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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미국·이란 갈등과 한국의 입지]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는 영국 유조선 억류 데자뷰?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미국·이란 갈등과 한국의 입지]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는 영국 유조선 억류 데자뷰?

전환시대 내부단속·국제정치 노리는 이란… 한국의 중동 전략 다시 가다듬어야
이란의 핵심 권력인 혁명수비대 경비정에 나포되는 한국 선박 MT 한국 케미 호. / 사진:AP=연합뉴스
이란 혁명수비대가 1월 4일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을 항해하던 한국 선적의 화학운반선 ‘MT 한국 케미(MT Hankuk Chemi)’호를 해양오염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나포해 호르무즈해의 자국 항구인 반다르아바스에 억류하면서 이란의 의도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란 당국이 한국 선박을 나포하고 억류한 이유가 겉으로 발표한 해양오염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는 관측에서다.

억류 선박의 선적의 선적사는 외부 충격이 없는 한 오염 가능성이 희박하며, 이 선박이 최근 오염 저감장치까지 장착해 오염 가능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란 당국의 주장대로 해양오염이 있었다면 이를 조사하고 피해를 파악한 뒤 이에 따른 조치를 한 뒤 선원들은 인도주의적으로 풀어주면 된다. 하지만 이란 당국은 해양오염의 근거도 즉각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당시 이란에 가까운 페르시아만 북쪽 연안이나 호르무즈 해협에서 화학물질이나 오염물질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일부에선 이란이 1월 20일 출범하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이란핵협상(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재협상을 하면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 동맹국인 한국 선박을 나포했다는 주장도 한다. JCPOA는 2015년 7월 14일 이란과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그리고 유럽연합(EU)이 체결한 협정이다. 2014년 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협상을 시작해 1년 6개월 동안 13차에 걸친 실무협상 끝에 타결됐다. 진통 끝에 체결된 협정의 골자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과 핵 활동을 중지하면 협정에 참가한 P5+1(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독일)와 EU는 이란에 대한 유엔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2017년 1월 들어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5월 8월 JCPOA에서 단독으로 탈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 가지 추가 조건을 이란에 요구했지만 이란이 응하지 않자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만류를 뿌리치고 JCPOA에서 나홀로 탈퇴하고 금융거래 금지 등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복원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란과 금융 등 거래를 한 국가나 기관에 제2차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란의 계좌가 개설된 우리은행·IBK기업은행 등 한국 금융기관이 이란산 석유수출대금 70억 달러를 이란에 직·간접적으로 송금하지 못하고 동결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 금융기관이 어떤 식으로라도 이 돈을 이란에 흘러가게 하면 미국은 해당 금융기관이 미국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제재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이 은행들은 국제금융 기능이 마비돼 자칫 무너질 수 있다. 자산을 3조5000억원 보유하고 1만4000명의 직원이 일하는 우리은행이나 3조2000억원의 자산과 9300여명의 직원이 있는 기업은행이 흔들릴 수 있다. 고객들의 자산과 직원들의 일자리가 걸린 일이다.
 미국 핵협상 수정 요구에 위협 느낀 이란 시아파 정권
미국이 JCPOA에서 나 홀로 탈퇴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JCPOA가 협정에 종료기간이 명시돼 있다는 점이다. 이란이 핵 활동 중지를 행동으로 보이면 여기에 따라 P5+1이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하면서 2025년 10월 18일까지 모든 제재를 해제한다는 ‘일몰 조항’이 들어있다. 트럼프는 이를 근거로 그 뒤에는 이란이 아무런 제재 없이 핵 개발이 가능해진다며 이 조항의 철폐를 요구했다. 둘째 JCPOA에 탄도미사일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셋째가 핵사찰 대상이다. JCPOA는 미국이 협정 전까지 찾아내서 제시한 핵 시설만 유엔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감시 대상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이 찾아낸 것을 넘어 이란의 전체 군사시설을 포함한 이란 전역을 사찰 대상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미 과거 오랜 협상을 거쳐 결론을 내린 합의를 놓고 재협상하자는 것도 그렇지만 미국의 요구가 이란 권력의 중추인 혁명수비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수비대를 노린다는 사실은 이란의 권력 체제에 비수를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란은 국민의 선거로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 위에 이슬람 시아파 법학자들이 뽑은 최고지도자(라흐바르 에 모아잠. 지도자라는 뜻의 라흐바르로 줄이기도 함)가 행정부·입법부·사법부를 감독하고 선출직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임면권을 보유한다. 서구에서는 이를 신정체제로 본다.

