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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구매의 사회적 이유’까지 고민해야 한다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유통업 중심으로 ‘미닝아웃’ ‘돈쭐낸다’ 확산
소비자 신념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가치 소비
환경, 윤리, 젠더, 사회적 책임 등 고려해야

 
 
업사이클링 브랜드 프라이탁의 가방. [중앙포토]
 
생산해 내는 제품 중 똑같은 디자인이 하나도 없는 가방 브랜드가 있다. 트럭의 화물을 덮는 폐비닐 방수천을 업사이클링해 가방으로 만든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의 이야기다. 트럭을 덮었던 방수천을 재활용해 튼튼하고 질긴 가방을 만들다 보니 방수천의 컬러와 패턴, 인쇄된 문구의 위치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어 같은 디자인을 만들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이 브랜드가 전 세계 미닝아웃 소비자들의 열렬한 팬덤을 형성한 데는 단순히 디자인 때문이 아니다. 트럭의 방수천을 재활용하고 폐자동차의 안전벨트와 폐자전거 타이어를 이용해, 비가 와도 절대로 젖지 않고 오래 써도 헤지지 않는 질기고 튼튼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방으로 재탄생 시킨 ‘프라이탁’은 단순한 가방 이상의, 메고 다니는 사람의 소비 취향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명품 브랜드의 반열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마르쿠스 프라이탁과 다니엘 프라이탁 디자이너 형제에 의해 탄생한 ‘프라이탁’은 자동차 면허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형제들의 ‘필요’에 의해 태어났다. 비가 자주 오는 스위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스케치한 그림이 비에 젖는 일이 많았다. 비가 많이 와도 가방 안의 내용물이 젖을 걱정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가방을 구상하던 이들 형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으로 늘 보던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의 방수 천이었다.  
 
이들은 인근 공장에서 트럭용 방수 덮개 천과 자동차 안전벨트, 자전거 타이어를 가득 실어 집안 목욕탕에서 일일이 세탁을 해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태어난 가방이 프라이탁의 유명한 ‘메신저 백이다. 이제는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한 메신저 백을 넘어 다양한 가방을 만들고 있는데 모두 날개돋인 듯 팔리고 있다. 제품은 튼튼하고 질긴 데다, 완벽한 방수 기능을 더해 세상에서 하나뿐이라는 희소성은 물론, 지속 가능한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의 ‘미닝아웃’을 보여준다. 가격은 20만~70만원이라는 비교적 고가임에도 전 세계 400여개 매장에서 연간 700억원 이상 팔리고 있다. 제품 소재는 5년 이상 사용된 방수천만을 이용하는 원칙을 지금까지 지키면서 수작업으로만 생산하는 프라이탁은 이제 유럽을 넘어 세계 가치 소비자들의 상징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프라이탁 제품은 트럭 방수 덮개를 재활용해 만들어진다. [중앙포토]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부합하는 소비

미닝아웃은 소비자가 소비할 때 자신의 신념(meaning)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coming out) 행동을 의미하는 데, 이를 줄여 미닝아웃(meaning out)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소비를 할 때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부합하는 제품, 혹은 서비스를 구매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불매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가 소비 시장의 주역이 되면서 환경, 윤리, 젠더, 사회적 책임 등과 같은 이슈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태도와 결합하며 ‘미닝아웃’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다.  
 
일부 진보적 브랜드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변화에 주목해 환경, 윤리, 젠더, 사회적 책임과 같은 가치의 바탕 위에 브랜드의 이념을 강화하고 그 이념에 맞는 행동을 보여 주는 것으로 팬덤을 형성하는데 이것이 바로 ‘브랜드 액티비즘’라고이해할 수 있다. 2021년부터 경영의 기본 덕목이 된 ESG도 이러한 소비 추세의 거대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정리하면 브랜드 차원의 ‘브랜드 액티비즘’과 기업차원의 ‘ESG경영’의 기저에는 ‘미닝 아웃’ 소비라는 도도한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구가 기후변화로 멸망해가고 있는데 학교는 가서 뭐하냐는 이른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을 주도해 세계 수십만 10대 학생들의 등교 거부를 끌어낸 것으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10대 환경운동가 툰베리는 해외 환경행사에 참여할 때 비행기를 타지 않고 철도나 선박을 이용한다. 비행기가 철도보다 20배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이유다. 스웨덴어로 프뤼그스캄(flygskam) 운동을 이끄는 것이다. 영어로 해석하면 ‘flight-shame’이고 우리말로 해석하면‘ 수치스러운 비행기 여행’정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이 스웨덴에서 퍼져 유럽 전역으로 번지면서 여행 시 비행기를 타지 않고 철도나 선박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지속해서 늘고 있다고 한다. 항공업계는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해 IATA(국제 항공운송협회) 등관련 단체 총회에서 ‘플뤼그스캄’을 주요 의제로 다루면서 ‘대응하지 않으면 더 폭발적으로 퍼질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항공유를 도입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미닝아웃’ 소비자들을 달래고 있다. 
 
