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사의 힐링상담] ‘작은 장례식’ 갈등 극복
[후박사의 힐링상담] ‘작은 장례식’ 갈등 극복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인가, 유족의 사회적 관계 확인하는 자리인가 그녀는 지난 연말 33년 동안 다닌 회사를 퇴직했다. 직원으로 30년, 임원으로 3년 일하며 남부럽지 않은 시간이었다.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경조사 챙기기다. 그간 수많은 직원들의 결혼과 장례가 있었고, 열심히 챙겼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인심 좋은 동료로 선후배들과 잘 지냈다. 남편은 의사다. 간호사 세 명과 함께 작은 의원을 경영한다. 본업에 매우 충실하지만, 내성적이라 대인관계가 거의 없다. 동문회나 지역사회 모임에 나가지 않으며, 종교도 없다.
5년 전 시아버지께서 작고하셨다. 성공한 형님과 두 누님 앞으로 수십 개의 조화, 수백 명의 조문이 답지했다. 성대한 장례식이었다. 남편 조문객은 적었지만, 회사 동료들이 많이 와 주어 그녀 쪽도 체면치레는 했다. 아흔이 넘으신, 조만간 다가올 시어머니 장례는 걱정이 없다. 시아버지보다 더 성대한 장례가 될 것이다. 문제는 80대 중반인 친정어머니 장례다. 남편 쪽은 물론이고, 그녀도 현직이 아닌 상황에서 얼마나 문상을 올까. 언니와 여동생이 있지만, 언니는 미국에 살고, 미혼인 동생은 연락 없이 독립적으로 살고 있어, 둘 다 도움이 되질 않는다.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신 어머니는 3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후 심신이 모두 쇠약해지셨고, 세 딸에게 재산정리를 하신 후에는 이상하리만큼 모든 능력이 사라지셨다.
조촐하고 조용하게 치러질 어머니의 장례를 생각하면 맘이 복잡하다. 작은 장례에 대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예상되고, 최근 들어서는 성대한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자꾸 주눅도 든다. 의사에 임원까지 지낸 부부이니 주변에서는 많은 조문객이 올 것으로 생각할 텐데,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종교생활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할까, 남편 쪽은 기대할 수 없으니 동문회에 열심히 나가고, 여기저기 동호회에도 가입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동양은 저승보다 이승의 삶을 중요시했다. 삶은 기(氣)가 모인 것이고, 기(氣)가 흩어지면 죽는다.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에 흡수된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서양은 이생의 삶보다 영생을 중요시한다. 이 세상에서 고통이라도, 저 세상에서 행복을 찾는다. 죽으면 육체는 땅에 묻히고, 영혼은 천국에 올라간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그렇지 아니한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한다.”
장례식은 죽은 자를 그리며,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다. 부모의 죽음은 존엄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한 번 대면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삼년상을 폄하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낳고 삼년 동안 품에 안고 키웠기 때문에, 삼년 동안 부모를 가슴에 품고 사는 게 도리다.” 부모의 죽음은 슬프다.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게 한다. “죽은 자는 산 자에게 항상 슬픔을 남긴다.” 부모의 죽음은 진지하다. 나의 삶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죽음을 보면 가까이 있는 삶이 보인다.”
오늘날 장례식은 시끌벅적하다.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라기보다 유족의 사회적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다. 상(喪)을 당하면 경황이 없다. 자동으로 연락을 돌리고, 손님을 맞이하고, 죽음에 대해 반복 설명한다. 망자를 기릴 여유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녹초가 되어 장례식이 끝난다. 부고(訃告)를 받으면 망설인다. 가까운 사이라면, 상주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오랜만에 만날 사람부터 떠올린다. 가깝지 않다면, 문상을 안 가기도 그렇고 조의금도 부담이다. 장례식 비용도 부담이다. 가구 당 평균 장례비용은 1,500만 원에 달한다. 이중 식대가 80%다. 화환과 조문객의 숫자는 유족의 사회적 위세를 보여준다.
