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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IT 기술 도입이 능사는 아니다

교육에 IT 기술 도입이 능사는 아니다

전자파 피해와 시력 저하, 정신건강 문제만이 아니라 학습 능력도 떨어질 수 있어
읽기·쓰기·셈하기의 기본 기술을 익힌 다음에 IT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 사진:GETTY IMAGES BANK
‘타이틀 원’은 저소득층 학생 지원금으로 배분되는 연방 기금이다. 보통 가난한 학생이 많은 학교에 집중적으로 투입됐다. 따라서 미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취약한 동네의 학교가 그 혜택을 받았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사회보장 강화를 위해 추진하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프로그램의 유산이다. 현재 미국의 모든 학교 중 절반 이상은 교육 과정과 지역사회 참여를 개선하기 위한 특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학생 중 절반 이상은 초등학교에 있고, 유치원과 유아원에선 8명 중 1명이 지원받는다. 그런데도 열악한 환경에 놓인 학생은 폭력 범죄와 환경 오염, 낮은 기대치로 인해 일자리 시장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 그 결과 청소년·청년 중 그들의 실업률이 가장 높다.

미국 공교육에 ‘트로이 목마’가 있다면 그 목마는 가상현실(VR) 등의 첨단기술 장난감을 후하게 기증하는 기술업체에서 찾을 수 있다. 버라이즌과 구글을 비롯한 많은 IT 기업은 교육 자원으로 수억 달러어치를 기부했다. 그들은 흔히 전자파로 일컫는 무선 고주파를 어린아이의 뇌 가까이에 사용해선 안 된다는 사실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벳시 디보스 현 미국 교육장관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사용한 개인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혁신 방안을 강조한다.

사람보다 기계를 선호하는 이런 추세는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어린아이의 경우 교육용으로 활용하는 IT가 학습의 기본 기술을 발달시키는 데 실제로 도움된다는 증거가 없다. 노련한 교사와 부모,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서도 갈수록 더욱 어린 ‘디지털 좀비’를 양산하는 추세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진다. 유치원생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하면 아이들은 하루 몇 시간씩 그 화면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학생이 그런 화면 사용으로 얻는 정보를 얼마나 기억하는지 측정해보면 그 효과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작은 화면에 눈의 초점을 맞추다 보면 시력도 나빠진다. 갈수록 더 어린 나이에 안경을 써야 하는 아이가 많아지는 이유다.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는 두개골이 얇고 골수에 구멍이 더 많아 뇌가 무선 고주파를 더 많이 흡수한다. 장기적으로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특히 유년기처럼 아직 신체적으로 취약한 시기에 휴대전화에 오래 노출될 경우 그런 전자파가 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1년 보고서에서 “아이들의 뇌는 휴대전화 전자파 흡수율이 어른의 2배다. 두개골의 골수는 흡수율이 10배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연구들도 새끼를 가진 동물이 전자파에 많이 노출되면 뇌가 기형이거나 고환 등 생식기관이 손상된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정신과 의사인 빅토리아 던클리는 어린아이가 바로 눈앞의 작은 화면에서 급속히 변하며 번쩍이는 생생한 이미지를 보면 과잉각성상태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럴 경우 어린아이의 뇌는 도파민 등 쾌감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분비되면서 중독성 강한 피드백 고리에 휩쓸린다. 서로 대화하기보다 각각 스마트폰을 꺼내 보기 바쁜 가족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하기가 더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사회적인 유대감이 강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크게 약화된다. 더구나 디지털 기기가 범람하면서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 우울증, 두통, 안정 피로, 청각장애로 치료받는 중학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 또 디지털 학습 시스템에 의존하는 학교의 학력 검사 점수는 다른 학교보다 상당히 낮게 나타난다.

많은 소아과 의사와 신경발달 전문가가 촉구하듯이 지금 우리는 어린이 교육을 개조할 필요가 있다. 소프트웨어로 얻을 수 있는 학습 효과도 크지만 읽기·쓰기·셈하기의 기본 기술을 책으로 직접 보고 종이에 연필과 크레용을 사용하면서 배우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신경정신 전문가들은 사람의 눈을 맞추는 능력이 글을 보고 이해하는 능력과 연관됐으며 그런 능력은 생후 첫 8년 동안 가장 잘 습득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손글씨가 점차 사라지면서 우리의 읽기와 쓰기, 기억의 능력이 갈수록 떨어진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시대에 맞춰 디지털 네티즌이 돼야 한다. 그러나 IT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은 읽기·쓰기·셈하기의 기본 기술을 익힌 다음에 익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첨단기술로 손상되는 것은 어린이의 뇌만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 중독에서 비롯되는 병적인 두려움인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소외 공포) 증후군이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다. 포모 증후군은 세상의 흐름에서 자신만 소외됐거나 고립됐다고 느끼는 공포감으로 최신 추세나 좋은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심리를 가리킨다.

심지어 요즘 사람들은 속옷을 입지 않고 외출할 수는 있어도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는 외출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하버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수업 시간에 랩톱으로 메모하는 학생은 공책에 받아 적은 구식 방법을 따르는 급우보다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랩톱 사용을 금하는 교수도 있다. 랩톱을 사용하면 학생들이 이메일이나 SNS 등 다른 것에 정신을 팔거나, 포르노·게임의 유혹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교를 대상으로 스마트폰 VR 카드보드 홀더를 무료로 나눠주고 5G 네트워크를 제공하지만 거기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대가가 따른다. 무엇보다 5G 네트워크는 아직 개발 중인 기술이다. 동영상이나 영화, 게임을 더 빨리 내려받을 수 있는 초고주파수 대역에 의존하는 네트워크지만 영국 BBC가 5G 방송을 시험했을 때 대역폭이 부족해 약속한 속도가 나오지 않고 생방송이 도중에 끊어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지금까지 대다수 기술 전문가는 5G 네트워크가 그간 약속하던 속도와 접근성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가상’ 교육을 주창하는 목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그 이면에는 선전하는 것보다 더 험난한 현실이 있다.

- 데브라 데이비스 박사



※ [필자는 역학자이자 저술가이자 환경건강재단의 설립자이자 대표다. 2007년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 일원으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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