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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전용 플랫폼 경쟁] 새 술(전기차)은 새 부대(플랫폼) 전략 현대차 ‘E-GMP’ 주목

[전기차 전용 플랫폼 경쟁] 새 술(전기차)은 새 부대(플랫폼) 전략 현대차 ‘E-GMP’ 주목

회사 최초 전기차 전용 플랫폼 구축, 상품성·가격·효율 다 잡는다
현대차 E-GMP 플랫폼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낡은 부대에 남은 불순물이 새 술의 맛을 흐리기 때문이다. 이는 전기차에게도 마찬가지다. 완성차 업체들은 그간 전기차를 내연기관차의 플랫폼(골격)에 담아 고객에게 내놨다. 100년의 노하우가 쌓인 내연기관 자동차의 안정성은 분명한 가치가 있었지만, 이는 전기차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 때 전기차를 전용 플랫폼에 담은 테슬라의 ‘독주’가 시작됐다. 내연기관 플랫폼이 없던 테슬라는 자동차에 대한 이해와 생산기술이 부족했음에도 ‘전기차만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어 매력적인 상품을 만들어냈다. 자동차의 완성도를 떠나 소비자의 선호도만을 본다면 전기차 시장의 승자는 현재까지 단연 테슬라다.

완성차 회사들은 이제 테슬라를 추격하는 입장이 됐다. 그 시작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다.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은 앞다퉈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내놓으며 추격 고삐를 죄고 있다. 새 플랫폼이 소비자가 느낄 ‘상품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생산효율을 키우고 비용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전용 플랫폼, 핵심은 ‘모듈 방식’
폴크스바겐 MEB 플랫폼 / 사진:폴크스바겐
현대자동차그룹은 12월 2일 회사 최초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 디지털 디스커버리 행사를 열었다. E-GMP는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사업에 뛰어든 지 10년 만에 내놓은 독자개발 플랫폼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파예즈 압둘 라만 현대차그룹 차량아키텍처개발센터장(전무)은 “우리의 첫 번째 기술적 이정표”라며 “현대차그룹 차세대 전기차 라인업의 기반”이라고 소개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경쟁에 불을 지핀 것은 폴크스바겐이었다. 폴크스바겐은 2018년 MEB(Modular Elektro Baukasten·모듈 방식 전기구동 매트릭스 구조)라는 개념을 공개했는데, 현재 대부분 완성차들의 전략적 방향성이 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도 3세대 전기차 플랫폼이라는 의미의 ‘EV3’ 플랫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첫 전기차를 내년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도요타도 e-TNGA 플랫폼을 통해 전기차 양산에 나선다.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기차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전기차에는 엔진과 변속기, 연료탱크가 들어갈 공간이 필요 없다. 이 자리에 훨씬 많은 배터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완성차 브랜드들이 선보인 전용 플랫폼이 차량의 앞뒤에 모터용 소규모 공간을 내놓고 하부에 배터리를 배치한 구조로 갖춘 것은 현재까지 이 방식이 전기차에 가장 효율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품성 증진’이 다는 아니다. BMW는 2013년 내놓은 전기차 i3를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i3는 전기차 분야에서 많은 혁신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지만 전기차 시대를 앞당길 만큼의 판매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이 플랫폼을 다양한 차종으로 확대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완성차들이 내놓는 전용 플랫폼은 현대차의 E-GMP, 폴크스바겐 MEB라는 이름에 포함된 ‘M(Modular·모듈 방식)’에 핵심이 있다. 규격화를 통해 개발과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MEB 플랫폼을 이용해 ID3에 이어 ID4, ID 버즈 등으로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도 내년 ‘아이오닉5’에 이어 기아자동차 ‘CV’(프로젝트명) 등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차세대 전기차 라인업을 빠르게 채워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대차 관계자는 “모듈 방식을 통해 고객의 요구에 따라 단기간에 전기차 라인업을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조상의 복잡도가 줄어들어 생산효율이 높아짐에 따라 수익성 개선으로 재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충전 강점 지닌 현대차 플랫폼 “성능도 자신”
사진:현대자동차그룹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모듈 방식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은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거는 과정에서 필연적”이라며 “생산기술에서 역량을 가진 이 회사들이 전기차 가격 낮추기 드라이브를 걸면서 전기차 대중화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시대가 열리면 해당 플랫폼의 능력이 해당 브랜드가 내놓을 전기차의 역량으로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다만 각 브랜드가 내놓은 플랫폼은 외견상으론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내놓은 E-GMP는 어떤 차별화된 역량을 가졌을까.

