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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다다른 방역체계…벼랑 끝 내몰린 자영업자들 해법은

“버틸 힘도 없다” 운영난·생활고로 극단 선택하는 업주들 속출
전문가 “행정규제 효과 떨어져 국민참여로 방역정책 바꿔야”
자영업자들 “사회적 거리두기 반복 그만, 실질 대책 마련할 때”
정부, 자영업자 금융지원 확대에 나섰지만 성과 거둘지 의문

 
 
14일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으로 생활고를 겪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자영업자 A씨(57)의 가게 문 앞에 고인을 추모하는 메모와 국화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1. 지난 7월 2일 경기도 평택 비전동의 노래방 업주 A씨가 자신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인들은 “그는 코로나 방역 강화로 영업제한 조치를 받자 가게 운영비는 고사하고 건물임차료 부담이 커 배달대행·대리운전 등을 병행하며 경영난을 타개하려 했었다”며 “'이젠 쉬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2.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주점 업주 B씨(57‧여)를 경찰이 지난 9월 7일 밤 11시쯤 발견했다. 이웃 상인들은 “23년여간 주점을 운영하며 직원들에게 지분을 나눠주는 등 후하게 대우하고 기부에도 열심이었다”며 “코로나 방역 강화로 영업제한을 받으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3. 9월 12일엔 전남 여수 한 치킨가게에서 업주 C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옆에 ‘경제적으로 힘들고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경찰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분석했다.
 
# 4. 지난해 8월 30일 경기도 안양 평촌동에서 60대 자매가 노래바 운영난과 채무 부담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올해 1월에는 대구 닭꼬치집 업주가, 지난 7월엔 경기도 안양에서 주점 업주가, 이어 8월에도 경기도 성남에 있는 주꾸미음식점 업주가 사업 경영난을 이유로 각각 세상을 등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정부의 방역 강화 영업제한 조치로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임차료·인건비·채무비 등 업소 운영난에 생활고까지 겹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면서 국가적 지원정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남일 같지 않은’ 업주들의 잇따른 죽음에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제 정책이 빚은 비극”이라며 “최저임금 과속 인상에다 영업시간 단축 등으로 자영업자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데 정부는 땜질식 처방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거리두기 이젠 한계, 참여형으로 전환 필요”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와 전국자영업자비대위(비대위)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사태 발발 후 지난 1년6개월 동안 자영업자들은 66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고, 이 기간 45만여 곳이 문을 닫았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과도한 영업제한 철폐 ▶온전한 손실 보상 ▶금융대책 마련(대출 만기연장, 이자상환 유예) ▶생활방역위원회·손실보상심의위원회에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의 참여 보장을 담은 5가지 사항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의 희생양이 됐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방역 정책이 한계에 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역 전문가들도 “행정 규제에 의존하는 기존 방역체계에 벗어나 이젠 ‘국민참여형 방역’ 정책으로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는 정부의 현행 방역체계가 반복을 거듭하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1차, 2차 유행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확진자 감소 효과가 일부 있었지만, 3차, 4차 대유행 이후로는 감소 효과를 나타내는 객관적 지표가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정부가 방역을 강화하면서 ‘무엇이든 안 된다’는 규제 중심의 정책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며 “지금부턴 국민에 ‘함께 해보자’는 참여형 방역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그 한 예로 “코로나 1차 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처음 시작한 지난해 3월 2일쯤에는 쇼핑센터·소점포 등을 찾는 이동량이 전과 비교해 33%까지 크게 줄어든 반면, 7월 27일 이후 4차 대유행에 대응해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금지’라는 초강수 거리두기 대책을 내놨지만 이동량은 0.57% 감소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홍윤철 한국역학회 및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 대응 태스크포스(TF) 위원장도 “기존 방역체계는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누적하는 부작용을 키웠으며, 시민사회의 자율적 참여마저 약화시키고 있다”며 “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방역체계를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국자영업자비대위가 9일 오전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생활고를 호소하며 방역지침 전환을 요구하는 차량시위를 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액 코로나 사태 후 가파르게 증가 중

자영업자들은 지난 8일 오후 11시부터 9일 오전 1시 15분까지 서울·부산·울산 등 전국 9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항의성 차량 행진을 벌였다. 하지만 정부는 4차 대유행 확산세를 막으려면 고강도 거리두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충분히 (심정을) 이해하고 안타깝다”고만 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손영래 사회전략반장은 “현행 거리두기 체계가 확산 저지력이 없고, 영업시간 제한이나 모임인원 제한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코로나19가 사람간 접촉을 통해 감염되므로 급격한 유행 증가를 억제하려면 접촉을 차단하는 거리두기가 필수적”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전체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약 413조1000억원이다. 지난해 말보다 7%(약 27조1000억원) 늘었는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으로 좁히면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약 292조원으로 같은 기간 7.8% 증가했다.
 
