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연구회 ‘세상을 바꾸는 토론’|스마트 헬스케어] 규제에 묶여 ‘헬스케어 갈라파고스’ 전락 우려
[창조경제연구회 ‘세상을 바꾸는 토론’|스마트 헬스케어] 규제에 묶여 ‘헬스케어 갈라파고스’ 전락 우려
의료정보 관련 데이터 수집도 못해…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안 개정 서둘러야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과 스마트 기기 확산에 힘입어 의료 서비스에 활용 가능한 개인화 데이터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특히 헬스케어산업에서 개인화 데이터는 인공지능(AI) 기술로 수집·분석해 개인별 질병 진단은 물론 만성질환 관리와 질병 예방에까지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IBM이 뉴욕주 맨해튼에 위치한 암센터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의 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발한 ‘왓슨 포 온콜로지’가 대표적인 데이터 활용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다. 왓슨 포 온콜로지는 각 환자별 의료 기록과 건강·유전정보 데이터를 분석해 암 진단 정확성을 높이고, 환자별 치료 방안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세계 주요 선진국은 이미 정부 차원에서 스마트 헬스케어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각종 규제와 수가 체계 미비 등의 문제로 산업 발전이 더딘 상태다. 실제 네이버와 카카오가 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사업을 국내 주요 대학병원과 손잡고 추진했지만, 규제에 막혀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이터 헬스케어의 첫 단추인 데이터 수집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의료·건강정보를 활용할 때 당사자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의료정보를 가명 처리한다고 해도 분석은 불가능하다.
창조경제연구회(KCEREN)는 이런 상황의 국내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을 주제로 집중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선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실태와 규제 현황,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특히 이번 토론은 고(故)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이 지난 8월 3일 향년 66세로 별세하기 일주일 전 진행한 마지막 토론이자, 그가 남긴 마지막 화두로 꼽힌다. 국내 ‘벤처 업계 대부’로 불린 그는 그동안 창조경제연구회 토론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경쟁력 제고 방안을 꾸준히 제시했다. 고 이민화 이사장이 토론을 진행했고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 송승재 라이프시맨틱스 대표, 김현중 뷰노(VUNO) 이사, 신철호 닥프렌즈 대표가 참여했다.
이민화 이사장(이하 이민화): 스마트 헬스케어가 데이터 혁명으로 불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 산업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이 결합된 다양한 스마트 의료기기의 출현과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의 보급 확대가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병원 의무기록(EMR)과 진료 데이터는 물론 마이 데이터라 불리는 유전체 분석 데이터, 스마트 기기 사용으로 생성된 개인건강기록(PHR) 등이 질병 진단과 치료 서비스 개발에는 물론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 및 질병 예방 서비스 등의 의료 서비스의 혁신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ICT와 의료 데이터 축적에서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갈라파고스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진옥 대표(이하 전진옥): 실제 한국은 ICT와 의료 데이터 축적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EMR을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에도 스마트 헬스케어에선 뒤처져있다. 오히려 갈라파고스로 전락했다. 지난 2000년대 초 한국은 세계 최초로 당뇨폰을 만들고 전 세계 헬스케어 관련 특허의 절반 이상을 점유했지만, 지금은 스마트 헬스케어와 동떨어진 섬이 됐다. 제도의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법은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도 개인정보로 간주해 본인 동의 없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김현준 이사(이하 김현준): 미래 의료 패러다임인 정밀·예측·예방·개인 맞춤형 의료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개인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많은 나라에서 국가 주도로 의료 빅데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100만 명의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와 암·질병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영국은 희귀 질환자와 암 환자 및 가족을 포함한 약 7만 명으로부터 게놈 10만개를 분석해 게놈 서열 데이터와 의료 기록, 질병 원인, 치료법 등을 밝혀내는 ‘게노믹스 잉글랜드(Genomics Englan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도 최근 의료 빅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고자 의료데이터 중심 병원을 지정해 단일 병원 단위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표준화되거나 정형화된 데이터가 없고 무엇보다 활용이 어렵다.
