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아바나의 속살 들여다보기

아바나의 속살 들여다보기

관광객 몰리는 곳보다 현지인이 즐겨 찾는 술집과 식당, 쿠바 혁명의 유적 찾아가면 로맨틱한 도시 체험할 수 있어
말레콘의 일몰은 카리브해 섬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보여준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쿠바 수도 아바나는 다양한 아름다움이 혼재하는 도시다. 외형적인 매력 대부분은 아이스 다이키리 한 잔을 들고 도착하는 모든 방문객에게 너무나 뻔하게 다가온다. 호주 시드니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가 그렇듯이 말이다. 예를 들어 립스틱처럼 새빨간 1957년형 뷰익 컨버터블을 대절해 해질 무렵 플로리다만을 따라 섹시한 곡선의 해안도로 말레콘을 드라이브하거나, 서반구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스페인식 마을인 구시가지 아바나 비에하의 야자수 늘어선 광장을 정처 없이 헤매는 것은 중남미 여행의 전형적인 의식 중 하나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사람들이 아바나 관광에 왜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어리둥절해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인에게 아바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방문이 금지된 도시였다. 따라서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이탈리아인이나 아르헨티나인,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많은 구역이 황폐하고 추하게 변한 모습을 보는 것이 그들에겐 상당한 충격일 수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형편없는 음식과 소련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추레한 술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십상이다. 아니면 싸구려 카페에 갇혀 끊임없이 ‘관타나메라’를 외치는 무명 가수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 고문에 시달린다.
구시가지 아바나 비에하는 스페인 정복자 시대에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좁은 골목길 너머로 닿을 듯한 연철 발코니 등 매력적인 외관으로 가득하다. / 사진:GETTY IMAGES BANK
나는 최근 펴낸 ‘쿠바 리브레: 체와 피델, 그리고 세계 역사를 바꾼 별난 혁명(¡Cuba Libre!: Che, Fidel and the Improbable Revolution That Changed World History)’의 집필에 필요한 조사차 여섯 차례 아바나를 방문하면서 이곳의 좀 더 색다른 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다. 거기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제대로 접근하기만 하면 아바나가 그 유명한 ‘로맨틱 도시’라는 명성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바나의 거리는 아주 복잡해 정신이 혼미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내가 카리브해의 섬에 왔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곧바로 어느 건물이든 옥상으로 직행해 일몰을 보며 감상에 젖는다. 1900년대 초 지어진 백화점을 리모델링한 고급 호텔 그란 만자나 켐핀스키의 옥상에 있는 엘 수르티도르 풀 앤 바에선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도 풀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천사와 아치가 조각된 바로크풍 타워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시야는 반짝이는 푸른 수평선으로 이어진다. 그란 만자나 켐핀스키 호텔은 아바나의 진정한 첫 5성급 호텔로 24시간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 그런 서비스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석양주’를 한잔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내가 좋아하는 다른 곳은 나즈다로비에(러시아어로 ‘건배’라는 뜻)다. 아바나의 유일한 러시아 식당으로 테라스가 말레콘 바로 위에 위치한다. 그곳에서 캐비어를 섞은 보드카 샷을 곁들여 피로시키(러시아식 파이의 일종)를 먹으며 옛 소련 시절의 정치선전 포스터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다.
사진:GETTY IMAGES BANK
그 다음으로 권할 만한 곳이 라과리다 레스토랑이다. 아바나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식당인 라과리다는 유명한 쿠바 영화 ‘딸기와 초콜릿’에 나왔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아바나를 방문했을 때 이곳을 찾았다. 지금도 이곳은 마치 영화 속의 장면과 같다. 너무 낡아 허물어질 듯한 로비에 들어서면 벽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명언을 적은 글이 빛 바랜 채 걸려 있고 한때 웅장했던 대리석 층계를 올라가면 머리 없는 조각상을 지나게 된다. 하지만 난 이 비싼 식당을 지나쳐 곧 무너질 듯한 층계를 올라가 옥상에 있는 바로 향한다. 신세대 쿠바 디자인 그룹이 설계한 곳이다. 흰색 비닐 인테리어가 1970년대와 18세기의 특징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틀만 남고 텅 빈 거대한 액자 속으로 쓸쓸하게 무너져가는 도심이 눈에 들어온다.

