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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이 본 故 이건희 회장] ‘한국의 경제대통령’ 영면

[외신이 본 故 이건희 회장] ‘한국의 경제대통령’ 영면

삼성을 ‘글로벌 거인’으로 이끈 리더십 높이 평가…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 과오 지적도
스위스 로잔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인 ‘올림픽하우스’에 달린 오륜기가 10월 26일(현지 시각) 조기로 계양됐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건희 IOC 명예회장의 사망 소식에 IOC는 큰 슬픔에 잠겼다”고 밝혔다. 이어 “이 회장은 삼성과 IOC의 톱 파트너 계약을 통해 올림픽을 후원했을 뿐 아니라 올림픽을 전 세계에 홍보하고 스포츠와 문화의 유대를 증진함으로써 올림픽 성공을 이끌었다”며 “고인의 올림픽 유산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87년 그룹 회장에 오르고 1년 뒤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삼성은 로컬 후원사로 참여했다.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때부터는 올림픽 최고 레벨 후원사(톱 파트너)가 됐다. 두 차례 계약 연장으로 2028년 로스앤젤레스 여름 올림픽까지 30년간 최고 레벨 후원사로 참여한다.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 회장은 1997년 문화위원회, 1998~1999년 재정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투병 중이던 2017년 IOC 위원직에서 물러난 후 IOC는 이 회장을 명예위원으로 위촉했다.

이건희 회장이 10월 25일 별세하자 IOC뿐 아니라 각국의 주요 외신은 고인의 생애와 경영활동 등을 상세히 전하며 삼성을 세계적 그룹으로 키운 기업가로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회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삼성을 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칩 분야의 글로벌 거인으로 성장시켰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만 해도 서구에서 삼성은 할인점에서 값싼 텔레비전과 품질 낮은 전자레인지를 파는 업체였지만, 이 회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1990년대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선두업체가 됐고 2000년대에는 모바일 시장의 중상위권을 장악했다”고 평가했다.
 조기 계양한 IOC… “올림픽 유산 영원할 것”
뉴욕타임스는 특히 이 회장이 1966년 삼성 계열사였던 동양방송을 통해 입사한 기록부터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아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스토리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또 삼성 측이 이날 “그와 함께한 여정과 모든 기억에 감사할 것”이라고 밝힌 성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AP통신은 “조그만 TV 제조사를 전 세계 가전제품 업계의 거물로 변모시킨 이건희 회장이 78세로 별세했다”며 “이 회장이 부친으로부터 지배권을 물려받은 후 30여년 간 삼성은 스마트폰·텔레비전·메모리 칩을 만드는 세계 최대 브랜드가 됐다”고 보도했다. 또 “이 회장의 리더십은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한국 경제를 일구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줬다”고 평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숨지다’라는 제목으로 타전한 프랑스 AFP통신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테크 거인으로 키운 이건희 회장은 2014년 심장마비로 병석에 눕게 됐고, 6년 이상 투병해왔다”며 사망 소식을 전했다.

영국 로이터통신도 “78세로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기업을 한국에서 가장 큰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며 “이 회장은 삼성을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혁신기업으로 만들고 한국을 산업 강국으로 탈바꿈 시킨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이어 “고인의 생애 동안 삼성전자는 2등급 TV제조업체에서 매출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첨단기술 기업으로 발전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고인에 대해 “삼성전자를 모조품 생산 업체에서 누구나 탐내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텔레비전·메모리 칩 기업으로 변모시켰다”고 전했다. 이어 “이건희 회장은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자, 순자산 207억 달러를 보유한 한국 최고 부자”라고 설명했다. 또 “세계 경제 무대에서의 삼성의 부상은 한국의 부상과 같은 의미였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한국의 대기업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일요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며 “이 회장이 2014년 심장마비로 입원했고 이후 투병을 해왔다”고 전했다. 중국 환구망은 한국 언론을 인용해 이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넘게 투병하다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장 별세는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도 주요 키워드로 올랐다.

일본 언론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세계 정상급 기업으로 키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라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은 “고인이 회장으로 취임했던 1987년 당시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점유율을 자랑할 상품이 없었으나 과감한 투자로 반도체나 휴대전화 등의 분야에서 세계 정상 기업으로 키워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고인이 회장에 취임한 이후부터 이재용 부회장에게 실질적인 경영권을 넘길 때까지 27년 사이에 “삼성그룹 총매출액이 13조5000억원에서 334조원으로 25배가 됐다”며 “삼성 중흥의 시조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공영방송 NHK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오랜 시간 그룹을 견인하고 중핵인 삼성전자를 반도체나 스마트폰 등의 분야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 시켜 한국을 대표하는 카리스마적인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속보로 전한 뒤 “한국 최대 재벌 삼성그룹을 창업가 2대 회장으로서 이끌었다”며 “그룹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휴대전화 사업을 기둥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언론은 고인과 일본의 인연에도 주목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 회장이 소년 시절 일본에서 산 경험이 있고, 일본의 사립 명문인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고 전했다.
 닛케이신문 “시총 25배 늘린 삼성 중흥의 시조”
다만 외신들은 고인이 두 차례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사면되는 등 그림자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전형적인 대형 기업인들처럼 두 차례 유죄를 선고 받은 후 사면을 두 차례 받았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 회장이 ‘끊임없는 위기의식’으로 변화를 주도했지만 “경제적 영향력 행사, 위계적이고 불투명한 지배구조, 가족 재산의 의심스러운 이전 등으로 비난 받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른바 ‘재벌’로 불리는 한국의 가족기업 왕국이 그들의 영향력을 지키는 미심쩍은 방식들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성공의 역사를 쓴 이 회장의 뒤를 이을 이재용 부회장의 앞날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부회장이 아버지 입원 이후 수년 간 그룹의 사실상 리더 역할을 맡아왔다”면서도 “아직 이 부회장에게서 명확한 경영 스타일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은 여전히 이건희 회장의 삼성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이 회장이 삼성전자 지분을 4.2% 갖고 있는 등 62개에 달하는 삼성 계열사의 일부를 소유했지만 그룹 전반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 일가가 비공식적인 관계에 의존해 왔으며, 이런 소프트파워의 많은 부분이 이 회장의 별세와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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