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학각색(各學各色)’ | 뜨거운 난민 논란 어디로? - 문화인류학] 달라진 ‘일반 국민’의 가치
[‘각학각색(各學各色)’ | 뜨거운 난민 논란 어디로? - 문화인류학] 달라진 ‘일반 국민’의 가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국민됨’은 지위가 아닌 성과로 변해 제주도에 입국한 500여 명의 예민 난민과 관련해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의 난민 반대 청원에는 7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가짜 난민 아웃’을 외치는 집회가 벌써 3회째 열렸다. 이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조금 뚱딴지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난민들이 만약 30여 년 전의 한국에 왔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지 묻고 싶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때의 여론은 지금보다는 우호적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물론 ‘옛날엔 좋았었지’라는 식으로 과거를 낭만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신 1988년을 기점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한국 사회가 보인 반응을 재소환해서 지금의 상황을 다시 읽어 보려 하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 그들에 대한 인권 침해, 노동 착취,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코리안 드림’에의 열망에 대해 30년 전 한국 사회가 보인 모습은 지배적으로 ‘온정주의적’인 것이었다. 이주노동자와 난민이 엄연히 다른 존재임에도 강조하려는 것은 30년 전과 지금 한국 사회가 ‘타자’에 대해 보이는 매우 다른 결의 반응이다.
물론 온정적 시선은 좋고 배타적 시선은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타자를 ‘타자화’하는 방식의 차이다. 전자에서 타자는 ‘불쌍하면서도 기특한’ 존재, 즉 그동안 이주노동자와 난민을 배출해온 ‘우리의 발전 및 성과’를 역으로 증명하며 ‘우리의 자부심을 충족시키는’ 존재였다면, 후자에서 타자는 ‘위협적인’ 존재, 즉 ‘가뜩이나 어려워진 우리의 살림과 안전을 더 위협하는’ 존재다.
과거와 달라진 타자에 대한 시선은 ‘우리’의 달라진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한국의 발전주의적 성취감, 자족감이 정점을 이뤘다면, 2018년 현재는 외환위기 이후 더 나아질 것 없는 사회·경제적 상황 속에서 집단적 불안감과 자기 연민이 최대치에 달하고 있다. 한 쪽에선 끊임없이 긍정하고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하고, 또 한 쪽에선 노력이 어떤 구체적 결실로도 응답되지 않는 상황이 연일 이어진다. 한 쪽에선 공정성과 형평성이 이 시대 최고의 윤리적 선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또 한 쪽에선 그와 같은 게임의 규칙들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듯한 상황이 반복된다. 한 쪽에선 국가의 역할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고 강조하지만, 또 한 쪽에선 그와 같은 기관으로서의 국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신자유주의적 ‘국가 없음’ 즉 ‘국민’이라는 신분이 권리의 즉각적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기의 가치 또는 가치 있음을 개별적으로 또 끊임없이 증명해 보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 국민은 언제나 잠정적 난민으로서 존재한다.
브루노 아마블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시민됨’ 또는 ‘국민됨’이 지위가 아닌 ‘성과’가 되었음을 꼬집는다. 이와 같은 상황은 살아있는 위기의식을 생산해내고, 이 위기감은 국가 없음을 정당화하는 체제 자체의 모순보다는 그 체제가 ‘기생충화’ ‘무임승차자화’하는 개인들에 대한 집단적 불만, 분노, 또는 혐오로 분출됨으로써 오히려 국가 없음을 강화해왔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국가 없음을 견고히 하는 것이 어떤 외부의 적이 아니라 가상의 무임승차자들에 의해 생존과 안전을 위협받는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일반 국민’이라는 정서와 그 정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정치라는 점이다.
따라서 예멘 난민 이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 ‘일반 국민’이라는 이름이 지금 왜 그토록 배제와 박탈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느냐다. 지금 한국에서 그 이름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또 불가능하게 하는가.
※ 전의령 교수는…이주·다문화, 우익 포퓰리즘, 동물 담론에 관한 연구를 해왔으며 한국문화인류학회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금 뚱딴지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난민들이 만약 30여 년 전의 한국에 왔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지 묻고 싶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때의 여론은 지금보다는 우호적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물론 ‘옛날엔 좋았었지’라는 식으로 과거를 낭만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신 1988년을 기점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한국 사회가 보인 반응을 재소환해서 지금의 상황을 다시 읽어 보려 하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 그들에 대한 인권 침해, 노동 착취,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코리안 드림’에의 열망에 대해 30년 전 한국 사회가 보인 모습은 지배적으로 ‘온정주의적’인 것이었다. 이주노동자와 난민이 엄연히 다른 존재임에도 강조하려는 것은 30년 전과 지금 한국 사회가 ‘타자’에 대해 보이는 매우 다른 결의 반응이다.
물론 온정적 시선은 좋고 배타적 시선은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타자를 ‘타자화’하는 방식의 차이다. 전자에서 타자는 ‘불쌍하면서도 기특한’ 존재, 즉 그동안 이주노동자와 난민을 배출해온 ‘우리의 발전 및 성과’를 역으로 증명하며 ‘우리의 자부심을 충족시키는’ 존재였다면, 후자에서 타자는 ‘위협적인’ 존재, 즉 ‘가뜩이나 어려워진 우리의 살림과 안전을 더 위협하는’ 존재다.
과거와 달라진 타자에 대한 시선은 ‘우리’의 달라진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한국의 발전주의적 성취감, 자족감이 정점을 이뤘다면, 2018년 현재는 외환위기 이후 더 나아질 것 없는 사회·경제적 상황 속에서 집단적 불안감과 자기 연민이 최대치에 달하고 있다. 한 쪽에선 끊임없이 긍정하고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하고, 또 한 쪽에선 노력이 어떤 구체적 결실로도 응답되지 않는 상황이 연일 이어진다. 한 쪽에선 공정성과 형평성이 이 시대 최고의 윤리적 선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또 한 쪽에선 그와 같은 게임의 규칙들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듯한 상황이 반복된다. 한 쪽에선 국가의 역할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고 강조하지만, 또 한 쪽에선 그와 같은 기관으로서의 국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신자유주의적 ‘국가 없음’ 즉 ‘국민’이라는 신분이 권리의 즉각적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자기의 가치 또는 가치 있음을 개별적으로 또 끊임없이 증명해 보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 국민은 언제나 잠정적 난민으로서 존재한다.
브루노 아마블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시민됨’ 또는 ‘국민됨’이 지위가 아닌 ‘성과’가 되었음을 꼬집는다. 이와 같은 상황은 살아있는 위기의식을 생산해내고, 이 위기감은 국가 없음을 정당화하는 체제 자체의 모순보다는 그 체제가 ‘기생충화’ ‘무임승차자화’하는 개인들에 대한 집단적 불만, 분노, 또는 혐오로 분출됨으로써 오히려 국가 없음을 강화해왔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국가 없음을 견고히 하는 것이 어떤 외부의 적이 아니라 가상의 무임승차자들에 의해 생존과 안전을 위협받는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일반 국민’이라는 정서와 그 정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정치라는 점이다.
따라서 예멘 난민 이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 ‘일반 국민’이라는 이름이 지금 왜 그토록 배제와 박탈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느냐다. 지금 한국에서 그 이름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또 불가능하게 하는가.
※ 전의령 교수는…이주·다문화, 우익 포퓰리즘, 동물 담론에 관한 연구를 해왔으며 한국문화인류학회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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