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부터 실손까지…이재명표 ‘보험 공약’ 通할까
탈모보험, 아토피 치료 건강보험 확대 등 이재명식 보험 공약 발표
탈모인구 1000만, 실손 가입자 3900만 표심 노린 공약, 실현 가능성엔 ‘물음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개한 272개의 실천 과제가 담긴 공약집에 보험 관련 공약이 대거 등장했다. 그동안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확행 공약’을 꾸준히 발표해온 이 후보는 화제가 된 탈모보험을 비롯해, 자전거보험 확대, 실손의료보험 간소화 추진 등 경쟁자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비해 보험 관련 공약에 더 힘을 실은 분위기다.
다만 이 후보 공약과 관련해 포퓰리즘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무리한 건강보험 확대가 재정 파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어 향후 실현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진료비 부담 덜고, 표심 얻는 전략 취한 이재명
그동안 이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탈모보험, 아토피 치료 건강보험 확대, 건강보험 재산공제액 기준 확대 등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공약들을 꾸준히 언급하며 대중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번 공약서에는 이 후보가 꾸준히 언급한 공약들이 대거 실렸다.
그 중에서도 보험 관련 공약이 눈길을 끈다. 이 후보는 지난달 초 탈모 치료비 부담이 큰 탈모인들을 위해 치료를 지원하는 탈모보험을 내놓겠다고 밝히며 보험 공약 발표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이후 같은 달, 보험소비자를 위한 5대 공약을 발표했다. 특히 이 후보는 이 공약에서 의료계 반대로 무산돼온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월에도 보험 관련 공약이 이어졌다. 12일에는 성인 환자에게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아토피 피부염 치료를 아동과 청소년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13일에는 건강보험료 재산공제액을 7000만원까지, 임기 내에는 1억원까지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더 많은 저소득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19일에는 반려동물 관련 유튜브 방송에 출연, 반려동물 표준 수가제도를 만들어 치료비를 안정화시키고 관련 보험제도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 후보는 현재 지자체 별로 도입한 자전거보험을 전국 단위 보험제도로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물론 윤 후보도 탈모 관련 보험 확충, 건강보험 적용 확대 등 보험 관련 공약을 내놨지만 이 후보보다는 공약수가 적은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건강보험 본인 부담 상한제 도입, 경증 치매환자에게도 장기 요양보험 혜택 부여 등의 공약을 냈지만 이 후보의 보험 공약보다는 분야가 한정적이었다.
이처럼 이 후보가 보험 관련 공약을 유독 많이 발표하는 것은 젊은층과 중·고령층 표심을 두루 얻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그가 강조한 탈모보험, 반려동물 보험 등은 젊은층 표심을 자극할 만한 정책이다. 반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나 건강보험료 공제기준 상향 등은 전 연령층을 공략할 수 있는 공약이 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에 따르면 국내 탈모 인구는 무려 1000만명으로 추산된다. 또한 지난해 6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중 탈모 진료를 받은 환자는 23만4780명이며, 이 중 20~30대 비중이 약 44%를 차지했다. 탈모 환자 입장에서 이 후보의 탈모보험 공약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또한 반려동물 보험도 혼자 사는 20~40세대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공약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공약은 39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의 관심을 끌 만한 공약이다. 지난해 5월 소비자 단체 ‘소비자와함께’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손보험금 청구 관련 인식조사를 시행했고 가입자 95% 이상은 30만원 이하 소액 보험료 청구를 포기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3000만명 이상의 가입자가 소액 실손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실정에서 청구 간소화 정책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공약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은 대부분의 연령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며 “특히 2040세대는 미래 노후준비에 대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어 이 후보의 보험 공약이 어필할 수 있는 계층”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런 보험 공약들은 여전히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적은 젊은층의 관심도 받을 수 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 진료비 지원 같은 공약을 대거 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정 파탄 지적, 의료계 반대’…넘을 산이 너무 많네
다만 이 후보가 당선 시 내세운 보험 공약들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본적으로 이 후보가 강조한 보험 공약은 건강보험을 확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만큼 정부가 의료비를 지원한다는 의미다. 대부분 적지 않은 세수가 필요한 정책들이다.
이 같은 정책에 대해 학계에서는 ‘퍼주기 식’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후보의 탈모보험 추진과 관련 자신의 SNS에 “탈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전 세계 어디에도 건강보험의 공인된 목적에 어긋나는 ‘신체의 완전성’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근거로 이렇게 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생명과 건강에 직접 관련성이 낮은 탈모 치료에 연간 수백억원 내지 천억원대의 건강보험 재정을 지출한다면, 장차 국민건강보험은 재정적으로 죽고 말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도 지난 1월 말 발간한 신간을 통해 “이재명 후보가 쏟아내는 공약 중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들은 대부분 돈 뿌리는 일”이라며 “이재명이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는 문제들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손 청구 간소화나 아토피 치료 건강보험 확대 등 국민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부분들에 대한 공약까지 비판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다만 심각한 질병이 아닌 탈모를 치료의 영역으로 보고 이를 지원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한 공약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후보의 보험 공약에 대한 의료계 반대도 거세다. 이미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정책을 10년 이상 반대해오며 입법 추진에 제동을 걸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지난달 이 후보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공약 발표 때도 관련 성명을 내고 “의료기관은 국민 개인과 보험사의 사적 계약 편의를 위해 청구 대행 업무를 하게 된다”며 “행정 부담과 비용이 증가하고 보험금 지급이 거부됐을 때 민원을 감당해야 하는데 의료기관 입장에서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료계는 이 후보 선대위 측이 이달 대한한의사협회와 ‘한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추진’ 등 정책협약을 체결한 것을 두고도 불편한 내색을 드러냈다. 지난 14일 의사단체인 바른의료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대부분의 한의 치료는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포퓰리즘이나 실효성 없는 보건의료 정책 공약 남발을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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