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협약기구’ 참여 거부한 중고차업계의 자충수] “현대차 진출 가정하면 대화 안 해”
[‘상생협약기구’ 참여 거부한 중고차업계의 자충수] “현대차 진출 가정하면 대화 안 해”
통상문제·여론 봐선 ‘생계형 지정’ 어려워… ‘독과점 여부’가 변수 현대자동차의 중고자동차 시장 진출을 두고 기존 중고차업계와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 주도로 발족하려던 ‘상생협약기구’에 중고차업계가 돌연 참여를 거부하고 나서면서다. 중고차업계의 대화 거부로 중소기업벤처부로서는 미뤄왔던 ‘생계형 업종 지정 심의’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업종 지정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중고차업계의 ‘상생’ 대화 거부가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2월 17일 중고차상생협력위원회 발족식을 계획해왔다. 더불어민주당 내 을지로위원회와 완성차업계, 중고차매매 업계,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하는 이 위원회는 중고차 시장 진출을 원하는 대기업과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간 상생안을 도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획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현대차 임원이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 한 이후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과 관련한 논란이 지속하자 정부와 여당이 나서 수차례의 간담회와 공청회를 거쳐 발족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예정됐던 위원회 발족식은 돌연 취소됐다. 참여키로 했던 중고차업계가 돌연 전날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중고차업계의 갑작스런 불참 선언은 내부 이견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중고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그간 실무 담당자들이 대화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사무국에 상생협력위원회 관련한 건이 보고된 건 지난 15일이었다”며 “조합원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 불참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명목상으로 위원회 출범은 ‘무기한 연기’이지만 사실상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연합회 관계자는 “정부·여당·완성차업계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상생협력위원회라는 명칭 자체가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위원회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상생협력위원회 구성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법적으로 현대차 등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기존 매매단체와의 상생방안을 마련하려는 의도였는데, 중고차업계가 대화 참여를 거부하며 스스로 기회를 걷어찼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과)는 “완성차업계를 힘들게 참여시켜 대화의 장을 마련했는데, 연합회의 돌연 불참으로 상생을 요구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며 “중고차업계의 이번 불참은 그간 진행한 대화의 신뢰를 잃게 했고, 관계자들 사이에선 중기부의 생계형업종 심의위원회를 빨리 열어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013년부터 ‘중고차 매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도록 해왔는데, 2019년 중고차매매업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일몰됐다. 중고차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동반성장위는 같은 해 11월 이에 대해 ‘부적합’ 의견을 중기부에 전달했다. 중기부는 1년이 넘게 이를 심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중기부가 상생안을 만들어 중고차업계 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는 민간위원으로만 구성됐는데, 위원회가 평가에 임할 경우 동반성장위의 의견을 거스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만약 중고차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통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박종찬 중기부 상생협력정책관은 지난해 12월 국회 공청회에서 “중고자동차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미국·EU 등과 통상 마찰 소지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심의에서 중고차매매업이 생계형 업종으로 지정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자동차협회(KAMA)가 조속한 심의를 요청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만기 KAMA 회장은 상생협력위원회 설립 불발 직후 “이번에 중고차매매 단체들의 불참으로 중고차상생협력위원회 발족이 무산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라며 “중고차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에 대한 법정 심의 기한이 이미 9개월 이상 지난 점을 감안해 정부는 조속히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결론을 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중고차업계는 아직 생계형 업종으로 지정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 생계형 적합업종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며 “중기부가 동반위의 의견서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를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여론이 현대차의 중고차 사업 진출을 반기는 분위기라는 점은 중고차 업계에겐 불리한 상황이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대기업의 독점이 걱정된다면 상생 방안과 제도적인 규제나 보완 장치를 마련하면 되지 진입 자체를 막을 일은 아니다”라며 “앞서 6년의 보호기간 동안 신뢰를 얻지 못한 매매업계에 또다시 기회를 주며 소비자 피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일각에선 생계형 업종 지정과는 별개로 기존 대기업 진출과 현대차의 진출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독과점을 막는 관점에서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신차와 중고차가 모두 선택지가 될 수 있는데, 국내 신차 시장의 70~80%를 차지하는 현대·기아차가 중고시장에 진출해 점유율을 높이면 독과점 피해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독자 경영되는 복수의 총판(딜러사)을 통해 자동차를 판매하는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 시장은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더 크다. 신현도 유카 대표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유통 구조는 생산 공장의 운영 주체가 판매 네트워크까지 직접 운영하는 직판체제로 매우 특별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자동차와 관련한 전후방 산업의 영향까지 고려했을 때 이런 우려는 더 커진다. 