환경적인 측면의 미닝아웃은 화장품, 패션, 식품업계에서 ‘비거니즘’ 소비의 형태로 나타난다. 채식은 기본이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을 사용하고 동물성 재료나 환경공해를 일으키는 재료를 이용한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등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려 깊게 행동하는 소비자들을 일컫는 ‘비건’은 이제 화장품은 물론, 패션, 식품 산업에서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MZ세대의 미닝아웃 소비 트렌드는 여러 분야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 2021년 7월 성장관리 앱 ‘그로우’가 MZ세대 92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중 자신이 가치 소비자라고 답한 응답자는 무려 79%에 이른다. MZ세대의 80%에 이르는 대다수가 자신이 소비할 때 제품의 가격, 품질뿐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부합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답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사례에 나타나고 있다. 우선 지난해 SNS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용기내’ 챌린지다. 이 캠페인은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는 용기를 내자는 캠페인으로 환경 단체 그린피스의 모델이면서 후원자인 배우 류준열을 비롯한 많은 연예인들, 인플루언서들이 SNS로 참여해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 캠페인은 이슈화에 성공하면서 현대 자동차 그랜저 등의 브랜드 광고 스토리로 채용되기도 했다.  
 

‘돈쭐낸다’의 바닥에는 미닝아웃소비

지식 플랫폼 폴인이 미닝아웃을 주제로한 트렌드 세미나를 열었다다. [사진 폴인]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 ‘돈쭐’ 의 바닥에도 ‘미닝 아웃’ 소비정신이깔렸다. ‘돈’과 ‘혼쭐’이 합쳐진 말로 공정과 정의로운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의 귀감이 된 가게, 기업의 제품을 구입해 돈으로 혼쭐을 내준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결식아동들이 눈치 보지 않고 ‘결식아동 꿈나무카드’ 결제도 필요 없이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할 수 있도록 음식을 내어준 홍대앞 ‘진짜 파스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그냥 삼촌, 이모가 밥 한 끼 차려준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와서 밥 먹자”라는 글을 세심하게 쓴 SNS상의 메시지가 공유되며 폭풍 바이럴이 일었다. 이러한 선한 주인의 행동은 ‘돈쭐 내주자’는 먹방 유튜버와 많은 손님의 발걸음으로 진짜 ‘돈쭐’이 났다. 
 
이 돈쭐은 강원도 화천군 애호박 농가에도 났다. 지난해 7월 생산량 급증과 코로나19로 인한 소비감소로 애호박을 산지 폐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자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 전국 MZ소비자들로부터 주문이 쇄도해 하루 만에 112톤의 애호박이 팔려나갔다. 이 물량은 8kg 기준 1만4000개 상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화천군 전체에서 가락시장에 일주일 동안 출하하는 물량과 맘먹는 수준이었다. 화천군의 ‘돈쭐’은 이어져 지난 8월에도 애호박 16톤과 토마토 3000개 상자를 카카오커머스에서각 각 2시간, 30분 만에 완판해 미닝아웃 소비현상을 실감케 했다.
 
미닝아웃은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부합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물론, 부합하지 않는 제품을 불매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8등신 미녀들을 내세워 외모 지상주의를부각하는 마케팅을 해오던 세계 최고의 여성 언더웨어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추락이 그것이고 쿠팡의 물류 창고 화재 때 노동자를 생각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비윤리적인 기업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일어났던 불매운동도 미닝아웃 소비와 무관하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사례에서 보듯 ‘미닝아웃’은 이제 전 세계적인 소비 트렌드가 되었다. 미닝아웃 소비는 자신들의 취향과 가치관을 표출하며 인증, 챌린지 등의 SNS 활동의 일상화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거침이 없는 MZ세대들의 등장 이후 가속화 되면서 전 세대로 확산하고 있다. 이제 브랜드는 품질과 가격은 물론이고 브랜드를 구매해야 하는 사회적 이유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허태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최근엔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대에서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IT영상콘텐츠학과 교수다. 

허태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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