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희 테크&라이프] 코드 몰라도 코딩하는 ‘노-코드 시대’ 기술을 민주화하다
[한세희 테크&라이프] 코드 몰라도 코딩하는 ‘노-코드 시대’ 기술을 민주화하다
‘컴퓨터를 배운다’는 말 시기에 따라 의미 달라… 코딩 없이 일처리 빠르게 하는 솔루션 많아 나이가 40대 이상이라면 아마 기억할 것이다. 1980년대 초, 컴퓨터를 배운다는 것은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는 뜻이었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라면 당시 동네에 생기던 컴퓨터 학원에 가서 BASIC 언어로 프로그램 짜는 법을 배웠다. 이때 컴퓨터를 접한 사람 중에서 우리나라 1세대 벤처 기업인들이 대거 나왔다.
그러다 386, 486, 나아가 펜티엄 프로세서를 쓰는 PC가 나오며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한글·워드·엑셀 같은 업무용 소프트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면서 ‘컴퓨터를 배운다’는 말의 의미는 바뀌었다. 이제 그 말은 컴퓨터에 깔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는 법을 익히는 것을 뜻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방과후교실에서 한글과 파워포인트 사용법을 배우고, PC 활용 자격증을 취득했다. 파워포인트로 발표 자료를 만들고, 포토샵으로 사진을 꾸미며, 게임을 하느라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다. PC로 데이터를 정리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은 직장인의 기본이 되었다. 컴퓨터는 흔해졌지만, 컴퓨터를 움직이는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 당연한 일이다. 내연기관의 원리를 몰라도 자동차 운전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코딩’ 열풍이 불었다. 그때는 프로그래밍이었는데, 지금은 왜 코딩인지는 모르겠다. 스마트폰이 급속히 보급되던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 모바일 시장이 커지고 유니콘 스타트업의 스토리가 퍼지면서, 코딩은 성공에 필요한 첨단 기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나도 퇴근 후 코딩을 배워야 하나? 우리 아이는 일찍부터 코딩을 가르칠까?
코딩을 배워도 유니콘 스타트업 창업자가 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현대 세계에서 업무와 생활의 자유도는 급격히 올라갈 수 있다. 코딩을 배워 컴퓨팅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되어 보려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는 이유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확산 과정은 대부분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복잡하고 불편한 작업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보통 소수 전문가만이 그 기술을 다룰 수 있다. 그러다 기능은 많이 열악하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쓸 수 있는 새로운 기술 혹은 보완 기술이 나온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를 활용하면서 일반인과 전문가의 간격은 조금씩 줄어든다. 사용자가 늘어나면 이 시장을 노려 더 좋은 제품이 나오고, 이에 따라 사용자는 더 늘어난다.
반듯한 공문을 만들고, 회계 장부를 정리하며, 문서를 수발하고, 자료를 정리해 보존하는 모든 번거로운 일들이 PC와 랜선으로 들어갔다. 1970년대의 군대 행정반에는 ‘차트병’이 있었지만, 파워포인트 덕분에 지금은 초등학생도 프레젠테이션을 찍어낸다.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종사하던 직업이었던 비서 직군은 오피스 프로그램의 보급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내가 원하는 일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하게끔 시키는 일, 즉 코딩까지 이같은 물결에 휩쓸렸다. 컴퓨터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프로그램을 할 줄 몰라도 컴퓨터가 나를 위해 자동으로 일하게 하는 방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노 코드’ (no-code) 또는 ‘로 코드’ (lowcode) 바람이다.
예전에는 지식이 필요하고 많은 손이 갔던 일들을 이제는 웹에서 뚝딱 처리할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가 늘고 있다. 많이 쉬어졌다 해도 홈페이지 하나 만드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온라인 광고를 클릭한 고객이 도착하는 랜딩 페이지는 대부분 매우 간단하지만 웹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섣불리 만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윅스’ 같은 서비스는 HTML을 전혀 몰라도 드래그 앤 드롭만으로 그럴듯한 웹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요즘 만능 노트 앱으로 주목받는 ‘노션’에 제품 이미지와 회사 정보, 약도, 안내 문구 등을 넣으면 순식간에 멋진 회사 홈페이지가 된다.