중고차업계 대기업인 케이카의 정인국 대표는 “현재의 중고차 시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어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사업자가 진출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생태계인데, 완성차업체가 중고차매매업에 진출하면 중고차 시장은 물론 전후방 산업 전반에 걸쳐 독점적인 지위를 확장해 현재 중고차 시장 생태계를 파괴하게 된다”며 “이는 소비자 복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완성차업체의 중고차매매업 진입을 제한하되, 기존 매매업체와 중고차 전문기업, 다양한 신규 업체들이 경쟁·협력하며 공생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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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업종 심의위원회 조속 개최 인식 커져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현대차 임원이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 한 이후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과 관련한 논란이 지속하자 정부와 여당이 나서 수차례의 간담회와 공청회를 거쳐 발족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예정됐던 위원회 발족식은 돌연 취소됐다. 참여키로 했던 중고차업계가 돌연 전날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중고차업계의 갑작스런 불참 선언은 내부 이견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중고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그간 실무 담당자들이 대화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사무국에 상생협력위원회 관련한 건이 보고된 건 지난 15일이었다”며 “조합원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 불참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명목상으로 위원회 출범은 ‘무기한 연기’이지만 사실상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연합회 관계자는 “정부·여당·완성차업계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상생협력위원회라는 명칭 자체가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위원회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상생협력위원회 구성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법적으로 현대차 등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기존 매매단체와의 상생방안을 마련하려는 의도였는데, 중고차업계가 대화 참여를 거부하며 스스로 기회를 걷어찼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과)는 “완성차업계를 힘들게 참여시켜 대화의 장을 마련했는데, 연합회의 돌연 불참으로 상생을 요구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며 “중고차업계의 이번 불참은 그간 진행한 대화의 신뢰를 잃게 했고, 관계자들 사이에선 중기부의 생계형업종 심의위원회를 빨리 열어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013년부터 ‘중고차 매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도록 해왔는데, 2019년 중고차매매업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일몰됐다. 중고차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동반성장위는 같은 해 11월 이에 대해 ‘부적합’ 의견을 중기부에 전달했다. 중기부는 1년이 넘게 이를 심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중기부가 상생안을 만들어 중고차업계 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는 민간위원으로만 구성됐는데, 위원회가 평가에 임할 경우 동반성장위의 의견을 거스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만약 중고차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통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박종찬 중기부 상생협력정책관은 지난해 12월 국회 공청회에서 “중고자동차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미국·EU 등과 통상 마찰 소지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심의에서 중고차매매업이 생계형 업종으로 지정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자동차협회(KAMA)가 조속한 심의를 요청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만기 KAMA 회장은 상생협력위원회 설립 불발 직후 “이번에 중고차매매 단체들의 불참으로 중고차상생협력위원회 발족이 무산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라며 “중고차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에 대한 법정 심의 기한이 이미 9개월 이상 지난 점을 감안해 정부는 조속히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결론을 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중고차업계는 아직 생계형 업종으로 지정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 생계형 적합업종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며 “중기부가 동반위의 의견서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를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여론이 현대차의 중고차 사업 진출을 반기는 분위기라는 점은 중고차 업계에겐 불리한 상황이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대기업의 독점이 걱정된다면 상생 방안과 제도적인 규제나 보완 장치를 마련하면 되지 진입 자체를 막을 일은 아니다”라며 “앞서 6년의 보호기간 동안 신뢰를 얻지 못한 매매업계에 또다시 기회를 주며 소비자 피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일각에선 생계형 업종 지정과는 별개로 기존 대기업 진출과 현대차의 진출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독과점을 막는 관점에서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 진출은 기존 대기업 진출과 다르다?
자동차와 관련한 전후방 산업의 영향까지 고려했을 때 이런 우려는 더 커진다. 중고차업계 대기업인 케이카의 정인국 대표는 “현재의 중고차 시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어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사업자가 진출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생태계인데, 완성차업체가 중고차매매업에 진출하면 중고차 시장은 물론 전후방 산업 전반에 걸쳐 독점적인 지위를 확장해 현재 중고차 시장 생태계를 파괴하게 된다”며 “이는 소비자 복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완성차업체의 중고차매매업 진입을 제한하되, 기존 매매업체와 중고차 전문기업, 다양한 신규 업체들이 경쟁·협력하며 공생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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