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의 세기의 담판(22) 이사, 무엇이 더 이익인지 설득하라] “그러면 천하통일은 멀어집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김준태의 세기의 담판(22) 이사, 무엇이 더 이익인지 설득하라] “그러면 천하통일은 멀어집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진시황이 가장 원하는 것을 꿰뚫는 간언으로 축객령을 철회시켜 진(秦)나라가 천하통일을 위한 행보를 본격적으로 밟기 전, 훗날 진시황이 되는 진왕은 ‘축객령(逐客令)’을 내렸다. 진나라 조정에서 활동하는 ‘객(客)’, 즉 외국 사람들을 모두 축출하는 것이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조나라 출신 상인으로 진나라의 킹메이커이자 승상이 돼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여불위가 진나라 왕실의 체면을 크게 깎아버렸다. 여불위가 천거한 노예가 진나라 태후와 불륜을 저질러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을 왕으로 만들겠다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로 인해 여불위는 관직을 삭탈 당하고 낙향했는데, 자중하기는커녕 다른 나라와 접촉해 재기를 도모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진왕의 노여움을 샀다. 진왕은 여불위에게 자결을 명한다.
다음으로, 한나라에서 온 간첩 사건이다. 한나라는 유명한 토목기술자인 정국을 진나라로 보냈다. 정국은 진왕을 설득해 각지에 운하를 건설하도록 했는데, 물류를 원활하게 해 진의 국력을 신장시킨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진나라의 국고를 텅 비게 하려는 목적이었고, 이 내막이 밝혀지면서 진왕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연이어 문제를 일으키자 진나라에서는 국수주의가 대두됐다. 타국 사람을 믿을 수 없다며 배타적으로 대하고 공격하는 일이 늘어났다. 신하들도 “다른 나라에서 온 자들은 진심으로 우리 진나라를 섬기지 않습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도모하고 진나라 군신(君臣)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모든 외국인을 추방하시옵소서”라고 건의하니, 진왕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축객령이 공표됐는데 아무도 진왕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외국인에 대한 진왕의 분노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초나라에서 온 이사(李斯)가 나섰다. 그 역시 추방 대상자였는데, 그는 진왕의 조치가 잘못되었다며 진나라의 역사를 거론했다. “옛날 목공께서는 인재를 찾아 서쪽 오랑캐 땅에서 유여를 데려오고 초나라에서 소를 키우던 백리해를 맞이하였으며, 송나라에서 건숙을 등용하고 진(晋)나라로부터는 비표와 공손지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들 다섯 사람은 진(秦)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목공께서는 그들을 중용함으로써 패자가 되셨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효공께선 상앙의 신법을 채택하시어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혜왕께선 장의의 계책을 받아들여 여섯 나라의 합종(合縱)을 깨뜨리고 진나라를 섬기게 만드셨습니다. 소왕께서는 범저를 등용하여 진나라 왕실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졌고, 공족과 대신들의 세력을 꺾으셨습니다.” (상앙은 위(衛)나라, 장의와 범저는 또 다른 위(魏)나라 출신이다) 오늘의 진나라를 만든 명군 목공, 효공, 혜왕, 소왕의 공통점은 타국에서 온 인재를 중용해 부국강병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진나라를 초강대국으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요 인재들이 외국 출신이었다는 뜻도 된다. 이사는 “저 네 분 군주께서 다른 나라에서 온 인재를 배척하여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면, 진나라는 강대하다는 명성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이어서 말한다. “지금 임금께서는 인재의 사람됨이 어떤지, 능력이 어떤지는 묻지 않으시고, 성품이 훌륭한지도 헤아리지 않으십니다. 그저 진나라 태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물리치고 계십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인재들을 모두 내쫓으려 하십니다. ……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고, 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 깊음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왕은 어떠한 백성도 뿌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가 있습니다. 군주다운 군주가 다스리는 세상은 내 나라 네 나라의 구분이 없고,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하여 차별하지 않습니다.”
