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숙박업주들이 만든 ‘착한 숙박앱’, 업주들마저 외면했다

숙박업중앙회에서 만든 ‘원픽’…출시 반년 중앙회 회원 절반만 가입
외부 업체에 개발·운영 맡겨 싼 수수료 어렵고…무(無)광고 정책은 업소 매출에 도움 안돼

 
 
대한숙박업중앙회는 지난 3월 값싼 수수료와 광고비 무료를 내건 숙박 앱 '원픽'을 출시했다. 인기 아이돌 설현을 모델로 하는 광고도 선보였다. [사진 원글로벌]
숙박·여가 플랫폼 ‘야놀자’의 수수료·광고료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강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숙박업주에 과한 비용을 물린다는 게 요지다. 이런 내용으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배보찬 야놀자 대표를 10월 5일 열리는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앞서 지난 9월엔 여당의 당·정·청 협의체인 을지로위원회에서 숙박업주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역시 야놀자가 타깃이었다.
 
사실 숙박업주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이들을 회원으로 둔 대한숙박업중앙회(이하 중앙회)에서 지난 3월 숙박예약 앱 ‘원픽(ONE Pick)’을 내놨기 때문이다. 중앙회가 내건 슬로건은 ‘착한 숙박’이다. “저렴한 수수료와 광고비 제로 정책”으로 가맹점주의 부담을 줄이겠단 게 주된 내용이다. 중앙회는 전국 127개 지부를 동원해 앱을 홍보했다. 인기 아이돌 설현을 모델로 썼다.
 
그런데 출시 반년이 지나도록 성과가 부진하다. 무엇보다 가맹업소 수가 적다. 중앙회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가맹업소 수는 약 1만 곳이다. 중앙회 회원의 절반만 앱을 쓰는 셈이다. 실제로 전국에서 숙박 수요가 가장 높다는 서울 강남구 지역에서 원픽 가맹업소는 6곳에 그쳤다. 야놀자는 31곳이었다. 중앙회 관계자는 “아직 성과가 없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업주 반응은 보다 직설적이다. 모텔 업주 A씨는 “주변에서 (원픽을) 쓴다는 업주를 못 봤다”며 “앱에 들어가 보면 여관처럼 낡은 업소들만 주로 나오더라”고 말했다. 가장 큰 불만인 수수료와 광고비 문제를 해결했다는 데도 정작 당사자들이 앱을 찾지 않는 이유가 뭘까.
 
우선 수수료가 말처럼 착하지 않다. 원픽에서 밝힌 수수료율은 결제금액의 9%(결제대행 비용 포함)다. 야놀자·여기어때의 10%와 비슷하다. 원픽은 지난 6월까지만 오픈 이벤트 명목으로 6.6% 수수료율을 적용했다. A씨는 “그나마 9~10%로 하려다가 업주들이 반발해 낮췄던 것”이라고 말했다.
 
약속과 다르게 수익성을 쫓는 이유는 앱 개발·운영업체가 따로 있어서다. 정확히는 ‘원글로벌’이란 업체가 개발·운영을 맡고 있다. 원글로벌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이 업체는 블록체인 기반 결제시스템 개발사인 ‘더휴먼플러스’란 업체가 중앙회와 합작해 만들었다고 한다. 중앙회가 재정을 출연하지 않는 한, 기존 숙박 앱보다 싼 수수료를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중앙회 측은 “합작이 아니라 단순 협력”이라고 말한다. “중앙회 회원업소를 원픽에 제공한다는 특약 사항만 있을 뿐”이란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착한 수수료는 처음부터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었다.  
 
29일 열린 디지털플랫폼 기업 간담회에서 김종윤 야놀자 대표(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오른쪽)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 역할은 단순 중개가 아니다”

그러면 남는 건 ‘광고비 제로’다. 정확히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앱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근처 업소를 먼저 보여준다. 지역에 따라 광고비가 월 10만원에서 300만원에 달하는 야놀자와 가장 다른 지점이다. 업계 2위인 여기어때도 야놀자와 비슷한 광고 정책을 쓰고 있다. 중앙회 관계자는 “권한이 없어 모든 업소에 광고 금지를 강제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업주들의 생각과 다르다. 광고비를 부담 가능한 정도로 조정해달란 것이지, 광고를 없애달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모텔 업주 B씨는 “광고를 못 하면 신생 업소나 유동인구가 적은 곳에 있는 업소는 어떻게 매출을 올릴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게다가 야놀자·여기어때 같은 플랫폼에서 어떤 업소를 먼저 노출할 건지 결정하는 기준은 단순히 광고 여부가 아니다. 방문 후기와 평점, 검색 횟수 등을 반영한 알고리즘에 따라 노출 순서를 정한다. 유동인구가 적은 지역에 대해선 별도의 여행·여가 콘텐트를 만들어 홍보하기도 한다. 야놀자 관계자는 “거둔 이익을 플랫폼에서 어떻게 재투자하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장 현실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고전하는 앱은 원픽뿐만 아니다. 한국배달음식협회가 지난 2014년 만든 ‘디톡’,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2017년 만든 ‘한방’ 모두 별다른 주목을 못 받았다. 지난 8월엔 대한변호사협회가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을 대체한 ‘공공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역시 업계 반응은 싸늘하다. 광고 없이 변호사를 단순 나열할 것으로 알려져서다.
 
한 벤처캐피털 대표는 “플랫폼은 중개를 넘어 공급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게 역할”이라며 “비용만으로 시각을 좁히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재산 절반 옆에 있는 여자에게...” 조영남 유서 깜작 공개

2한동훈 “민주, 李방탄 예산 감액…호남도 버렸다”

3고점 또 돌파한 리플 코인…한달 만에 264% 상승

4서학 개미에게 희소식…하루 23시간 거래 가능한 미 증권거래소 내년 개장

5 오세훈 시장 "동덕여대 폭력·기물파손, 법적으로 손괴죄…원인제공 한 분들이 책임져야”

6미·중 갈등 고조되나…대만에 F-16 부품 판매 승인한 미국의 속내는

7"나도 피해자” 호소…유흥업소 실장, 이선균 협박으로 檢 징역 7년 구형

8배우 김사희 품절녀 된다...두살 연상 사업가와 결혼

9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의 바이오 진출 이어진다…신약개발 자회사 ‘에이엠시사이언스’ 설립

실시간 뉴스

1“재산 절반 옆에 있는 여자에게...” 조영남 유서 깜작 공개

2한동훈 “민주, 李방탄 예산 감액…호남도 버렸다”

3고점 또 돌파한 리플 코인…한달 만에 264% 상승

4서학 개미에게 희소식…하루 23시간 거래 가능한 미 증권거래소 내년 개장

5 오세훈 시장 "동덕여대 폭력·기물파손, 법적으로 손괴죄…원인제공 한 분들이 책임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