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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선물에 담긴 사회상] 보릿고개 군것질에서 대중문화·전자제품 유행까지

[어린이날 선물에 담긴 사회상] 보릿고개 군것질에서 대중문화·전자제품 유행까지

미디어 발달로 다양화… 빈부격차·양극화 보여주기도
1946. 광복 후 처음 맞은 어린이날 행사 행렬. / 사진:일본 민중신문사 해방1주년 기념 사진집
봄의 여왕 5월은 근로자의날을 비롯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이 이어져 ‘가정의 달’로 불린다. 경제 개발과 산업화가 이뤄지고 국민의 호주머니가 채워지면서 선물은 5월에 준비해야하는 당연한 트렌드다.

선물엔 변화하는 시대상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사람들이 갖고 싶고, 이루고 싶었던 소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주고받는 선물은 그동안 어떤 변화를 거듭해왔을까?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보릿고개 시절 군수물자서 흘러나온 초콜릿
1958.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매스게임을 하는 초등학생들. / 사진:국가기록원
어린이날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어린이날은 일제강점기(1910~1945년)였던 1923년, 방정환(1899~1931년) 선생과 일본 유학생 모임으로 이뤄진 색동회가 5월 1일로 정한 데서 시작했다. 미래 꿈나무들에게 조국 독립이라는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됐다가 1945년 광복 후 부활하면서 5월 5일로 바뀌었다.

어린이날은 격변의 시대를 지나왔다. 광복 후 일제 청산과 사회체계 복구로 혼란하던 때 한국전쟁(1950~1953년)까지 발발했다. 정부는 전쟁 직후 어린이날을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행사로 열었다. 폐허 속에서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했지만 반공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으로 꾸몄다. 당시 국민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국가 경제시스템은 일제 수탈과 전쟁 상처로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지난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을 모두 소진했지만 새해 보리는 아직 익지 않아 식량 부족으로 배를 굶어야 했던 5~6월 농가의 고비 ‘보릿고개’는 해방 후에도 여전했다.

1973. 박정희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가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어린이대공원 개원을 축하하는 모습 / 사진:국가기록원
이런 시국에 어린이날은 선물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주한미군 군수물자에서 흘러나온 물품들이 국민의 의식주가 되던 시절이었다. 미군이 건네준 쪼가리 과자나 건빵·캐러멜·초콜릿·껌·탈지분유 등이 당시 귀한 군것질거리였다. 껌은 친구들과 함께 씹거나 물로 씻어 다음날 다시 씹을 정도로 귀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신문지 뭉치나 양은 그릇 등을 강냉이 뻥튀기나 호박엿·눈깔사탕 등과 바꿔먹었다.

정부가 1961년 공포한 아동복지법에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규정하고, 1975년부터 공휴일로 제정하면서 지금의 어린이날로 자리했다. 1970년대엔 국가 경제 개발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당시 과자·아이스크림 제조사들은 기술력이 없어 외국에서 생산시설과 제조방법을 배워오던 때였다.

산업화로 국민의 호주머니에 다소 여유가 생기면서 어린이날 선물을 챙기는 가정이 늘기 시작했다. 어린이용 간식이 부족했던 시대라 어린이날 인기 선물로 종합과자세트가 한동안 1위를 독차지했다. 커다란 종이상자 안에 과자·초콜릿·사탕 등 온갖 군것질거리로 가득 채운 선물이다. 허전했던 어린이들의 입맛을 양적으로나 시각적으로도 풍족하게 채워줬다.
 마음까지 채워준 종합과자세트, 놀이공원·프로야구
1976. 1976년 어린이날 서울 창경원에 몰린 인파.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집회가 한창이던 1980년대와 1990년대, 한편에선 나들이가 활성화 됐다. 어린이날 도심공원과 유원지 등에서 가족단위 놀이와 체험이 줄을 이었다. 당시 창경원(현 창경궁)엔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어 어린이날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인파에 휩쓸려 부모 손을 놓친 미아들이 속출할 정도였다. 각종 놀이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즐길 거리도 많아졌다. 청룡열차로 불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본 경험은 어린이들 사이에선 최고의 자랑거리였다. 일부 도시에선 어린이날 하루 동안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각종 축제를 열고 어린이들이 맘껏 뛰놀게 했다.

1981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전국이 들썩였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정략이라는 여론이 있었지만, 과자·아이스크림에까지 야구선수 스티커를 끼워 넣어 판매할 정도로 프로야구는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이 분위기를 타고 야구공·글러브·배트·유니폼 등 야구용품이 어린이 선물의 대세로 떠올랐다. 80년대 초등학생들에겐 좋아하는 구단의 팬클럽 모자와 티셔츠를 입고 야구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 최고 선물이었다. 각종 스포츠 브랜드도 인기를 끌었다. 나이키·아디다스 등 외국산 유명 브랜드 운동화가 유행하면서 빈부격차의 상징이 됐다.
 미디어기기·콘텐트 열광, 가족단위 여가문화 정착
1982. 어린이 야구 교실에 참여한 초등학생들 / 사진:국가기록원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1990년대엔 전자제품이 어린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워크맨 등 일본산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인기였다. 이후 뮤직 파일 기술은 CD·MP3·USB 등으로 진화했으며 그 때마다 선망하는 버킷리스트가 됐다. 게임기도 최애템(최고로 사랑하는 아이템)으로 각광받았다. 오락실에 가야만 즐길 수 있었던 대형 게임기가 두 손에 들어온 휴대용 전자게임기다. 뮤직플레이어와 전자게임기는 부모의 재력을 과시하는 상징도 됐다.

1980년대에 빈부 격차로 시작한 어린이날 선물의 양극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벌어졌다. 인터넷열풍이 휩쓸던 1990년대 말과 2000년대엔 개인용 컴퓨터와 노트북이 최애 선물로 등장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은 미디어 발달에도 한몫 했다. 다양한 애니메이션에서 선보인 뽀로로·또봇·타요·터닝메카드 등 캐릭터들은 장난감으로 출시해 어린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2017.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스마트폰 VR영상 촬영
5년 전 대체공휴일 도입으로 주말과 이어지는 어린이날이 연휴가 되면서 국내외 여행도 늘었다. 가족단위 여가문화의 확산도 한 배경이 되고 있다. 배봉균 신세계한국상업사박물관장은 “1970·80년대엔 실생활밀착형이었던 선물이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IT의 발달과 함께 전자기기로 바뀌었다”며 “오늘날엔 여가문화가 확산하면서 킥보드나 레저체험 같은 가족단위 즐길거리가 인기”라고 말했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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