이민화: 미국의 경우 헬스케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만성병 직접 진료비가 27% 절감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데이터를 활용한 헬스케어로 40조엔의 의료비 절감을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도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를 통해 당뇨 치료 효과가 30% 이상 향상되고 의료기관 이용 시간과 보호자 동행 비율이 3분의 1 이하로 축소된다는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데이터 활용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송승재 대표(이하 송승재):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한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이른바 ‘데이터 3법’이 가명정보 개인 식별 가능성에 막혀 처리되지 않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의 핵심인 건강정보와 유전정보는 정보 인권 측면에서 민감한 이슈인 게 사실이다. 우선은 민간보험회사,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등 민간기업이 가명정보라도 내 건강정보·유전정보를 이용한다고 할 때, 개인이 이를 철회할 수 있는 기반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가명정보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것이 데이터 규제를 푸는 첫걸음이 돼야 한다.
전진옥: 개인정보보호원칙 중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통지 및 동의(notice and consent)의 원칙이 관철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환자들의 무료정보 활용 동의는 진료에 활용해도 좋다는 동의이지, 빅데이터에서 활용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의료정보는 개인정보이자 민감 정보에 해당하는 정보가 많다. 해당 개인정보의 처리에 대해 정보 주체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받고, 민감 정보에 대해서는 별도로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정보 주체 동의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신철호 대표(이하 신철호): 블록체인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료 관련 데이터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이고, 높은 수준의 신뢰성과 보안성을 요구한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의료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면 위·변조할 수 없고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실제 블록체인 기술은 의료 혁신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로 최근 헬스케어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IBM의 왓슨 헬스(Watson Health) 사업부는 2017년 1월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의료 연구 및 기타 목적용으로 환자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하기 위해 2년간의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민화: 이용 편의의 입증이 스마트 헬스케어 관련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아이카본엑스(iCarbon-X)가 의료정보·유전정보와 생활정보를 활용한 개인 맞춤 의료를 제공해 설립 6개월 만에 유니콘으로 등극한 것과 같이 이용자의 호응이 있으면 국내도 데이터 활용한 헬스케어산업 확장이 가능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의료 체계는 공급자인 병원 중심에서 소비자인 환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는 10%의 건강 비중을 갖는 병원 의무기록(EMR) 중심이었으나 4차 산업혁명에서는 30% 비중의 개인 유전자 정보와 60% 비중의 개인생활정보를 바탕으로 한 맞춤 의료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신철호: 개인이 필요에 의해 데이터를 직접 내놓을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개인 관점에서 의료 데이터가 제공 동의가 유용한지 입증하면 현행법에서도 충분히 헬스케어산업이 발전한 수 있다. 예를 들어 링크드인, 리멤버 서비스가 편해서 자신의 신상, 지인 정보를 다 올리는 것처럼, 구글캘린더도 편하니까 매일의 프라이버시 담긴 일정 정보를 기록하는 것처럼, 그 관점을 환자에게 제시하면 환자들은 자기 정보를 어디서든 구해와서 알아서 올릴 것이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심박수를 체크하고 운동량을 체크하는 이용자가 이미 많다. 스마트 헬스케어에선 구글의 헬스케어 자회사 베릴리가 대표적이다. 베릴리는 30만 명의 안구를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혈관 질환을 진단하는 기술을 내놨고, 베릴리의 사용자가 늘면서 진단 기술 수준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김현준: 우리나라도 대기업과 중소벤처를 포함해 다각도에서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화를 이루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메디슨은 기존의 영상의학과용 초음파 진단기기(S-Detect)에 딥러닝 기술을 접목해 한번의 클릭으로 유방 병변의 특성과 악성·양성 여부를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약 1만개에 이르는 유방 조직 진단 사례가 수집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최종 진단을 지원한다. 네오팩트는 중추신경계 질환 환자의 재활을 돕는 솔루션을 개발, 치료사 없이 인공지능이 환자 맞춤형으로 강도를 조정해 재활훈련을 보조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데이터 헬스케어에는 의료 수가(보수로 주는 대가)와 같은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송승재: 우리나라 의료 수가는 행위수가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고 사전 예방하는 이른바 의료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가 체계가 없다. 혁신형의료기 기법이 제정됐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판단 기준 자체가 행위수가제이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못하는 실정이다. 다행히 최근 의료용 소프트웨어 수가 체계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다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보건복지부는 수가 체계 개편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내 수가를 받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헬스케어 기업도 상당하다.
