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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앱 아닙니다” 야놀자…여기어때 따돌린 ‘발상전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2조원 투자 따낸 이수진 대표
‘글로벌 여가기업’ 이어 ‘글로벌 테크기업’ 선포
반면 숙박앱 고수한 여기어때, 인수 1건 그쳐

 
 
이수진 야놀자 대표. [사진 야놀자]
국내 스타트업계에서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숙적으로 통했다. 숙박예약 시장 1위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했기 때문이다. 2017년까지 매출액도 비등했다. 치열했던 경쟁은 악성 댓글 의혹을 넘어 특허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두 회사 간 격차는 ‘양강’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벌어졌다. 계열사를 뺀 야놀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1920억원으로, 4년 전보다 네 배 가까이 컸다. 그러나 지난해 여기어때컴퍼니(이하 여기어때)가 올린 매출은 1287억원에 그쳤다. 야놀자의 3분의 2 수준이다.  
 
투자업계가 매긴 기업가치의 차이는 더 크다. 지난 15일 야놀자는 손정의 회장으로부터 2조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야놀자는 이번 투자로 손 회장이 얻는 지분이 어느 정도인지 밝히지 않았다. 반면 여기어때의 기업가치는 지난 2019년 영국계 사모펀드에 인수될 당시 3000억원 수준이었다.
 
같은 숙박예약 서비스를 제공해왔는데, 어쩌다 이만큼 차이가 벌어졌을까. 이 업체 관계자는 질문을 바로잡았다. “숙박예약 앱이 아니라 여가 플랫폼”이란 것이다. 이 대답에 두 회사의 차이를 만들어낸 포인트가 담겨 있었다.
 

모텔 양지화 고민 끝에 ‘여가 플랫폼’ 선언

야놀자가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선보인 상설 전시공간 ‘크리에이터스 뮤지엄’. [사진 야놀자]
야놀자의 주력 숙박 형태는 예나 지금이나 중소형 호텔, 즉 모텔이다. 가장 보편적이어서다. 2017년 기준 전국 85만6000개 객실 중 50만8000실이 모텔이었다. 이를 주 타깃으로 해 업계 1위에 오른 야놀자였지만, 고민이 없잖았다. 이수진 대표는 지난 2015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텔의) 양지화 방법을 고민하다 ‘대한민국을 놀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설을 현대화하고, 디자인도 다양하고 밝게 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문제의식에 2011년 모텔 디자인·시공을 전담하는 계열사를 직접 만들었다. 또 2019년부터 ‘신개념 여가 공간’을 콘셉트로 국내외 디자이너와 협업한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업소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라 “다양한 여가생활에 맞춘 공간 트렌드”(임대선 야놀자 C&D 본부장)를 내놓겠단 취지다.
 
이수진 대표는 2018년 3월 ‘글로벌 레스트(R.E.S.T.) 플랫폼’을 선언하면서 지향지점을 분명히 했다. ‘R.E.S.T.’란 여가를 뜻하는 동시에 ‘휴식(Refresh)·놀이(Entertain)·숙박(Stay)·여행(Travel)’의 약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가 플랫폼이란 단순히 앱에서 여행상품도 예약할 수 있도록 하겠단 뜻이 아니다. 숙박예약뿐 아니라 호텔 룸서비스 주문, 체크인·아웃 등 여가활동의 시작과 끝을 야놀자 앱 하나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단 것이다.
 
이를 위해 2017년부터 ‘이지 테크노시스’, ‘산하정보기술’ 등 국내외 객실관리시스템(PMS) 기술업체를 차례로 인수해 클라우드 사업을 확장했다. 야놀자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쓰면 호텔 입장에서도 따로 서버를 두고 고객정보를 관리할 필요가 없다. 과거 PMS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런 장점 덕분에 야놀자 클라우드는 업계 진출 4년 만에 전 세게 170개국에 걸쳐 3만개 고객사를 유치했다. 야놀자 관계자에 따르면, 온라인 예약이 아닌 기술·시공건설 등을 바탕으로 한 매출이 전체의 40% 수준에 달한다.  
 

스타트업 인수, 야놀자에 번번이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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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여기어때는 사업 확장보단 기존 숙박예약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데만 집중해왔다. 2019년 영국계 사모펀드 CVC캐피탈이 이 업체를 인수하면서 ‘인수합병’을 새로운 전략으로 내세웠지만, 뚜렷한 결과물은 없다. 지난 2년간 인수한 업체는 음식점 검색 플랫폼인 ‘망고플레이트’ 한 곳에 그친다.  
 
여기어때 관계자는 “단순히 기업 덩치를 키우는 것보단 기존 사업과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며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지만, 내부적으로 ‘정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업체의 ‘정중동’ 배경엔 시너지 고민보다 자금 부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CVC캐피탈이 인수 당시 1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약속했지만, 실제 투자금액은 그 10분의 1인 100억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말 호텔예약 스타트업 ‘데일리호텔’ 인수전 때 여기어때는 비싼 가격 탓에 인수 검토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야놀자가 약 600억원을 써 데일리호텔 지분 78.75%를 확보했다. 한 해 뒤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여기어때는 해외여행 플랫폼 스타트업 ‘트리플’에 투자를 검토했다가 포기했다. 이후 야놀자가 100억원 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여기어때는 벌어지는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비관적이다. 기술력 격차마저 벌어지고 있어서다. 이수진 대표는 지난 6월 ‘테크 올인’ 비전을 밝히면서 야놀자의 미래는 ‘글로벌 테크기업’이라고 규정했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대체 불가능한 여가 플랫폼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야놀자는 하반기에만 연구개발 인력 300명을 추가로 뽑을 계획이다.  
 
여기어때가 서두르지 않는 한, 야놀자의 독주는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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