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혁신·소통’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공유오피스 사업 일방적 종료 통보… 논란되자 사과했지만 ‘선택적 소통’ 지적
[색 바랜 ‘혁신·소통’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공유오피스 사업 일방적 종료 통보… 논란되자 사과했지만 ‘선택적 소통’ 지적
“어떤 때는 내가 회사대표인지 민원센터인지 모를 때가 있다. 보아달라는 서류, 해달라는 결재, 답해달라는 문자, 10분만 들어 달라는 의견, 해달라는 전화 다 들어주고 나면 하루가 가뿐히 간다. 어쩜 이리 빈틈을 잘 알고 치고 들어오는지.”
- (2020년 11월 3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페이스북)
“정태영 부회장의 소통은 자기 포장을 위한 마케팅 수단 정도로 보인다. 단순한 임대사업이 아니라던 공유오피스 사업 종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입주사들에 한 달 뒤 나가라는 현대카드의 일방적 통보를 받고 나니 소통은 남의 얘기 같았다.”
-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 입주자 A씨) 정태영 부회장의 소통 방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현대카드 퇴직자들과도 대화하는 ‘열린 경영자’로 알려졌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엔 소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선택적 소통’, ‘이미지용 소통’이라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현대카드의 공유오피스 ‘스튜디오 블랙’ 사업 철수 논란이 정태영 부회장의 선택적 소통 비판에 불을 붙였다.
스튜디오 블랙은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공유오피스다. 지난 2017년 1월 문을 열었다. 정태영 부회장은 SNS를 통해 “스튜디오 블랙은 공유사무실이 아니라 스타트업·크리에이터·디지털 회사 등의 생태계 형성을 목표로 하는 공간이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킹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며 스튜디오 블랙의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현대카드 역시 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등과 연계할 아이디어가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공간을 지원하고 해외 진출 컨설팅을 지원한다고 홍보했다. 그런데 지난 2월 15일 현대카드는 스튜디오 블랙 오픈 4년 만에 사업 철수 계획을 알렸다. 현대카드가 밝힌 스튜디오 블랙 사업 종료일은 2021년 4월 1일. 입주사들에는 3월 한 달간 사무실 이용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한 달 말미를 줄 테니 나가라는 뜻이다.
현대카드는 “많은 고민과 방향에 대한 논의 끝에 운영 종료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지만, 사업 종료 알림과 퇴거 방침을 전달하기까지 입주사들과는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입주사들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던 셈이다. 길게는 1년 가까이 공유오피스 사무실을 빌려 사업을 하던 스타트업은 당장 쫓겨나서 새 사무실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현대카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스튜디오 블랙에 입주한 기업은 60여 곳. 이 가운데 몇몇 기업은 현대카드의 강제 퇴거 방침에 대해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스튜디오 블랙 입주 스타트업 관계자 A씨는 “밑도 끝도 없이 당장 새로운 사무실을 구해 나가야 할 상황인데 대기업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정태영 부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을 이야기했다. 2월 16일에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네트워크 오디오 애플리케이션(앱) ‘클럽하우스’에 관한 글을 올리며 “정제된 생각을 올리는 기존 앱과 달리 시나리오가 없이 생명력 넘치는 소통이 가능한 앱”이라고 밝혔다. 현대카드가 스튜디오 블랙 사업 종료 방침을 입주사들에 통보한 다음 날이었다.
이튿날에도 정 부회장은 “SNS를 안 하는 분을 어려운 설득 끝에 클럽하우스에 입성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연예인을 언급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자 스튜디오 블랙 입주사 관계자의 가족인 B씨가 정태영 부회장 페이스북에 직격탄을 날렸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데도 3월 말까지 퇴실하라는 통보에 대해 그 이유를 밝혀달라고 한 것이다. 준비 기간 없이 (사업종료 및 퇴실 통보를) 진행한 까닭도 물었다. B씨는 “담당자가 왜 급하게 한 달 반 안에 종료하는지 이야기를 안 해 준다”며 “서비스를 오픈할 때만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히 하고 종료할 땐 아무런 언급도 안 하시는 게 현대카드 스타일이냐”고 정태영 부회장의 소통 방식을 비판했다.