‘작은 장례식’이 젊은 층에서 늘어나고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장례식이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애도에 집중하는 장례식이다. 절차를 간소화하고,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한다. 작은 장례식은 가족장을 기본으로 한다. 부고를 내지 않고, 조의금과 화환을 받지 않으며, 발인 예식을 하지 않는다. ‘웰다잉(Well dying)’이 노년층에서 떠오르고 있다. 웰다잉은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임종을 미리 체험하고, 장례식에 필요한 것을 준비한다. 간병, 연명치료, 장례절차, 유산 배분 등 죽음 관련 내용을 배운다.
장자가 숨을 거두려 할 때 제자들이 ‘화려한 장례식’을 준비하려 했다. 그러자 장자는 말했다. “하늘과 땅이 나의 관이고, 해와 달이 나의 옥이고, 별들이 나의 구슬이다. 만물이 밤새워 나를 애도하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러나 제자들은 말했다. “스승님이 까마귀나 솔개에게 먹히면 안 됩니다.” 장자가 대답했다. “땅 위에 놓아두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밑에 누우면 개미나 벌레의 밥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왜 새들에게 더 인색한가?” 자, 그녀를 위한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소박한 장례식을 치르자. 화려하게 치른다고 효(孝)를 하는 건 아니다. 돈보다 마음에 집중하자. 작은 돈이라도 정성이 충분히 표현된다. 체면보다 의미에 집중하자. 체면치레는 죽음의 의미를 손상시킨다. 작은 장례식을 기획하자. 비용을 줄일 수는 없을까? 하루나 이틀 장도 고려하고, 빈소 없이 화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싼 관 대신 종이 관으로 대체하고, 비싼 수의 대신 고인이 즐겨 입던 옷으로도 가능하다. 식사는 외부 식당을 이용하거나 다과로 대체할 수 있다.
둘째, 조촐한 장례식을 치르자. 성대하게 치른다고 효(孝)를 하는 건 아니다. 위로보다 애도에 집중하자. 유족을 위한 형식적인 문상은 의미가 없다. 위신보다 소신에 집중하자. 따가운 시선에 굴하지 말고, 허세 앞에 주눅 들면 안 된다. 작은 장례식을 기획하자. 불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핵가족제도로 사회적 관계가 줄면서 단출한 장례식이 늘고 있다. 부고를 안 내는 것도 고려하고, 화환과 부의금을 안 받는 것도 가능하다. 고인과 가까웠던 사람에게만 알리고, 가족, 친척, 가까운 지인을 초청하자.
셋째, 조용한 장례식을 치르자. 시끌벅적하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루라도 실컷 슬퍼하자. 부모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다. 여러 회환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삶을 이해하는 만큼 슬픔은 줄어든다. 하루라도 고인의 생(生)을 기리자.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있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질 수 있다. 가족끼리 모여 얘기해도 좋다. 하루라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자. 말없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내가 죽었다고 가정해 보자. “죽음은 항상 손끝이 닿는 곳에서 우리를 지켜본다.”
※ 필자는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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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시아버지께서 작고하셨다. 성공한 형님과 두 누님 앞으로 수십 개의 조화, 수백 명의 조문이 답지했다. 성대한 장례식이었다. 남편 조문객은 적었지만, 회사 동료들이 많이 와 주어 그녀 쪽도 체면치레는 했다. 아흔이 넘으신, 조만간 다가올 시어머니 장례는 걱정이 없다. 시아버지보다 더 성대한 장례가 될 것이다.
체면치레는 죽음의 의미를 손상시킨다
조촐하고 조용하게 치러질 어머니의 장례를 생각하면 맘이 복잡하다. 작은 장례에 대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예상되고, 최근 들어서는 성대한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자꾸 주눅도 든다. 의사에 임원까지 지낸 부부이니 주변에서는 많은 조문객이 올 것으로 생각할 텐데,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종교생활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할까, 남편 쪽은 기대할 수 없으니 동문회에 열심히 나가고, 여기저기 동호회에도 가입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동양은 저승보다 이승의 삶을 중요시했다. 삶은 기(氣)가 모인 것이고, 기(氣)가 흩어지면 죽는다.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에 흡수된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서양은 이생의 삶보다 영생을 중요시한다. 이 세상에서 고통이라도, 저 세상에서 행복을 찾는다. 죽으면 육체는 땅에 묻히고, 영혼은 천국에 올라간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그렇지 아니한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한다.”