고객들이 응답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하는 업무를 맡은 신입 사원을 생각해 보자. 엑셀에 표를 만들고 항목별로 응답을 적어 넣을 것이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 구글의 생산성 도구에는 온라인 설문을 받을 수 있는 ‘구글 설문’이란 서비스가 있다. 구글 설문으로 받은 응답은 자동으로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해 받아볼 수 있다. 데이터를 쌓고 정리하는 과정이 자동화되는 것이다.
글라이드라는 미국 스타트업은 아예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바로 앱을 만들어 준다. 웹사이트 트래픽을 분석하는 구글 애널리틱스의 데이터를 스프레드 시트에 자동으로 읽어 들인 후 원하는 기준에 따라 트래픽을 보여주는 모바일 웹앱을 만들 수 있다. 인사 담당자는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적힌 채용 면접 일정과 지원자 이력서, 면접자 메모 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채용 앱을 만들 수도 있다.
‘에어테이블’ 같은 협업 스프레드시트나 ‘먼데이닷컴’ 같은 프로젝트 관리 도구를 ‘재피어’ 같은 온라인 자동화 서비스와 연결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 관리 도구에서 어떤 업무를 특정 직원에게 배당하면, 사전에 정해진 이메일이 발송되어 안내하는 식이다. 재피어나 IFTTT 같은 도구들은 수많은 온라인 업무 도구들이 사용자가 정한 규칙과 조건, 순서에 따라 움직이도록 연결해 준다. 예를 들어, 회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기사 링크를 올리면 자동으로 스프레드시트에 기록되게 해 콘텐츠 운영 기록을 손쉽게 남길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은 작심하고 코딩을 하거나 앱을 만들기에는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직접 하려면 번거롭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코딩 못 한다고 손이 고달프다는 법이 있는가? 노-코드 기술로 우리는 코딩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 자동화를 할 수 있다. 개발자가 없어도, 수요가 크지 않아도 나를 위한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노-코드 서비스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고 복잡한 일을 처리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그러나 지금 나 스스로 나의 번거로운 업무를 해결할 방법은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더 중요한 일에 쓸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쓸수록 활용 분야는 더 많아지고, 기술은 더 좋아진다. 널리 보급된 워드프로세서와 엑셀, 파워포인트가 모두에게 지식 노동을 가능하게 했듯이 이제 노-코드 기술이 소프트웨어 제작을 모두에게 가능하게 해 줄 전망이다.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활용하는 ‘기술의 민주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서로 코드를 공유하는 깃허브의 창업자 크리스 원스트래스(Chris Wanstrath)는 “코딩의 미래는 코딩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오롯이 우리의 생각과 창의의 힘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게 될 것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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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386, 486, 나아가 펜티엄 프로세서를 쓰는 PC가 나오며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한글·워드·엑셀 같은 업무용 소프트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면서 ‘컴퓨터를 배운다’는 말의 의미는 바뀌었다. 이제 그 말은 컴퓨터에 깔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는 법을 익히는 것을 뜻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방과후교실에서 한글과 파워포인트 사용법을 배우고, PC 활용 자격증을 취득했다. 파워포인트로 발표 자료를 만들고, 포토샵으로 사진을 꾸미며, 게임을 하느라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다. PC로 데이터를 정리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은 직장인의 기본이 되었다. 컴퓨터는 흔해졌지만, 컴퓨터를 움직이는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 당연한 일이다. 내연기관의 원리를 몰라도 자동차 운전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코딩’ 열풍이 불었다. 그때는 프로그래밍이었는데, 지금은 왜 코딩인지는 모르겠다. 스마트폰이 급속히 보급되던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 모바일 시장이 커지고 유니콘 스타트업의 스토리가 퍼지면서, 코딩은 성공에 필요한 첨단 기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나도 퇴근 후 코딩을 배워야 하나? 우리 아이는 일찍부터 코딩을 가르칠까?
코딩을 배워도 유니콘 스타트업 창업자가 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현대 세계에서 업무와 생활의 자유도는 급격히 올라갈 수 있다. 코딩을 배워 컴퓨팅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되어 보려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는 이유다.