논란이 되자 정태영 부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 부회장은 “철수라는 결정을 하게 된 점 매우 죄송하고 개인적으로 허탈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회사의 담당하시는 분들과 상세한 논의가 있었고 정들었던 스타트업 분들의 지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도출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큰 불편을 끼치게 된 점은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형적이 ‘발 빼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직원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몰랐다며 빠져나가는 행태라는 것이다. 스튜디오 블랙은 정 부회장이 오픈 전부터 SNS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애정을 드러낸 사업이다. 이런 사업을 실무자 단계에서 일방적으로 중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2016년 12월, 정 부회장은 “스튜디오 블랙이 (2017년)1월 1일부터 퍼블릭 오프닝에 들어가는 프리미엄 공유 오피스다. 오피스에 대한 현대카드의 생각과 본사 운영방식을 고스란히 담았다”며 “창조적인 소기업들이 입주해 어울리는 작은 사회를 지향(한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2017년 6월에는 “스타트업을 포함한 흥미로운 크리에이티브와 디지털 회사들의 생태계 형성이 목표다. 혼자 사색하고 싶어 하는 1인 임대도 많다”며 관심을 표현했다. 2019년 4월에는 “위워크 부산 1호가 현대카드 빌딩에 들어왔다. 20여 개 층 중에 6개 층을 위워크에 임대주면 우리도 필요할 때마다 사무실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는 바로 옆에서 현카(현대카드)의 스튜디오 블랙과 경쟁 관계고 부산에서는 임대차 관계가 된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이 스튜디오 블랙의 사업 종료를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현대카드 관계자는 “사업이 종료되는 것은 아셨겠지만, 부회장님께서 작은 사업까지 일일이 관여하시지는 않는다, 사업 종료와 관련해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실무자들의 실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정리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까지 부회장님이 아시진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대카드 측의 행보를 보면 단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스튜디오 블랙의 사업을 종료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었을 것이란 판단이 나온다. 현대카드는 올해 1월 14일부터 스튜디오 블랙 애플리케이션(앱) 운영을 중단했다. 이전까지 회의실이나 방문자 예약, 공지사항 안내 등을 애플리케이션으로 할 수 있었는데 회사가 앱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다. 회의실 예약 등 대부분의 공유오피스 관련 업무가 스마트폰 앱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앱 운영 중단 시점부터는 사업 종료가 확정됐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현대카드가 쏘카와 연계해 스마트폰으로 스튜디오 블랙 입주사에 제공하던 공유 차량 할인 서비스 마감일도 2021년 3월 31일로 알려졌다.
중요한 것은 스튜디오 블랙이 입점한 건물의 건물주와 현대카드가 맺은 임대차 계약 종료 시점이 2021년 5월이라는 점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사업 종료에 맞춰 재계약하지 않았다”면서도 “(사업 종료를) 결정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빌딩을 통으로 계약·연장하는 경우엔 6개월 전부터 조건 협상 등 이야기가 오가는 일이 많은데, 진작 결정을 하고 뒤늦게 공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공유오피스 사업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 국내 대표 공유오피스 업체인 패스트파이브는 전국 27개 공유 사무실 지점을 운영한다. 패스트파이브 관계자는 “만약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지는 지점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질문에 “아직 지점을 폐쇄하거나 이전한 적은 없다”며 “다만 그런 일이 생기면 입주 기업에 충분히 사정을 설명하고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다른 지점으로 이전을 돕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를 믿고 들어온 입주사들인데 그냥 내보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마케팅업계에서는 마케팅과 실무에서 생긴 괴리가 기업의 현대카드 기업 이미지를 깎아내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비자에게는 그동안 회사가 진행했던 마케팅이 거짓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업계 관계자는 “세상에 없던, 현대카드만의 철학이 담겼다는 사업을 접으면서 일방적으로 입주사들을 내보낸다는 건 회사 이미지에 먹칠하는 일이다. 