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영 팝콘 심리학 - 당신도 혹시 ‘이세계 꼰대’?
새로운 시대를 인정하지도, 배우려 들지도 않는다면 ‘맞다’
한국의 직장은 이런 ‘다른 세상 사람들’이 충돌하는 곳이다.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21세기의 신입사원들이 20세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린 시절 가끔 식욕 부진을 겪곤 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끼니를 대충 먹이지는 않으셨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식단이 원인이었을 듯하다. 어쨌든 전혀 입맛이 없는 상태로 밥상을 맞이할 때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는 밥상이었다.
그때 나는 지금 내가 다른 곳 혹은 다른 상황에 있다는 상상을 했다. 예를 들어, TV에서 본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거나, 무인도에 갇혀서 며칠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식의 상상이었다. 그런 상상을 하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밥과 반찬이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만화나 소설의 소재 중 하나가 소위 ‘이세계물(異世界物)’이다. 현대 일본에 살던 주인공이 어떤 이유에서 다른 세상에 떨어진다는 식의 이야기다.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마크 트웨인의 〈아서왕 궁전의 양키〉나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작품들을 통해 잘 알려진 장르이기도 하다.
이 일본식 ‘이세계물’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살던 세상에서는 평범한 음식‧편의기술이 그가 이동한 곳에서는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이나 상상도 할 수 없이 대단한 기술로 대접받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는 점이다.
日 만화‧소설 소재로 ‘이세계물(異世界物)’ 유행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 설계사가 우연히 현대 일본의 목욕탕으로 타임슬립을 한다는 설정의 한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로마인 주인공은 일본의 평범한 대중목욕탕 기술에 경이를 느끼고 이를 고대 로마 목욕탕 건축에 적용해서 성공한다. 로마제국의 황제마저도 그의 작품에 감탄을 멈추지 못한다. 일본에는 싸구려 목욕탕에도 다 있는 시설인데! 다른 작품에서는 일본의 음식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된장국이나 코로께 같은 음식이 주인공의 세상에서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인 것처럼 모두를 감동시키기도 한다.
주로 중세 유럽 같은 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런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인프라가 과거의 기준으로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부각시킨다. 그런 장면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 밥맛을 되살리기 위해 상상에 빠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런 만화나 소설을 즐겁게 소비하는 일본인들의 심정도 그 시절의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 거다. 어쨌거나 이런 소설이나 만화를 통해서라도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만족할 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리라.
생각해보면 ‘이세계’는 우리 현실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십여 년 전, 2030년대 한국의 미래를 예측하는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싱귤래리티’와 ‘뉴럴링크’의 현황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만, 당시엔 인공지능이 스스로 발전하고 인간의 뇌에 칩을 연결한다는 건 말 그대로 딴 세상 이야기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만난 미래학자들 중 어느 누구도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뿐인가. 국민의 70% 이상이 농어업에 종사하던 1970년대까지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정말로 딴 세상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많은 것들이 30년 전 혹은 70년 전에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우리 가정에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이후부터다. 그 전까지 에어컨은 그저 흑백 TV속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TV는 리모컨이 아니라 로터리 채널을 돌려 수신 주파수를 맞췄고 말이다. 통신도 마찬가지다. 1960년에 전화 보급률은 1000명당 4대 수준이었다. 1980년대까지도 마을 전체에 전화가 설치된 집이 한 두 가구에 불과한 곳이 여전했다. 그러던 시절 사람들의 눈에는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지금 세상은 ‘이세계’와 다름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처음으로 PC를 사용했다. 타자기로 글을 쓰던 나에게 글을 얼마든지 쓰고 지우고 오려다 붙일 수도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정말 마법의 기술 같았다. 단기사병으로 근무하며 배운 엑셀 사용법은 지금도 숫자 계산에 아둔한 나에게는 딴 세상에서 전해진 선물이었다. 인터넷 이전과 이후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개별 저장용량이 중요했던 모든 스마트 기기들은 이제 구름처럼 떠있는 가상의 저장 공간을 사용하고 심지어 그 구름 속에서 작업까지 한다.
반대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 몇 십 년 전 한국이 ‘이세계’다. 요즘 아이들에게 전화는 납작한 사각형의 물체다. 요즘 아이들이 전화통화를 의미하는 아이콘이 왜 그런 모양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컴퓨터에서 작업하던 파일을 저장하는 명령 아이콘이 왜 그 모양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플로피 디스크라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이들은 국제화된 세상이 당연하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원어민 교사에게 영어를 배웠고 대부분은 한두 번 정도 외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친척이나 친구들 중에 외국인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릴 적부터 인터넷 강의를 삶의 일부처럼 경험했던 이들의 눈에는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온라인 강의 속 교수들에게서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닌, 내가 뭔가 가르쳐줘야 할 것 같은 초보자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지나간 자기들 세상을 현재로 소환하려는 ‘꼰대’들
한국의 직장은 이런 ‘다른 세상 사람들’이 충돌하는 곳이다.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21세기의 신입사원들이 20세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최근 조직 문화에서 일어나는 격변들은 대부분 그 충돌의 결과다. 이 충돌에서 이전 세대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건 결코 승리가 아니다. 기성세대의 세상이 ‘이세계’이고, 지금 세대의 세상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LG가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했다. 그 분야를 아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잠재력도, 스마트폰 사업이 이전의 휴대폰 사업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던 결과라고들 말한다. 기성세대의 세상이 아득바득 승리하면 이렇게 된다.
만화나 소설 속에서는 늘 주인공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 독자들은 당연히 자신이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일 수 있다. 내 역할은 낙후된 세상에서 태어나 신문물에 감동 감화하는 조연에 불과할 수도 있는 거다. 문제는 그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벌어진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시대를 인정하지도, 배우려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한심했던 자기 시절을 들이대며 존경심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이미 지나간 자기들 세상을 다시 현재로 소환하려 든다. 그와 같은 시도를 하는 이들을 다른 말로 ‘꼰대’라고 부른다. 당신은 어떤가.
***필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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