코딩의 미래는 코딩을 할 필요가 없는 것
반듯한 공문을 만들고, 회계 장부를 정리하며, 문서를 수발하고, 자료를 정리해 보존하는 모든 번거로운 일들이 PC와 랜선으로 들어갔다. 1970년대의 군대 행정반에는 ‘차트병’이 있었지만, 파워포인트 덕분에 지금은 초등학생도 프레젠테이션을 찍어낸다.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종사하던 직업이었던 비서 직군은 오피스 프로그램의 보급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내가 원하는 일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하게끔 시키는 일, 즉 코딩까지 이같은 물결에 휩쓸렸다. 컴퓨터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프로그램을 할 줄 몰라도 컴퓨터가 나를 위해 자동으로 일하게 하는 방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노 코드’ (no-code) 또는 ‘로 코드’ (lowcode) 바람이다.
예전에는 지식이 필요하고 많은 손이 갔던 일들을 이제는 웹에서 뚝딱 처리할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가 늘고 있다. 많이 쉬어졌다 해도 홈페이지 하나 만드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온라인 광고를 클릭한 고객이 도착하는 랜딩 페이지는 대부분 매우 간단하지만 웹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섣불리 만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윅스’ 같은 서비스는 HTML을 전혀 몰라도 드래그 앤 드롭만으로 그럴듯한 웹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요즘 만능 노트 앱으로 주목받는 ‘노션’에 제품 이미지와 회사 정보, 약도, 안내 문구 등을 넣으면 순식간에 멋진 회사 홈페이지가 된다.
고객들이 응답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하는 업무를 맡은 신입 사원을 생각해 보자. 엑셀에 표를 만들고 항목별로 응답을 적어 넣을 것이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 구글의 생산성 도구에는 온라인 설문을 받을 수 있는 ‘구글 설문’이란 서비스가 있다. 구글 설문으로 받은 응답은 자동으로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해 받아볼 수 있다. 데이터를 쌓고 정리하는 과정이 자동화되는 것이다.
글라이드라는 미국 스타트업은 아예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바로 앱을 만들어 준다. 웹사이트 트래픽을 분석하는 구글 애널리틱스의 데이터를 스프레드 시트에 자동으로 읽어 들인 후 원하는 기준에 따라 트래픽을 보여주는 모바일 웹앱을 만들 수 있다. 인사 담당자는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적힌 채용 면접 일정과 지원자 이력서, 면접자 메모 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채용 앱을 만들 수도 있다.
‘에어테이블’ 같은 협업 스프레드시트나 ‘먼데이닷컴’ 같은 프로젝트 관리 도구를 ‘재피어’ 같은 온라인 자동화 서비스와 연결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 관리 도구에서 어떤 업무를 특정 직원에게 배당하면, 사전에 정해진 이메일이 발송되어 안내하는 식이다. 재피어나 IFTTT 같은 도구들은 수많은 온라인 업무 도구들이 사용자가 정한 규칙과 조건, 순서에 따라 움직이도록 연결해 준다. 예를 들어, 회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기사 링크를 올리면 자동으로 스프레드시트에 기록되게 해 콘텐츠 운영 기록을 손쉽게 남길 수도 있다.
맞춤 소프트웨어 시대와 기술의 민주화
노-코드 서비스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고 복잡한 일을 처리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그러나 지금 나 스스로 나의 번거로운 업무를 해결할 방법은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더 중요한 일에 쓸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쓸수록 활용 분야는 더 많아지고, 기술은 더 좋아진다. 널리 보급된 워드프로세서와 엑셀, 파워포인트가 모두에게 지식 노동을 가능하게 했듯이 이제 노-코드 기술이 소프트웨어 제작을 모두에게 가능하게 해 줄 전망이다.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활용하는 ‘기술의 민주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서로 코드를 공유하는 깃허브의 창업자 크리스 원스트래스(Chris Wanstrath)는 “코딩의 미래는 코딩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오롯이 우리의 생각과 창의의 힘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게 될 것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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