무릇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게도 포용력이 중요하다.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포용력이 크면 클수록 그 나라의 크기도 커진다. 다양성을 조화롭게 녹여내는 과정에서 혁신하는 힘이 생기고, 이질적이고 낯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 차별 받고 소외되는 사람이 사라지므로, 모든 사람이 각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며, 그것이 국력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이사는 이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인재를 쫓아낸다면, 누구에게 이롭겠는가? 예를 들어보자. 위나라 군주였던 혜왕은 탁월한 전략가 손빈을 등용했지만, 손빈이 출신국인 제나라와 내통한다는 모함을 듣고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손빈은 훗날 위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위혜왕은 재상 공숙좌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후계자로 상앙을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코웃음을 쳤다. 실망한 상앙은 진나라로 건너갔고, 변법개혁을 통해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만약 위혜왕이 손빈을 계속 중용하고, 상앙을 발탁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과적으로 위나라는 인재 한 사람을 잃어버린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적국을 이롭게 만들었고, 자국을 위험하게 만든 큰 패착을 둔 것이다. 이사의 말을 보자. “지금 진나라는 적국을 이롭게 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온 빈객을 물리쳐서 그들이 다른 나라의 제후를 도와 공을 세우게 만들고 있습니다. 천하 선비들에게 벽을 쌓아 그들이 진나라로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원수에게 군대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내주는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의 말을 들은 진왕은 곧바로 축객령을 철회했다. 외국인에 대한 분노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포용’이라는 가치에 설득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타국 출신 인재들이 가져다 준 성과를 되돌아본 것이고, 만약 그들을 쫓아낸다면 진나라의 국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다른 나라 인재들을 포섭하고 활용해야 자신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이에 진왕은 인재포용정책을 유지하며 타국 출신 신하들에게 계속 기회를 주었다. 이들이 진나라가 다른 여섯 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는데, 승상으로서 활약한 이사가 대표적이다.
전통사회에서 신하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꼽는 것이 ‘간언(諫言)’이다. 임금의 폭주에 제동을 걸고, 임금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일종의 담판을 벌이는 것이다. 이때 좋은 말로 깨우쳐주고 대의명분으로 설득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임금의 오만과 분노, 치우친 감정에 맞서야 한다. 간언할 때 목숨을 거는 것은 그래서이다.
따라서 간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임금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치미는 화를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원하는 것, 차가운 이성을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필요로 하는 것, 그것을 내걸고 담판을 벌이면 된다. “축객령을 시행하면 임금께서 꿈꾸는 천하통일은 요원해집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라는 이사처럼 말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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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조나라 출신 상인으로 진나라의 킹메이커이자 승상이 돼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여불위가 진나라 왕실의 체면을 크게 깎아버렸다. 여불위가 천거한 노예가 진나라 태후와 불륜을 저질러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을 왕으로 만들겠다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로 인해 여불위는 관직을 삭탈 당하고 낙향했는데, 자중하기는커녕 다른 나라와 접촉해 재기를 도모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진왕의 노여움을 샀다. 진왕은 여불위에게 자결을 명한다.
