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라는 마이데이터사업, 아직은 반쪽짜리
혁신 체감 어려운데 ‘내 정보 주권’만 위태
‘스크래핑 기술’ 기반 핀테크, 오픈뱅킹과 차별화 의문
(현행 방식으로는) 개인은 서비스 이용을 위해 수동적으로 약관에 동의하고, 정보 이동 이후에는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2025년까지 5년간 투자액 58조2000억원. 정부가 그리는 디지털 뉴딜의 큰 그림이다. 계획대로라면 신규 일자리 90만3000개가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 한 해에만 7조6000억원을 들일 계획이다. 이중 상당액은 공공과 민간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모으는 데 쓰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하려는 디지털 뉴딜은 이른바 ‘데이터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 댐으로 흘러드는 큰 물줄기 중 하나는 마이데이터(MyData) 사업이다. 마이데이터란 정부나 기업이 아닌 개인이 자기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개인이 요구하면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도 의무적으로 정보를 내놔야 한다. 개인이 동의만 하면, 기업도 개인정보를 예전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다. 개정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규정에 따르면 기관·기업은 개인이 보기 편하게 정보를 디지털화해 보관·제공해야 한다. 과거 병원에 진료기록을 요구하면 서류로 받거나 파일을 저장할 이동식 저장장치 등을 지참해야 했는데 이 같은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마이데이터 기반 ‘금융 플랫폼’ 나올까
정부는 마이데이터가 시장 경쟁을 촉진할 것이라 기대한다. 실제로 관련 업계는 한껏 달아오른 모양새다.
지난해 8월 금융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을 하겠다고 신청서를 낸 기업은 63개사에 달했다. 이 중 제1금융권 은행과 핀테크 업체 등 28개사가 지난 1월 최종 허가를 받았다. 이들 업체는 “정밀한 고객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초개인화된 맞춤서비스를 제공할 것”(KB국민은행) “금융 영역을 넘어서 라이프까지 관통하는 신규 서비스들을 선보일 것”(뱅크샐러드) 등 포부를 경쟁하듯 내놓고 있다.
이들 사업자가 공통으로 꿈꾸는 목표는 금융 플랫폼이다. 굳이 다른 금융기관의 전산망에 접속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변기호 KB국민은행 마이데이터플랫폼사업단장은 “앞으로는 금융상품이 아닌 자체 플랫폼 경쟁력이 금융기관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요소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장밋빛 전망이 현실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장 목소리는 다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존 서비스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개별 금융기관 전산망에 접속할 필요 없이 하나의 모바일앱이나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자산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는 마이데이터 이전부터 있었다. 핀테크 업체 뱅크샐러드가 대표적이다. 2017년 출시 이후 3년여 만인 지난해 누적 가입자 수 700만명을 넘어섰다. 이 업체는 사용자 소비패턴을 분석, 맞춤형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등 서비스로 인기를 끌었다.
이 업체는 개인 데이터 확보에 ‘스크린 스크래핑(screen scraping)’이란 기술을 썼다. 앱 사용자로부터 금융기관의 계정(아이디·비밀번호)을 받고, 이 계정으로 금융기관의 웹사이트에 대리 접속해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이다. 뱅크샐러드가 인기를 얻자 은행 등 타 금융기관도 해당 기술을 활용해 계좌 통합조회, 재무관리 등 서비스를 도입했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부터 해당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마이데이터 본허가를 받지 못한 사업자가 스크린 스크래핑 기술을 이용하면 마이데이터 사업자와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허가 문턱을 넘지 못한 하나은행·삼성카드·카카오페이 등 8개사는 2월 5일부터 스크린 스크래핑 기술을 활용한 자산조회 서비스를 중단했다.
우회로가 없지도 않다. 하나은행·새마을금고 등 1~2금융권이 주로 참여하는 오픈뱅킹이다. 오픈뱅킹을 이용하면 하나의 모바일앱으로 여러 은행의 계좌를 조회하고, 결제·송금 등을 할 수 있다. 마이데이터처럼 3600여 개에 달하는 국내의 모든 금융기관 정보를 확인할 순 없지만, 사용자들이 보통 거래하는 금융기관이 1~2금융권임을 감안하면 서비스 차이를 체감하기 어렵다.
김상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마이데이터 인허가를 받지 못한 전자금융업자도 오픈뱅킹을 통해 이용자의 재무관리와 고도화된 상품 추천을 일부 제공하고 있다”며 “마이데이터 기업이 얼마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사용자가 서비스 혁신을 체감하긴 어려운데, 경쟁 업체의 수만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입법 미비로 ‘반쪽짜리’ 마이데이터
또 다른 문제는 마이데이터 사업을 진행한다 해도 앱 하나로 모든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금융데이터 통합조회만 가능할 뿐, 사업자가 타 금융기관에 이체·송금 등을 지시할 수 없다. 이체·송금을 하려면 결국 예전처럼 사용자의 계좌가 있는 금융기관(주로 은행) 모바일앱이나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업무를 봐야 한다. 영국이나 유럽연합은 이체나 송금까지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마이데이터 사업은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권한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없진 않다. 지난해 11월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이하 전금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영국이나 유럽연합처럼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지급지시전달업(마이페이먼트·My Payment) 자격을 갖는 조항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이후 한 차례도 심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법안 조항을 놓고 금융위와 한국은행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서다.
가장 큰 문제는 마이데이터 사업의 취지인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균형’을 달성할 수 있느냐다. 현재 마이데이터 사업의 근거법인 신용정보법과 개인정보보호법으로는 내 데이터가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조영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 방식으로는) 개인은 서비스 이용을 위해 수동적으로 약관에 동의하고, 정보 이동 이후에는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며 “개인이 정보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데이터 개념은 지난 2016년 유럽연합에서 처음 만들었다. 그런데도 지난해 11월 도규상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부위원장은 “우리나라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세계 최초, 유일한 사례”라며 들뜬 입장을 나타냈다. 금융위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모든 금융·비금융 정보를 통합 조회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마이데이터 사업 앞에 산적한 과제를 상기하면 다소 궁색해 보인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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