G-EMP는 ‘충전 속도’ 측면에서 우위를 가졌다는 게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E-GMP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 최초로 400V, 800V 전압에서 모두 사용가능한 멀티 급속충전 기술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외 대다수 급속 충전 인프라는 400V 충전 시스템을 갖춘 전기차용으로 50~150㎾급 충전기가 대부분인데, 최근 들어 빠른 충전을 위해 800V 고전압을 이용한 350㎾급 초고속 충전 인프라가 설치되고 있는 추세다. E-GMP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800V 고전압 충전 시스템을 기본으로 적용했다. 초고속 충전기로 충전 시 18분 내 80% 충전이 가능하다.

여기에 현재 시장 보급률이 높은 400V 충전 시스템도 이용이 가능하다. 정진환 현대차 전동화개발실장(상무)은 “추가적인 부품 없이 구동모터를 이용해 승압할 수 있도록 했다”며 “현대차가 특허를 가진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800V 충전이 가능하도록 방향성을 잡으면서 충전 인프라 확대에도 나설 방침이다. 정 상무는 “(350㎾급 충전소를) 현재 고속도로에 12개, 도심에 8개 정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충전기는 충전소당 6기 정도로 계획 중으로 총 120기 수준”이라며 “계속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은 ‘성능’에 대해 강조했다. 비어만 사장은 “이 플랫폼을 통해 구현할 고성능 모델은 600마력에 달하는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며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고성능 N브랜드 모델을 출시할 계획도 물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이 기본적으로 후륜구동 기반이라는데 주목한다. 코나 일렉트릭과 아이오닉 일렉트릭 등 현대차의 기존 전기차가 전륜 기반이었던 것과 큰 차이다. 후륜구동 2WD 방식이 기본이며 트림에 따라 전륜 모터를 추가해 4WD 구동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나윤석 자동차칼럼니스트는 “리어 드라이브 모듈에 ‘세미 트레일링 암 기반’ 멀티 링크 서스펜션이 적용 됐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후륜 구동 승용차에 사용됐던 방식으로 후륜의 스티어링 효과와 주행 안정성 등에 커다란 설계 자유도를 보장하지만 섬세한 설계가 뒤따라야 하는 방식”이라며 “바퀴달린 스마트폰 식으로, 쉽게 가는 대신 제대로 된 후륜 구동 기반의 차를 만드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차는 E-GMP 플랫폼을 C세그먼트로 시작해 E세그먼트까지 확장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SUV로도 확장이 가능하다는 게 파예즈 라만 현대차 아키텍처센터장(전무)의 설명이다. 여기에 이 플랫폼을 수소연료전지차(FCEV) 분야로 확대하는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라만 전무는 “E-GMP는 배터리에 최적화됐다”면서도 “FCEV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많은 전력을 요하는 차량은 FCEV를 적극적인 대안으로 보고 있다. 비어만 사장은 (더 많은 배터리를 필요로 하는 차에 대해) 이중 배터리 시스템도 고려하고 있냐는 질문에 “이중 배터리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최고의 FCEV 기술을 가진 만큼 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선을 그었다.

현대차는 G-EMP 플랫폼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자신한다. 고영은 현대차 차량아키텍처 인테그레이션실장(상무)은 “충돌 시 승객뿐 아니라 배터리 안전성도 확보했다”며 “하중을 분산하는 것은 물론 배터리 보호를 위해 주변에 초고장력강을 사용하고 사이드실 쪽에 알루미늄 압축재를 넣어 2~3중으로 보호했다”고 강조했다.
 E-GMP도 외부 공개 나설까
폴크스바겐의 MEB와 현대차의 E-GMP의 가장 큰 차이는 사업 전략에서 나타난다. 폴크스바겐은 MEB 플랫폼을 그룹 외 다른 회사에까지 판매한다. 폭스바겐은 앞서 2019년 제네바모터쇼에서 독일의 소형 전기차 스타트업인 e.GO모바일에 MEB 플랫폼 공급계약을 밝힌 바 있다. 또 올해 들어선 미국 포드도 MEB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기차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 같은 폴크스바겐의 전략은 플랫폼 적용 범위를 타 업체까지 확대해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 원가 절감을 강화하고 가격경쟁력에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현대차의 전략은 이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E-GMP는 당초 외신들에 의해 미국 스타트업 ‘카누’와 협력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라만 전무는 “카누와의 협력은 서비스를 위한 것으로 플랫폼 개발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라며 “플랫폼 개발은 독자적으로 했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선 E-GMP 플랫폼의 공개 가능성은 미지수다. 비어만 사장은 “현재 E-GMP를 공유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시점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플랫폼 공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도 아니다. 그는 “협력에 대한 문의는 받았다.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차량이 출시되고 잠재력에 대해 고객들이 알게 된다면 연락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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