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대한 오해와 진실] 병을 고치기도, 만들기도 하는 ‘면역’
[면역에 대한 오해와 진실] 병을 고치기도, 만들기도 하는 ‘면역’
면역력 증진에 과도한 관심 버려야… 백신만 제 때 맞아도 건강 유지 ‘면역’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대개 백신을 떠올리거나 메르스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 사태를 기억에서 꺼낸다. ‘요즘 면역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느끼며 어떻게 면역력을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면역만큼 자주 언급되면서 또 그만큼 오해가 많은 대상도 없다.
우리 몸에 세균(박테리아)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 병원체가 침입하면 우리 몸은 즉시 침입에 대항하는 면역반응을 작동시킨다. 우리 몸에서 면역반응을 담당하는 세포로는 피에 존재하는 백혈구가 대표적이다. 이 중 대식세포는 그 이름에 걸맞게 외부 침입자를 먹어 치워서(포식작용) 문제를 해결한다. 백혈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호중구는 세균을 만나면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끈적끈적한 DNA를 방출해 세균을 죽이고 제거한다.
좀 더 고급 면역반응을 담당하는 면역세포는 림프구다. 림프구 중에서도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죽여서 제거하고, B세포는 항체를 생산해 세균을 죽이거나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등 여러 면역 기능을 담당한다. 인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면역이라는 현상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할 때 한번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은 다시 그 전염병이 유행해도 더이상은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체계적으로 잘 이용해 인류 첫 번째 백신, 바로 천연두 예방 백신을 만든 사람이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다. 그 후 프랑스의 파스퇴르나 독일의 코흐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면역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백신이 개발되었고, 이제 인류는 질병을 일으키는 많은 병원체에 대한 백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과학과 의학의 업적 중에서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킨 데에 기여한 공로를 따지자면 백신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백신의 기본 원리는 바로 T세포나 B세포와 같은 림프구를 미리 훈련시키는 것이다. 즉 진짜 감염 대신, 죽인 세균이나 약화시킨 바이러스를 접종해 T세포가 병원체를 미리 경험하여 기억하게 하고 병원체에 대응하는 항체를 미리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T세포나 항체를 만드는 B세포는 수많은 종류의 병원체를 각각 인식해 그에 맞게 대응하고 이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면역학에서는 ‘항원 특이성’이라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이들의 면역반응을 고급 면역반응이라고 한다. 백신은 한 마디로, 어떤 병원체에 대한 ‘항원 특이’ 면역 반응을 유도하고 림프구가 이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신은 인류에게 주어진 매우 큰 선물인데 최근에는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인 암도 면역반응을 이용하여 치료할 수 있다. 면역반응은 내 몸과는 다른 물질(대표적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해서 일어난다. 암세포의 경우에는 원래는 내 세포 유래이지만 암세포가 되는 과정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기 때문에 원래 내 세포와는 다른 단백질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암세포에 대해서도 면역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대부분의 암 환자는 암세포에 대한 면역반응이 매우 약하다. 암세포에 대한 면역반응이 강했다면 아마 암세포가 종양 조직으로 자라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암세포에 대한 면역 반응을 강하게 할 수 있다면 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미 30여 년 전부터 면역학자들은 항암 면역치료법 개발에 몰두해 왔다. 하지만 면역세포의 기능을 강화 시켜줄 수 있는 물질을 치료제로 아무리 사용해도 종양조직을 줄여 주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앨리슨 박사와 일본의 혼조 박사는 암세포에 대응하는 T세포의 기능을 억제하는 단백질을 발견했고, T세포 억제 단백질의 기능을 항체 약물로 차단하면 T세포의 기능이 회복되어 암세포를 죽일 것이라는 가설 하에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면역관문 억제제라는 면역항암제를 개발했고, 두 사람은 2018년도 노벨 의학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면역항암제에도 아직 한계가 있다. 투여 받은 모든 암 환자에서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의 환자에서만 항암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암에서는 아직 면역항암제가 전혀 효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가지 신약이 개발되고 있고 수많은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면역 항암제의 한 가지 특성은 일단 효능을 보인 암 환자에서는 그 효능이 꽤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는 바이러스 질환에 걸렸다가 나은 후 그 바이러스에 대해 평생 지속되는 면역 기억을 가지는 것과 유사한 현상 때문으로 여겨진다. 인류의 암 정복은 항암 면역반응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는가에 달려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감염이나 암에 저항하는 면역을 ‘좋은 면역’이라고 한다면, 우리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면역’도 있다. 면역반응은 원래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남’에 대해서만 일어나야 하는데, 내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에 대해서 면역반응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고 이것이 질병이 된다. 이렇게 ‘나’에 대한 면역반응으로 인해 유발되는 질병을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하며 자가면역질환의 대표적인 예로는 류마티스 관절염, 전신 홍반 루푸스, 건선 등이 있다.
