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치 않은 ‘강원도 감자’ 판매 대박] 언제까지 수급조절만 탓해야 하나
[편치 않은 ‘강원도 감자’ 판매 대박] 언제까지 수급조절만 탓해야 하나
유통만 배불리는 구조… 무리한 보조금, 시장 왜곡에 타 농민 피해 우려도 강원도가 직접 감자 판매에 나섰다. 농민이 키운 상품을 지자체가 판매한다. 10㎏ 기준 1상자에 5000원. 강원도농수특산물진품센터 온라인 사이트에서 하루 1만 박스를 파는데 연일 매진 행렬이다.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리며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있었다.
비슷한 상황은 지난해 말 이마트의 ‘못난이 감자’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못난이 감자는 상대적으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감자를 말한다. 크기나 생김새가 고르지 않아 버려지는 일이 많다. 농민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 이마트는 전국 매장에서 이런 못난이 감자 30톤을 팔았다. 900g기준 780원, 평균 시장가격의 4분의 1 수준으로 판매하자 이틀 만에 동이 났다. 5000원 감자와 못난이 감자의 인기 비결은 ‘저렴한 가격’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감자는 100g당 가격이 200원을 웃돈다. 상품가격 조회사이트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을 보면 3월 13일 기준 전국 평균 감자 가격은 100g 기준 421원이었다. 전통시장이 266원으로 가장 저렴하고 기업형슈퍼(350원), 대형마트(636원), 백화점(671원)이 뒤를 이었다. 일각에선 농민의 부담을 덜기 위한 ‘착한 소비’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저렴한 ‘가격’이 소비자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더 많다.
최근 강원도 감잣값이 싸진 건 대규모 수요가 갑자기 줄어든 탓이다. 국내 감자 생산량 중 강원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로, 대부분이 고랭지 감자다. 여름에 수확해 창고에 보관하다가 이듬해 봄 햇감자를 수확하기 전 판매하는 일이 많다. 급식이나 식당 등지에 주로 팔리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대량 구매가 급격히 줄었다. 학교가 개학을 미루면서 급식업체가 구매를 하지 않고, 식당 소비가 줄면서 감자 판매량도 함께 감소했다. 강원도 감자 재고량은 약 1만1000톤으로 추정된다. 강원도의 한 감자재배 농민은 “4월에 봄 감자가 나오면 결국 다 버려야 할 판이라 싸게라도 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농산물이 이렇게 헐값에 판매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소비자는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농산물을 구매하는데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일이 많다. 인터넷으로 강원도 감자를 주문했다는 30대 주부 A씨는 “마트에서 5000원으로는 감자 1㎏도 못 살 때가 있다”며 “농민들은 산지가격 폭락에 시름한다는데 소비자는 왜 이렇게 비싸게 사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이 크게 차이 나는 이유는 결국 유통구조 때문이다. 생산자가 가격을 낮게 매겨도 중간 유통과정을 몇 차례 거치면 소비자는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산물 유통정보 사이트 KAMIS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고랭지 감자의 유통비용은 58.7%다. 소비자가 1만원어치 구매하면 그중 5800원이 유통비라는 뜻이다. 이 가운데 도매 비용은 8.5%, 소매 비용은 38.3%에 달했다.
감자만 유통비용이 많은 게 아니다. 가을무는 유통비용이 66.6%, 가을배추는 72.4%, 양파는 76.2%에 달한다. 출하단계에서 농민 몫으로 떨어지는 마진을 포함한 가격이지만, 도매와 소매를 거치면서 값이 뛰는 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도매법인의 독점권이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한다. 도매법인을 통하지 않으면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팔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농산물 값이 비싸진다는 것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농산물값은 상품의 질이나 판매 상황에 따라 시장 논리로 정해진다”며 “가락시장이나 공사에서 임의로 가격을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농민단체는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생산량 예측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농가는 일정한 값을 유지할 수 있고, 값이 급하게 오르거나 내리지 않아 유통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도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실제 농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풍년’이다. 과잉생산이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손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원도 감자 생산량은 13만8000톤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0%가량 늘었지만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졌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농산물은 가격에 민감한데, 생산이 5%만 늘어도 가격은 20~30%씩 뛰는 일이 많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어도 감잣값은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산물 가격 안정과 관련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개별 품목 가격에 직접 개입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정확하게 조사한 농산물 가격을 농민들에게 알려, 농민들이 스스로 생산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으로 값을 조절하게 하는 게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병혁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위원장은 “수십 년간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농사가 이뤄지고 가격이 결정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손을 놓고 있는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수급 계획만 제대로 해도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농가와 재배 면적을 사전에 파악하고 올해 생산량이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면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풍년이 예상되면 재배면적 일부를 축소하게 하고, 흉년이 예상되면 비축했던 물건을 푸는 식으로 얼마든지 가격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가격 급등에 대비하기 위해 양파, 마늘 등 일부 농산물 수급을 조절하고 비축 상품의 판매 시기를 조정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나 지자체의 어설픈 개입은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가격을 왜곡시키는 등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 ‘5000원 감자’가 유통될 수 있는 것은 강원도 지자체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상자 포장비 950원, 농협 택배비 2500원을 강원도가 지원해주면서 농민은 순수하게 감잣값 5000원만 받고 팔 수 있는 구조가 됐다. 다른 지자체의 농민 B씨는 “이런 식으로 보조금을 풀면 타지역 농민들은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일괄적으로 지원금을 풀어 같은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면, 강원도 농민을 살리기 위해 다른 지역을 농민을 사지로 내모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단체 관계자는 “강원도 감자는 상당 부분 급식처럼 대량 구매처로 판로가 정해져 있던 상품들인데, 이 물량이 갑자기 개인 소비자에게 팔렸다”며 “마트나 개인 소비자에게 판매하던 농민들 가운데 일부는 판로가 막히는 걸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역시 이번 지원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보통 지자체가 판매를 장려하는 정도의 마케팅을 도와주는 일은 있어도 직접 나서서 지원금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며 “이런 지원이 농민들에게 무조건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멈춘 특수한 상황에서 한시적인 도움을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기에 계속 지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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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상황은 지난해 말 이마트의 ‘못난이 감자’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못난이 감자는 상대적으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감자를 말한다. 크기나 생김새가 고르지 않아 버려지는 일이 많다. 농민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 이마트는 전국 매장에서 이런 못난이 감자 30톤을 팔았다. 900g기준 780원, 평균 시장가격의 4분의 1 수준으로 판매하자 이틀 만에 동이 났다.
