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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자학 개그

경제학자의 자학 개그

폭염에 시달린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새 찬바람에 옷깃을 여며야 하는 계절이다. 강원도 높은 산에는 첫 눈이 내리고, 나무는 푸르던 이파리에 수분 공급을 끊어가며 겨울 채비에 들어갔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전망을 업으로 삼은 경제학자들도 바빠지고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위험을 줄이고 기회를 찾기 위해 내년 경제전망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계속되는 무역분쟁은 내년 세계 경제에 어떻게 작용할까? 2018년 유가와 원자재 가격 전망은?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와 위협요인은? 환율·금리·물가 전망은? 내년 사업의 방향과 계획을 짜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다가올 경제상황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점집이 그렇듯이 경제가 힘들고 불확실성이 클수록 경제학자의 전망 사업은 활황을 띤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전망을 참조는 해도 액면 그대로 곧이듣지는 마시라! 경제학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되지만 세상을 구원하는 학문은 아니다. 이와 관련 경제학자 직업을 소재로 하는 우스개 이야기, 보기에 따라서는 자학 개그 같은 이야기를 재미 삼아 몇 가지 소개한다. 그 전에 두 가지 유의해야 할 게 있다. 첫째, 여기 소개하는 이야기들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아니다. 아마도 내가 아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미국 워싱턴 대학교의 어느 경제학과 교수가 수집해서 일찍이 인터넷에 올린 이야기 중에 몇 개를 추려 뽑은 것이다. 한국 경제학자를 빗대어 누가 일부러 지은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둘째, 직업 소재의 개그는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도 실화는 아니다. 직업을 희화하는 이야기는 경제학자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분야에나 있다. 예를 들면 기업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 공무원은 영혼 없는 철밥통, 기자는 기레기, 저널리즘은 너절리즘, 정치 입문으로 입신양명하려는 교수는 폴리페서로 비유되는 사례 등이 있다. ‘좋은 변호사는 법을 알고 위대한 변호사는 판사를 안다’는 말도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관예우 관행을 빗댄 것처럼 보이지만 이 말은 국제적으로 회자되는 변호사 자학 개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혹시라도 경제학자만 특별히 이상한 괴물로 취급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각설하고, 첫 번째 개그는 경제학자들의 헷갈리고 시끄러운 주장에 관한 것이다. ‘태초에 하느님이 태양을 만들자, 악마는 햇볕 화상(sun-burn)을 만들어 대응했다. 하느님이 사랑을 만들자, 악마는 이에 대응해 결혼을 만들었다. 하느님이 경제학자를 만들자, 악마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고심 끝에 찾은 대응책이 또 다른 경제학자를 만든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많다. ‘경제학은 상반된 주장을 하는 두 사람이 모두 노벨상을 받는 유일한 분야이다. 실제로 하이에크(F. Hayek, 1899~1992)와 뮈르달(G. Myrdal, 1898~1987)은 1974년도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경제학자 10명을 한 방에 넣으면 11개의 의견이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경제학자는 혼자서 다른 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으로는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렇다는 식이다. 그래서 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H. Truman,1884~1972)은 ‘한손잡이 경제학자(one-handed economist)가 없느냐며 찾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여기에 더 독한 개그가 추가됐다. ‘경제학자의 제1법칙은 모든 경제학자에게 정반대의 경제학자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제2법칙은 둘 다 틀렸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개그는 경제학자들이 실물경제를 알지 못함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한 남자가 시골길을 걷던 중 수많은 양떼를 몰고 오는 목동을 만났다. 남자는 양이 몇 마리인지 맞출 수 있다고 하면서 양 한 마리와 10만원을 걸고 내기하자고 제안했다. 목동이 설마하며 응하자, 남자는 973마리! 숫자를 맞췄다. 목동이 놀라며 약속을 했으니 양 한 마리를 가져가라 했다. 남자가 뒤돌아 가려 할 때 이번에는 목동이 남자의 직업을 맞추겠다면서 두 배를 걸고 내기 하자고 청했다. 남자가 응했고 목동은 당신은 정부출연기관에서 일하는 경제학자! 직업을 맞췄다. 놀란 남자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목동은 “끌고 가는 그 개부터 풀어주면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개그는 또 있다. ‘한 남자가 마을 축제 행사에서 열풍선을 타던 중에 돌풍이 불어 엉뚱한 장소로 날아갔다. 길 잃은 남자는 열풍선을 지상 5m 높이까지 내려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행인은 힐끔 보고는 당신은 지금 열풍선 안에 있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당신은 경제학자가 틀림없다. 기술적으로는 지당한 말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말이다”고 했다. 행인이 지지 않고 대꾸했다. “당신은 경영계에서 일하는 게 분명하다. 열풍선을 타고 멀리 그리고 넓게 본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힐난했다.’

세 번째 개그는 경제학자의 분석 태도와 전망 방법론을 희화하는 내용이다. ‘수학자, 이론경제학자, 계량경제학자 3명이 캄캄한 밀실 안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아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고양이는 애초부터 없었다. 수학자가 먼저 컴컴한 방안에 들어가 없는 고양이를 찾겠다며 날뛰다가 그만 미쳐버렸다. 그 다음에 밀실로 들어간 이론경제학자는 고양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없는 고양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모델을 완성했다며 의기양양해서 밀실을 나왔다. 계량경제학자는 밀실에 들어간 지 한 시간 만에 존재하지 않는 고양이의 목을 잡았다고 외쳤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경제학자는 경제에 대해 틀린 추측을 하며 돈을 버는 훈련된 전문가’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경제 전망가는 자신의 책임만 빼고 모든 것을 가정에 의존하는 사람’이라는 개그가 추가됐다.

끝으로 ‘경제학자는 성장의 원인을 잘 알지 못한다.’ 이 말은 개그가 아니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4월 12일자 논평 기사에서 제목으로 뽑은 말이다. 경제 전문지가 작심하고 주류 경제학의 성장이론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소득은 노동·자본·기술의 축적량에 따라 결정된다는 성장이론은 한계가 명백한데도 그 틀에 갇혀 해결책을 내지 않는 경제학계를 비판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의 성장을 결정하는 근본 원인은 제도의 질이다. 중세 이후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역전된 이유도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에 대한 제도 차이 때문이었다. 서양은 시장을 키우고 유한책임 기업제도를 허용했던 반면, 동양은 사(士)·농(農)·공(工)·상(商)을 차별하며 시장 금압과 무본억말(務本抑末) 정책을 펼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세기 초엽의 조선 거상으로 부상했던 임상옥이 사업을 정리하고 벼슬살이 공무원이 된 데에도 조선의 무본억말 제도가 주효했다. 그러니 제도의 문제를 방치한 채 저출산 고령화의 사람 탓, 기업 투자 부진의 자본 탓을 하는 문제 의식과 정책 대안으로는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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