앞에서 설명한 T세포나 B세포와 같은 림프구는 원래 내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에 대해서는 반응을 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현상을 ‘면역 내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 몸에는 면역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조절 T세포’라는 것이 존재해 면역 내성을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이 면역 내성 상태가 깨지면 자가면역질환이 생기게 된다. 면역 내성 상태가 깨지는 이유는 면역학자들도 아직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점은 면역반응이 무조건 강한 것보다는 면역반응의 상대를 잘 구분하여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최근 많이 개발되어 임상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면역반응이 일어나는 동안 면역세포는 싸이토카인이라는 물질을 분비해 면역세포 사이에 소통하면서 면역반응을 강화시킨다. 그런데 면역학자의 연구를 통해 자가면역질환 상황에서는 TNF나 IL-17A라는 싸이토카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TNF나 IL-17A라는 싸이토카인의 작용을 차단하는 약을 개발하게 됐다. 이러한 싸이토카인 차단제는 자가면역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을 교정하지는 못하지만, 환자의 증상을 크게 호전시키며 임상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면역반응이 엉뚱한 상대에 대해 일어나서 질병을 유발하는 또 다른 예로는 천식, 아토피, 알레르기성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이 있다. 집먼지진드기, 꽃가루, 동물털, 특정 음식물 등에 대해 면역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요약하자면 ‘남’은 ‘남’이지만 주위 환경에서 흔하게 접하면서 내 몸에 그다지 해롭지 않은 물질에 대해 과도한 면역반응이 일어나는 상태이다. 알레르기 환자에게는 각자에게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을 알아낸 뒤 이를 회피하라고 권고하지만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다행히 알레르기 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IL-4와 IL-13이라는 싸이토카인의 작용을 차단하는 약이 최근에 개발되어 심한 알레르기 환자의 치료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면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필자가 “면역학을 연구하는 면역학자”라고 소개하면 대개는 “어떻게 면역력을 올릴 수 있는지” 물어온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면역반응은 무조건 강하기만 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반응의 상대에 따라 강할 때 강하고 약할 때 약하게 적절히 조절되어야만 질병이 생기지 않고 우리 몸이 건강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면역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져서 각종 감염에 취약한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장기 이식을 받고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약한 면역력으로 인해 감염에 취약한 편이다. 요즘에는 좋은 항바이러스제가 나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걸린다고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진행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AIDS 환자도 면역력이 극단적으로 약화된 경우이다. 또 배가 불룩해질 정도의 영양실조의 상태에서는 항체를 만들 단백질조차 모자라기 때문에 면역력 저하의 상태가 된다.
위에서 언급한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는 면역력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 주변의 TV 프로그램이나 광고를 보면 “면역력을 증진시켜 준다”는 갖가지 식품이나 건강보조제가 난무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어떤 식품이나 건강보조제도 “면역력을 증진시킨다”는 효과가 제대로 증명된 적은 없다. 심지어는 면역력을 측정하는 방법조차도 과학적으로 확립된 바가 없다.
