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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오류, 교병필패(驕兵必敗) 그리고 경제정책

인지적 오류, 교병필패(驕兵必敗) 그리고 경제정책

#1. ‘인지적 오류’는 심리학 용어지만 하도 유명해져서 이제는 경영학 원론 교과서에도 나온다. 쉬운 표현을 찾자면 ‘착각’이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이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자기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이 아닌가 싶다. 이는 성공은 자기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실패는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필자가 가르치는 교과서에는 이런 예가 나온다. “한 학생이 중간고사 성적이 좋으면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라 자랑하고, 성적이 안 나오면 안 배운데서 문제가 나왔다거나 문제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며 출제를 한 선생님 탓을 한다.” 인지적 오류에는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라는 것도 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입장, 경험에만 의존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무조건 거부한다.

#2. ‘교병필패(驕兵必敗)’라는 말이 있다. 자만하는 군대는 반드시 패한다는 뜻이다. [한서(漢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원문은 조금 다르게 돼 있어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손자병법]의 행군(行軍)편에는 ‘병비익다(兵比益多)’와 ‘이적자필금어인(易赤字必擒於人)’이라는 어구가 나온다. 아군의 병력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며 적을 얕잡아 보면 반드시 포로가 된다는 말이다. 자기 병력이 많음을 믿고 적을 얕잡아 보면 낭패를 본다는 것이다.

약 10여년 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몇 년 동안 실적이 고공행진을 하자 회사 내부망에 이 ‘교병필패’라는 말을 올려 임직원들의 정신상태 해이를 경계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한 직원이 이에 대한 댓글로 ‘우리 회사는 교만한 병사(직원)가 문제가 아니라 교만한 장군(경영진)이 문제인 듯하니 이는 ‘교장필패(驕將必敗)’가 맞다는 글을 올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현대 전쟁사에서 대표적인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1967년 ‘6일 전쟁’의 완벽한 승리에 도취된 이스라엘 해군은 당시 중동 지역 최대 전투함인 ‘아일라트’를 몰고 이집트 군항인 포트사이드 코앞에까지 빈번히 들어와 이집트 해군을 조롱하곤 했다. 그 해 10월 21일에도 아일라트는 포트사이드 항구 입구까지 진입했다. 패전으로 큰 타격을 입어 다시 전쟁을 치룰 여력이 없어 이를 꾹 참아 왔던 이집트 해군 수뇌부도 그날은 너무하다 싶었는지 공격명령을 내렸다.

당시 이집트 해군에는 이스라엘 해군에게는 없는 최신식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전투함이 7척이나 있었다. 이 ‘코마르 (Komar)’급 전투함은 소련이 대준 것으로서, 소련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함대함 미사일인 ‘스틱스(styx)’를 적재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해군도 이집트 해군의 미사일함 보유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무시했다. 명령을 받은 코마르급 함정은 미사일 한 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아일라트 전투함의 전면 갑판에 명중했고, 두 번째 미사일이 배의 탄약고에 명중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 결과 배는 격침됐고 총 199명 승조원 중 47명 전사, 91명 부상이라는 이스라엘 해군 역사 상 최대의 패배로 기록됐다.

#3. ‘전거복철(前車覆轍)’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자국’이라는 뜻으로, 실패의 전례나 다른 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경계하라는 말이다. 한나라 5대 황제인 문제(文帝)때 가의(賈誼)라는 충신이 있었다. 그는 이런 상소를 올렸다. “속담에 앞 수레의 엎어진 바퀴자국(前車覆轍)은 뒤 수레를 위한 교훈(後車之戒)이란 말이 있습니다. 진나라가 일찍 망한 이유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진나라가 범한 과오를 피하지 않는다면 그 전철을 밟게 될 뿐입니다.” 이에 문제는 여러 개혁을 실시하여 마침내 큰 번영을 이뤘다.
 총선 후 여당에서 ‘교병필패(驕兵必敗)’ 조짐
#4. 20여년 전 미국의 중앙은행장은 그린스팬이었다. 1990년 대 후반 막대한 양의 돈을 찍어내며 나스닥 등 주식시장의 기록적인 거품을 만들었던 당사자로, 2000년대 초 거품이 꺼지고 불황이 깊어지자 원인 제공자로서 거센 비판에 시달렸다. 그런데 마침 9·11 테러가 터지면서 모든 책임은 오사마 빈라덴에게 돌아갔다. 필자의 지도교수였던 분은 “오사마가 그린스팬을 살렸다”고 말했다.

얼마 전 총선이 끝났다. 정치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집권여당의 압승이다. 여당 승리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코로나가 이 정권을 살렸다”라는 말이 돌 만큼 다른 나라의 감염상황이 심각해지면서 한국 정부가 상대적으로 잘했다는 반사적 수혜가 거론되는 것은 차치하고, 이번 선거의 전개 양상을 보면 제일 먼저 교병필패가 잘 어울리는 말인 듯 싶다.

선거 전에는 제1 야당이 크게 유리해 보였다. 집권여당의 경제 성적은 합격점을 받기 힘들었고, 북핵문제는 오히려 더 꼬여버린 듯하며, 소리만 요란했던 적폐청산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별것이 없던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중국으로부터의 인구 유입을 차단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고, 뒤늦게 마스크 수출을 제한하고 졸속의 공급대책으로 대통령까지 사과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야당은 이런 유리한 상황에서 승리를 확신한 탓인지, 정작 대안은 내놓지 않은 채 ‘정권심판’ 구호에만 매달렸다. 여기에 공천을 둘러싼 잡음, 당대표의 부적절한 발언에다 막판에 한 후보의 자폭성 설화 사건이 따라 붙으며 자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형적인 교병필패의 사례이다.

그런데 선거 후에는 여당 측에서 교병필패의 조짐이 보인다. 차기 국회에서 경제 살리기를 위한 묘안 만들기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벌써 토지 공개념을 담은 개헌론이 나오고 코로나 극복에 대한 ‘자화자찬’성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대로 ‘자기위주 편향’과 ‘선택적 지각’의 행태도 엿보인다.

선거 압승은 코로나 대응 등 자신들이 잘한 탓에 국민들이 표를 몰아 준 결과이며, 아직도 ‘매우’ 어려운 경제상황은 ‘코로나 탓’으로 돌리는 듯 한 모습이다. 더 나아가 집권여당 수뇌부 및 청와대 일부는 선거결과를 ‘소주성’ 등 지금까지의 경제정책 노선이 옳으며,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해석하여 오히려 이를 더 강화시키려는 모습도 보인다. ‘교장필패’인데다 ‘전거복철’의 교훈이 아쉬운 양상이다.

더 큰 문제는 올해 말과 내년이다. 계절적 요인으로 감염병이 조금 수그러든다 하더라도 찬바람과 함께 세계적으로 다시 창궐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코로나 책임론을 둘러 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져 전 세계적인 소송전과 더 큰 무역전쟁으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더구나 10여년 전 리만사태처럼 각국 GDP의 10~20%를 쏟아 부은 경기부양책이 재정위기로 되돌아올 개연성도 크다.

그때도 이런 대외요인 및 바이러스를 탓하며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그린스팬의 행운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주어진다 하더라고 두 번의 행운을 기대하기는 힘든 법이다.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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