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생긴 세 명의 낯선 사람들
똑같이 생긴 세 명의 낯선 사람들
출생 직후 분리 입양된 일란성 세쌍둥이 … 그들의 인생 유전 통해 비윤리적인 비밀 연구 프로젝트 고발한 다큐멘터리 나와 다큐멘터리는 종종 ‘믿기 어려운 진기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자랑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지난 7월 중순 미국에서 개봉된 팀 워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쓰리 아이덴티컬 스트레인저스(Three Identical Strangers)’는 그런 기대에 전적으로 부응한다. 워들 감독은 “내가 지금까지 다룬 이야기 중 최고”라고 자평했다.
1980년대 뉴욕에서 살았다면 이 영화가 첫 30분 동안 들려주는 이야기는 귀에 익었을 가능성이 크다. 19세 남자 3명이 자신들이 출생 직후 서로 분리된 세쌍둥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뒤 저명인사가 된 이야기다. 먼저 로버트(바비) 샤프란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에디 갤런드를 만났다. 1980년 설리번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한 샤프란이 갤런드로 오해 받은 것이 계기였다(갤런드는 그 전 학기에 중퇴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자신들이 쌍둥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샤프란과 갤런드의 재회를 다룬 신문 기사를 보던 데이비드 켈먼이 사진에 나온 두 사람이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샤프란과 갤런드, 켈먼은 일란성 세쌍둥이였던 것이다. 그들은 출생 후 얼마 안 돼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입양됐다.
그들을 양육한 각각의 양부모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세쌍둥이의 재회 소식을 듣고 격분한 양부모들이 뉴욕의 유대인 입양알선기관 루이스 와이즈 서비스를 찾아가 따지자 기관 측은 세쌍둥이를 한꺼번에 입양할 가정을 찾기 어려워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 이야기는 미디어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워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세쌍둥이 형제가 서로 어울리는 옷을 입고 토크쇼에 출연하는 장면을 계속 보여준다. 심지어 그들은 1985년 마돈나가 주연한 영화 ‘수잔을 찾아서’에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샤프란과 켈먼은 다큐멘터리에서 자신들의 감동적인 재회를 돌이킨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왜 갤런드가 보이지 않을까? 그 의문은 다큐멘터리 후반에 가서 풀린다. 갤런드가 1995년 6월 뉴저지 주의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갤런드의 자살 후 두 달이 지났을 때쯤 잡지 뉴요커의 로런스 라이트 기자는 심리학자 피터 노이바우어가 1960~70년대 실시한 비밀 연구 프로젝트를 폭로했다. 노이바우어는 연구 목적으로 뉴욕에서 태어난 쌍둥이들을 친부모와 입양 가정에 알리지 않고 서로 분리해 입양시켰다. 그중에서 세쌍둥이가 상당히 많았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에 따르면 목표는 ‘인간의 성격 형성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라는 해묵은 의문의 답을 찾는 것이었다.
켈먼과 샤프란은 지금 56세다. 그들은 워들 감독으로부터 다큐멘터리 제작 제안을 듣고 처음엔 주저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샤프란은 “갤런드의 자살이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우린 처음엔 신문과 방송에 인터뷰를 하고 토크쇼에 여러 번 출연하면서 미디어의 각광을 즐겼다. 하지만 갤런드의 자살로 그런 행복한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미디어에 진절머리가 났다.”뉴저지 주에서 보험 컨설턴트로 일하는 켈먼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를 다룬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깊이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완전히 파헤치는 작업이었다.”
워들 감독은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거의 4년 동안 애썼다(그의 이전 작품은 2016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원 킬러 펀치’였다). 그는 “그들 서로 간의 관계가 예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였다”고 돌이켰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촬영 도중에도 그들이 언제 그만두려 할지 몰라 불안했다.”
샤프란은 “우린 한 가족으로 성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형제로 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서로 싸운 뒤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가 돈독해진다. 물론 처음엔 존재를 몰랐던 형제를 만나 너무 기뻤고 모두 서로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툼이 시작됐다. 우린 서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도 잘 몰랐다.”
