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로 가는 대형 로펌들…태평양·광장은 이웃사촌 된다
제2 벤처붐에 자금력 갖춘 스타트업 늘어
기업 인수합병, 해외진출 자문 수요도 많아
대형 법무법인(로펌)들이 잇따라 경기도 판교에 새 사무실을 내거나 기존 사무실 규모를 넓히고 있다. 벤처투자가 크게 늘면서 로펌으로부터 사업 자문을 받으려는 신생기업(스타트업)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이달 3일 판교 알파돔시티에 사무실을 열었다. 새 사무실 면적은 630㎡(약 190평)로,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있던 기존 사무실(270㎡)보다 두 배 이상 넓다. 근무 인원도 크게 늘었다. 변호사 7명과 세무사 2명이 상주하고 있다. 예전엔 변호사 3명이 서울 본사를 오가며 순환 근무했다.
이중엔 베테랑 전문가가 많다. 판교 사무실 업무를 총괄하는 정의종 변호사는 금융과 기업자문 분야에서 30년 이상 경력을 쌓았다. 또 이상직(기술·미디어·통신), 강태욱(지식재산권), 송준현(공정거래), 구교웅(인사·노무) 변호사 등 10~20년 안팎의 경력을 지난 전문가도 대거 합류했다.
이밖에 본사를 오가는 인력을 더하면 약 30명이 판교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판교에 둥지를 튼 로펌 중에서 가장 많다. 정의종 변호사는 “판교 오피스는 혁신기업을 위한 최적의 전진기지”라고 강조했다.
2월 중순엔 광장도 태평양과 같은 건물에 입주한다. 규모도 태평양에 버금간다. 상주하는 변호사는 7명, 일주일에 2~3일씩 판교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는 5명이다. 서울 본사에서 업무를 지원하는 근무자도 13명이다. 광장 측은 인수합병·지식재산권·노무·정보통신기술(IT)·바이오 분야를 주력으로 다룰 계획이라고 밝혔다. 판교 스타트업에서 주로 관심 가질만한 분야들이다.
그보다 이른 지난해 6월엔 세종이 판교 사무실을 확장 이전했다. 대기업 인수합병이나 기업집단 내부 구조조정 등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경력을 쌓아온 조중일 변호사가 이곳 지휘를 맡았다. 이 밖에 블록체인·데이터나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변호사들도 합류했다. 변호사 6명을 포함해 총 7명이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무신사는 창업 초기부터 태평양과 계약
스타트업은 보통 첫 투자 라운드인 시리즈A에서 벤처투자사로부터 억 단위 돈을 투자받고, 반대급부로 지분을 넘긴다. 돈과 지분이 오가는 만큼 이때부터 기업과 투자사 간 분쟁거리가 생겨난다. 한 로펌 관계자는 “계약에 불공정한 내용이 있는 것 같다며 찾아오는 창업자가 많다”고 말했다.
예전엔 분쟁 거리가 있어도 감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창업 초기 자금력이 넉넉할 리 없기 때문이다. 시리즈A는 자사 사업모델을 입증해내야 하는 단계다. 적자를 감수하고 값싼 수수료나 프로모션으로 매출을 늘리는 건 이 때문이다. 한 푼이 아쉬운 때 로펌을 찾는다면 투자사가 먼저 반발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엔 상황이 바뀌었다. 창업 초기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는 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시리즈A 단계에서 100억원 넘게 투자받은 기업이 지난해 3분기까지 104개사에 달했다. 역대 처음으로 연간 기준 100개사를 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벤처투자 규모도 역대 처음으로 5조원을 넘어섰다.
패션 전자상거래업체인 무신사는 시리즈A 투자 유치 이후 태평양으로부터 사업 자문을 받아왔다.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벤처투자사인 세콰이어캐피탈로부터 투자받은 만큼 두 나라 자본시장 관련법에 관한 자문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콰이어캐피탈은 2019년 무신사에 2000억원을 투자했었다.
해외, 특히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수요도 늘었다. 성공만 하면 기업 가치가 순식간에 몇 배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시장 자체도 크지만, 자금력이 풍부한 미국 현지 벤처투자사로부터 투자받은 기회가 생기는 것이 매력이다.
태평양 관계자는 “최근엔 국내 이슈를 넘어 국경 간 거래와 같은 복잡한 이슈를 다루는 법률서비스의 수요가 늘었다”며 “태평양은 국내 로펌 중 가장 많은 해외사무소(9개)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대기업도 고객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다. 판교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기업을 인수하려는 대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세종은 “(판교 사무소는) 카카오·네이버 등 대형 IT기업에 법률자문을 제공해왔다”며 “지난해 4월 카카오의 크로키닷컴(지그재그 운영사) 인수 자문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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