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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인사이트 | 베이루트 대폭발 원인 어디서 시작됐나] ‘고인물’ 정권이 레바논 비극의 불씨

[채인택의 글로벌인사이트 | 베이루트 대폭발 원인 어디서 시작됐나] ‘고인물’ 정권이 레바논 비극의 불씨

국민은 안중에 없는 종파 간 암투… 경제 침체로 상심한 반정부 시위 격화
지난 8월 4일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에서 질산암모늄이 대폭발해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폭발 후 폐허가 된 베이루트 항구 모습. / 사진:AFP=연합 뉴스
지난 8월 4일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 창고에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이 인근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레바논이 주목 받고 있다. 적어도 135명이 사망하고 5000여 명이 다쳤으며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대참사다. 21세기 최대의 도시 폭발로 기록될 이번 사고의 결과 핵 폭발을 방불하게 하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발생했으며 베이루트 항구와 인근 시가지는 초토화됐다. 1975~1990년 레바논 내전으로 온 도시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 뒤덮인 기억이 새롭게 되살아날 정도다.

주목할 점은 레바논이 최근 들어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적 갈등을 겪어왔다는 사실이다. 레바논의 경제 성장률은 2018년 -1.9%, 2019년 -5.6%를 기록했다. 2007~2010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9.1%에 이르렀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레바논 경제는 2011년 이웃 시리아에서 내전이 벌어지자 정정마저 불안해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계은행(WB)은 올해 성장률을 -10.9%, 2021년은 -6.3%로 전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활동 중지는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관광과 금융업, 무역 중심의 레바논 경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활동 중지로 전 세계 어디보다 심각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실업자가 늘어 50%에 이른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특히 청년층의 고통이 가중됐다.

도대체 레바논은 어떤 나라이기에 2000년대 후반 평균 9.1%의 고성장을 이뤘고, 지금은 왜 이렇게 심하게 뒷걸음질을 치는 것일까. 레바논의 실체를 알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레바논은 중동에서도 독특한 나라다. 중동이라면 흔히 연상되는 사막도, 석유도 없다. 대신 축복 받은 기후와 인적 자원이 있다.

레바논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 지역으로 겨울에 시원하고 비가 많으며, 여름은 덥고 습기 차다. 고지대 산악에는 겨울에 눈도 상당히 내린다. 산맥에 가로 막힌 북동 지역을 제외하고는 강수량이 풍부해 농업에 안성맞춤이다. 레바논은 구약성서에서 나올 정도로 유명한 목재 산지다. 2016년 조사에서 전 국토의 13.6%가 숲이며 여기에는 백향목(Cedar)으로도 불리는 삼나무가 풍족하게 자란다. 삼나무는 레바논의 국기에도 새겨질 정도로 이 나라를 상징한다.
 왕족국가 중동서 프랑스 업고 공화국으로 출범한 레바논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8월 6일 레바논 베이루트를 방문해 질산암모늄 대폭발 피해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레바논은 작은 나라다. 면적이 경기도(1만171㎢)와 비슷한 1만452㎢로 섬나라를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가장 작은 주권국가다. 이 작은 나라에 2018년 추산치로 689만 명이 거주한다. 영국 외교·영연방부 통계에 따르면 레바논 출신이나 그 후손으로서 해외에 거주하는 인구는 최대 1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브라질과 레바논 정부 자료에 따르면 그 중 580만 명에서 700만 명이 브라질에 산다. 레바논 국회 자료와 추정 등에 따르면 레바논의 해외 이주자는 아르헨티나에 120만~350만 명, 콜롬비아에 100만~340만 명, 베네수엘라에 34만~50만 명, 멕시코에 24만~50만 명 등 중남미에 집중됐다. 미국 인구 센서스 등에 따르면 미국에도 50만~90만 명이 거주한다. 호주에도 27만~35만 명이, 프랑스에도 25만~30만 명이 거주한다.

프랑스와 레바논의 관계는 독특하다. 1920~45년 레바논을 위임 통치하면서 레바논의 탄생을 주도했다. 프랑스가 1920년 9월 1일 시리아에서 기독교도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별도로 분리하면서 비로소 레바논이 탄생했다. 레바논 주민들은 1926년 5월 23일 헌법을 제정하고 프랑스처럼 공화국을 건설하기로 했다. 영국이 후원하거나 일시 지배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알사우드 가문의 왕국이, 요르단과 이라크(나중에 바트당 쿠데타로 공화국이 됨)에 하심 가문의 왕국이 각각 들어선 것과 대조적이다. 레바논은 제2차 대전이 한창인 1943년 11월 22일 독립을 선언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인 1945년 10월 24일 프랑스는 위임통치를 공식적으로 끝냈다. 1946년 4월 17일에는 프랑스군이 완전 철수했다.

