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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1만927m ‘챌린저 딥’의 바닥 찍다

해저 1만927m ‘챌린저 딥’의 바닥 찍다

미국 탐험가 빅터 베스코, 마리아내 해구의 지구 최저점 닿아 세계 기록 경신
베스코보는 지난 4월 챌린저 딥의 바닥까지 내려가 역사상 바다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기록을 경신했다. / 사진:ATLANTIC PRODUCTIONS FOR DISCOVERY CHANNEL-AP/YONHAP
인간으로서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세계 기록이 경신됐다. 미국 댈러스 출신의 사업가이자 탐험가인 빅터 베스코보(53)가 최근 지구에서 가장 깊다는 태평양의 마리아나 해구에서도 최저 해연인 ‘챌린저 딥(Challenger Deep)’의 바닥에 닿았다. 해저 1만927m이다.

마리아나 해구는 북태평양의 북마리아나 제도와 괌 동쪽에 위치하며, 동쪽에서 남북 방향으로 2550㎞의 길이로 뻗어 있다. 태평양판이 필리핀판 밑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만들어진 마리아나 해구는 평균 수심이 7000~8000m에 이를 정도로 깊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이 해발 8848m에 달하지만 챌린저 딥을 거꾸로 세우면 이보다 약 2000m 이상 더 높다. 비행기의 항로로 이용되는 지구 대기의 성층권에 이를 수 있다.

이번에 베스코보가 도달한 마리아나 해구의 극심점은 이전의 솔로 잠수 기록보다 19m 더 깊다. ‘타이타닉’을 연출한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2012년 ‘딥씨 챌린지(Deep Sea Challenge)’ 프로젝트에서 1만908m에 도달한 기록을 가리킨다. 그 이전의 기록으로는 솔로 잠수는 아니지만 1960년 미국 해군 중위인 돈 월시와 스위스 엔지니어인 쟈크 피카르드가 사상 최초로 해저 1만911m인 곳을 유인 탐사했다.

베스코보의 잠수를 추적한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딥 플래닛(Deep Planet)’은 시청자에게 베스코보와 함께 이 신비한 미지의 해저 구역을 탐험하는 보기 드문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마리아나 해구로 내려가는 동안 잠수정 곁을 지나간 첨치장어류의 일종. / 사진:ATLANTIC PRODUCTIONS FOR DISCOVERY CHANNEL
베스코보는 미국 해군 장교 출신으로 사모펀드 ‘인사이트 에퀴티 홀딩스’의 창립자 겸 투자자다. 그는 ‘탐험가의 그랜드슬램(남·북극점 및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달성했다. 7개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한 월스트리트의 백만장자가 이제는 전 세계 바다에서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는 신기록까지 달성한 것이다.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베스코보는 세계 7개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한 뒤인 2012년 심해저 잠수 탐험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계획은 지구 오대양 각각의 가장 깊은 곳을 탐사하는 것이었다. 이를 목표로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팀을 꾸려 ‘파이브 딥스 엑스퍼디션(Five Deeps Expedition)’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베스코보는 마리아나 해구에 도전한 두 번째 시도에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지난 약 한 달 동안 4번의 잠수를 시도했으며, 지난 4월 28일에는 4시간 동안 챌린저 딥 바닥에 머물렀다. 베스코보가 이 같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자체 건조한 잠수정 ‘리미팅 팩터(Limiting Factor)’ 덕이 컸다. 리미팅 팩터는 세계 최초의 티타늄 소재 잠수정으로, 베스코보가 총 4800만 달러(약 570억원)를 들여 건조했다. 해저 1만4000m의 수압에도 견딜 수 있으며 총 2명이 탑승할 수 있다.

베스코보는 그곳에 도달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바닥은 평평했다. 아주 두꺼운 모래진흙으로 덮여 마치 베이지색 분지 같았다. 작고 반투명한 생물이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 바닥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전혀 죽은 곳이 아니었다. 내가 인간이 만든 기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만6000psi나 되는 수압이 선체와 뷰포트를 짓눌렀지만 나는 마치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꼈다. 물론 온도가 낮아 약간 더 추웠지만 인간의 창의력과 공학으로 우리가 이처럼 극단적인 환경에도 쉽게 여행하면서 지구 곳곳을 탐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동을 주었다. 그처럼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아주 흥분되고 영광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아래는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해 내 마음도 아주 평화로웠다.”

