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 파장②] 삼성세로 확대된 ‘구글세’ 한국엔 득일까 실일까
디지털세 취지 변질, 글로벌 기업 조세 회피 방지세로
삼성전자가 한국에 내던 법인세 4000억원 감소 예상
삼전·하이닉스세 일부 빠져도 구글·애플세 늘면 플러스
디지털세 적용 기준 바뀌면, 세수 구멍 커질 우려도
‘디지털세(Digital Tax)’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세계 각국 정부가 득실 계산에 들어갔다. 다국적 기업이 돈 번 곳에서 세금을 내도록 세계 각국이 손을 잡았는데, 나라별 세수 증감을 예측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해외에 디지털세를 내야 할 기업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때문에 세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구글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에 제대로 과세하면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디지털세가 미칠 파장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디지털세 부과 정책은 다국적 기업이 매출을 올린 나라에 세금을 제대로 내도록 해당 국가에 과세권을 배분하는 조세 방침이다. 연결매출액 200억 유로(약 27조원), 이익률 10%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통상이익률 10%를 넘는 초과이익 20~30%에 해당하는 이익에 대해 해당 시장 소재국이 과세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매출 27조원, 이익률 10% 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포함될 듯
당초 디지털세는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세율이 낮은 국가로 서버를 옮기고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로 논의됐다. 이른바 '구글세'로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적용 대상이 채굴업과 규제 대상 금융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으로 확대됐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디지털 기업은 아니지만, 매출액이 많고 이익률이 높은 국내 제조 기업들도 과세 대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조세 전문가는 “강대국의 알력 싸움으로 당초 디지털 기업만 규제하려던 방안에서 논의 범위가 넓어져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회사도 포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20년 기준 사업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연결기준 236조8000억원, 영업이익은 35조900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15%를 넘는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매출액 31조9000억원, 영업이익 5조원으로 영업이익률은 15.6%를 기록했다.
당초 디지털세는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세율이 낮은 국가로 서버를 옮기고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로 논의됐다. 그런데 적용 대상이 채굴업과 규제 대상 금융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으로 확대됐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디지털 기업은 아니지만, 매출액이 많고 이익률이 높은 국내 제조 기업들도 과세 대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 세금 일부 해외로 나가지만, 구글·애플세 증가할 듯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이 한국에 내던 세금 일부를 다른 나라에 내면서 우리나라 세수 부족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 같은 주요 기업이 내던 세금 일부가 해외로 나갈 경우 세수에 구멍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디지털세가 도입되면 삼성전자가 한국에 내던 세금 가운데 4000억원가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 등 세계 각국에 낸 법인세는 11조1000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73%(약 8조1000억원) 정도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디지털세가 도입되면 7조7000억원만 한국 정부에 세금으로 내게 될 전망이다. 4000억원은 다른 나라에 내야 한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도 세금의 일부를 다른 나라에 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는 구글 등 국내 시장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과세할 길도 동시에 생기면서 세수가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으로 평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도 한두 곳은 이익 일부가 해외로 배분되겠지만, 글로벌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과세권을 확보하게 되면 세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수조 원을 벌면서도 100억원 미만의 세금을 냈던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에서 전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구글코리아가 지난해 한국에서 올렸다고 밝힌 매출액은 2201억원. 이를 근거로 한국에 낸 세금은 약 97억원이다. 하지만 구글코리아가 한국 앱스토어에서 올린 매출 등을 고려하면 매출액은 5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동안 앱스토어 매출은 한국에서의 수익으로 계산하지 않았는데 디지털세 도입으로 이를 바로잡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IT업계에서는 구글이 한국에 내야 할 세금이 1000억원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한다. 페이스북·넷플릭스·애플 등도 한국에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이 한국에 내던 세금 일부를 다른 나라에 내면서 우리나라 세수 부족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구글 등 국내 시장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과세할 길도 동시에 생기면서 세수가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으로 평가했다.
일방적 디지털세 대상 확대 우려, 국내 기업도 ‘촉각’
이 때문에 당장 디지털세 부과와 관련 없는 국내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2%에 불과했지만, 연결기준 매출액은 103조원을 기록했다. 매출만으론 디지털세 적용 대상에 부합하는 셈이다. LG전자도 매출액 63조원(영업이익률 5%)을 기록했다. 김우철 교수는 “국내 기업이 디지털세를 낼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좋은 일이지만, 강대국이 디지털세 기준을 일방적으로 낮춰 성장하는 기업과 해당 국가를 억압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9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양자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홍 부총리는 최근 합의된 디지털세 도입을 앞두고 우리 측 입장을 전달하고 미국의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 부총리는 지난 5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과세권 배분 영향 등을 국익 관점에서 철저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10월까지 예정된 세부방안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합리적인 국제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6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7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
8대출규제 영향에…10월 전국 집값 상승폭 축소
9“하루 한 팩으로 끝”...농심, 여성 맞춤형 멀티비타민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