프랑스는 그 뒤로도 레바논의 보호자로 자처하며 내부 혼란이 극심하면 병력을 파견하기도 했으며, 필요한 경우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왔다. 레바논에는 프랑스 국적(대부분 이중국적)을 보유한 주민이 2만1500명이 있다. 프랑스는 전 세계를 11개 선거구로 나뉘어 해외거주 주민을 대표하는 하원의원을 선거구당 각 1명 선출하는데 레바논은 중앙·동부·남부 아프리카 및 중동의 48개국과 함께 제10 선거구를 형성한다. 2017년 선거에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하원의원으로 모로코 출신으로 마크롱의 정당인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 소속의 아말 아멜리아 라크라피가 당선해 활동 중이다. 프랑스에는 레바논계 프랑스인이, 레바논에는 프랑스 국적자들이 다수 거주하면서 양국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셈이다.
 공용어 프랑스어로 유럽·중동 잇는 교역국으로 성장
프랑스와 레바논을 묶어주는 끈 중의 하나가 프랑스어다. 레바논 헌법 제11조는 ‘레바논의 공식 언어는 아랍어이다. 프랑스어도 사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레바논은 프랑스어를 모국어나 행정언어로 사용하는 국가들의 국제지구인 ‘프랑스어권 국제기구(OIF)’의 회원국이다. OIF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2010년 레바논 국민의 20%가 프랑스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레바논 주민의 약 40%는 프랑스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으며, 15%는 부분적으로 이해한다. 교육의 60%가 프랑스어로 이뤄지며 수학과 과학은 프랑스어로 가르치고 배운다. 레바논의 지폐에는 프랑스어가 적혀 있으며 주요 건물과 도로 표지판은 아랍어와 프랑스어가 나란히 적힌다. 프랑스어를 알면 레바논에서 생활하고 사업하기에 지장이 없다. 국민의 20% 이상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레바논이 ‘동방의 스위스’로, 베이루트가 ‘중동의 파리’로 각각 불리는 것은 그만큼 자연과 도시가 아름답고 경제적으로 한때 풍요를 누렸다는 것 말고도 이런 이유가 있다. 이는 레바논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레바논의 항구는 유럽과 중동을 잇는 교역 창구다. 아울러 아랍어와 프랑스어가 모두 능통한 이중 언어 구사자가 많다는 점은 금융에도 이점으로 작용한다. 프랑스 수준의 합리적이고 경쟁력 있는 금융산업이 발달한 원동력이다. 레바논의 은행은 중동 산유국 자금이 모이는 집합소다. 이 자금은 레바논 경제를 움직이는 연료 역할을 한다. 레바논은 이렇게 중동과 유럽, 미국을 잇는 금융 허브가 됐다. 레바논은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지중해 해안을 중심으로 리조트를 건설해 관광국가로 거듭났다.

사실 레바논은 오랫동안 중동의 경제 모범국가였다. 건국 초부터 시장경제와 개방경제를 채택해 교역국가로 자리 잡았다. 정부 간섭과 규제를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주의를 펼친 것도 주효했다. 무역과 금융, 관광이 경제를 이끌었다. 중동 산유국들의 레바논 투자가 이어졌다.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레바논의 국내총생산(GDP)는 585억 달러로 세계 81위이며, 1인당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9654달러로 67위에 이르다. 8957달러의 터키나 8796달러의 브라질보다 많다. 산유국을 제외하고 중동에선 풍요를 누리는 지역이다.
 정치균형 명분 삼아 4대 종파 권력 나눠 먹기로 경제 피폐
레바논이 전례 없는 경제 위기를 겪자 반정부 시위대가 올해 1월 레바논 국기와 ‘혁명’이라고 쓴 주먹 그림의 팻말을 들고 베이루트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는 7월까지 계속됐다. / 사진:AP=연합뉴스
이런 레바논이 지금 삐걱거리고 있다. 특히 경제 사정이 심각하다. 지난해 10월 이후 레바논의 통화인 레바논 파운드의 가치는 80%가 하락했다. 레바논 정부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이르는 국가부채를 안고 있으며, 상징적인 것이 잦은 단전이다. 전기공급이 불안해 만성적인 단전에 시달리고 있다. 단전은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불편이다.

급기야 국민의 불만이 폭발해 2019년 9월부터 청년층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했다. 이들은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와 무능, 그리고 무책임을 비난했다. 반정부 시위는 레바논 국기에도 그려진 나라의 상징 나무를 따서 ‘백향목(Cedar) 혁명’으로 불린다.