이 신정체제를 옹위하는 것이 이란의 혁명수비대다. 이런 사실은 이란 군의 조직을 살펴보면 곧바로 드러난다. 이란 군대의 통수권자는 독특하게도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아닌 시아파 사제이자 최고 지도자다. 현재 최고 지도자는 알리 하메네이(82세)다. 1989년 초대 최고지도자인 이슬람혁명 지도자 루흘라 호메이니가 별세하자 뒤를 이어 30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 한국 선박 나포사건도 이란 정부가 아닌 최고지도자-혁명수비대로 이어지는 신정체제 최고지도부에서 주도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란은 군대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지역방위를 맡은 국군(아르테슈·병력 35만~55만 추정)과 기동전·특수전과 보안관리를 통한 정권 호위 임무를 맡은 혁명수비대(세파·12만~18만 명 추정)로 나뉜다. 최고 지도자는 국군과 혁명수비대 모두의 최고사령관이다. 혁명수비대 산하의 쿠드스군은 해외 작전과 혁명 수출을 담당하는 것으로 짐작되고 있는데, 조직·병력·장비·예산이 모두 비밀이다. 쿠드스는 아랍과 이란에서 예루살렘을 뜻하는데,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이 조직의 임무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란에선 이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꺼려 시오니스트라 부른다)로부터 찾아오는 것임을 보여준다. 1997~1998년 무렵 쿠드스군 사령관에 오른 것으로 추정되는 거셈 솔레이마니가 20년 이상 지휘하면서 최고 하메네이에게 직보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솔레이마니는 지난해 1월 3일 바그다드에서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숨졌다. 쿠드스군은 정권의 군대로서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패권을 추구하는 게 주 임무다.
 이란, 탄도미사일 개발로 전력 보완 미국·주변국 위협
30년 넘게 이란을 독재 중인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 사진:AFP=연합뉴스
탄도미사일은 혁명수비대를 상징하는 무기체계다. 탄도미사일은 자체 추진으로 발사지점부터 목표물까지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비행하는 무기체계다. 탄도미사일은 장거리 폭격기 및 잠수함과 함께 핵무기 운반 전력의 3대 핵심이다. 이란이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해 사거리 5500㎞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고 사거리를 계속 늘리면 1만1600㎞ 떨어진 미국도 위협할 수 있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한다면 미국으로선 악몽이다. 숙적인 이스라엘에도 당연히 나쁜 꿈이다.

핵과 ICBM이 아니더라도 이란이 전술용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은 이스라엘은 물론 이란의 또 다른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에도 거북할 수밖에 없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최대 도시 텔아비브까지는 1900㎞ 정도의 거리다. 이란과 사우디는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200여㎞ 정도 떨어져 있다. 게다가 이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석유 수출단지인 담맘까지 그 정도 거리다. 중거리 미사일은 물론 웬만한 전술용 단거리 미사일로도 때릴 수 있는 거리다.
 6월 대선 앞두고 권력 기반 다지려는 이란 신정체제
한국은 유정현 주 이란 한국대사를 통해 2020년 5월 17일 이란 정부에 100만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의료·검사·방역 물품을 전달했다. / 사진:주 이란 한국대사관
이란에는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은 전술용 탄도미사일도 다양하다. 이란이 미사일에 집착한 결과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전에는 미국의 지원으로 이슬람권 최강의 공군 전력을 확보했지만 혁명 뒤 미국과 서방의 제재로 전투기 도입과 부품 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19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수많은 항공기를 상실하고도 전력을 재건하지 못했다. 노후한 구식 전투기가 쌓였을 뿐 신형 전투기 전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전에 도입한 62대의 미국제 F-4D/E 팬텀과 55대의 F-5E/F 타이거 II, 43대의 F-14 톰캣과 함께 6대의 프랑스제 미라주 F-1E, 그리고 1991년 이후 들여온 36대의 소련·러시아제 미그-29가 공군 전력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공군 전력이 비교적 열세다. 이란은 이를 다량의 전술 미사일로 보완하고 있다. 미사일은 이란의 군사력을 담보하는 핵심 무기체계다.

