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클레르는 가보’ ‘루이비통은 부장급’…10년만에 재등장한 ‘新계급도’
2011년 온라인상에서 ‘노스페이스 계급도’ 확산
다나와가 공개한 2020년판 패딩 계급도 뒤늦게 화제
전문가 "하나의 스토리메이킹, 확대재생산 말아야”
‘70만원짜리는 대장’, ‘25만원짜리는 찌질이’. 10년 전 온라인상에서 화제였던 ‘노스페이스 계급도’ 내용의 일부다. 한 고등학교 재학생이 제작했다고 전해지는 이 계급도는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패딩 제품을 가격별로 서열화해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11년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노스페이스 계급도가 확산되자 네티즌들은 ‘학생들이 브랜드로 서열을 나누는 게 한심하고 씁쓸하다’, ‘다 비싼 제품인데 굳이 계급을 나눠 갈등을 조장해야 하나’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였던 바 있다.
논란 이후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브랜드 계급도는 10년이 지난 지금 지갑부터 시계까지 더 다양한 분야로 확장돼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몰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가 지난해 제작한 ‘패딩 계급도’, ‘남성 지갑 계급도’, ‘여성 명품백 계급도’ 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나와뿐 아니라 명품 플랫폼에서도 계급도 콘텐트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몽클레르’는 ‘우리집 가보’?…지갑부터 가방까지 다 ‘계급화’
지난해 다나와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온라인커뮤니티 ‘다나와플레이그라운드(DPG)’를 통해 총 19개의 ‘2020 계급도 in DPG’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중 특히 패딩의 계절이 돌아오자 지난해 제작됐던 ‘2020 패딩 계급도’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게제된 패딩 계급도 글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패딩들이 총 6개 계급으로 분류돼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 ‘몽클레르’와 영국 브랜드 ‘나이젤카본’은 100만~500만원을 호가해 최상위 계급인 ‘우리집 가보’로 분류됐고, 100만~200만원대인 무스너클과 캐나다구스 등은 ‘대물려 입어’로 분류됐다.
‘파라점퍼스’, ‘에르노’, ‘CP컴퍼니’ 등은 ‘10년 입어’에, 10년 전 인기였던 노스페이스는 ‘코오롱’, ‘아이더’ 등과 함께 ‘5년 입어’로 분류됐다. ‘따뜻하면 됐어’ 칸에는 ‘머렐’, ‘밀레’, ‘블랙야크’ 등이, 가장 낮은 계급인 ‘막 걸쳐’ 칸은 ‘스파오’, ‘탑텐’, ‘에잇세컨즈’ 등의 SPA 브랜드가 들어있다.
패딩뿐만 아니라 남성지갑, 시계, 여성 명품백 계급도도 화제다. 다나와는 지난해 1월 23일 DPG에 ‘직급별로 알아보는 남자 지갑 계급도’를 2편에 나눠 게재했다. 아르바이트부터 사원, 과장, 차장, 부장, 그리고 그 이상까지 직급별로 사용하는 지갑을 브랜드와 가격에 따라 분류했다. ‘빈폴’, ‘폴스미스’ 등은 아르바이트생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가격대이고, ‘루이비통’, ‘구찌’, ‘보테가베네타’ 지갑은 부장급 이상의 직급이 돼야 구매할 수 있는 브랜드라는 식이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 ‘트렌비’도 최근 ‘2021년 명품 계급도’를 공개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가격대와 품질 별로 7개 종류로 분류했다. 최상위 계급인 ‘엑스트라 하이엔드’에는 에르메스가 포함됐고, 샤넬·루이비통·고야드는 그 다음 단계인 ‘하이엔드’로 분류됐다.
이와 같은 제품 계급도 콘텐트를 제작하는 이유에 대해 다나와 측은 “제품 성능이나 가격 등의 스펙을 가장 직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형태이고 소비자들의 호응도 좋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나와 관계자는 “10여년 전 타 업체가 처음 제작했던 ‘스마트폰 계급도’가 인기를 끌자 이를 기본 템플릿으로 삼아 계급도 시리즈를 만들었다”며 “계급 분류는 기업 담당자 및 전문가에게 기초자료를 받아 우리가 최종 편집해 제작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계급도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도 있다는 지적에 다나와 측은 “사회성이나 어떤 의도를 갖고 제작한 콘텐트가 아니고 단순히 직관적으로 성능의 우열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유머 콘텐트였다”며 “자체 커뮤니티 DPG에만 해당 글을 올린만큼 재미있는 게시물 정도로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계급도’ 통해 유머로 푸는 MZ세대
제품을 계급으로 분류하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가 ‘공정성’에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과)는 “MZ세대는 경쟁에 굉장히 익숙한 세대고, 소득 양극화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회의 계급화도 급속도로 진행되자 계급도와 같은 콘텐트로 좌절감을 풀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과)는 “계급도와 같은 콘텐트가 확산하는 이유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2030세대가 일종의 과시효과나 자기만족을 누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과거에 비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졌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젊은 세대가 현재의 만족감을 위해 소비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는 이 계급도를 계급론에 빗대어 생각하거나 사회와 연결지어 받아들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젊은 세대가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계급도와 같은 콘텐트로 재미있게 풀어내거나 유머로 소비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이에 지나치게 빠져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서 교수와 이 교수는 “이를 하나의 스토리메이킹으로만 보고 확대재생산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김채영 기자 kim.chae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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