장례식은 죽은 자를 그리며,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다. 부모의 죽음은 존엄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한 번 대면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삼년상을 폄하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낳고 삼년 동안 품에 안고 키웠기 때문에, 삼년 동안 부모를 가슴에 품고 사는 게 도리다.” 부모의 죽음은 슬프다.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게 한다. “죽은 자는 산 자에게 항상 슬픔을 남긴다.” 부모의 죽음은 진지하다. 나의 삶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죽음을 보면 가까이 있는 삶이 보인다.”
오늘날 장례식은 시끌벅적하다.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라기보다 유족의 사회적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다. 상(喪)을 당하면 경황이 없다. 자동으로 연락을 돌리고, 손님을 맞이하고, 죽음에 대해 반복 설명한다. 망자를 기릴 여유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녹초가 되어 장례식이 끝난다. 부고(訃告)를 받으면 망설인다. 가까운 사이라면, 상주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오랜만에 만날 사람부터 떠올린다. 가깝지 않다면, 문상을 안 가기도 그렇고 조의금도 부담이다. 장례식 비용도 부담이다. 가구 당 평균 장례비용은 1,500만 원에 달한다. 이중 식대가 80%다. 화환과 조문객의 숫자는 유족의 사회적 위세를 보여준다.
‘작은 장례식’이 젊은 층에서 늘어나고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장례식이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애도에 집중하는 장례식이다. 절차를 간소화하고, 합리적인 비용을 지불한다. 작은 장례식은 가족장을 기본으로 한다. 부고를 내지 않고, 조의금과 화환을 받지 않으며, 발인 예식을 하지 않는다. ‘웰다잉(Well dying)’이 노년층에서 떠오르고 있다. 웰다잉은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임종을 미리 체험하고, 장례식에 필요한 것을 준비한다. 간병, 연명치료, 장례절차, 유산 배분 등 죽음 관련 내용을 배운다.
장자가 숨을 거두려 할 때 제자들이 ‘화려한 장례식’을 준비하려 했다. 그러자 장자는 말했다. “하늘과 땅이 나의 관이고, 해와 달이 나의 옥이고, 별들이 나의 구슬이다. 만물이 밤새워 나를 애도하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러나 제자들은 말했다. “스승님이 까마귀나 솔개에게 먹히면 안 됩니다.” 장자가 대답했다. “땅 위에 놓아두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밑에 누우면 개미나 벌레의 밥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왜 새들에게 더 인색한가?”
소박하고, 조촐하며, 조용한 장례식 주목
둘째, 조촐한 장례식을 치르자. 성대하게 치른다고 효(孝)를 하는 건 아니다. 위로보다 애도에 집중하자. 유족을 위한 형식적인 문상은 의미가 없다. 위신보다 소신에 집중하자. 따가운 시선에 굴하지 말고, 허세 앞에 주눅 들면 안 된다. 작은 장례식을 기획하자. 불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핵가족제도로 사회적 관계가 줄면서 단출한 장례식이 늘고 있다. 부고를 안 내는 것도 고려하고, 화환과 부의금을 안 받는 것도 가능하다. 고인과 가까웠던 사람에게만 알리고, 가족, 친척, 가까운 지인을 초청하자.
셋째, 조용한 장례식을 치르자. 시끌벅적하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루라도 실컷 슬퍼하자. 부모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다. 여러 회환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삶을 이해하는 만큼 슬픔은 줄어든다. 하루라도 고인의 생(生)을 기리자.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있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질 수 있다. 가족끼리 모여 얘기해도 좋다. 하루라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자. 말없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내가 죽었다고 가정해 보자. “죽음은 항상 손끝이 닿는 곳에서 우리를 지켜본다.”
※ 필자는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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