반정부 시위는 올해 코로나19가 확대되는 와중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국민의 불만과 분노가 얼마가 큰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친시리아 국가로 분류됐던 레바논에서 반시리아 세력이 확대됐다. 최근 들어서는 전통적인 친시리아 세력인 시아파 조차 시리아에 등을 돌리기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레바논 사태의 바탕에는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레바논은 1943년 독립하면서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마론파 기독교도와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이슬람 신자), 그리고 드루즈 신자가 모여 권력분점을 규정한 ‘1943년 국민협약’을 맺었다. 다종교 국가 내에서 정치적 안정과 균형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종교별로 권력을 나눈 것이다.

대통령과 레바논 군대의 최고사령관은 항상 마론파 기독교도다. 총리는 항상 수니파 무슬림이다.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다. 국회부의장과 부총리는 항상 그리스 정교도다. 군대의 합참의장은 항상 드루즈교도다. 국회에서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비율은 항상 6대 5로 한다. 이는 1932년 인구조사 결과 기독교도가 51%, 무슬림이 49%로 나타난 것으로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그 뒤 인구비중이 변화해 다수를 차지하게 된 무슬림의 정치적 불만이 증가하게 됐다, 결국 마론파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충돌로 1975년 비극적인 레바논 내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거점을 마련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무장조직과 충돌하면서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1985년에는 남부 지역을 점령해 2000년 5월 철수 때까지 머물렀다. 시리아도 1976년 레바논에 군대를 보내 2005년까지 머물렀다.

레바논 내전은 12만~15만 명의 사망자를 낸 채 1990년 내부 협상을 통해 종결됐다. 1975년 시작돼 15년 가까이 계속되던 레바논 내전은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타이프에서 이뤄진 각 정파 간 협상을 통해 ‘타이프 협정’을 맺으면서 종식됐다. 협정의 내용은 권력분점 형태의 변화와 특정 정파를 지원하는 외국 군대의 철수였다.

타이프 협정 결과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국회에서 종전의 55대 45의 분포를 50대 50으로 바꾸었으며, 무슬림이 맡는 총리의 권한을 강화했다. 레바논에서 국내외 모든 무장세력의 무장을 해제하거나 철군, 또는 추방했다. 다만 이란의 지원을 맡는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이를 거부하고 세력을 키웠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레바논에서 추방됐다. 이스라엘군은 2000년, 시리아군은 2005년 4월까지 각각 철수했다.
 정치 엘리트들의 특권화가 부정부패·무능·무책임 초래
하지만 그 뒤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정치적으로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등 요직을 차지한 정치 엘리트들이 특권 세력화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대통령과 의회가 있고 선거가 치러졌지만, 종교별 세력 분포를 규정한 1943년 국민협약과 1989년 타이프 협정 때문에 국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선거로 교체되거나 견제되지 않는 특권 세력이 레바논의 지도층으로 고착된 셈이다. 견제를 받지 않으니 이들은 특권화했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무능·무책임이 판을 쳤다. 견제 받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말로다. 이는 이번 폭발 사고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비료와 폭발물 원료로 강한 폭발성을 지닌 질산암모늄이 2700t 이상 압류돼 항구에 6년 이상 보관되고 그 위험성이 지적되면서도 아무도 처리하지 않은 것만큼 분명한 증거가 없다. 이런 무책임은 결국 비극적인 사고의 원인이 됐다.

주목할 점은 6일 베이루트에 도착해 사고 현장을 둘러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이다. 베이루트 폭발사고 뒤 현장을 찾은 첫 외국 지도자인 마크롱은 폭발 현장에 파인 폭 140m의 웅덩이와 잔해로 어지러운 항구를 불러본 뒤 주변 지역으로 옮겼다. 그를 발견한 현지 주민들은 마크롱 앞에서 “혁명” “민중은 정권 퇴진을 원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레바논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분노를 표현했다. 마크롱은 “나는 정권을 인정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다”라며 “프랑스의 지원은 결코 ‘부패한 자의 손’에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크롱은 “레바논은 외롭지 않다”며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긴급하게 개혁하지 않으면 계속 가라앉을 것”이라고 정권에 변화를 촉구했다. 수많은 사람이 숨지거나 다치고 수십억 달러로 추산되는 사고 현장에서 외국 국가원수가 내정 간섭으로 비칠 수 있는 개혁을 촉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베이루트 폭발 사고 직후 러시아는 즉시 긴급구조팀과 수색견, 구호물자를 레바논에 보냈다.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체코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바논이 자력으로 상황을 수습하고 복구 작업을 할 능력이 없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프랑스2 방송은 유엔에 도움을 요청하고 국제 사회가 사태 수습에 나서는 방식을 둘러싸고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레바논의 비극은 결국 정치가 마비되고 고인물이 된 권력 분점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 채인택 -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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