구시가지 아바나 비에하는 스페인 정복자 시대에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좁은 골목길 너머로 닿을 듯한 연철 발코니(골목길이 너무나 좁아 양쪽의 주민이 입을 맞출 수 있을 정도다) 등 매력적인 외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진짜 체험의 대부분은 닫힌 문 뒤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떠버리 양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으로 이름난 엘 플로리디타와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를 찾게 된다. ‘작은 플로리다’라는 뜻의 엘 플로리디타는 헤밍웨이가 앉은자리에서 다이키리 13잔을 마신 곳으로 유명하다.

헤밍웨이가 아니더라도 이곳은 다이키리를 처음 제조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해 간판에 ‘다이키리의 요람’이라고 적혀 있다.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는 모히토가 처음 제조된 곳으로 알려졌다[이곳에 액자로 걸려 있는 글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내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는 헤밍웨이가 직접 써서 서명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는 오래 전 술집 주인이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헤밍웨이의 필체를 흉내 내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으로 유명한 엘 플로리디타. / 사진:JUANALBGP CC BY-SA
그 술집들은 한때 매력과 낭만이 넘쳤지만 지금은 휘발유와 맨 설탕 맛이 나는 칵테일을 마구 들이켜는 크루즈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좀 더 요령 있는 여행객이라면 더 깊숙한 곳을 탐험한다. 칵테일 라운지 오레일리 304(도로명 주소에서 따왔다)와 그보다 약간 고급인 엘 델 프렌테(‘길 건너에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출입구 위에 작은 흰색 네온사인으로 찾아야 한다) 같은 곳이다.

하지만 멋을 아는 쿠바인이 요즘 자주 가는 술집은 이름도 없고 밖에서 볼 때 아무런 표시도 없다. 길모퉁이 돌아 몇 블록 가서 평범한 층계를 올라가면 바로 그곳에 숨어 있다(주소: 테아디오와 엠페드라도 사이, 아길라르 209).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영업하는데 잠시도 한산한 시간이 없다. 실내 장식은 복고풍 열대식이다. 조명이 어두워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배경 음악도 다른 술집에서 흔히 듣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쿠바의 유명한 재즈 그룹) 같은 틀에 박힌 쿠바 음악과는 사뭇 달라 신선하다.