이민화: 종합하자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이 국가와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지만, 우리는 법에 막히고 수가 체계라는 갈등에 막혀 인력과 인프라 모든 면에서 뒤처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국회에 상정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통과해야 하는 동시에 수가 체계와 관련해 1·2차 의료기관이 신뢰할 만한 보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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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세계 주요 선진국은 이미 정부 차원에서 스마트 헬스케어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각종 규제와 수가 체계 미비 등의 문제로 산업 발전이 더딘 상태다. 실제 네이버와 카카오가 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사업을 국내 주요 대학병원과 손잡고 추진했지만, 규제에 막혀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이터 헬스케어의 첫 단추인 데이터 수집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의료·건강정보를 활용할 때 당사자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의료정보를 가명 처리한다고 해도 분석은 불가능하다.
창조경제연구회(KCEREN)는 이런 상황의 국내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을 주제로 집중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선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실태와 규제 현황,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특히 이번 토론은 고(故)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이 지난 8월 3일 향년 66세로 별세하기 일주일 전 진행한 마지막 토론이자, 그가 남긴 마지막 화두로 꼽힌다. 국내 ‘벤처 업계 대부’로 불린 그는 그동안 창조경제연구회 토론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경쟁력 제고 방안을 꾸준히 제시했다. 고 이민화 이사장이 토론을 진행했고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 송승재 라이프시맨틱스 대표, 김현중 뷰노(VUNO) 이사, 신철호 닥프렌즈 대표가 참여했다.
“한국 스마트 헬스케어 갈라파고스”
이민화 이사장(이하 이민화): 스마트 헬스케어가 데이터 혁명으로 불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 산업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이 결합된 다양한 스마트 의료기기의 출현과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의 보급 확대가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병원 의무기록(EMR)과 진료 데이터는 물론 마이 데이터라 불리는 유전체 분석 데이터, 스마트 기기 사용으로 생성된 개인건강기록(PHR) 등이 질병 진단과 치료 서비스 개발에는 물론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 및 질병 예방 서비스 등의 의료 서비스의 혁신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ICT와 의료 데이터 축적에서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갈라파고스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진옥 대표(이하 전진옥): 실제 한국은 ICT와 의료 데이터 축적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EMR을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에도 스마트 헬스케어에선 뒤처져있다. 오히려 갈라파고스로 전락했다. 지난 2000년대 초 한국은 세계 최초로 당뇨폰을 만들고 전 세계 헬스케어 관련 특허의 절반 이상을 점유했지만, 지금은 스마트 헬스케어와 동떨어진 섬이 됐다. 제도의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법은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도 개인정보로 간주해 본인 동의 없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김현준 이사(이하 김현준): 미래 의료 패러다임인 정밀·예측·예방·개인 맞춤형 의료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개인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많은 나라에서 국가 주도로 의료 빅데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100만 명의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와 암·질병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영국은 희귀 질환자와 암 환자 및 가족을 포함한 약 7만 명으로부터 게놈 10만개를 분석해 게놈 서열 데이터와 의료 기록, 질병 원인, 치료법 등을 밝혀내는 ‘게노믹스 잉글랜드(Genomics Englan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도 최근 의료 빅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고자 의료데이터 중심 병원을 지정해 단일 병원 단위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표준화되거나 정형화된 데이터가 없고 무엇보다 활용이 어렵다.
이민화: 미국의 경우 헬스케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만성병 직접 진료비가 27% 절감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데이터를 활용한 헬스케어로 40조엔의 의료비 절감을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도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를 통해 당뇨 치료 효과가 30% 이상 향상되고 의료기관 이용 시간과 보호자 동행 비율이 3분의 1 이하로 축소된다는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데이터 활용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송승재 대표(이하 송승재):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한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이른바 ‘데이터 3법’이 가명정보 개인 식별 가능성에 막혀 처리되지 않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의 핵심인 건강정보와 유전정보는 정보 인권 측면에서 민감한 이슈인 게 사실이다. 우선은 민간보험회사,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등 민간기업이 가명정보라도 내 건강정보·유전정보를 이용한다고 할 때, 개인이 이를 철회할 수 있는 기반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가명정보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것이 데이터 규제를 푸는 첫걸음이 돼야 한다.
