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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해결사’ 고승범 금융위원장, 칼잡이 본색 드러내나

취임사에서도 “인기 없더라도 가계부채 철저히 관리해야”
2003년 카드사,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 구조조정 역할
“크고 작은 금융위기 뒤엔 과도한 부채 누적 있었다” 경고
“가계부채 대책 보완방안 고심 중, 시간 두고 추진” 밝혀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이 펼칠 금융정책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후부터 ”18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부채를 확실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터라 그가 내놓을 해법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고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취임식에서도 강한 어조로 가계부채 관리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그는 “당장은 인기가 없더라도 당면 현안의 핵심을 지적하고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숙명”이라면서 “최근 1년 반 동안 급증한 가계부채가 거시경제과 금융시장 안정을 훼손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구조조정 진두지휘하며 부채 위험성 체감  

고 위원장의 발언이 구호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는 그의 이력 때문이다. 2003년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으로 ‘카드사 현금서비스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외환위기에서 갓 벗어나 회복세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위기였다.  
 
고 위원장은 당시 금융위 비은행감독과장으로 신용카드 규제를 강화하고 건전성을 높이는 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9개에 이르던 카드사 중 국민·우리·외환카드는 모 은행과 합병하면서 6개로 줄었다. 2만5000여명에 달하던 카드사 임직원 수도 30%가량 급감했다. 이 조치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수반됐지만, 더 큰 위기로 번지는 것을 차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 위원장이 금융위 서비스금융국장 재직 시절에는 저축은행 부실 사태(2011년)가 터지기도 했다. 그는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당시 상황은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 요청사유서’에 “불법·부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등으로 문제가 된 부실 저축은행을 선제적으로 정리하는 등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통해 저축은행 부실이 타 권역이나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했다”고 적시돼 있기도 하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오른쪽)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과 양 기관 간의 협업과 금융 현안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이렇게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감사원으로부터 받은 고 후보자의 개인 감사내역에 따르면, 감사원은 2012년 ‘금융소비자 보호 등 금융감독실태’ 감사에서 고 위원장에게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결정 지연 등 업무 불철저’ 건으로 ‘주의’ 요구를 했다. 감사원은 고 후보자의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결정 지연으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와 혼란이 발생했고, 예금자의 권익과 신용 질서를 해쳐 이로 인해 금융당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하됐다고 지적한 것이다. 다만 금융위의 재심 청구로 감사결과는 기관에 대한 ‘주의’ 요구로 변경됐다. 
 

“1~2주 안에 단기적으로 대책 마련 어려워”

이처럼 고 위원장은 금융위기가 닥쳐 굵직한 경제 정책을 시행할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맡아왔다. 동시에 위기를 지켜보며 ‘부채의 최후’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몸소 경험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급증한 가계 부채에 대해 시그널을 연일 보내는 것이 어색한 상황은 아니다.  
 
특히 그는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그는 “과도한 신용증가는 버블의 생성과 붕괴로 이어지고, 이는 금융시장 경색을 초래해 결국 실물 경제를 악화시킨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취임사에서도 “과거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8년 세계금융위기,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등 크고 작은 금융위기의 이면에는 모두 과도한 부채 누적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계부채는 사안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라 당장 특단의 대책이 나올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고 위원장도 지난달 31일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해 추가로 필요한 것이 있는지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보완 방안을 만들고 있다”며 “1~2주 안에 단기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우므로 시간을 두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9월 말 종료를 앞둔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 만기연장 유예 조치에서는 “(재연장할지) 추석 전에 결론을 낼 것”이라며 “현재 코로나 방역 상황이 엄중한 상태고 중소기업·자영업자들도 힘들어하고 있어, 이를 충분히 고려한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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