그들은 재회 초기에 세간의 인기를 얻으면서 합작 사업을 시작했다. 뉴욕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세쌍둥이들(Triplets)’이라는 식당을 냈다. 그러나 샤프란이 그 일을 그만두자 갤런드가 큰 충격을 받았다. 워들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갤런드는 자신들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집착했다. 그래서 켈먼 부부가 이사 가면 그도 따라 집을 옮겼다. 그게 세 번 정도 됐다.” 당시 켈먼의 아내였던 재닛이 길 건너 집에 살았던 갤런드의 집에 갔다가 그의 시신을 발견했다(워들 감독은 갤런드의 그런 집착을 작품에선 다루지 않았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미스터리처럼 펼쳐진다. 노이바우어의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는 경제였던 듯하다. 샤프란은 상류층 부부에게, 갤런드는 중산층 가족에, 켈먼은 근로 계층 집안에 입양됐다. 세 명 모두 십대 시절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 그 사실은 그들이 정신병 소인을 공유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켈먼은 그것이 잠재의식적인 분리불안(대상과 떨어짐으로 생기는 불안장애)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큐멘터리에서 아기 때 의도적으로 머리를 침대에 찧곤 했다고 밝힌다.
그들 세 명 모두 성장하는 동안 연구자들이 자신을 관찰한 것을 기억했다(부모들은 입양아에 관한 연구의 일환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노이바우어의 연구 대상이었던 다른 쌍둥이들 중에서도 오랫동안 서로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히 재회한 경우가 있었다.
아울러 분리 입양된 쌍둥이 중 다수는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렸다. 갤런드(조울병 진단을 받았다)를 포함해 최소한 3명이 자살했다. 그러면서 정신병력이 있는 부모의 아이를 연구 대상으로 선별했다는 가설도 제기됐다. 그러나 켈먼에 따르면 그들 세쌍둥이의 친모는 그런 병력이 없었다.
워들 감독은 노이바우어와 함께 연구한 두 사람을 찾아내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 외에 연구 대상이 되길 원치 않았던 사람은 누가 있나?’ ‘연구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같은 중요한 여러 질문의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워들 감독은 “그 연구 프로젝트에 깊이 참여한 사람들이 아직 뉴욕에 살고 있고, 일부는 지금도 정신과의사로 활동하지만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샤프란은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행위는 나치의 만행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워들 감독은 그건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노이바우어 아래서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연구자들을 몇 명 만나봤지만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기는 쉽지만 연구자들의 사정도 어느 정도 참작해줘야 한다.”
뉴요커가 그 프로젝트를 폭로한 뒤 언론인들은 노이바우어에게서 그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머지않아 그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노이바우어가 2008년 94세로 사망한 뒤 그가 30년 이상 이사로 재직했던 유대인 가족·어린이 봉사위원회는 연구 결과를 예일대학 기록보관소에 넘기며 2066년까지 공개를 금지했다. 또 개인이 그 결과를 열람하려면 위원회의 서면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수년 동안 켈먼을 비롯한 피해 당사자들은 그 자료의 열람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연구 결과를 그토록 오래 밀봉한 노이바우어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충격적인 폭로 중 하나에서 한 전직 연구 보조원은 연구 대상이었던 쌍둥이들(확인되진 않았지만 15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 최소한 4명은 자신의 쌍둥이 형제가 있는지 아직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발표된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더 트위닝 리액션(The Twinning Reaction)’은 노이바우어의 일부 자료를 입수했다. 또 워들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완성한 뒤 1만 쪽 이상의 자료가 공개됐다. 그러나 켈먼은 “그 전부가 심하게 편집됐고 읽기 어려우며 연결이 잘 되지 않고 주요 정보는 깊이 묻혀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쓰리 아이덴티컬 스트레인저스’가 지난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며 특별심사위원상을 받은 뒤 사프란과 켈먼은 유대인위원회의 앨리스 티시 회장으로부터 사과의 편지를 받았다. 켈먼은 “사과의 말 몇 마디로는 전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그런 사과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돌려 줄 수 없다. 우리는 연구 결과 전체를 보고 싶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그 자료를 봐야 한다. 그 다음 고통 받은 모든 사람에게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는 소송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모든 방안을 검토한다”고 말했다.