지난해 1월 3일 이란의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숨진 쿠드스(예루살렘)군의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이름을 붙인 ‘순교자 하지 거셈 솔레이마니 미사일(1400㎞)도 개발했다. 하지는 메카 순례를 다녀온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이처럼 탄도미사일은 이란의 전력, 특히 정예 혁명수비대를 상징하는 무기체계다.

이 때문에 이란은 탄도미사일 관련 협상에 난색을 보여왔다. 신정체제의 명줄과 연결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재협상 조건으로 제시한 데는 이란 신정체제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벌어진 뒤인 1979년 11월 4일 벌어져 444일이 지나 1981년 1월 20일 끝난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에 대한 앙금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여파로 지니 카터 당시 대통령은 1980년 11월의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카터 대통령은 중동의 지각을 뒤흔들고 동맹국을 적국으로 돌아서게 한 이슬람혁명에 원만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은 물론 인질사건을 당하자 구조대를 보냈다가 사막에서 헬기 충돌 사고로 작전을 제대로 벌이지도 못하고 실패하면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세력은 1980년 대선에서 카터를 누르고 당선한 로널드 레이건의 취임식날인 1월 20일에 인질을 최종 석방했다. 누가 봐도 정치적이고 계산된 택일이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정권은 이처럼 홍보와 정치적 계산이 능하고 전략적인 세력으로 평가 받는다. 이런 세력의 핵심이 이번에 한국 선박 나포를 주도한 혁명수비대다.

게다가 최근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부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란은 오는 6월 18일 대선을 앞두고 있다. 선거로 선출되는 최고의 자리다. 물론 대통령은 최고 지도자의 감독 아래에 있어 아무리 선거로 당선해도 마음껏 개혁 정치를 하기는 힘들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후보는 이슬람 율법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야 출마할 수 있기 때문에 신정 체제에 순응하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 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시아파 사제로 이란에선 개혁가 정치인으로 통한다. 이번 이란 대선에서 보수파는 당연히 개혁파가 아닌 보수파가 당선하기를 바란다. 이번 대선에선 2005~2013년 대통령을 지낸 보수파 정치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출마가 유력하다. 지난해 10월 여론조사에선 아마디네자드가 37%로 후보군에서 1위를 차지했다. 보수파인 무함마드 갈리바프 전 테헤란 시장도 10%의 지지를 얻었다.
 한국 선박 나포를 이란 정권 홍보 역이용 ‘주의’
문제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와 경제난 등으로 민심이 싸늘하다는 점이다. 단순히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를 넘어 이란 신정체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쌓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수호를 담당하는 혁명수비대는 어떻게 해서라도 국민의 관심을 딴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한국 선박 억류를 통해 이란이 원하는 것은 결국 국내정치용일 가능성이 크다.

혁명수비대는 이미 지난해 7월 영국 유조선을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포해 억류하면서 상당한 ‘전과’를 올린 전력이 있다. 그 2주 전 이란 유조선이 시리아로 향하다 지중해 입구의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EU의 시리아에 대한 제재위반 혐의로 나포됐다. 이란은 영국 유조선을 불법항해라는 황당한 혐의로 65일간 억류하다 결국 협상을 통해 석방했다. 지브롤터에 억류됐던 이란 유조선을 풀어주기로 한 조건으로 이뤄진 거래였다. 이란 국내에선 혁명수비대의 성과로 선전됐다. 이를 통해 혁명수비대는 존재 의미를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이번 한국 선박의 나포와 억류도 영국 유조선 억류의 데자뷰(Dejavu·기시감)를 노린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이란과의 협상에서 해양오염 증거를 내놓으라는 요구는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법 위반이라며 제소하겠다는 압박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은 이란 국내에 오히려 ‘석유수출 대금 70억 달러를 주지 않는 도둑이 오히려 이란을 협박한다’로 선전할 수 있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이미 이란 매체에는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사옥 사진이 ‘도둑’이라는 제목과 함께 커다랗게 실리고 있다. 따라서 이런 압박은 국내용이라면 모를까 억류된 선원과 선박을 돌려받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면담 거부, 논의 거부, 약 올리기 등으로 한국을 곤혹스럽게 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이란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사건 해결을 기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이란 전문가, 중동 정치 전문가, 협상 전문가 등 다양한 인력을 동원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양 사고 수준을 한참 넘어서기 때문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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