회사는 의도하고 한 일이 아니겠지만, 소비자는 (현대카드가) 코워킹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서 말만 그럴싸하게 포장했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CEO가 회사보다 유명해질 때 벌어질 수 있는 문제점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CEO의 장점이 주목받으면 회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안 좋은 점이 조명되면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정태영 부회장이 SNS 활동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팬덤이 생길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에게 외면 받는 순간 더 큰 역풍을 받을 수 있다”며 “CEO가 대중 앞에 나서야 할 때도 있겠지만 SNS에서 물러나 있는 것도 전략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현대카드는 입주사들에 사과와 추후 대처에 대한 방식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다시 보냈다. 현대카드는 “새 사무실을 구하고 또 이전하는 과정에서 겪게 될 어려움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이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입주사 분들이 사무실 이전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일정을 조정하겠다”고도 했다. 정태영 부회장이 공유오피스 사업을 만만하게 보고 시작했다가 실패하자 접은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과거 정 부회장은 스튜디오 블랙이 단순한 공유오피스가 아니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스튜디오 블랙이나 핀베타나 임대 수익이 목적이 아니어서 받는 사업군도 제한돼 있다”, “스튜디오블랙이 단순한 공유오피스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교류 장소이고 옆에서 현카(현대카드)가 아이디어를 돕거나 채택하거나 투자를 하는 구체적인 활동들이 나타나고 있다.(2017년 7월 14일)”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카드의 스튜디오 블랙 운영은 3월까지다. 공유오피스 업체 관계자는 “건물 반환을 위한 원상복구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물주와 계약 기간을 두 달이나 남긴 상태에서 사업을 종료한 건 회사 측이 하루라도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공유오피스 사업은 임대 사업만으로는 수익이 크게 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가 소유한 건물을 직접 빌려주는 임대차 방식이 아니라 ‘전전대’라고 불리는 전대차 사업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전대차 사업은 어떤 상가나 건물을 임대로 빌린 사업자가 제3자에게 돈을 받고 세를 놓는 사업이다. 빌딩을 예로 들면 ‘건물주’와 이 건물을 빌리는 ‘전대인’, 전대인과 다시 임대 계약을 맺고 들어오는 ‘전차인’이 생긴다. 현대카드가 전대인이라면 스튜디오 블랙에 입주한 스타트업은 전차인이 되는 셈이다.
전차인에게 받은 월세 상당 부분을 건물주에게 주고 건물도 관리해야 하는 전대인이 수익을 남기는 건 쉽지 않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형 공유오피스 사업자도 건물 계약 조건이나 공실에 따라 손해를 보기도 한다. 과거 위워크도 장기계약 문제와 거액 손실 때문에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패스트파이브 관계자는 “지점을 여러 곳 보유하고 입주사가 많으면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 효과가 나온다. 사무실 모니터에 표시하는 광고 수익 등 다양한 수익원도 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공유오피스는 임대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카드 관계자는 “스튜디오 블랙이 임대수익만을 위해 운영했던 사업이 아니다. 스타트업과의 협업과 상생을 고민했다”며 “다른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모델을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병희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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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1월 3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페이스북)
“정태영 부회장의 소통은 자기 포장을 위한 마케팅 수단 정도로 보인다. 단순한 임대사업이 아니라던 공유오피스 사업 종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입주사들에 한 달 뒤 나가라는 현대카드의 일방적 통보를 받고 나니 소통은 남의 얘기 같았다.”
-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 입주자 A씨) 정태영 부회장의 소통 방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현대카드 퇴직자들과도 대화하는 ‘열린 경영자’로 알려졌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엔 소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선택적 소통’, ‘이미지용 소통’이라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현대카드의 공유오피스 ‘스튜디오 블랙’ 사업 철수 논란이 정태영 부회장의 선택적 소통 비판에 불을 붙였다.
스튜디오 블랙은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공유오피스다. 지난 2017년 1월 문을 열었다. 정태영 부회장은 SNS를 통해 “스튜디오 블랙은 공유사무실이 아니라 스타트업·크리에이터·디지털 회사 등의 생태계 형성을 목표로 하는 공간이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킹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며 스튜디오 블랙의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현대카드 역시 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등과 연계할 아이디어가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공간을 지원하고 해외 진출 컨설팅을 지원한다고 홍보했다.
