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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생수 전쟁] 물로 보다가는 물 먹는다

[뜨거운 생수 전쟁] 물로 보다가는 물 먹는다

지난해 시장 규모 8258억원으로 성장…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 원인으로 지목
오리온은 11월 26일 생수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제주 용암수 기반의 ‘오리온 제주용암수’로 프리미엄 생수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에비앙(500㎖ 1600원)보다는 싸고 삼다수(500㎖ 950원)와는 엇비슷한 1000원(530㎖)에 내놨다. 오리온은 현재 제주도와 국내 본격 판매 여부를 두고 협의 중이다.
 오리온, 제주용암수로 시장에 출사표
오리온까지 ‘물 전쟁’에 가세한 건 국내 생수시장이 해마다 커지고 있어서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마트·편의점 등에서의 생수 판매량은 184만kL로 RTD(바로 마실 수 있게 포장된) 음료 중 가장 많이 팔렸다. 탄산음료(50만kL)의 3배 넘는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2007년 3900억원이었던 생수시장 규모는 2018년 8258억원으로 성장했다. 다른 음료 대비 저렴한 가격, 1인 가구 증가 등이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전자상거래 업체의 정기배송 등도 한몫했다. 올해 모바일 배송 애플리케이션(앱)을 선보인 제주 삼다수의 주문 건수는 4월 1만524건에서 12월(~24일) 2만9915건으로 두 배 넘는 수준으로 늘었다. 생수 수요 증가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생수는 소비자가격에 비해 제조원가가 낮아 수익을 내기 쉽다. 업계에 따르면 2L 생수 1통의 제조원가는 수질개선부담금, 뚜껑, 병 등을 포함해 100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 공정도 비교적 단순하다. 깨끗한 수원만 확보하면 절반의 성공을 확보한 셈이다.

사실 생수병을 들고 마시기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다. 생수가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코리아약수건강회에서 생수 배달업을 하면서부터였다. 1980년대 지하수를 식수로 판매하는 업체가 늘었지만 정부는 수돗물의 인식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생수산업을 규제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당시 외국인들을 위해 일시적으로 판매를 허용했지만 이후 판매를 제한했다. 이에 생수·제조판매업자들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대법원이 1994년 ‘깨끗한 물을 마실권리를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정부는 1995년 ‘먹는물관리법’을 제정, 생수 판매를 합법화했다. 이후 생수시장 초기에는 사무실이나 식당 등에서 대형 용기를 주문해 마시는 수요가 많았지만 2000년대 후반 깨끗하고 좋은 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생수 페트병 판매가 처음으로 대형 용기를 앞질렀고, 생수시장이 급격히 커졌다.

특히 이제는 물로 보다간 물 먹을 정도로 시장이 커진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 70개가 넘는 제조사가 300여 개의 제품을 판매 중이다. 현재 시장점유율 1위는 제주삼다수다. 1998년 나온 삼다수의 지난해 점유율은 39.8%였다.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12.3%), 농심 백산수(8.5%)가 뒤를 이었다.

대형마트들은 이들을 겨냥한 초저가 공세를 펴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 9월 자체브랜드(PB) 상품인 ‘이마트 국민워터(국민워터)’ 6개들이(개당 2ℓ) 한묶음을 1880원에 내놨다. 같은 용량의 제주삼다수(5880원)와 비교하면 4000원 싸다. 롯데마트도 ‘온리프라이스 미네랄워터’를 1650원에 내놨다. 이와 달리 프리미엄 생수도 늘고 있다. 375㎖ 한병에 4000원이 넘는 노르웨이 빙하수 보스(Voss)가 대표적이다.

이렇다 보니 점유율 상위 업체들도 고민이 많다. 예컨대 2012년 삼다수의 점유율은 50%에 이르렀지만 지난해 10% 넘게 줄었다. 생수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지만 전체 파이는 제한적인데 초저가 가격을 무기로 경쟁자들이 속속 나오다 보니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다수·백산수 등은 시장 수성에 안간힘이다. 삼다수는 지난 10월 출시 21년 만에 CU를 비롯한 일부 편의점에서 생수(500㎖) 1+1행사를 진행하며 초저가 공세에 맞불을 놨다. 삼다수·백산수 등은 배송 수요를 늘리기 위해 모바일 앱도 만들었다. 아이시스는 소용량 트렌드에 맞춰 지리산산청수 300㎖ 제품을 선보였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생수 소비량이 탄산음료 소비량을 일찌감치 넘어선 미국에선 생수가 지하수, 미네랄워터, 빙하수, 정화수, 알칼리워터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면서 “경쟁이 치열한 국내에서도 제품과 가격의 분화가 급격히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수 제품·가격 분화 급격히 이뤄질 듯
일부 업체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생수 수출액은 702만 달러로 2014년보다 27.7% 늘었다. 특히 중국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자국 수질을 신뢰하지 못하는 중국인이 늘면서 생수를 마시는 비중이 커지고 있어서다. 중국 중상산업연구원은 중국의 생수 소매시장이 2020년에는 17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농심은 2015년 2000억원을 투자해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백산수를 현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농심은 2025년까지 중국에서 백산수 매출 5000억원을 올릴 목표다. 오리온은 최근 중국 최대 커피 체인인 루이싱 커피와 ‘제주용암수’ 수출 계약을 했다. 내년 상반기 중국에 진출할 계획이다.

생수 판매에 걸림돌도 있다. 생수 용기가 플라스틱 폐기물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업체들도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롯데칠성음료·풀무원 등은 생수병에 플라스틱을 덜 사용해 얇게 만들거나, 친환경적으로 물에 녹는 라벨, 분리배출이 용이하도록 손쉽게 제거되는 라벨을 적용한다. 하워드 텔포트 유로모니터 글로벌 총괄은 “플라스틱 폐기물은 생수시장의 성장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새로운 재활용 계획이나 기술 개발 등 제조사들의 과감한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김성희·배동주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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