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생명·셀트리온이 의료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과 손잡은 이유
[인터뷰] 조인산 에비드넷 대표
지난 8일 과기부 마이데이터 실증 사업자로 선정
보험사·제약사 등 10개 기업, 컨소시엄에 참여
40개 대형병원 데이터 표준화 끌어낸 노하우가 힘
보험사가 돈 버는 방법은 두 가지다.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의료비용을 줄이는 것. 물론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가입자 반발과 금융당국 규제를 넘어서기 쉽지 않다.
미국의 의료보험 스타트업 ‘브라이트 헬스(Bright Health)’의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의료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표지만, 보장 항목이나 액수를 줄이진 않는다. 대신 가입자의 병이 커지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진료받도록 유도한다. ‘가래로 막게 될 걸 호미로 막겠다’는 전략이다.
말은 쉽지만 구현하기 쉽지 않다. 가입자에게 어떤 병이 있는지, 심지어 어떤 병이 생길지 예측해야 해서다. 이 업체는 미국 내 의료기관으로부터 확보한 가입자의 의료데이터를 활용했다. 가입자의 과거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어떤 병이 생길지, 또 발병률은 얼마인지 판단한다.
이런 전략으로 브라이트 헬스는 2016년 창업한 지 3년 만에 가입자 6만명을 모았다. 2019, 2020년 두 해 동안 벤처캐피탈로부터 받은 투자액만 11억3500만 달러(약 1조2661억원)에 달한다. 미국의 의료보험 분야 스타트업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런 스타트업이 없다.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뿐 아니라 민간 병원도 의료 데이터를 쥔 채 충분히 공개하지 않아서다.
정부도 손 놓고 있진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5년부터 보건복지부는 병원 진료기록을 표준화하고 병원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당시 복지부는 6년간 국고 지원금 90억원에 연구진 205명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과는 16년째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못해낸 일을 창업 4년 만에 이뤄낸 곳이 있다. 2017년 조인산 전 한미약품 상무가 설립한 의료데이터 플랫폼 업체 ‘에비드넷’이다. 현재까지 국내 40개 대형병원을 설득해 5000만명의 의료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이를 의료기관끼리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지난 8일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 업체를 의료 마이데이터 실증 사업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민간기업도 에비드넷의 플랫폼에 참여할 길이 열린 것이다. 에비드넷의 마이데이터 컨소시엄에 신한생명·라이나생명 등 보험사 두 곳을 비롯해 한미약품·셀트리온·SK케미칼 등 국내 바이오제약사 여덟 곳이 대거 참여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창업 4년 차 스타트업과 손을 맞잡은 이유가 뭘까.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밸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에비드넷 사무실에서 조인산 대표를 만나 물었다.
수개월 기다리던 데이터, 피더넷에선 실시간으로
그간 정부 노력이 결실을 못 봤던 이유가 뭔가.
일회성 사업만 반복하다 보니 노하우가 쌓이지 않았다. 전문성을 가진 기업이 긴 안목과 호흡으로 도전해야 승부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에비드넷은 풀타임 의사 네 명을 포함한 보건의료 인력을 확보해 데이터 표준화의 전문성을 높였다. 현재 의료기록을 국제 의료데이터 표준(OMOP-CDM)을 적용해 표준화할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다. 덕분에 대형병원에서도 관련 문의가 적잖게 들어온다.
표준화한 데이터는 에비드넷 서버에 저장되나? 환자 본인 말곤 데이터를 병원 밖으로 못 가져 나올 텐데.
중요한 기술적 문제였다. 에비드넷은 협약을 맺은 병원에 서버를 구축해 의료데이터를 해당 의료기관 내에 저장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외부에서 데이터를 요청할 때 비식별 조치를 한 뒤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의료기관들이 안심하고 함께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데이터 공유는 어떻게 이뤄지나.
지난해 무료 공개한 ‘피더넷(FEEDER-NET)’을 통해서 이뤄진다. 협약 기관에 소속된 연구자라면 다른 기관의 데이터를 얼마든지 원격으로 끌어와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당뇨 같은 만성질환은 100만명 넘는 환자 데이터가 필요한데, 일일이 병원에 동의를 구해 데이터를 얻는 게 불가능하다. 그럴 때 피더넷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데이터 공유가 의료 연구자에겐 어떤 의미인가.
단적으로 연구자들이 공단 데이터를 쓰자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오프라인 센터에 직접 방문해야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는 데다 대기자도 많아 원하는 시점에 데이터를 쓰기 어렵다. 공단에서 센터를 늘리는 등 개선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수요를 못 따라잡는다. 또 공단 데이터에는 의료보험 청구 결과만 나와 있어서, 검사 결과 같은 핵심 정보가 빠져있다. 비급여 항목도 못 본다.
