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여전히 강력하고 두터운 ‘유리천장’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여전히 강력하고 두터운 ‘유리천장’
소설·영화 '82년생 김지영'화제… 한국 유리천장지수,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1982년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41만 명. 이들 중 가장 많은 이름이 ‘김지영’이라고 한다. 2020년 새해가 밝았으니 82년생들은 이제 서른아홉. 30대의 벼랑에 섰다.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이들의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이 사회적으로 불러온 파장은 컸다. 지난해 도서관 대출 1위가 이 소설이었고, 37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영화로 제작된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는 얘기다.
서른네살 82년생 김지영은 3년전 결혼했고 지난해 딸 지원이를 낳았다.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산다. 남편은 IT계열의 중견기업에 다닌다. 아버지가 공무원이던 김지영은 3남매 중 둘째딸. 외환위기로 아버지가 명예퇴직하던 즈음 대학에 입학했다. 이른바 ‘SKY’는 아니었다. 수백 번 구직에 실패한 끝에 작은 홍보대행사에 어렵게 들어갔다. 대학에서 남자친구를 사귀었지만 헤어졌다. 직장인이 된 자신과 군생활을 해야하는 남자친구 간 갈등이 컸다. 동아리 선배 결혼식 피로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2년간 열애한 끝에 결혼했다. 어렵게 아이를 임신했지만 출산을 앞두고 직장을 그만뒀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었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부모는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돌이 지난 딸은 아파트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 가장 평범한 30대 한국 여성인 김지영이 이상해진 것은 2015년 가을. 남편과 맥주를 마실 땐 죽은 동아리 여자선배 차승연이 됐다가, 추석 시댁식구들 앞에서는 친정엄마로 빙의한다. 남편은 마침내 40대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 정신과 의사가 김지영을 상담한 후 그녀의 서른넷 인생을 요약한 리포트가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골격이다. 김지영은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어린시절(1982년~1994년), 대놓고 남녀차별을 당했던 중·고등학교(1995년~2000년), 높은 유리천장을 절감했던 캠퍼스와 취업시장(2001년~2011년), 양성평등이 아직 멀었던 결혼 후 가정과 직장생활(2012년~2015년)을 겪었다.
작가 조남주는 ‘작가의 말’에서 “자꾸만 김지영씨가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란다.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2001년 여성부가 출범하고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됐지만 여성들은 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학교·직장·가정 할 것 없이 결정적인 순간이면 ‘여자’라는 꼬리표가 슬그머니 튀어나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일본, 대만에서도 원작소설과 영화의 반응이 뜨거웠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성차별을 받고 컸고, 직장에서는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결혼 후에는 독박육아를 하며 자신을 포기해야하는 여성의 삶이 동아시아에서는 대동소이 했다는 얘기일까.
성차별은 경제학에서도 주요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리천장지수를 만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남녀 임금격차, 여성 기업 임원 및 여성 국회의원 비율, 여성의 고등교육과 경제활동 참여, 유급 육아휴가 등을 종합적으로 점수화해 발표한다. UN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인 매년 3월 8일 발표하는데, 소설[82년생 김지영]은 이 지수를 인용해 ‘한국은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라고 밝혔다.
2019년 유리천장지수를 보면 한국은 2013년 첫 발표 이래 7년째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바로 위가 일본이다. 2019년 한국의 유리천장지수는 100점 만점에 20점 남짓으로 OCED 평균인 60점에 한참 못미친다. 1위인 스웨덴(80점)과의 비교는 언감생심. 개별지표별로 보면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34.6%에 불과하고 여성 관리자 비율은 12.5%에 그쳤다. 두 지표 모두 꼴찌다.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까지 고위 공직자의 10%, 공기업 임원의 20%, 정부위원회 위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고 공약했지만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조직 내에서 일정 직위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통상은 성별에 따른 차별을 의미하지만 학력·인종·지연에 따른 차별도 포함된다. 예컨대 미국의 여성 공무원에 대한 차별은 ‘대리석천장(marble ceiling)’, 할리우드 내 여성 감독과 배우에 대한 차별은 ‘셀룰로이드천장(celluloid ceiling)’이라 부른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겪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대나무천장(bamboo ceiling)’이다.
유리천장이 처음 언급된 것은 1979년으로 알려져 있다. 휴렛팩커드(HP)의 캐서린 로렌스는 ‘언론자유를 위한 여성기구’ 연례 회의에서 “미국 기업의 여성 승진정책에는 제한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리천장’이라는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1986년 캐롤 하이모비츠와 티모시 쉘하르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하면서 기고문 제목으로 ‘유리천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때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 유리천장의 뿌리는 전통적인 백인남성 우월주의에서 찾는 시각이 많다.
한국도 유리천장은 더욱 심각하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해 설문조사한 것을 보면 답변자의 72%가 ‘회사에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답변했다. 유리천장의 유형으로 여성은 61%(복수응답)가 ‘성별’을 꼽았다. 반면 남성은 ‘학벌’을 꼽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주로 어떤 때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느끼나 하는 물음에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특정한 사람들끼리 친목도모가 이뤄질 때’ ‘납득할 수 없는 동료·직원의 빠른 승진을 볼 때’ ‘특정 직원을 편애하는 게 느껴질 때’ 순으로 답이 많았다. 유리천장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때 경제 주체의 의욕은 떨어지고, 생산성은 하락한다. 자신보다 일을 못한다고 생각한 남자 동기가 회사의 중책을 맡는 것을 본 김지영은 ‘예전과 다름없이 시키는 대로 주어진 일을 해냈지만, 열정이라든가 신뢰같은 감정은 분명 흐려졌다’라고 고백한다.
