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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을 중단하라!

‘헝거게임’을 중단하라!

반이상향 베스트셀러에 심취하며 성장한 미국 Z세대, 그 주인공처럼 총기 난무하는 사회 바로잡으려 행동에 나서
영화 ‘헝거게임: 더 파이널’의 캐스트. 붉은색 복장의 캐릭터가 반이상향적 세계의 압제를 무너뜨리는 강인한 여주인공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다. / 사진:COURTESY OF LIONSGATE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는 Z세대로 불린다. Z세대는 문화계의 반이상향 추세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성년이 됐다.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원헌드레드’ 같은 청소년 베스트셀러는 어린 아이의 목숨이 화폐처럼 거래되는 반이상향적인 세계에서 강인한 십대 여주인공이 나타나 거대한 압제 당국에 대항하는 영웅적인 활약을 보여준다. 우리 세대는 이런 캐릭터에 몰입하며 성장했기에 우리가 그들처럼 사회 불의에 분연히 일어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미국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의 생존자 에마 곤살레스가 총기규제를 거부하는 변명만 되풀이하는 미국 총기협회(NRA)를 향해 ‘헛소리 하지마!’라고 외쳤을 때, 로스앤젤레스의 학생 에드나 차베스가 총격으로 살해당한 오빠의 이름을 ‘라카르도!’라고 목청 높여 부르며 그를 잃은 슬픔을 우리 모두가 가슴 찡하게 느끼도록 호소했을 때, 곤살레스와 같은 사건현장의 생존자인 세라 채드윅이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 같은 정치인에게 조롱하는 트윗을 날렸을 때, 그들 모두는 ‘헝거게임’에서 배운 대로 행동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현 미국 정부와 Z세대의 최고 인기 반이상향 소설의 주제가 너무나 닮았다는 점이다. 미국 청소년은 매일 거리나 집, 영화관이나 학교에서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도 정치인은 이런 학살극을 막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갑을 두둑히 채우고 의석을 지키기 위해 이런 학살극의 공모자가 되기로 선택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헝거게임’에서 대중의 불만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달래려는 목적으로 매년 수십 명의 아이를 ‘수확’(살육 생존게임 참가자를 추첨으로 뽑는 과정을 가리킨다)하는 스노 대통령과 상당히 닮아 보이지 않는가?

독일의 유명한 영화비평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 영화가 히틀러와 나치의 부상을 예고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와 비슷하게 나도 청소년이 툭하면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하고 살해되는 비이상향적 세계에서 아이들이 단결해 체제를 무너뜨리는 행동에 나서는 ‘헝거게임’ 같은 소설·영화의 인기가 현재의 총기폭력 근절운동의 길을 닦았다고 믿는다.지난 수년 동안 미국은 잦은 총기난사 사건으로 공포에 떨었다. 총기를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저 가느다란 속삭임으로 줄어들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유색인 공동체는 변화의 필요성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무심한 국가가 그 목소리를 억눌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총기에 의한 자살과 가정에서 벌어진 총기폭력은 총이 있든 없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회성 비극으로 치부됐다.

지난 4월 미네소타주에서 전국 학생 수업거부 연대 시위에 동참한 고등학생들은 총기규제를 촉구했다. / 사진:AP-NEWSIS
그러다가 최근의 총기규제 시위인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 우리의 목소리를 하나로 통합했다. 각각의 주장이 산발적으로 나와 서로 주목을 끌려고 경쟁하기보다 연단과 마이크를 공유하게 됐다. 지난 3월 24일 대규모 행진시위 이래 미국의 여러 주는 범프스톡(bump stock, 반자동 총기를 자동화기처럼 발사되도록 개조하는 장치)의 판매를 금지하고 총기 구입 최소 연령을 21세로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NRA로선 큰 타격이었다. 총기규제의 목소리를 하나로 통합하는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 운동이 아니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흔히 밀레니엄 세대(Y세대, 1980~1995년생)를 ‘슬랙티비스트’라고 부른다. 슬래커(slacker, 게으른 사람)와 액티비스트(activist, 행동주의자)의 합성어로 온라인 공간에선 시민참여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면서도 막상 실질적인 정치·사회 운동엔 참여하지 않는 네티즌을 꼬집는 표현이다. 그러나 Z세대는 그들과 달리 이 운동에 적극 뛰어들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섰다. 우리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우리의 명분을 알리고 대중의 지지를 호소한다. 하지만 다른 온라인 운동과 달리 우리의 주된 전략은 실질적인 시위를 주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국 학생 수업거부 연대 시위(National School Walkout)’가 두드러진 것은 미국의 청소년 100만 명 이상이 이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질적인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나는 펜실베이니아주 퍼커시의 펜리지 고등학교에서 이 시위를 조직했다. 1960년대 식의 연좌농성이었다. 우리 시위를 찍은 동영상이 SNS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열람 횟수 340만 건을 기록했다). 세계 각지에서 우리에게 지지가 쏟아졌다. 나와 함께한 우리 학교 학생 225명은 그런 행동에 대한 학교 당국의 처벌도 달게 받았다.

우리의 시위는 ‘헝거게임’에서 주인공 캣니스가 동생처럼 여기던 루가 게임 도중 목숨을 잃자 그녀가 루를 위해 혁명의 불을 당기는 모습, ‘레드 퀸: 적혈의 여왕’에서 주인공 메어가 권력에 맞서기 위해 동원하는 조직 전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기에다 인터넷을 다루는 우리의 기술을 더해 거대한 지원 네트워크를 가진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처럼 반이상향 베스트셀러의 교훈과 지식, 기술을 적절히 혼합함으로써 우리 운동은 대중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제 정치인도 우리 운동을 의식하고 총기규제를 진지하게 검토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감을 준 청소년 반이상향적 베스트셀러와 우리의 총기규제 운동 사이엔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작품에선 세상을 구하는 십대 영웅이 단 한 명이지만 우리 운동에선 주인공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 애너 소피 티네니



※ [필자는 18세로서 트위터 계정 ‘Pennridge 225’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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