다음으로, 한나라에서 온 간첩 사건이다. 한나라는 유명한 토목기술자인 정국을 진나라로 보냈다. 정국은 진왕을 설득해 각지에 운하를 건설하도록 했는데, 물류를 원활하게 해 진의 국력을 신장시킨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진나라의 국고를 텅 비게 하려는 목적이었고, 이 내막이 밝혀지면서 진왕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연이어 문제를 일으키자 진나라에서는 국수주의가 대두됐다. 타국 사람을 믿을 수 없다며 배타적으로 대하고 공격하는 일이 늘어났다. 신하들도 “다른 나라에서 온 자들은 진심으로 우리 진나라를 섬기지 않습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도모하고 진나라 군신(君臣)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모든 외국인을 추방하시옵소서”라고 건의하니, 진왕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축객령이 공표됐는데 아무도 진왕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외국인에 대한 진왕의 분노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초나라에서 온 이사(李斯)가 나섰다. 그 역시 추방 대상자였는데, 그는 진왕의 조치가 잘못되었다며 진나라의 역사를 거론했다. “옛날 목공께서는 인재를 찾아 서쪽 오랑캐 땅에서 유여를 데려오고 초나라에서 소를 키우던 백리해를 맞이하였으며, 송나라에서 건숙을 등용하고 진(晋)나라로부터는 비표와 공손지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들 다섯 사람은 진(秦)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목공께서는 그들을 중용함으로써 패자가 되셨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효공께선 상앙의 신법을 채택하시어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혜왕께선 장의의 계책을 받아들여 여섯 나라의 합종(合縱)을 깨뜨리고 진나라를 섬기게 만드셨습니다. 소왕께서는 범저를 등용하여 진나라 왕실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졌고, 공족과 대신들의 세력을 꺾으셨습니다.” (상앙은 위(衛)나라, 장의와 범저는 또 다른 위(魏)나라 출신이다)
다양성·차이성 품는 포용이 혁신의 원동력
또한, 이어서 말한다. “지금 임금께서는 인재의 사람됨이 어떤지, 능력이 어떤지는 묻지 않으시고, 성품이 훌륭한지도 헤아리지 않으십니다. 그저 진나라 태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물리치고 계십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인재들을 모두 내쫓으려 하십니다. ……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고, 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 깊음을 완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왕은 어떠한 백성도 뿌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가 있습니다. 군주다운 군주가 다스리는 세상은 내 나라 네 나라의 구분이 없고,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하여 차별하지 않습니다.”
무릇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게도 포용력이 중요하다.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포용력이 크면 클수록 그 나라의 크기도 커진다. 다양성을 조화롭게 녹여내는 과정에서 혁신하는 힘이 생기고, 이질적이고 낯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 차별 받고 소외되는 사람이 사라지므로, 모든 사람이 각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며, 그것이 국력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이사는 이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인재를 쫓아낸다면, 누구에게 이롭겠는가? 예를 들어보자. 위나라 군주였던 혜왕은 탁월한 전략가 손빈을 등용했지만, 손빈이 출신국인 제나라와 내통한다는 모함을 듣고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손빈은 훗날 위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위혜왕은 재상 공숙좌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후계자로 상앙을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코웃음을 쳤다. 실망한 상앙은 진나라로 건너갔고, 변법개혁을 통해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만약 위혜왕이 손빈을 계속 중용하고, 상앙을 발탁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과적으로 위나라는 인재 한 사람을 잃어버린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적국을 이롭게 만들었고, 자국을 위험하게 만든 큰 패착을 둔 것이다.
감정 이길 수 있는 간절한 소망 일깨워 설득
이사의 말을 들은 진왕은 곧바로 축객령을 철회했다. 외국인에 대한 분노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포용’이라는 가치에 설득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타국 출신 인재들이 가져다 준 성과를 되돌아본 것이고, 만약 그들을 쫓아낸다면 진나라의 국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다른 나라 인재들을 포섭하고 활용해야 자신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이에 진왕은 인재포용정책을 유지하며 타국 출신 신하들에게 계속 기회를 주었다. 이들이 진나라가 다른 여섯 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는데, 승상으로서 활약한 이사가 대표적이다.
전통사회에서 신하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꼽는 것이 ‘간언(諫言)’이다. 임금의 폭주에 제동을 걸고, 임금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일종의 담판을 벌이는 것이다. 이때 좋은 말로 깨우쳐주고 대의명분으로 설득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임금의 오만과 분노, 치우친 감정에 맞서야 한다. 간언할 때 목숨을 거는 것은 그래서이다.
따라서 간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임금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치미는 화를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원하는 것, 차가운 이성을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필요로 하는 것, 그것을 내걸고 담판을 벌이면 된다. “축객령을 시행하면 임금께서 꿈꾸는 천하통일은 요원해집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라는 이사처럼 말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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