갤런드는 뉴요커 기사가 나오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자신이 연구 대상에 포함됐는지 몰랐다. 그러나 남은 두 형제는 20년 이상 그런 사실을 알고 살아왔다. 노이바우어의 연구에 관해 더 자세히 안다고 해서 그들의 고통이 줄어드는 건 아니겠지만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샤프란은 “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면 우리에겐 효과가 그 몇 배나 된다”며 “이 다큐멘터리는 워들 감독이 감성과 통찰력으로 포착한 우리의 삶”이라고 말했다. 켈먼도 “이 작품으로 인해 남은 우리 형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 애너 멘타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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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뉴욕에서 살았다면 이 영화가 첫 30분 동안 들려주는 이야기는 귀에 익었을 가능성이 크다. 19세 남자 3명이 자신들이 출생 직후 서로 분리된 세쌍둥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뒤 저명인사가 된 이야기다. 먼저 로버트(바비) 샤프란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에디 갤런드를 만났다. 1980년 설리번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한 샤프란이 갤런드로 오해 받은 것이 계기였다(갤런드는 그 전 학기에 중퇴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자신들이 쌍둥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샤프란과 갤런드의 재회를 다룬 신문 기사를 보던 데이비드 켈먼이 사진에 나온 두 사람이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샤프란과 갤런드, 켈먼은 일란성 세쌍둥이였던 것이다. 그들은 출생 후 얼마 안 돼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입양됐다.
그들을 양육한 각각의 양부모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세쌍둥이의 재회 소식을 듣고 격분한 양부모들이 뉴욕의 유대인 입양알선기관 루이스 와이즈 서비스를 찾아가 따지자 기관 측은 세쌍둥이를 한꺼번에 입양할 가정을 찾기 어려워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 이야기는 미디어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워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세쌍둥이 형제가 서로 어울리는 옷을 입고 토크쇼에 출연하는 장면을 계속 보여준다. 심지어 그들은 1985년 마돈나가 주연한 영화 ‘수잔을 찾아서’에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샤프란과 켈먼은 다큐멘터리에서 자신들의 감동적인 재회를 돌이킨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왜 갤런드가 보이지 않을까? 그 의문은 다큐멘터리 후반에 가서 풀린다. 갤런드가 1995년 6월 뉴저지 주의 자택에서 자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갤런드의 자살 후 두 달이 지났을 때쯤 잡지 뉴요커의 로런스 라이트 기자는 심리학자 피터 노이바우어가 1960~70년대 실시한 비밀 연구 프로젝트를 폭로했다. 노이바우어는 연구 목적으로 뉴욕에서 태어난 쌍둥이들을 친부모와 입양 가정에 알리지 않고 서로 분리해 입양시켰다. 그중에서 세쌍둥이가 상당히 많았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에 따르면 목표는 ‘인간의 성격 형성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라는 해묵은 의문의 답을 찾는 것이었다.
켈먼과 샤프란은 지금 56세다. 그들은 워들 감독으로부터 다큐멘터리 제작 제안을 듣고 처음엔 주저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샤프란은 “갤런드의 자살이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우린 처음엔 신문과 방송에 인터뷰를 하고 토크쇼에 여러 번 출연하면서 미디어의 각광을 즐겼다. 하지만 갤런드의 자살로 그런 행복한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미디어에 진절머리가 났다.”뉴저지 주에서 보험 컨설턴트로 일하는 켈먼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를 다룬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깊이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완전히 파헤치는 작업이었다.”
워들 감독은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거의 4년 동안 애썼다(그의 이전 작품은 2016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원 킬러 펀치’였다). 그는 “그들 서로 간의 관계가 예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였다”고 돌이켰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촬영 도중에도 그들이 언제 그만두려 할지 몰라 불안했다.”
샤프란은 “우린 한 가족으로 성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형제로 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서로 싸운 뒤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가 돈독해진다. 물론 처음엔 존재를 몰랐던 형제를 만나 너무 기뻤고 모두 서로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툼이 시작됐다. 우린 서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도 잘 몰랐다.”
