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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구조 변동에 따른 소비 트렌드 변화] 곡물 소비 줄고 가사·가정 서비스 지출 늘어

[인구 구조 변동에 따른 소비 트렌드 변화] 곡물 소비 줄고 가사·가정 서비스 지출 늘어

4인 가족 줄고 1인 가구 대세… 육류·과일·과자·정보통신기기 지출 급증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유통업계에선 이들을 겨냥한 간편식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 인구 구조가 바뀌면서 가계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최근 한국의 인구 구조는 젊은 세대의 만혼과 비혼, 고령인구 증가, 출산율 급감, 가구 규모 축소, 1인 가구 급증, 가구주 고령화 등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자 정부의 인구 정책은 반세기도 되지 않아 뒤집혔다. 1980년대만해도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는 표어·포스터가 나부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아기 웃음소리가 대한민국의 희망, 자녀에겐 큰 선물(동생)’로 돌아섰다.

우리나라 인구 구조는 젊은층이 두터운 피라미드 형태에서 노인 세대가 많은 종 모양으로 바뀌고 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1965년 23세였던 평균 연령은 2019년 42.6세를 기록했고, 2050년엔 54.4세가 될 전망이다. 총인구는 60년 전보다 2배나 증가했지만 인구성장률은 크게 둔화됐다. 출생·사망자를 집계하는 인구자연증가가 1990년 40만여 명에서 2018년 2만여 명으로 급감해서다.

주요 원인은 출산 감소와 고령 인구 증가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평균 출생아 수 예상 지표)은 2018년에 1명이 안 되는 0.98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저 수준이다. 기대수명이 늘면서 노인 인구도 역대 최대다. 65세를 넘은 노인 인구가 지난해 말 800만명을 넘었다. UN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년 뒤엔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20~30대, 취사·세탁·청소 등 살림은 남에게
가구 유형도 바뀌었다. 대가족과 핵가족을 한참 지나 ‘원자가족’이 됐다. 가구원수 별 가구 비중이 2000년까지만해도 4인가구, 3인가구, 2인가구, 1인가구 순이었으나 2017년엔 1인가구, 2인가구, 3인가구, 4인가구 순으로 역전됐다. 한국 가구의 표준이던 4인 가구는 줄고 1인 가구가 대세가 된 것이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소비 형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정에서 많이 소비하는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를 비롯해 채소와 채소가공품, 곡물류, 가전·가구 같은 가정용 내구재 소비가 줄고 있다. 반면 근무시간 단축으로 여가 문화 활동이 확산되면서 정보통신 관련 기기를 비롯해 외식·여행·숙박·교통 분야의 소비가 늘고 있다. 가족 규모가 축소되면서 혼자 처리하기 힘든 일을 대신해주는 주거·생활 편의 서비스에 대한 이용이 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의료·보건 서비스에 대한 지출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분석한 소비 트렌드를 비교해보면 1990년대에는 식료품·비주류음료 소비가 가장 많았다. 이어 주거·수도·광열, 의류·신발, 교육 순이었으며, 외식·여행 같은 음식·숙박 소비는 가장 적었다. 하지만 2010년대엔 반대가 됐다. 음식·숙박 소비가 가장 많이 증가해 식료품·비주류음료를 앞질렀다. 음식·숙박의 소비 비중은 30~60대 모든 연령층에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각종 가공을 거치지 않고 즉시 섭취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주점·커피숍 등을 이용하는 모습이 급증했다. 음식·숙박의 소비가 늘면서 교통도 주요 소비항목군에 새로 등장했다. 사교육(인터넷강의 포함)과 주거·수도·광열에 대한 소비도 증가했다.

항목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식료품·비주류음료의 경우 1990년대엔 쌀·콩 같은 곡물 소비 비중이 가장 많았다. 이어 육류, 채소·채소가공품, 과일·과일가공품, 유제품 순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엔 육류와 과일·과일가공품 소비가 급증했고, 당류·과자류 소비가 유제품 소비에 맞먹는 규모로 증가했다. 반면 채소·채소가공품 소비는 줄고 곡물 소비는 눈에 띄게 급감해 후순위로 밀렸다.