전진옥: 개인정보보호원칙 중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통지 및 동의(notice and consent)의 원칙이 관철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환자들의 무료정보 활용 동의는 진료에 활용해도 좋다는 동의이지, 빅데이터에서 활용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의료정보는 개인정보이자 민감 정보에 해당하는 정보가 많다. 해당 개인정보의 처리에 대해 정보 주체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받고, 민감 정보에 대해서는 별도로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정보 주체 동의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신철호 대표(이하 신철호): 블록체인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료 관련 데이터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이고, 높은 수준의 신뢰성과 보안성을 요구한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의료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면 위·변조할 수 없고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실제 블록체인 기술은 의료 혁신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로 최근 헬스케어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IBM의 왓슨 헬스(Watson Health) 사업부는 2017년 1월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의료 연구 및 기타 목적용으로 환자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하기 위해 2년간의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수가 체계에 막혀 허울뿐인 헬스케어 기술
이민화: 이용 편의의 입증이 스마트 헬스케어 관련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아이카본엑스(iCarbon-X)가 의료정보·유전정보와 생활정보를 활용한 개인 맞춤 의료를 제공해 설립 6개월 만에 유니콘으로 등극한 것과 같이 이용자의 호응이 있으면 국내도 데이터 활용한 헬스케어산업 확장이 가능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의료 체계는 공급자인 병원 중심에서 소비자인 환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는 10%의 건강 비중을 갖는 병원 의무기록(EMR) 중심이었으나 4차 산업혁명에서는 30% 비중의 개인 유전자 정보와 60% 비중의 개인생활정보를 바탕으로 한 맞춤 의료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신철호: 개인이 필요에 의해 데이터를 직접 내놓을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개인 관점에서 의료 데이터가 제공 동의가 유용한지 입증하면 현행법에서도 충분히 헬스케어산업이 발전한 수 있다. 예를 들어 링크드인, 리멤버 서비스가 편해서 자신의 신상, 지인 정보를 다 올리는 것처럼, 구글캘린더도 편하니까 매일의 프라이버시 담긴 일정 정보를 기록하는 것처럼, 그 관점을 환자에게 제시하면 환자들은 자기 정보를 어디서든 구해와서 알아서 올릴 것이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심박수를 체크하고 운동량을 체크하는 이용자가 이미 많다. 스마트 헬스케어에선 구글의 헬스케어 자회사 베릴리가 대표적이다. 베릴리는 30만 명의 안구를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혈관 질환을 진단하는 기술을 내놨고, 베릴리의 사용자가 늘면서 진단 기술 수준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김현준: 우리나라도 대기업과 중소벤처를 포함해 다각도에서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화를 이루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메디슨은 기존의 영상의학과용 초음파 진단기기(S-Detect)에 딥러닝 기술을 접목해 한번의 클릭으로 유방 병변의 특성과 악성·양성 여부를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약 1만개에 이르는 유방 조직 진단 사례가 수집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최종 진단을 지원한다. 네오팩트는 중추신경계 질환 환자의 재활을 돕는 솔루션을 개발, 치료사 없이 인공지능이 환자 맞춤형으로 강도를 조정해 재활훈련을 보조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데이터 헬스케어에는 의료 수가(보수로 주는 대가)와 같은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송승재: 우리나라 의료 수가는 행위수가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고 사전 예방하는 이른바 의료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가 체계가 없다. 혁신형의료기 기법이 제정됐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판단 기준 자체가 행위수가제이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못하는 실정이다. 다행히 최근 의료용 소프트웨어 수가 체계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다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보건복지부는 수가 체계 개편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내 수가를 받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헬스케어 기업도 상당하다.
이민화: 종합하자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이 국가와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지만, 우리는 법에 막히고 수가 체계라는 갈등에 막혀 인력과 인프라 모든 면에서 뒤처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국회에 상정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통과해야 하는 동시에 수가 체계와 관련해 1·2차 의료기관이 신뢰할 만한 보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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