필자는 무리하게 연구를 해서 잠을 못 자고 피곤하게 되면 입술 주위에 물집이 잘 생기는 편이다. 언젠가 내 몸에 들어왔던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없어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면역이 다소 약해지면 바로 재활성화되어 튀어 나오는 것이다. 요즈음 주위에서 경험하게 되는 대상포진의 경우도 유사한 사례이다. 어렸을 때 걸렸던 수두 바이러스가 내 몸에 평생 잠복해 있다가 면역이 약해졌을 때 대상포진의 형태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비교적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면역력 약화의 사례이다. 그럼 면역학을 연구하는 면역학자인 필자는 입술 주위에 헤르페스 물집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까? 잘 쉬고 푹 자기만 해도 이런 종류의 면역력 약화 상태는 금방 회복된다.
요즘은 ‘면역력 증진’에 대한 과도한 관심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면역력’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조금은 버려도 된다. 면역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에게 백신을 잘 맞히고, 상식적인 수준의 건강 유지법만 지켜도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하자. 어떤 음식이나 알약을 먹는다고 향상되는 그런 면역은 없다.
- 신의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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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 세균(박테리아)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 병원체가 침입하면 우리 몸은 즉시 침입에 대항하는 면역반응을 작동시킨다. 우리 몸에서 면역반응을 담당하는 세포로는 피에 존재하는 백혈구가 대표적이다. 이 중 대식세포는 그 이름에 걸맞게 외부 침입자를 먹어 치워서(포식작용) 문제를 해결한다. 백혈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호중구는 세균을 만나면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끈적끈적한 DNA를 방출해 세균을 죽이고 제거한다.
좀 더 고급 면역반응을 담당하는 면역세포는 림프구다. 림프구 중에서도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죽여서 제거하고, B세포는 항체를 생산해 세균을 죽이거나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등 여러 면역 기능을 담당한다.
항암 면역반응 활성화시키면 암 정복도 가능
백신의 기본 원리는 바로 T세포나 B세포와 같은 림프구를 미리 훈련시키는 것이다. 즉 진짜 감염 대신, 죽인 세균이나 약화시킨 바이러스를 접종해 T세포가 병원체를 미리 경험하여 기억하게 하고 병원체에 대응하는 항체를 미리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T세포나 항체를 만드는 B세포는 수많은 종류의 병원체를 각각 인식해 그에 맞게 대응하고 이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면역학에서는 ‘항원 특이성’이라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이들의 면역반응을 고급 면역반응이라고 한다. 백신은 한 마디로, 어떤 병원체에 대한 ‘항원 특이’ 면역 반응을 유도하고 림프구가 이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신은 인류에게 주어진 매우 큰 선물인데 최근에는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인 암도 면역반응을 이용하여 치료할 수 있다. 면역반응은 내 몸과는 다른 물질(대표적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해서 일어난다. 암세포의 경우에는 원래는 내 세포 유래이지만 암세포가 되는 과정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기 때문에 원래 내 세포와는 다른 단백질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암세포에 대해서도 면역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대부분의 암 환자는 암세포에 대한 면역반응이 매우 약하다. 암세포에 대한 면역반응이 강했다면 아마 암세포가 종양 조직으로 자라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암세포에 대한 면역 반응을 강하게 할 수 있다면 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미 30여 년 전부터 면역학자들은 항암 면역치료법 개발에 몰두해 왔다. 하지만 면역세포의 기능을 강화 시켜줄 수 있는 물질을 치료제로 아무리 사용해도 종양조직을 줄여 주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앨리슨 박사와 일본의 혼조 박사는 암세포에 대응하는 T세포의 기능을 억제하는 단백질을 발견했고, T세포 억제 단백질의 기능을 항체 약물로 차단하면 T세포의 기능이 회복되어 암세포를 죽일 것이라는 가설 하에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면역관문 억제제라는 면역항암제를 개발했고, 두 사람은 2018년도 노벨 의학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면역항암제에도 아직 한계가 있다. 투여 받은 모든 암 환자에서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의 환자에서만 항암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암에서는 아직 면역항암제가 전혀 효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가지 신약이 개발되고 있고 수많은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면역 항암제의 한 가지 특성은 일단 효능을 보인 암 환자에서는 그 효능이 꽤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는 바이러스 질환에 걸렸다가 나은 후 그 바이러스에 대해 평생 지속되는 면역 기억을 가지는 것과 유사한 현상 때문으로 여겨진다. 인류의 암 정복은 항암 면역반응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는가에 달려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오작동 면역반응 ‘자가면역질환’과 ‘알레르기’