‘사업 종료’ 일방적 통보, 논란 일자 사과
현대카드는 “많은 고민과 방향에 대한 논의 끝에 운영 종료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지만, 사업 종료 알림과 퇴거 방침을 전달하기까지 입주사들과는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입주사들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던 셈이다. 길게는 1년 가까이 공유오피스 사무실을 빌려 사업을 하던 스타트업은 당장 쫓겨나서 새 사무실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현대카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스튜디오 블랙에 입주한 기업은 60여 곳. 이 가운데 몇몇 기업은 현대카드의 강제 퇴거 방침에 대해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스튜디오 블랙 입주 스타트업 관계자 A씨는 “밑도 끝도 없이 당장 새로운 사무실을 구해 나가야 할 상황인데 대기업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정태영 부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을 이야기했다. 2월 16일에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네트워크 오디오 애플리케이션(앱) ‘클럽하우스’에 관한 글을 올리며 “정제된 생각을 올리는 기존 앱과 달리 시나리오가 없이 생명력 넘치는 소통이 가능한 앱”이라고 밝혔다. 현대카드가 스튜디오 블랙 사업 종료 방침을 입주사들에 통보한 다음 날이었다.
이튿날에도 정 부회장은 “SNS를 안 하는 분을 어려운 설득 끝에 클럽하우스에 입성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연예인을 언급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자 스튜디오 블랙 입주사 관계자의 가족인 B씨가 정태영 부회장 페이스북에 직격탄을 날렸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데도 3월 말까지 퇴실하라는 통보에 대해 그 이유를 밝혀달라고 한 것이다. 준비 기간 없이 (사업종료 및 퇴실 통보를) 진행한 까닭도 물었다. B씨는 “담당자가 왜 급하게 한 달 반 안에 종료하는지 이야기를 안 해 준다”며 “서비스를 오픈할 때만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히 하고 종료할 땐 아무런 언급도 안 하시는 게 현대카드 스타일이냐”고 정태영 부회장의 소통 방식을 비판했다.
논란이 되자 정태영 부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 부회장은 “철수라는 결정을 하게 된 점 매우 죄송하고 개인적으로 허탈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회사의 담당하시는 분들과 상세한 논의가 있었고 정들었던 스타트업 분들의 지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도출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큰 불편을 끼치게 된 점은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홍보는 CEO ‘덕’, 논란은 직원 ‘탓’
2016년 12월, 정 부회장은 “스튜디오 블랙이 (2017년)1월 1일부터 퍼블릭 오프닝에 들어가는 프리미엄 공유 오피스다. 오피스에 대한 현대카드의 생각과 본사 운영방식을 고스란히 담았다”며 “창조적인 소기업들이 입주해 어울리는 작은 사회를 지향(한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2017년 6월에는 “스타트업을 포함한 흥미로운 크리에이티브와 디지털 회사들의 생태계 형성이 목표다. 혼자 사색하고 싶어 하는 1인 임대도 많다”며 관심을 표현했다. 2019년 4월에는 “위워크 부산 1호가 현대카드 빌딩에 들어왔다. 20여 개 층 중에 6개 층을 위워크에 임대주면 우리도 필요할 때마다 사무실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는 바로 옆에서 현카(현대카드)의 스튜디오 블랙과 경쟁 관계고 부산에서는 임대차 관계가 된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이 스튜디오 블랙의 사업 종료를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현대카드 관계자는 “사업이 종료되는 것은 아셨겠지만, 부회장님께서 작은 사업까지 일일이 관여하시지는 않는다, 사업 종료와 관련해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실무자들의 실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정리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까지 부회장님이 아시진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대카드 측의 행보를 보면 단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스튜디오 블랙의 사업을 종료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었을 것이란 판단이 나온다. 현대카드는 올해 1월 14일부터 스튜디오 블랙 애플리케이션(앱) 운영을 중단했다. 이전까지 회의실이나 방문자 예약, 공지사항 안내 등을 애플리케이션으로 할 수 있었는데 회사가 앱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다. 회의실 예약 등 대부분의 공유오피스 관련 업무가 스마트폰 앱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앱 운영 중단 시점부터는 사업 종료가 확정됐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현대카드가 쏘카와 연계해 스마트폰으로 스튜디오 블랙 입주사에 제공하던 공유 차량 할인 서비스 마감일도 2021년 3월 31일로 알려졌다.