그들은 재회 초기에 세간의 인기를 얻으면서 합작 사업을 시작했다. 뉴욕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세쌍둥이들(Triplets)’이라는 식당을 냈다. 그러나 샤프란이 그 일을 그만두자 갤런드가 큰 충격을 받았다. 워들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갤런드는 자신들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집착했다. 그래서 켈먼 부부가 이사 가면 그도 따라 집을 옮겼다. 그게 세 번 정도 됐다.” 당시 켈먼의 아내였던 재닛이 길 건너 집에 살았던 갤런드의 집에 갔다가 그의 시신을 발견했다(워들 감독은 갤런드의 그런 집착을 작품에선 다루지 않았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미스터리처럼 펼쳐진다. 노이바우어의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는 경제였던 듯하다. 샤프란은 상류층 부부에게, 갤런드는 중산층 가족에, 켈먼은 근로 계층 집안에 입양됐다. 세 명 모두 십대 시절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 그 사실은 그들이 정신병 소인을 공유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켈먼은 그것이 잠재의식적인 분리불안(대상과 떨어짐으로 생기는 불안장애)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큐멘터리에서 아기 때 의도적으로 머리를 침대에 찧곤 했다고 밝힌다.
그들 세 명 모두 성장하는 동안 연구자들이 자신을 관찰한 것을 기억했다(부모들은 입양아에 관한 연구의 일환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노이바우어의 연구 대상이었던 다른 쌍둥이들 중에서도 오랫동안 서로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히 재회한 경우가 있었다.
아울러 분리 입양된 쌍둥이 중 다수는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렸다. 갤런드(조울병 진단을 받았다)를 포함해 최소한 3명이 자살했다. 그러면서 정신병력이 있는 부모의 아이를 연구 대상으로 선별했다는 가설도 제기됐다. 그러나 켈먼에 따르면 그들 세쌍둥이의 친모는 그런 병력이 없었다.
워들 감독은 노이바우어와 함께 연구한 두 사람을 찾아내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 외에 연구 대상이 되길 원치 않았던 사람은 누가 있나?’ ‘연구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같은 중요한 여러 질문의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워들 감독은 “그 연구 프로젝트에 깊이 참여한 사람들이 아직 뉴욕에 살고 있고, 일부는 지금도 정신과의사로 활동하지만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샤프란은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행위는 나치의 만행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워들 감독은 그건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노이바우어 아래서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연구자들을 몇 명 만나봤지만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기는 쉽지만 연구자들의 사정도 어느 정도 참작해줘야 한다.”
뉴요커가 그 프로젝트를 폭로한 뒤 언론인들은 노이바우어에게서 그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머지않아 그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노이바우어가 2008년 94세로 사망한 뒤 그가 30년 이상 이사로 재직했던 유대인 가족·어린이 봉사위원회는 연구 결과를 예일대학 기록보관소에 넘기며 2066년까지 공개를 금지했다. 또 개인이 그 결과를 열람하려면 위원회의 서면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수년 동안 켈먼을 비롯한 피해 당사자들은 그 자료의 열람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연구 결과를 그토록 오래 밀봉한 노이바우어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충격적인 폭로 중 하나에서 한 전직 연구 보조원은 연구 대상이었던 쌍둥이들(확인되진 않았지만 15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 최소한 4명은 자신의 쌍둥이 형제가 있는지 아직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발표된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더 트위닝 리액션(The Twinning Reaction)’은 노이바우어의 일부 자료를 입수했다. 또 워들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완성한 뒤 1만 쪽 이상의 자료가 공개됐다. 그러나 켈먼은 “그 전부가 심하게 편집됐고 읽기 어려우며 연결이 잘 되지 않고 주요 정보는 깊이 묻혀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쓰리 아이덴티컬 스트레인저스’가 지난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며 특별심사위원상을 받은 뒤 사프란과 켈먼은 유대인위원회의 앨리스 티시 회장으로부터 사과의 편지를 받았다. 켈먼은 “사과의 말 몇 마디로는 전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그런 사과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돌려 줄 수 없다. 우리는 연구 결과 전체를 보고 싶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그 자료를 봐야 한다. 그 다음 고통 받은 모든 사람에게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는 소송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모든 방안을 검토한다”고 말했다.
갤런드는 뉴요커 기사가 나오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자신이 연구 대상에 포함됐는지 몰랐다. 그러나 남은 두 형제는 20년 이상 그런 사실을 알고 살아왔다. 노이바우어의 연구에 관해 더 자세히 안다고 해서 그들의 고통이 줄어드는 건 아니겠지만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샤프란은 “이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면 우리에겐 효과가 그 몇 배나 된다”며 “이 다큐멘터리는 워들 감독이 감성과 통찰력으로 포착한 우리의 삶”이라고 말했다. 켈먼도 “이 작품으로 인해 남은 우리 형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 애너 멘타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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