주거·수도·광열에서는 1990년대와 2010년대 모두 연료비와 실주거비(월세 등 주거시설 임차료) 지출이 다수를 차지했다. 주거·수도·광열은 거주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 폐수·오물 처리 등에 대한 지출 등을 의미한다. 주거·수도·광열의 소비 비중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가구주가 60세 이상인 가구에서 주거·수도·광열 소비 비중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이는 노인 인구의 소득 감소와 좁아진 활동범위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주거 관련 서비스의 소비 비중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공동주택 이용, 임대차 관련 비용 등 주거시설을 활용한 상품·서비스 이용에 지출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가정생활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뜻하는 가정용품·가사 항목에서도 새로운 소비 경향이 나타났다. 가전·가정용 기기, 가구·조명, 가사소모품 등은 1990년대와 2010년대 모두 소폭의 증감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주요 소비 항목을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가사 서비스와 가정 관련 서비스가 새로운 소비 항목으로 등장했다. 가전제품 임대, 가사도우미 급료 등 생활도구를 빌리거나 취사·세탁·청소·심부름을 외부업체에 맡김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의 지출이 새로 생긴 것이다. 이런 경향은 20~30대를 중심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엔터테인먼트 소비 향유, 보험상품 가입도 급증
근무시간 단축과 여가문화 확산으로 외식·여행·문화 소비 비중이 모든 연령대에서 증가하고 있다. 여행객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고 있다.
교통 항목에선 모든 연령대에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교통 항목엔 자동차 구입비는 물론 연료비·주차료·통행료·교통카드·항공료 등이 모두 포함된다. 1990년대엔 마이카 붐이 대중화되면서 자동차 구입비를 가장 많이 지출했다. 하지만 2010년대엔 운송기구 연료비 지출이 가장 많아졌다. 에너지 구입에 드는 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육 항목에선 2010년대 들어 정규교육 소비는 줄고 학원·보습 같은 사교육(인터넷강의) 소비가 급증했다. 출산율 감소와 한 자녀 증가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지향하려는 부모의 교육열이 사교육비 지출을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오락·문화에서는 전통적 취미활동인 서적·음악의 소비는 줄고, 컴퓨터·휴대전화 구입과 관련 서비스 이용, 여행·공연관람·문화강습 같은 체험 위주의 소비가 증가했다. 이중 1990년대에 소비 비중이 가장 적었던 단체여행비가 2010년대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와 함께 운동·오락 서비스와 정보통신기기(컴퓨터·주변기기 등)에 대한 지출 증가가 새로운 소비 항목으로 등장했다.

보건 항목에선 병·의원 이용이 두드러지게 많아졌다. 1990년대엔 의약품 소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2010년대엔 의약품 소비는 반토막 나고 외래의료·치과·입원 서비스 소비가 급증했다. 이런 경향은 기대수명이 증가하면서 늘어난 60세 이상 노인층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나타냈다. 이미용·화장품·보육·관혼상제 등 기타 항목에선 보험 상품 소비가 두드러졌다. 1990년대엔 주요 소비항목에도 없었으나 2010년대엔 가장 많은 소비 상품에 꼽혔다. 그 배경엔 고령인구 증가, 노후 준비, 미래 불안심리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이 같은 인구 구조 변동에 따른 소비 변화의 배경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도 있지만, 소득 격차 심화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30여년(1990~2019년) 동안 근로자 가구와 자영업자 가구의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1990년엔 미미했으나 이후 근로자 가구 소득은 꾸준히 상승한 반면 자영업자 가구 소득은 소폭 상승에 그쳐 약 30% 차이로 멀어졌다. 사업 소득, 고령가구 소득, 재산 소득도 꾸준히 감소했다. 그동안 외환위기·국제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저성장·저물가·경기침체가 장기간 지속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황선경 수석연구원은 “지난 30년간 연도별 히트상품을 통해 소비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대엔 세탁기·냉장고·보일러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는 홈시어터·테이크아웃점·디지털포토·인터넷토론방·가정용게임기 등에 대거 몰렸다. 또한 드라마·예능·사극류의 방송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2010년대엔 가성비 높은 PB상품을 비롯해 공기청정기·무선청소기·의류관리기처럼 생활 틈새 가전들이 많이 팔렸다”며 “스마트폰 게임·앱·메신저, 소셜미디어·인공지능스피커 등의 소비도 부쩍 늘었다”고 덧붙였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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