잠수 도중 베스코보는 여러 ‘희한한 생물’을 만났다. 특히 해저 7000m에서 주걱벌레를 목격했다. 그 정도 깊이에서 주걱벌레를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해저 8000m에서는 신종 꼼치가 카메라에 잡혔다.
베스코보는 지난 4월 28일 잠수정 리미팅 팩터를 타고 4시간 동안 챌린저 딥 바닥에 머물며 주변을 관찰했다. / 사진:ATLANTIC PRODUCTIONS FOR DISCOVERY CHANNEL-AP/YONHAP
그러나 불길한 발견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저에서 비닐봉지와 사탕 포장지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포착됐다. 베스코보는 로이터 통신에 “인간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까지 오염시킨 확실한 증거를 발견해 매우 실망스러웠다”면서 “바다가 쓰레기 하치장처럼 취급되고 있지만 바다는 그럴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베스코보는 잠수 시도 도중 여러 차례 예상치 않았던 일도 겪었다. 그는 나중에 그 영상을 보며 “아주 놀랍다”고 말했다. “챌린저 딥에서 예상치 않았던 모험을 했다. 로봇 착륙선이 바닥에 닿으면서 모래진흙 속에 너무 깊이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역사상 바다 가장 깊은 곳에서 구조 활동을 벌여야 했다. 우리 잠수정이 다시 내려가서 착륙선을 밀어냈다. 착륙선은 이틀이나 어둠 속에서 갇혀 있었지만 우리가 다시 돌아가 구조할 수 있었다.”

그처럼 바다 깊은 곳에 내려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베스코보는 그처럼 상상을 불허하는 강한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잠수정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처럼 압도적인 자연의 공격을 계속 견뎌낼 수 있는, 믿을 만한 잠수정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큰 도전이었다. 가장 큰 위험이 극단적인 수압으로 선체에 틈이 생기는 것이었다. 바다 깊은 곳에 내려가면 수면으로 올라오는 데 3시간 반 정도 걸릴 수 있다. 급속한 누출이나 구조적 장애가 발생하면 1초도 못 가 사망할 수 있다. 하지만 서서히 산소가 누출되는 상황이 발생해도 수면으로 올라가기 전에 수리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그런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모든 것이 설계됐다. 그 결과 러시아워에 텍사스 주의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이 잠수정을 타고 해저로 내려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베스코보는 마리아내 해구 챌린저 딥의 바닥을 보고 “두꺼운 모래진흙으로 덮인 평평한 베이지색 분지 같았다”고 말했다. / 사진:ATLANTIC PRODUCTIONS FOR DISCOVERY CHANNEL
베스코보는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딥이 태평양에서 가장 깊은 곳이라고 탐사팀이 확신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들은 더는 깊이 내려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베스코보가 다음에 탐험할 곳은 남태평양의 통가 해구다.

깊은 바닷속 대부분은 인간이 탐험하지 않은 곳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은 대양의 80%는 탐험이 이뤄지지 않았고 관측되지도 않았으며 지도로 작성된 적도 없다. 우리가 해저보다 화성 표면에 관해 더 많이 안다는 역설도 그런 현실에서 비롯됐다. 깊은 해구는 지구에서 가장 외진 곳이다. 그러나 그곳을 이해하면 지구의 중요한 특성을 더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질구조와 기후변화만이 아니라 지구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관한 단서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베스코보는 “신소재나 의학 분야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독특한 생화학 작용을 하는 신종 생명체를 바다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가 많다”고 말했다. “그처럼 극단적인 환경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알면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생겨났으며 다른 행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해양지질학자들은 지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함으로써 지진과 쓰나미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더 깊이 알 수 있다. 또 대기과학자들은 해저의 다양한 조건을 측정함으로써 바다가 탄소와 열기를 어떻게 포집하는지 등 기후변화와 관련한 지구의 반응을 파악하고 기후 모델을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베스코보는 해저 탐험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깊은 바다가 무엇을 가르쳐 줄지 모른다. 진정한 탐험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콜롬버스의 탐험 항해로 유럽인이 감자나 들소를 발견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베스코보가 잠수정 카메라로 찍은 마리아내 해구 해저의 모습. / 사진:ATLANTIC PRODUCTIONS FOR DISCOVERY CHANNEL
베스코보는 캐머런 감독의 해저 도달 기록을 자신이 경신한 것과 관련한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캐머런 감독은 내가 이곳에 잠수하기 전에 나와 연락하며 조언해주고 우리 탐사를 적극 지지했다. 그의 탐사 당시 그와 함께 일했던 팀원 다수가 현재 우리 팀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나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고, 내가 잠수 구역의 지도를 얻는 데도 도움을 줬다. 또 얼마 전 우리가 마리아나 해구에서 또 다른 깊은 해연인 시레나 딥을 탐사한 것도 그의 영향이 컸다. 그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그곳을 탐사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권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는 자신의 탐사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기술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적극적인 격려와 도움으로 우리는 심해저 탐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캐머런 감독과 나는 해저의 가장 깊은 곳에 닿을 수 있는 잠수정을 제작한 뒤 그것을 직접 타고 챌린저 딥의 바닥으로 내려간 지구상의 단 두 사람이다. 난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마음과 뜻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 한나 오스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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