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후폭풍③] 기업 “코로나 피해보다 이자가 더 무섭다”
금전 지원보다 “금리 인상 자제” 요청 많아
대출 이자도 못 내는 ‘좀비 기업’ 40% 육박
“성장성 없는 부실 기업에 구조 조정 기회”
한국은행이 26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 장기간 초저금리 시대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0.75%로 인상했다. 동결 기조를 유지한 지 15개월여, 2018년 11월 인상 후 2년 9개월여 만이다. 사상 최대 가계부채, 꺾일 기미가 없는 집값 상승세, 커지고 있는 자산시장 거품 등 국내 부작용들이 확산되고 있는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연내 테이퍼링에 시동을 걸 조짐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결국 한국은행이 꺼낼 카드는 ‘금리 인상’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상이 가계·기업·부동산 등에 미칠 파장에 대해 진단해봤다. [편집자 주]
[금리 인상 후폭풍]
① 가계 유동성 파티 끝, ‘빚투’ 청구서 온다
② 역대급 ‘불장’ 집값 상승에 ‘소방수’ 될까
③ 기업 “코로나 피해보다 이자가 더 무섭다”
“급격한 대출금리 인상 자제가 필요하다”
지난달 6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중소기업 자금 사정 동향 조사’ 보고서를 보면 중소기업 절반 이상(약 50.8%)이 이 같은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추경을 통한 정책자금 융자 확대’(50.2%)와 ‘만기 연장 대출금 분할상환 지원’(40.2%) 요구도 많았지만, 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금전적인 지원에 대한 기대보다 늘어나는 지출의 부담을 더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판단하는 전문가들이 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을 중심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시중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으로 연결된다. 이 경우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은 사업자는 이자 부담이 늘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사람도 더 비싼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보고서를 보면 중소기업 자금 사정과 관련해 ‘양호하다’고 답한 곳은 4곳 중 1곳(25%)에 불과했다.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중소기업에는 금리 인상이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올 수 복병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소비 위축, 경기 침체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자금 사정이 나쁘다고 답한 중소기업 사업자들 가운데 81.2%는 그 원인으로 매출액 감소를 꼽았다.
기업에 빌려준 은행자금 30%가 적자 기업에 있어
적자를 기록 중인 기업도 있다. 이자보상배율이 0을 밑돌면 적자를 냈다는 뜻으로 ‘영업손실 취약기업’으로 분류한다. 이들의 여신비중은 분석대상기업이 보유한 금융기관 여신(약 434조1000억원)의 32.2%(139조9000억원)에 달한다. 은행이 기업에 빌려준 자금의 3분의 1이 적자기업에 있다는 뜻이다. 국내 취약기업 비중은 기업 수 기준으로 주요국 평균(39.7%)보다 낮은 36.5% 수준이지만, 여신 기준으로는 주요국 평균(24.8%)을 웃도는 30.7%로 나타났다.
한은이 지난해 말 기준 재무제표 공시기업 2520개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한계기업이 1001개(39.7%)로 나타났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라는 건, 기업이 해당 연도에 번 돈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런 기업을 흔히 한계기업 또는 좀비 기업이라 부른다. 재무제표를 공시하지 않는 영세 사업자나 자영업자가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자영업자도 위기, 업자 수 줄었는데 대출액은 늘어
8월 17일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1분기(3월 말) 기준 국내 자영업자 수는 약 538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보다 11만명(2%) 가량 줄었다. 반면 3월 말 개인사업자 대출을 낸 자영업자는 약 261만3000명으로 직전 분기보다 7만명(2.7%) 정도 늘었다. 개인사업자 대출 금액도 약 574조5000억원으로 17조6000억원(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가운데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는 1분기 말 기준 약 130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자영업자의 24.2% 수준이다.
한은은 기업의 이자 지급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국내외 수요 회복, 기업 경쟁력 강화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이자비용 경감 등 금융 지원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부실 기업을 지원해 숨통을 잠시 틔워주는 효과가 있지만, 잘못하면 좀비 기업을 늘리고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크레바스’를 경제 산업 전반으로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박종석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6월 진행한 ‘2021년 상반기 금융 안정’ 보고서 기자설명회를 통해 “우리 경제가 아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아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기업 존속 가능성을 종합 판단하는 감시감독을 지속하면서 존속 가능성이 있다면 선별 지원을 계속하고 성장성이 없어 유지하기 어려운 기업은 이례적으로 실시했던 기업 지원 조치 등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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