개인사업자대출 증가 속도는 가계대출은 물론 대기업·중소기업대출(개인사업자제외)보다 가파르다. 올해 1~8월 전체 예금은행 가계대출 증가율은 5.8%로 개인사업자대출 증가율보다 1.2%포인트 낮았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하면 1년 8개월여 사이 약 74조6000억원 늘었다.  
 
문제는 자영업자들이 저금리에서 고금리로 옮길 만큼 대출의 질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전체 숙박·음식점업 대출 중 비교적 고금리인 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36.1%로 지난해 말보다 1.5%포인트 증가했다. 은행권에서 대출이 막히자 저축은행 등으로 발길을 옮긴 것이다.  
 
비은행권의 숙박·음식점업 대출은 6분기 만에 40.8% 늘어 코로나19의 직격탄으로 인한 생활고를 여실히 보여줬다. 자영업자 중 생활밀접업종은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전체 자영업자 중 생활밀접업종은 43.2%에 달한다. 이들 업종은 진입장벽·수익성·생존율이 일반 산업에 비해 낮다. 특히 영세업자가 많은 숙박·음식점업은 매출액의 영업이익률이 1.24%, 5년 생존율이 20.5%로 모든 산업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한국경제연구원은 “자영업자들이 경쟁력을 제고하고 수익성 높은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게 맞춤형 직업교육과 훈련의 질 향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이 9월 14일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정부의 영업제한 폐지와 손실보상 촉구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상공인 “정부 생활방역위·손실보상위에 우리도 참여를”

이에 금융당국은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기 위한 대출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조치 등 금융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한 시점에서 이자상환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과)는 “대출 상환능력이 없는 경우 실질적인 재정지원으로 자영업자들이 문제를 겪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며 “연장 이후 대출 부실이 확산되지 않도록 연착륙 방안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실태를 먼저 파악한 뒤 맞춤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경제학과)는 “코로나 사태 후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한 종합적인 데이터 없이 정책을 만드는 것이 문제”라며 “현재 상황을 명확히 진단하지 못하면 정책 수립의 방향성을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소공연과 비대위는 “금융당국의 지원 정책과 함께 영업 금지·제한에 따른 적절한 손실 보상도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 전문가 집단인 생활방역위원회와 중앙사고수습본부 손실보상심의위원회에 소공연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공연과 비대위는 손실보상 피해 규모를 파악할 전담 부서도 설립할 예정이다, 오세희 소공연 회장은 “시간 차등화 등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있었다”며 “당사자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19 피해 지원 대책]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원리금 상환 시점을 추가 연장한다. 이와 함께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에서 추가적으로 개선 사항을 살펴볼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소상공인 대출 지원 규모를 3조원 늘리기로 결정했다. 소상공인·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 종료 시점을 올해 9월말에서 내년 3월말까지로 연장하기로 했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한국은행이 금융사에 저금리(연 0.25%)로 자금을 공급해 중소기업·자영업자에게 대출이 늘어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추석 자금 지원 방안으로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10월 5일까지 약 19조3000억원 규모의 대출과 보증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공급한 추석 특별자금보다 2조8000억원 많은 규모다.  
▶산업은행은 운전자금 2조2000억원을 신규 공급한다. 운전자금 용도로 지원하며 최대 0.4%포인트 범위 안에서 금리 인하 혜택을 제공한다. 기업은행은 원자재 대금 결제, 임직원 급여와 상여금 등 운전자금 용도로 기업당 최대 3억원까지 대출해 준다. 신규 결제성 자금대출은 0.3%포인트 범위 내에서 금리 인하 혜택을 준다.  
▶신용보증기금은 추석 전후 예상되는 대금 결제, 상여금 지급 등 소요자금 증가에 대응해 신규 1조5000억원, 만기연장 5조5000억원 등 약 7조원의 보증을 공급한다. 코로나19 피해 지원 보증제도를 활용해 심사절차를 간소화하고 보증료·보증비율·보증한도 등을 우대한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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