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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SG에 “때 탈까 걱정, ESG 시작한 EU도 안 해”

산업부 한국형 ESG 평가지표 제작 나서자
업계·전문가 "정부가 손댈 영역 아냐" 우려
“EU처럼 ESG 정보 공시 의무화 앞당기자”

ESG를 향한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21일, ‘K-ESG 지표 업계 간담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달 24일에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제3차 ESG 경영 포럼’을 가지며 ESG에 대한 관심을 여실히 나타냈다.  

 
이 자리에서 황수성 산업부 산업정책관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ESG 경영 확산과 방향 제시를 위한 K-ESG 가이드라인을 정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중소기업의 ESG 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구성 지원, 역량 재고 프로그램’ 운영 등 지원 방안 마련에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산업부의 행보 가운데 재계와 전문가들의 관심과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이 ‘K-ESG 지표’다. 산업부는 지난해 4월부터 산업발전법에 근거한 가이드라인 성격의 ESG 지표를 준비·마련해왔다. 국내외 600여개 ESG 지표가 난립해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지표마다 다른 평가결과가 기업의 자율적인 ESG 경영 확산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산업부의 판단이다.  
 

평가업계 “정부가 가이드 할 영역 절대 아냐”

 
산업부는 이미 국내외 주요 13개 지표를 분석해 핵심 공통문항을 중심으로 ‘K-ESG 지표 초안’을 마련했다. 관계부처·기업·평가기관·투자기관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과 보완 작업을 통해 올 하반기 최종 지표를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부의 ESG 행보에 대해 ESG 평가기관들은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고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는 최근 잇따라 자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며 “정부가 선수로 뛰려 하거나 특정 선수를 지원한다면, 한국에서 ESG 평가 산업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류 대표는 “자본시장에서의 다양한 평가지표들이나 인덱스들은 그 투자 성과의 우열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선택되는 것이지 정부가 선택을 강요하거나 가이드 할 영역이 절대로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할 일은 공정한 평가, 객관적 평가, 정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면 된다”고 덧붙였다.  
 
조신 연세대 교수(정보대학원)도 비슷한 의견이다. 조 교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려고 기업이 시작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다르게 ESG는 투자자들의 압력으로 먼저 시작됐다는 것이 큰 차이”라며 “이익 창출을 위해 자본시장에서 먼저 시작한 움직임에 공적 영역이 들어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지난 4월 대한상의 등과 공동으로 ‘제1차 대한상의 ESG경영 포럼’을 개최하고 ESG경영 확산을 위한 정책방향 및 평가지표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 대한상의]
 

ESG 활성화 위해 정보 공개 의무화 유도하는 EU  

 
ESG는 2006년 UN에서 세계적인 대규모 기관투자가들을 불러 모아 투자 대상으로 기업을 선택할 때 ESG 관련 이슈를 고려해 투자하겠다는 발표한 UN 책임투자원칙(PRI)에서 시작된 바 있다.  
 
이후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가 기후변화 리스크와 ESG를 투자 결정에서 핵심 요소로 반영할 것임을 밝히면서 ESG가 기업 경영의 트렌드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ESG 지표를 만든 해외 정부기관이 없다는 점도 산업부의 ESG 지표 작업이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ESG 평가기관 관계자는 “K-ESG 지표가 참고용으로는 쓸 수 있겠지만, 그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해외에서는 구체적 지표를 제시하기보다 기업에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SG 경영이 먼저 퍼진 유럽의 경우 유럽연합(EU)이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부터 역내 모든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은행·보험·연기금·자산운용사·투자자문사 등 고객 자금을 굴리는 모든 회사가 대상이다.  
 
EU는 이에 앞선 2018년, 500인 이상의 역내 기업에 ESG 관련 정보와 ESG 리스크(위험요소) 대응방안 공시를 의무화한 바 있다. 근래에는 ESG를 규정하는 ‘지속가능한 금융분류체계’ 기준을 정하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기업의 자발적인 ESG 공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비하면 K-ESG 지표는 세계적 흐름과 다소 결이 다른 시도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ESG 평가기관 관계자는 “투명한 정보 공개는 투자자에게도, 기업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정부가 구체적으로 지표를 제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며 “K-ESG 지표 표준화의 목적도 불분명하고 평가 항목에서도 기존 ESG 평가기관과 큰 차이점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고 밝혔다.  
 
산업부 K-ESG 지표 평가 항목.
 

“전시행정 K-ESG 말고 의무 공시 앞당겨야”

 
ESG 지표가 우리나라의 경영환경·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산업부 지적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미 국내 평가기관들은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항목을 바꿔왔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평가기관별로 다양한 지표를 두고 이 중에서 각 기관의 지향점에 맞춰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다양한 평가기관들이 존재하지만, 기업들이 ESG 평가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상이한 평가 기준이 아니라 정보 제공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 교수 역시 “우리나라 ESG 평가기관들은 지배구조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과 같은 해외 기관들은 환경에 더 많은 항목을 평가한다”며 “각 기관이 속한 대륙과 나라마다 문화, 제도, 경제 등 철학과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 기준이 상이하고 결과가 당연히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부가 전형적인 전시행정인 K-ESG를 진행할 게 아니라 금융위원회에서 기업 ESG 공시 의무화를 앞당기도록 해야 기업들의 ESG 경영 노력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융위는 지난 1월 ‘기업공시제도 개선방안’를 통해 환경(E)·사회(S) 정보를 포함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1단계 2025년까지 ESG 가이던스 제시, 자율공시 활성화 ▶2단계 2025~2030년에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공시 의무화 ▶3단계 2030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의 의무 공시 등의 단계적 확대다.  
 
조 교수는 2022년부터라도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공시를 의무화하고 늦어도 2025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류영재 대표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정보공개를 자산 2조 원 이상 모든 상장사는 당초 2030년에서 2025년으로 앞당겨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미 ESG를 고려하는 대다수 글로벌 장기펀드들의 국내 유입은 언감생심이고, 오히려 한국 주식시장을 외면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 ESG= Environmental(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영어 약칭이다. 친환경, 사회발전 기여, 윤리경영 등을 의미한다. 수익 창출 외에도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는 지표다. 정부는 한국 실정에 맞는 표준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형 ‘K-ESG’를 구상 중이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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