널 선샤인’ 등의 작품도 쉽게 소화할 수 있었다.캐리와 위어 감독은 처음엔 견해차로 서로 부딪쳤다. 위어 감독은 “한 장면을 촬영하고 나면 캐리가 그것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돌이켰다. “난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서 ‘볼 필요 없다. 괜찮은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한다. 그게 감독의 일’이라고 말해줬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지 않다. 내 연기가 괜찮은지 내가 자세히 봐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위어 감독은 캐리에게 찍은 장면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것이 곧 ‘극중의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쇼라는 것을 모른다’는 설정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배우가 찍은 장면을 보고 분석한 뒤 그 다음 장면을 찍으려 하면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지 않는다. 트루먼은 자신이 TV에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나? 장면마다 자신이 어떻게 연기했는지 분석해선 안 된다.’ 그러자 그는 나를 믿었다.”
극중에서 트루먼은 마치 실험실의 쥐 같은 신세다. 극적인 반전을 연출하는 프로듀서들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조종당한다. 트루먼 아버지의 ‘가짜’ 죽음 같은 것이 그런 예다. 그러다가 트루먼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들도 전부 프로듀서의 지시를 받는 배우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트루먼은 신과 같은 존재인 제작자 크리스토프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진짜는 아무 것도 없었나요?” 그러자 크리스토프가 대답한다. “당신만은 진짜였지. 그래서 당신이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구경거리가 될 수 있었던 거야.” 다시 말해 크리스토프는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의 성공을 이끄는 사업모델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능적 관음증’ 말이다.
‘트루먼 쇼’가 상품 간접광고를 강조한 것도 요즘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 예를 들어 트루먼의 친구들과 가족은 끊임없이 명품을 자랑한다. 바로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인스타그램 셀럽들은 상품 후원 콘텐트로 상당한 소득을 올린다. 대기업 브랜드가 광고의 형태로 우리의 개인 생활에 침투하는 현상도 지금은 아주 흔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득을 올리지 않는 사람들도 자기 사생활의 디지털 흔적을 IT 업체에 기꺼이 넘겨준다. 그런 IT 업체는 트루먼을 ‘입양’한 영화 속의 기업과 비슷하게 막강한 힘을 갖는다.
위어 감독은 “이보다 더 섬뜩한 건 없다”고 말했다. “아주 빈번히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 말이다. 인터넷에서 뭔가를 검색하면 바로 전날 찾아본 것들이 다시 나타난다.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날까 생각하면 동유럽 도시들에 관한 정보가 저절로 검색된다.”이 영화가 사회에 끼친 가장 기이한 영향은 비평가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들이 발견했다. 조엘 골드 박사는 뉴욕시 벨뷰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를 위해 연출된다’고 믿는 망상장애 환자를 여러 명 만났다. 나중에 그와 신경철학자인 동생 이언 골드는 이런 정신병을 ‘트루먼 쇼 망상증’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2012년 발표한 논문과 2014년 펴낸 저서 ‘의심하는 사람들: 문화가 정신병을 만든다(Suspicious Minds: How Culture Shapes Madness)’에서 그 특징을 자세히 설명했다.
‘트루먼 쇼’가 나오기 이전에도 자신의 현실이 연출됐다는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위어 감독은 1996년 배역 선정 과정에서 “어렸을 때 자신의 삶이 ‘쇼’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세 명이나 봤다”고 돌이켰다. 그보다 더 극단적인 망상은 정신병 증상으로 분류된다. 골드 박사는 자신의 환자 몇 명은 특히 ‘트루먼 쇼’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환자 몇 명은 직접 그 영화 제목을 대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트루먼 쇼’를 봤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들은 ‘내가 바로 그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트루먼 쇼’ 대본을 쓴 니콜은 “영화가 그런 증상을 일으킨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망상이 영화를 계기로 표출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트루먼 쇼’가 개봉된 지 15년이 지난 2013년이 되자 소셜미디어가 부상하고 정부의 디지털 감시가 만연하면서 그런 불안이 합당하다고 느껴졌다. 골드 박사는 “정신병은 논외로 치고 우리 모두가 서로를 주시한다는 생각이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벨뷰병원을 떠나 개인병원을 열었지만 거의 매달 그런 망상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위어 감독은 ‘트루먼 쇼’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동안 관람객을 참여시키는 깜짝쇼를 하고 싶어 했다. 극장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 관람객의 모습을 슬쩍슬쩍 보여준다는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실험적인 발상이 나왔을까? 위어 감독은 “아마 우스갯소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다면 내가 ‘트루먼 쇼’의 크리스토프가 되는 셈이다.”
위어 감독과 대본 작가 니콜은 ‘트루먼 쇼’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니콜은 이렇게 말했다. “트루먼은 카메라를 피해 달아나려고 애썼지만 지금 우리 대다수는 카메라 앞으로 달려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지 않은가?”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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