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돈 되는 인공지능 서비스, 이스트소프트에서 쏟아진다
포털 서비스 줌, AI자산운용사를 자회사로…재테크 콘텐트 플랫폼으로 변신
딥러닝 접목한 안경 가상 피팅 서비스 라운즈, 사용자 만족도 높이며 순항
대표 직속 AI사업본부 중심으로 '버추얼 휴먼' 신사업에 도전
이스트소프트가 만든 ‘알집’은 한때 압축 프로그램을 뜻하는 대명사로 통했다. 당시 무료 프로그램인 데다, 한국어 사용이 가능했다. 이스트소프트는 알집의 성공에 힘입어 이미지 뷰어 프로그램 ‘알씨’, 음악 재생 프로그램 ‘알송’ 등의 형제 격인 제품들을 연이어 냈다.
전체 매출에서 알 시리즈(‘알툴즈’)의 비중도 컸다. 기업·기관용 제품은 유료로 팔았고, 개인용 제품에는 제휴 광고를 붙였다. 그렇게 번 돈이 10년 전인 2012년만 해도 전체 매출(313억원)의 절반을 넘겼다. 나머지 절반은 2005년 출시했던 온라인게임 ‘카발 온라인’에서 벌어들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스트소프트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인터넷포털 ‘줌(ZUM)’ 운영사인 줌 인터넷과 온라인 안경 쇼핑몰 ‘라운즈’를 운영하는 라운즈(구 딥아이), 자산운용사인 엑스포넨셜자산운용이 자회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662억원)의 34.9%에 이른다.
여러 사업에 무분별하게 손댄 것 같지만, 사실 모두 이스트소프트에서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술을 바탕에 두고 있다.
AI 자산운용, 운용 자금 1000억원 돌파
정 대표 지휘 아래 포털 서비스 줌 인터넷은 체질을 크게 바꿨다. 줌은 사용자 맞춤형 시작페이지, 아웃링크 정책 등을 내세워 2011년 나왔지만, 시기가 나빴다. 모바일로 대세가 넘어가던 때였기 때문이다.
줌 인터넷은 ‘재테크 콘텐트 전문 플랫폼’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자연어 처리, 빅데이터 분석 등 검색엔진을 개선하면서 쌓아온 AI 기술을 금융 서비스에 접목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줌 인터넷의 자회사인 엑스포넨셜자산운용이 중심이 됐다. 2017년 설립된 후 AI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자산운용 성과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운용자산 규모가 설립 5년 만에 1086억1300만원까지 늘어났다.
포털 사이트로서도 나름의 입지를 지키고 있다. 줌닷컴이 국내 검색 서비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2% 수준이다. 네이버·구글·다음에 이어 네 번째다. 점유율은 적지만, 온라인 광고 수익은 그렇지 않다. 검색과 디스플레이·커머스 광고를 합쳐 한 해 200억원이 넘는다.
2019년 출시한 온라인 안경 쇼핑몰 라운즈는 이스트소프트의 실용주의 AI 서비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비즈니스다. 온갖 분야에서 온라인 쇼핑몰이 등장하고 있지만, 아이웨어(안경렌즈·안경테·선글라스 등) 시장은 여전히 오프라인 안경원 위주에서 바뀌지 않았다. 온라인에서는 안경을 직접 써볼 수 없기 때문이다.
라운즈는 안경 가상 피팅 서비스를 해답으로 내놨다. 모바일 앱에서 실시간으로 안경을 쓴 자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뜻한다. AI가 사용자 얼굴에서 코와 귀 위치를 파악해 안경 이미지를 덧씌워준다. 또 사용자 얼굴형에 맞는 안경테를 추천하기도 한다. 라운즈 측에 따르면, 안경을 추천받은 사람은 일반 고객보다 구매율이 4배 높았다. 반품률도 10%가 안될 정도로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라운즈 측은 2019년 이후 가장 높은 월 매출액을 지난해 12월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이라면 올해 매출은 50억원대였던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높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뜻하는 지표인 거래액으로 치면 약 600억원 규모가 된다.
이런 신사업들에 필요한 AI 기술은 대표 직속 연구조직인 ‘AI플러스랩’에서 지원하도록 했다. 지난해 9월 기준 이스트소프트 임직원 181명 중 AI플러스랩에 소속된 인원은 30명이 넘는다. 자회사 소속 연구 인원까지 합치면 연구개발직 비율이 웬만한 기술 스타트업 못지않다. 이곳에서 개발한 기술을 자회사에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로열티를 받는 식으로 선순환 구조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스트소프트는 각 사업부문을 스타트업처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자회사로 분리했다. 이를 통해 “커머스는 커머스다운 사업 문화, 금융은 금융다운 사업 문화 등 고유의 문화를 만들고, 각자의 사업 영역에서 시장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게끔 한다”는 것이 정 대표의 생각이다. 현재 주요 자회사는 줌인터넷·라운즈·이스트시큐리티·이스트게임즈 등이다.
사업부문에 따라 회사를 나누고 나니 투자받기도 수월했다. 외부 투자를 받으면 사업을 더 빠르게 확장할 수 있고, 대신 상장하면 투자자도 들인 돈을 회수할 수 있게 된다. 2018년 줌 인터넷, 이스트시큐리티가 각각 30억원, 이듬해 라운즈는 50억원을 투자받았다. 라운즈 관계자는 “올해 안으로 시리즈B 투자 라운드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스트소프트 관계자는 “연구개발은 대기업처럼 깊게, 경영은 스타트업처럼 민첩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이스트소프트가 지닌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8인조 ‘버추얼 휴먼’ 걸그룹 만든다
아이돌 연예인을 버추얼 휴먼으로 제작한 뒤 광고를 찍는 등 지식재산권(IP)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MBC에서 방송 중인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방과 후 설렘’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한 참가자 7명을 버추얼 휴먼으로 만든다. 여기에 현실 세계에 없는 가상 인물도 1명 만들어서 8인조로 활동하게 된다.
이스트소프트는 버추얼 휴먼을 필두로 메타버스(디지털 가상세계) 비즈니스를 펼쳐나가려고 한다. 메타버스에 접속했을 때 몰입 정도를 높여주는 AI 기술을 이스트소프트에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전 세계에 걸쳐 주도권을 쥐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접근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해 종무식 자리에서 정 대표는 이런 구상과 함께 “메타버스 기업으로 거듭나 기업 가치를 1조원으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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