이런 성과 덕분에 지난해 에비드넷은 150억원 상당의 시리즈A 투자를 이끌어냈다. 100억원을 투자한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내로라하는 벤처캐피털들이 에비드넷을 점찍었다. 에비드넷은 앞서 2018년엔 한미약품그룹 투자사인 한미벤처스와 SK㈜로부터 100억원을 시드(초기창업) 투자받기도 했다. 창업 3년 만에 누적 투자금이 25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임상시험 시간·비용, 획기적으로 절약”
지금까진 데이터를 중개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일, ‘브라이트 헬스’ 같은 사업을 해보려는 건가.
아니다. 우리가 잘하는 건 환자와 병원을 이어주는 거다. 에비드넷이 보유한 의료데이터 표준화 기술을 활용하면 개인의 흩어져 있는 의료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아드릴 수 있다. 그래서 과기부에서 진행하는 마이데이터 실증 사업에 참여했다.
금융 분야 마이데이터에선 중개 역할을 맡는 사업자는 없다.
금융 분야에서는 모든 데이터를 한국신용정보원에서 한번 모은다. 그리고 데이터를 사업자에 보낸다. 예를 들어 A은행, B은행, C페이에 걸쳐있는 김모씨의 데이터를 D은행 모바일 앱에서 일목요연하게 모아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D은행이 A은행 등 금융사마다 정보를 요구하면 복잡하다. 망도 기관마다 따로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신용정보원같이 중앙에서 한번 모아주는 플랫폼이 있으면 효율적이다. 그 역할을 이번 마이데이터 실증 사업에서 에비드넷이 해보려고 한다.
의료 분야에선 공공기관이 그 역할을 못 하나.
보건의료정보원이 그 역할을 하려고 한다. 결국엔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의원까지 포함하면 수만 개에 달하는 의료기관의 데이터를 민간기업이 어떻게 다 모을 수 있겠나. 다만 플랫폼을 구축하자면 3년 이상은 걸릴 듯하니, 먼저 표준화를 해본 우리가 레퍼런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보건의료정보원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이데이터 사업을 하게 되나.
지난 3월 출시한 비대면 진료 앱 ‘메디팡팡’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서비스 약관에 동의한 가입자에게는 저희가 데이터를 끌어올 수 있는 한 끌어와서 표준화한 다음, 가입자의 스마트폰에 담아드리려고 한다. 그렇게 모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앱에서 각종 만성질환이나 암에 걸릴 위험률을 분석해 보여줄 수 있다. 또 환자를 비대면으로 진료하는 의사 입장에선 환자의 이력을 바탕으로 보다 정밀하게 처방 내릴 수 있다. 내년이면 서비스를 완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에비드넷의 마이데이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 수가 적잖다. 신한생명·라이나생명 같은 보험사부터 한미약품·셀트리온·SK케미칼 같은 바이오제약사도 다수 참여했다.
예를 들면 더 치료할 약이 없는 환자와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제약사를 연결하는 도구로도 매력적이다. 기존엔 제약사 직원들이 전국 병원의 의사들한테 수소문해서 필요한 환자를 모아야 했다. 그런데 에비드넷을 쓰면 어떤 환자가 전국에 몇 명인지 바로 나온다. 또 메디팡팡을 통하면 해당 환자에게 직접 ‘참여하시겠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신약 개발사가 관심을 두고 있다.
기업과 연계한 서비스 중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이 뭘까.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데이터만 모을 수 있으면 개인별로 맞춤 큐레이션이 가능해진다. 나한테 맞는 건강식품, 나한테 맞는 선생님이 있는 피트니스센터, 나아가선 요양원·요양병원도 개인 질환에 맞춰 추천이 가능해진다.
“내년 초부터 기업공개 준비”
마이데이터를 활성화하려면 결국 개인들의 동의를 끌어내야 한다. 다른 스타트업에선 정보 이용에 동의할 경우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지급하기도 한다.
서비스가 탄탄하게 있을 때 추가로 보상이 있으면 당연히 좋다.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코인공개(ICO)를 한 기업 중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전례가 없다. 금융 당국에서 승인을 아직 해준 사례가 없다.
IPO 계획이 있나?
내년 초부터는 주주들과 논의하려고 한다.
40대 나이에 누구나 선망할 법한 자리에 올랐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땐 확신이 있었나?
확신보다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의료 데이터 공개는 10년 넘게 답보 상태였지 않나. 그런 배경 탓에 에비드넷이 3년 만에 성과를 내리라곤 업계 누구도 예상 못 했다. 이렇게 빅데이터에서 보였던 역량을 마이데이터 분야에서도 보여주고 싶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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