60~70%대 이르는 농산물 유통비용
최근 강원도 감잣값이 싸진 건 대규모 수요가 갑자기 줄어든 탓이다. 국내 감자 생산량 중 강원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로, 대부분이 고랭지 감자다. 여름에 수확해 창고에 보관하다가 이듬해 봄 햇감자를 수확하기 전 판매하는 일이 많다. 급식이나 식당 등지에 주로 팔리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대량 구매가 급격히 줄었다. 학교가 개학을 미루면서 급식업체가 구매를 하지 않고, 식당 소비가 줄면서 감자 판매량도 함께 감소했다. 강원도 감자 재고량은 약 1만1000톤으로 추정된다. 강원도의 한 감자재배 농민은 “4월에 봄 감자가 나오면 결국 다 버려야 할 판이라 싸게라도 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농산물이 이렇게 헐값에 판매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소비자는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농산물을 구매하는데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일이 많다. 인터넷으로 강원도 감자를 주문했다는 30대 주부 A씨는 “마트에서 5000원으로는 감자 1㎏도 못 살 때가 있다”며 “농민들은 산지가격 폭락에 시름한다는데 소비자는 왜 이렇게 비싸게 사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이 크게 차이 나는 이유는 결국 유통구조 때문이다. 생산자가 가격을 낮게 매겨도 중간 유통과정을 몇 차례 거치면 소비자는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산물 유통정보 사이트 KAMIS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고랭지 감자의 유통비용은 58.7%다. 소비자가 1만원어치 구매하면 그중 5800원이 유통비라는 뜻이다. 이 가운데 도매 비용은 8.5%, 소매 비용은 38.3%에 달했다.
감자만 유통비용이 많은 게 아니다. 가을무는 유통비용이 66.6%, 가을배추는 72.4%, 양파는 76.2%에 달한다. 출하단계에서 농민 몫으로 떨어지는 마진을 포함한 가격이지만, 도매와 소매를 거치면서 값이 뛰는 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도매법인의 독점권이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한다. 도매법인을 통하지 않으면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팔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농산물 값이 비싸진다는 것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농산물값은 상품의 질이나 판매 상황에 따라 시장 논리로 정해진다”며 “가락시장이나 공사에서 임의로 가격을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농민단체는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생산량 예측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농가는 일정한 값을 유지할 수 있고, 값이 급하게 오르거나 내리지 않아 유통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도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실제 농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풍년’이다. 과잉생산이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손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원도 감자 생산량은 13만8000톤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0%가량 늘었지만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졌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농산물은 가격에 민감한데, 생산이 5%만 늘어도 가격은 20~30%씩 뛰는 일이 많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어도 감잣값은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보조금 살포는 가격왜곡·경쟁방해 우려도
정부나 지자체의 어설픈 개입은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가격을 왜곡시키는 등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 ‘5000원 감자’가 유통될 수 있는 것은 강원도 지자체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상자 포장비 950원, 농협 택배비 2500원을 강원도가 지원해주면서 농민은 순수하게 감잣값 5000원만 받고 팔 수 있는 구조가 됐다. 다른 지자체의 농민 B씨는 “이런 식으로 보조금을 풀면 타지역 농민들은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일괄적으로 지원금을 풀어 같은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면, 강원도 농민을 살리기 위해 다른 지역을 농민을 사지로 내모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단체 관계자는 “강원도 감자는 상당 부분 급식처럼 대량 구매처로 판로가 정해져 있던 상품들인데, 이 물량이 갑자기 개인 소비자에게 팔렸다”며 “마트나 개인 소비자에게 판매하던 농민들 가운데 일부는 판로가 막히는 걸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역시 이번 지원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보통 지자체가 판매를 장려하는 정도의 마케팅을 도와주는 일은 있어도 직접 나서서 지원금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며 “이런 지원이 농민들에게 무조건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멈춘 특수한 상황에서 한시적인 도움을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기에 계속 지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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