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관리 “업권법 필요” VS “특금법으로 충분”
정부가 그동안 회피해오던 가상자산(암호화폐 등) 사업자 관리에 대해 금융위원회(금융위)를 중심으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방안을 28일 발표하자, 가상자산 거래소 등 업계에선 업권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는 “업권법을 마련해야 투자자 보호와 사업자의 행위 규제에 대해 정부의 관리·감독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목소리다.
업계가 요구하는 업권법은 특정 업종의 영업·사업의 범위를 담은 근거법이다. 가상자산 업권법은 가상자산의 개념, 가상자산업의 정의, 가상자산 거래소의 등록·의무·금지행위 등을 규정한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업계 자정을 위해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25일 블록체인 기술·금융·법률 태스크포스팀(TFT)을 발족했다. TFT는 가상자산 산업의 진흥을 비롯해 소비자 보호, 법적 안정성 제고, 시장의 안정적 발전을 목표로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 “투자자 보호, 사업자 감독 위해 업권법 필요”
한국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다수가 가상자산 투자에 뛰어들고 있는데, 사업자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아무런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업권법을 두고 “가상자산 관련 산업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라며 “사업자의 행위에 대한 규범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정부의 주무부처 지정도 결국 업권법을 통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와 함께 “업권법을 제정하면 투자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다”며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의 핵심은 투자 손실을 보전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공정 행위와 해킹 등의 사고로부터 투자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예로 해킹을 들었다. “해킹 같은 불법적인 침입이 발생하면 사업자가 어디까지 대비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범인이 보이스피싱으로 편취한 금액을 가상자산으로 바꿔 인출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사업자가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 지와 같은 부분을 규정해야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업권법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 해킹 등으로 투자자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업계가 정부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국회 양경숙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가상자산의 주요 해킹과 비정상적 출금사고에 따른 피해 금액은 약 1780억원에 달한다. 지난달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가상자산 정책과 피해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성토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업계가 업권법 마련을 요구하는 또 다른 배경은 암호화폐 시장의 제도권 진입을 위해서다.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현재 가상자산 투자자는 법적으로 투자자가 아니다. 암호화폐 분야가 하나의 시장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업권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가상자산 분야는 기술적인 분야를 제외하고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가장자산 업계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업권법을 만들면 투자자 보호 방안 등을 명확하게 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 “특금법으로 가상자산 시장 교통 정리”
이에 정부에서는 28일 가상자산 사업자의 관리·감독과 제도 개선 등의 업무를 담당할 주무부처로 금융위를 지목했다. 정부가 금융위를 주관 부처로 정한 것은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며 가상자산 관련 제도를 보완할 계획이다.
앞서 가상자산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2017년 이후 정부는 금융위원회 등 10개 부처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국무조정실이 이를 주재하는 방식으로 가상자산과 관련한 현안에 대응해왔다. 자격 미달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관리 부실로 투자금이 사라지는 피해가 발생하는 등 가산자산 시장이 난전처럼 변질됐다. 이에 따라 정계와 업계는 수 차례 금융위를 주무부처로 지목, 시장 규제에 나서주기를 호소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차일피일 회피해왔다. 금융 관련 다른 부처들도 꺼려하긴 마찬가지였다.
이후 정부가 성화에 등 떠밀리듯 나와 금융위를 가상자산 주관 기관으로 지목하자, 금융위는 28일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내용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위험요소 관리와 불법행위 단속 ▶신고를 마친 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제도 보완 지속 추진 등이 주요 골자다. 이와 함께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의 시행령을 개정해 취급금지 가상자산을 규정하고 사업자의 시세조종을 금지하는 등 가상자산 시장 관리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업계의 업권법 마련 요구에도 금융위는 특금법으로 가상자산 투자자를 보호하는 등 시장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 “특금법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는 9월 25일까지 고객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계좌 등을 받아 금융위에 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고된 거래소에 고객이 돈을 넣으면 그 돈을 빼갈 수 없게 분리가 된다”며 “(신고된 거래소라는) 틀 안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투자 자금이 보호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특금법의 사각지대 보완할 업권법 발의”
하지만 국회에서는 특금법이 가상자산 투자자를 보호하기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병욱 의원실은 “특금법은 자금세탁방지에 초점을 둬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는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지난 18일 가상자산의 정의, 가상자산업의 성격, 가상자산 거래소의 의무와 금지규범 등을 담은 가상자산 업권법안을 발의했다. 이용우 의원과 양경숙 의원도 이달 김 의원의 법안과 비슷한 내용의 업권법을 발의했다.
이런 움직임을 두고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업계·학계·시민단체 등이 모여 공청회를 통해 가상자산의 명암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분야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가상자산의 특징을 알아야 업권법이 제정돼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청회를 통해 국회·업계·학계가 가상자산의 특성을 파악하고 업권법 제정을 논의하는 자리도 필요하다”며 “정부와 업계가 서로의 입장을 파악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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