앞에서 설명한 T세포나 B세포와 같은 림프구는 원래 내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에 대해서는 반응을 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현상을 ‘면역 내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 몸에는 면역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조절 T세포’라는 것이 존재해 면역 내성을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이 면역 내성 상태가 깨지면 자가면역질환이 생기게 된다. 면역 내성 상태가 깨지는 이유는 면역학자들도 아직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점은 면역반응이 무조건 강한 것보다는 면역반응의 상대를 잘 구분하여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최근 많이 개발되어 임상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면역반응이 일어나는 동안 면역세포는 싸이토카인이라는 물질을 분비해 면역세포 사이에 소통하면서 면역반응을 강화시킨다. 그런데 면역학자의 연구를 통해 자가면역질환 상황에서는 TNF나 IL-17A라는 싸이토카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TNF나 IL-17A라는 싸이토카인의 작용을 차단하는 약을 개발하게 됐다. 이러한 싸이토카인 차단제는 자가면역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을 교정하지는 못하지만, 환자의 증상을 크게 호전시키며 임상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면역반응이 엉뚱한 상대에 대해 일어나서 질병을 유발하는 또 다른 예로는 천식, 아토피, 알레르기성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이 있다. 집먼지진드기, 꽃가루, 동물털, 특정 음식물 등에 대해 면역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요약하자면 ‘남’은 ‘남’이지만 주위 환경에서 흔하게 접하면서 내 몸에 그다지 해롭지 않은 물질에 대해 과도한 면역반응이 일어나는 상태이다. 알레르기 환자에게는 각자에게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을 알아낸 뒤 이를 회피하라고 권고하지만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다행히 알레르기 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IL-4와 IL-13이라는 싸이토카인의 작용을 차단하는 약이 최근에 개발되어 심한 알레르기 환자의 치료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최고의 면역력 증진제는 수면과 휴식
어떤 경우에는 면역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져서 각종 감염에 취약한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장기 이식을 받고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약한 면역력으로 인해 감염에 취약한 편이다. 요즘에는 좋은 항바이러스제가 나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걸린다고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진행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AIDS 환자도 면역력이 극단적으로 약화된 경우이다. 또 배가 불룩해질 정도의 영양실조의 상태에서는 항체를 만들 단백질조차 모자라기 때문에 면역력 저하의 상태가 된다.
위에서 언급한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는 면역력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 주변의 TV 프로그램이나 광고를 보면 “면역력을 증진시켜 준다”는 갖가지 식품이나 건강보조제가 난무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어떤 식품이나 건강보조제도 “면역력을 증진시킨다”는 효과가 제대로 증명된 적은 없다. 심지어는 면역력을 측정하는 방법조차도 과학적으로 확립된 바가 없다.
필자는 무리하게 연구를 해서 잠을 못 자고 피곤하게 되면 입술 주위에 물집이 잘 생기는 편이다. 언젠가 내 몸에 들어왔던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없어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면역이 다소 약해지면 바로 재활성화되어 튀어 나오는 것이다. 요즈음 주위에서 경험하게 되는 대상포진의 경우도 유사한 사례이다. 어렸을 때 걸렸던 수두 바이러스가 내 몸에 평생 잠복해 있다가 면역이 약해졌을 때 대상포진의 형태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비교적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면역력 약화의 사례이다. 그럼 면역학을 연구하는 면역학자인 필자는 입술 주위에 헤르페스 물집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까? 잘 쉬고 푹 자기만 해도 이런 종류의 면역력 약화 상태는 금방 회복된다.
요즘은 ‘면역력 증진’에 대한 과도한 관심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면역력’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조금은 버려도 된다. 면역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에게 백신을 잘 맞히고, 상식적인 수준의 건강 유지법만 지켜도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하자. 어떤 음식이나 알약을 먹는다고 향상되는 그런 면역은 없다.
- 신의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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