미국 투자은행(IB)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는 지난해 ‘쉬-코노미(She-conomy)’ 보고서를 통해 성평등이 이뤄진다면 글로벌 경제는 2025년까지 28조 달러(약 3경3000조원)의 부가가치가 새로 창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을 합한 규모다. 하지만 차별이 해소되는 데 202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청난 잠재력에도 변화의 속도는 매우 느리다는 뜻이다. 갈수록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한국 경제가 새겨 들어야 할 점이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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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살 82년생 김지영은 3년전 결혼했고 지난해 딸 지원이를 낳았다.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산다. 남편은 IT계열의 중견기업에 다닌다. 아버지가 공무원이던 김지영은 3남매 중 둘째딸. 외환위기로 아버지가 명예퇴직하던 즈음 대학에 입학했다. 이른바 ‘SKY’는 아니었다. 수백 번 구직에 실패한 끝에 작은 홍보대행사에 어렵게 들어갔다. 대학에서 남자친구를 사귀었지만 헤어졌다. 직장인이 된 자신과 군생활을 해야하는 남자친구 간 갈등이 컸다. 동아리 선배 결혼식 피로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2년간 열애한 끝에 결혼했다. 어렵게 아이를 임신했지만 출산을 앞두고 직장을 그만뒀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었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부모는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돌이 지난 딸은 아파트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
학교·직장·가정할 것 없이 ‘여자가…’
작가 조남주는 ‘작가의 말’에서 “자꾸만 김지영씨가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란다.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2001년 여성부가 출범하고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됐지만 여성들은 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학교·직장·가정 할 것 없이 결정적인 순간이면 ‘여자’라는 꼬리표가 슬그머니 튀어나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일본, 대만에서도 원작소설과 영화의 반응이 뜨거웠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성차별을 받고 컸고, 직장에서는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결혼 후에는 독박육아를 하며 자신을 포기해야하는 여성의 삶이 동아시아에서는 대동소이 했다는 얘기일까.
성차별은 경제학에서도 주요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리천장지수를 만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남녀 임금격차, 여성 기업 임원 및 여성 국회의원 비율, 여성의 고등교육과 경제활동 참여, 유급 육아휴가 등을 종합적으로 점수화해 발표한다. UN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인 매년 3월 8일 발표하는데, 소설[82년생 김지영]은 이 지수를 인용해 ‘한국은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라고 밝혔다.
2019년 유리천장지수를 보면 한국은 2013년 첫 발표 이래 7년째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바로 위가 일본이다. 2019년 한국의 유리천장지수는 100점 만점에 20점 남짓으로 OCED 평균인 60점에 한참 못미친다. 1위인 스웨덴(80점)과의 비교는 언감생심. 개별지표별로 보면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34.6%에 불과하고 여성 관리자 비율은 12.5%에 그쳤다. 두 지표 모두 꼴찌다.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까지 고위 공직자의 10%, 공기업 임원의 20%, 정부위원회 위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고 공약했지만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란 조직 내에서 일정 직위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통상은 성별에 따른 차별을 의미하지만 학력·인종·지연에 따른 차별도 포함된다. 예컨대 미국의 여성 공무원에 대한 차별은 ‘대리석천장(marble ceiling)’, 할리우드 내 여성 감독과 배우에 대한 차별은 ‘셀룰로이드천장(celluloid ceiling)’이라 부른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겪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대나무천장(bamboo ceiling)’이다.
유리천장이 처음 언급된 것은 1979년으로 알려져 있다. 휴렛팩커드(HP)의 캐서린 로렌스는 ‘언론자유를 위한 여성기구’ 연례 회의에서 “미국 기업의 여성 승진정책에는 제한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리천장’이라는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1986년 캐롤 하이모비츠와 티모시 쉘하르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하면서 기고문 제목으로 ‘유리천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때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 유리천장의 뿌리는 전통적인 백인남성 우월주의에서 찾는 시각이 많다.
한국도 유리천장은 더욱 심각하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해 설문조사한 것을 보면 답변자의 72%가 ‘회사에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답변했다. 유리천장의 유형으로 여성은 61%(복수응답)가 ‘성별’을 꼽았다. 반면 남성은 ‘학벌’을 꼽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주로 어떤 때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느끼나 하는 물음에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특정한 사람들끼리 친목도모가 이뤄질 때’ ‘납득할 수 없는 동료·직원의 빠른 승진을 볼 때’ ‘특정 직원을 편애하는 게 느껴질 때’ 순으로 답이 많았다.
성평등 이뤄지면 부가가치 28조 달러 새로 창출
미국 투자은행(IB)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는 지난해 ‘쉬-코노미(She-conomy)’ 보고서를 통해 성평등이 이뤄진다면 글로벌 경제는 2025년까지 28조 달러(약 3경3000조원)의 부가가치가 새로 창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을 합한 규모다. 하지만 차별이 해소되는 데 202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청난 잠재력에도 변화의 속도는 매우 느리다는 뜻이다. 갈수록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한국 경제가 새겨 들어야 할 점이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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