그러나 아바나의 독특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은 1959년 쿠바 혁명의 퇴색한 유적들이다. 필수 관광 코스에 들어 있는 가장 유명한 곳이 혁명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기보다 그냥 진기한 물건을 수집해 보관하는 ‘호기심의 방’처럼 혼란스럽고 약간은 황당한 기념품들이 소장돼 있다. 예를 들면 체 게바라가 ‘영웅적 게릴라 전사’ 사진(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 중 하나다)을 찍었을 때 입었던 시크한 갈색 가죽 재킷, 게릴라 전쟁 때 쿠바 여성들이 총과 탄약을 밀반입하는데 사용한 속치마 등이다.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 걸린 글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 내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 / 사진:FLICKR
그러나 쿠바 혁명의 빛 바랜 약속을 진정으로 느끼려면 택시를 타고 쿠바예술대학 ISA으로 가야 한다. 그곳의 아방가르드 디자인은 세계 건축가들에게 전설로 통한다. 정문을 통과하려면 경비원에게 ‘뇌물’을 건네야 한다(나는 5달러를 줬다). 하지만 여성의 신체를 모델로 설계된 건물을 둘러보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음부 형태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둘러싼 젖가슴 모양의 스튜디오가 특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1961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원한 피그스만 침공이 실패로 끝나고 카스트로가 “문화도 사회주의 운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혁명이 강경 노선으로 흐르자 안타깝게도 이 대학의 건설이 중단됐다. 하지만 지금도 이곳은 쿠바인이 ‘열대의 이상향’을 꿈꾸던 혁명 초기의 ‘밀월 기간’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우뚝 서 있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혁명 유적지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유대인 대부’로 통하던 마이어 란스키 같은 미국 마피아 두목들이 1950년대에 지은 아르데코 호텔이 즐비한 부촌인 베다도와 미라마르에 있다. 그곳에 위치한 카프리 호텔의 시원한 카페에선 ‘쿠바 리브레’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1959년 1월 1일 0시 카스트로의 승리 소식에 흥분한 폭도가 이곳 카지노를 습격했을 때 할리우드의 터프가이 조지 래프트가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그들에게 호령한 에피소드로 유명해진 명소다.
아바나의 독특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1959년 쿠바 혁명의 퇴색한 유적들인데 가장 유명한 곳이 혁명박물관이다. / 사진:WIKIPEDIA.ORG
아바나 리브레 호텔(이전엔 힐튼이었다)의 로비는 마치 미국 드라마 ‘매드맨’의 촬영장 세트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내 데스크에 가서 펜트하우스 방문을 요청하라. 1959년 게릴라들이 탱크 위에 올라서서 아바나에 입성한 뒤 카스트로가 애인 셀리아 산체스와 함께 몇 달 동안 함께 달콤한 시간을 보낸 곳이다. 혁명의 예상치 않았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복고풍 가구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 둥글게 휜 발코니는 아찔할 정도로 멋진 전망을 선사한다.

말레콘 해안도로의 옛 포병대 방어 진지 자리에 위치한 호텔 나시오날에는 유명한 마피아 두목 럭키 루치아노와 배우 프랭크 시나트라가 단골이었던 바가 있다. 그곳에 들렀다가 나와서 전망 좋은 방파제 위의 잘 가꿔진 정원까지 산책하면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카스트로의 본부로 지어진 터널과 냉전 시대 벙커들을 돌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좀 더 현대적인 쿠바의 면모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대표적인 곳이 파브리카 데 아르테다. 예전의 올리브유 공장을 개조한 아주 넓은 엔테테인먼트 콤플렉스로 화랑과 공연장, 바가 가득하다. 쿠바 젊은이 수천 명이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 몇 블록에 걸쳐 장사진을 친다. 하지만 나는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내부에 새로 생긴 식당 티에라에 예약하면 저녁 8시 문을 열 때 바로 그곳으로 들어가 3층짜리 공장 건물을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다. 게다가 티에라는 채식주의 식당이다. 전형적인 쿠바 식당이 육류가 주류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위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 토니 페로테트



※ [필자는 쿠바 전문가로 ‘쿠바 리브레: 체와 피델, 그리고 세계 역사를 바꾼 별난 혁명’의 저자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명예회장 1심 무죄

2‘코인 과세유예·상속세 완화’ 물 건너가나…기재위 합의 불발

3최상목 “야당 일방적 감액예산…결국 국민 피해로”

4日유니클로 회장 솔직 발언에…中서 불매운동 조짐

5최태원은 ‘한국의 젠슨 황’…AI 물결 탄 SK하이닉스 “우연 아닌 선택”

6서울지하철 MZ노조도 내달 6일 파업 예고…“임금 인상·신규 채용해 달라”

7인천시 “태어나는 모든 아동에게 1억 준다”…출생아 증가율 1위 등극

8경기둔화 우려에 ‘금리 인하’ 효과 ‘반짝’…반도체 제재 우려↑

9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기준금리 인하에도 한동안 ‘겨울바람’ 전망

실시간 뉴스

1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명예회장 1심 무죄

2‘코인 과세유예·상속세 완화’ 물 건너가나…기재위 합의 불발

3최상목 “야당 일방적 감액예산…결국 국민 피해로”

4日유니클로 회장 솔직 발언에…中서 불매운동 조짐

5최태원은 ‘한국의 젠슨 황’…AI 물결 탄 SK하이닉스 “우연 아닌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