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법 제정 50년 만에…국내서 대마 ‘합법’ 수확한다
[르포] 경북 산업용 대마 규제자유특구를 가다
2020년부터 4년간 산업용 대마 실증사업 진행
대마 정제하면 ‘대체 불가능’ 뇌전증 치료제로
관제 시스템에 인공지능·블록체인 신기술 동원
‘제약·바이오산업의 중심, 안동’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 들어서면 이런 광고판 하나가 보인다. 경북바이오산업단지를 홍보하려고 지자체에서 세운 것이다. 한때 이 말은 웃음거리였다. 공장 없는 산업단지를 보고 한 매체는 ‘깡통단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SK바이오사이언스(이하 SK바사)가 단지에 세운 백신 공장 때문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만드는 공장은 이곳뿐이다. SK바사는 지난 6월 1500억원을 들여 공장을 키우기로 했다.
경북도와 안동은 지난해 ‘제2의 백신’을 찾았다. 뜻밖에도 대마다. 중소기업벤처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같은 중앙기관을 설득해 2024년 7월까지 4년간 산업용 대마 실증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쉽게 말해 대마로 어떻게 수익을 낼지 실험해보겠단 것이다. 지난해 8월부터 백신 공장이 있는 산업단지에 ‘경북 산업용 헴프(대마) 규제자유특구(이하 특구)’를 조성하고 있다.
국내 마약류관리법을 떠올리면 뜻밖이다. 1972년 이 법이 만들어지면서 마약류 취급자가 아니면 대마를 가지고 있기조차 못하게 됐다. 재배·소지·소유·운반·보관·사용 모두 불법이다. 그런데도 산업화 실험을 해보자고 지자체가 제안했고, 또 중앙부처는 받아들였다. 왜 그랬을까.
이 지역에서 키우는 대마는 지금 수확 직전이다. 규제자유특구 사업에 참여한 7개 스마트농장에서 지난 4월부터 키워왔다. 50년 만에 합법적인 대마 수확을 앞둔 특구를 찾았다.
대마에서 나온 CBD, 그램 당 4만~5만원
사실 대마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약으로도, 마약으로도 쓸 수 있다. 약으로 쓰는 성분은 칸나비디올(CBD)다. 이 성분은 뇌전증(간질) 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졌다. 대체할 약이 없다 보니 시장도 크다. 현재 CBD 원액은 그램 당 4만~5만원이다. 전망도 밝다. 한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CBD 시장 규모는 2028년 134억 달러(약 15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봤다.
이런 전망에 한국콜마·유한건강생활 등 제약사가 뛰어들었다. 문제는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이다. 이 성분을 잘 걸러내는 게 관건이다. 정제할 때도 이 성분을 걸러야 하지만, 아예 품종 자체를 THC 성분이 없도록 개량하기도 한다. 업계에선 CBD 함량이 20% 이상, THC 함량이 0.3% 미만인 대마를 ‘헴프(HEMP)’라고 부른다.
개량된 품종이라도 대마는 대마인 걸까. 대마를 재배하는 스마트농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스크 안으로 스미는 향에 정신이 순간 아찔했다. 복층으로 이뤄진 밭에서 수백 주(株)의 대마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잎과 줄기가 이어지는 부분은 잎겨드랑이에 꽃이 피면 수확한다. 꽃에 CBD가 가장 많아서다.
농장 중 하나인 에이팩은 LED 조명에서 기술력을 가진 곳이다. 이곳 관계자는 “LED 조명은 여러 갈래의 파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잘 활용하면 꽃이 피는 시점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 햇빛이 아닌 LED 조명을 쓰는 건 대마 특성 때문이다. 대마는 다른 작물보다 더 많은 일조량 필요로 한다. 수사당국에서 전기 사용량을 갖고 불법 대마농장을 적발하는 이유다.
“스마트농장, 해외 진출하려면 대마 경험 필요”
농장을 둘러보던 중 ‘위험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하나 가져가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모이면 실증사업은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 대마를 좋은 쪽으로만 쓸 순 없단 회의론이다.
그러나 최정두 특구사업추진단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줄기마다 QR코드 신분증을 달았기 때문이다. 신분증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위·변조도 어렵다.
안전장치는 하나 더 있다. 스마트농장 내·외부와 의약품을 만드는 실험실 모두에 폐쇄회로(CC)TV 175대를 설치했다.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관제하다가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식이다. “이번 사업의 성패는 보안에 달렸다”는 최 단장 말에 결기가 느껴진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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