중요한 것은 스튜디오 블랙이 입점한 건물의 건물주와 현대카드가 맺은 임대차 계약 종료 시점이 2021년 5월이라는 점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사업 종료에 맞춰 재계약하지 않았다”면서도 “(사업 종료를) 결정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빌딩을 통으로 계약·연장하는 경우엔 6개월 전부터 조건 협상 등 이야기가 오가는 일이 많은데, 진작 결정을 하고 뒤늦게 공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공유오피스 사업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 국내 대표 공유오피스 업체인 패스트파이브는 전국 27개 공유 사무실 지점을 운영한다. 패스트파이브 관계자는 “만약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지는 지점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질문에 “아직 지점을 폐쇄하거나 이전한 적은 없다”며 “다만 그런 일이 생기면 입주 기업에 충분히 사정을 설명하고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다른 지점으로 이전을 돕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를 믿고 들어온 입주사들인데 그냥 내보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마케팅업계에서는 마케팅과 실무에서 생긴 괴리가 기업의 현대카드 기업 이미지를 깎아내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비자에게는 그동안 회사가 진행했던 마케팅이 거짓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업계 관계자는 “세상에 없던, 현대카드만의 철학이 담겼다는 사업을 접으면서 일방적으로 입주사들을 내보낸다는 건 회사 이미지에 먹칠하는 일이다. 회사는 의도하고 한 일이 아니겠지만, 소비자는 (현대카드가) 코워킹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서 말만 그럴싸하게 포장했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CEO가 회사보다 유명해질 때 벌어질 수 있는 문제점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CEO의 장점이 주목받으면 회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안 좋은 점이 조명되면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정태영 부회장이 SNS 활동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팬덤이 생길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에게 외면 받는 순간 더 큰 역풍을 받을 수 있다”며 “CEO가 대중 앞에 나서야 할 때도 있겠지만 SNS에서 물러나 있는 것도 전략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현대카드는 입주사들에 사과와 추후 대처에 대한 방식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다시 보냈다. 현대카드는 “새 사무실을 구하고 또 이전하는 과정에서 겪게 될 어려움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이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입주사 분들이 사무실 이전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준비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일정을 조정하겠다”고도 했다.
혁신·철학 강조했지만…임대사업 만만히 봤다가 좌절
현대카드의 스튜디오 블랙 운영은 3월까지다. 공유오피스 업체 관계자는 “건물 반환을 위한 원상복구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물주와 계약 기간을 두 달이나 남긴 상태에서 사업을 종료한 건 회사 측이 하루라도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공유오피스 사업은 임대 사업만으로는 수익이 크게 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가 소유한 건물을 직접 빌려주는 임대차 방식이 아니라 ‘전전대’라고 불리는 전대차 사업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전대차 사업은 어떤 상가나 건물을 임대로 빌린 사업자가 제3자에게 돈을 받고 세를 놓는 사업이다. 빌딩을 예로 들면 ‘건물주’와 이 건물을 빌리는 ‘전대인’, 전대인과 다시 임대 계약을 맺고 들어오는 ‘전차인’이 생긴다. 현대카드가 전대인이라면 스튜디오 블랙에 입주한 스타트업은 전차인이 되는 셈이다.
전차인에게 받은 월세 상당 부분을 건물주에게 주고 건물도 관리해야 하는 전대인이 수익을 남기는 건 쉽지 않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형 공유오피스 사업자도 건물 계약 조건이나 공실에 따라 손해를 보기도 한다. 과거 위워크도 장기계약 문제와 거액 손실 때문에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패스트파이브 관계자는 “지점을 여러 곳 보유하고 입주사가 많으면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 효과가 나온다. 사무실 모니터에 표시하는 광고 수익 등 다양한 수익원도 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공유오피스는 임대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카드 관계자는 “스튜디오 블랙이 임대수익만을 위해 운영했던 사업이 아니다. 스타트업과의 협업과 상생을 고민했다”며 “다른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모델을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병희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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